황주 도화동에 심얀붕이라는 봉사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거족으로 명망이 자자하더니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여지고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되니 시골에서 곤궁하게 지내었다.

 

도와주는 일가 친척도 없고 아울러 눈까지 멀고 보니 그 누구 하나 대접하는 이 없건마는 본래 양반의 후손으로서 행실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지조와 기개가 고상하여 일동일정을 경솔히 하지 아니하므로 그 동네의 눈뜬 사람은 모두 칭찬을 마지 아니하였다.

 

심봉사의 아내 곽얀진 부인도 또한 현철하여 덕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갖추었고, 예서와 시경 중에 본받을 대목은 모르는 것이 없고 제사를 받드는 법이나 손님을 대접하는 법을 비롯하여 동네 사람과 화목하고 가장을 공경하고 살림하는 솜씨며 무슨 일이고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잘하였다.

 

그러나 가세가 빈한하니 곽씨 부인은 몸을 아끼지 않고 품팔이를 했다. 삯바느질, 삯빨래, 삯길쌈, 삯마전, 염색일이며, 혼상대사에 음식 만들기, 술 빚기, 떡 찧기 하며, 일 년 삼백예순 날을 잠시라도 놀지 아니하고 품을 팔아 모으는데, 푼을 모아 돈이 되면 돈을 모아 냥을 만들고, 냥을 모아 관이 되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실수 없이 받아들여 춘추로서 시제와 집안 제사를 받드는 것이며, 앞 못 보는 가장을 공경하고 시중드는 것이 한결같으니 가난과 병신은 조금도 허물됨이 없고 먼 마을 사람들까지도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중에 재미나게 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같이 지내는 중에도 심학규의 가슴에는 한 가지 품은 억울한 한이 있으니, 슬하에 혈육이 하나도 없음이었다. 하루는 심봉사가 마누라를 곁에 불러 앉히고 말한다.

 

"여보 마누라, 거기 앉아 내 말 좀 들어 보오. 나는 편하다 하려니와 마누라의 고생살이 도리어 불안하니 괴로운 일일랑 너무 하지 말고 사는 대로 삽시다. 그러나 내 마음에 매우 원통한 일 하나 있소. 우리 양주 이미 나이 사십이나 슬하에 혈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조상의 향화를 끊게되니 죽어 저승으로 돌아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할 것이며, 우리 양주 죽은 후에 장사치레와 소대상이며, 해마다 돌아오는 기제사에 뉘 있어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떠 놓겠소? 병신 자식일망정 남녀 간에 낳아 본다면 평생 한을 풀 듯하니 어찌하면 좋을는고 명산대천에 치성이나 들여 보오.“

 

"지성껏 하오리다."

 

이렇게 대답하고 그날부터 품을 팔아 모은 재물로, 온갖 정성을 다 들인다. 이렇게 치성을 다 지내니 그 어찌 공든 탑이 무너지며 힘든 나무 부러지랴.

 

갑자년 사월 초파일에 곽씨 부인이 품팔이를 하러 산을 넘는데 그 기운이 이상할 뿐 아니라 맹랑 기괴하였다. 천지가 명랑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오색 꽃구름이 피더니 선인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화관이요, 몸에는 하의로다. 둥근 옥패를 그 몸에 차고 옥패 소리 쟁쟁하며, 계화 가지를 손에 들고 내려오더니 부인 앞에 재배하고 곁으로 와서

 

”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왕모의 딸인데 상제께 죄를 받아 인간계로 정배되어 갈 바를 모르던 중 태상 노군과 후토 부인, 제불 보살 석가님이 댁으로 지시하기로 지금 찾아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고 품에 작은 아기 하나를 안겨주더니 곽씨 부인 놀라 잠을 깨었다.

 

옆에는 딸아이 하나 놓여져있는데 그 용모와 기질이 옥으로 새긴 듯, 꽃으로 모은 듯, 짝이 없이 아름다워 연꽃과 같은지라. 자는 모습은 한 쌍의 명주요, 두낱의 박옥이라.

 

심봉사 내외가 꿈 이야기를 의논하니, 마음에 희한하여 못내 기쁘게 여기는데 이는 신불의 힘인가, 하늘의 도움인가? 아마도 두 사람의 정성과 행실이 지극하므로 역시 하늘이 감동하심히렷다.

 

하루는 아기가 하품할 때 향기가 진동하여 꽃구름이 비끼더니 이내 눈을 떴다.

 

”아가 아가 내 딸이야! 아들 겸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둥둥 내 딸이야!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나? 어둥둥 내 딸이야!“

 

심얀붕은 이같이 주야로 즐거워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 이렇듯이 좋아하였다. 슬프다. 세상사여. 슬픔과 즐거움에 수가 있고 죽고 삶에 명이 있는지라. 운수가 다하면 가련만 몸을 용서치 않는다. 뜻밖에 곽씨 부인에게 탈이 일어나 호흡을 헐떡이며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없이 앓는데,

 

”에고 머리야, 에고 허리야!“ 하는 소리에 심봉사 겁을 먹고 의원을 찾아 약을 쓰며 경도 읽고 굿도 하여 백 가지로 서둘러도 죽기로 든 병이라 인력으로 어찌 구하리오?

 

심봉사는 기가 막혀 부인 곁에 앉아서 온 몸을 만져 보며 말했다.

 

”여보, 여보 마누라, 정신 차려 말을 하오, 식음을 저폐하니 속이 비어 어찌하오. 산신님께 탈이 되어 제석님이 탈이 났나? 도리 없게 죽게 되었으니 이게 웬일이오? 만일 부행하여 마누라가 죽게 되면 눈 어두운 이놈의 팔자, 일가 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 외로운 이내 몸은 올 데 갈 데 없어지니 그도 또한 원통한데 강보에 싸인 딸 아이는 어찌한단 말이오?“

 

곽씨 부인 생각하여 보니 스스로 아는 병세라 살아나지 못할 줄을 짐작하며 봉사에게,

 

”여보 서방님, 내 말씀 들어 보오. 우리 부부 같이 늙어 백년을 같이 살자 하였거늘 명한을 못 이기고 필경은 죽을테니, 죽는 나는 서럽지 아니하나 장차로 가군의 신세 어찌하면 좋으리오. 내 평생 마음 먹기를 앞 못 보는 가장님을 내가 조심 아니하면 고생되기 쉽겠기로 더

위 추위 비바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동네방네 품을 팔아 밥도 받고 반찬 얻어 식은 밥

은 내가 먹고 더운 밥은 가군 드려 곯지 않고 춥지 않게 극진 공경하였는데 천명이

이뿐인지 인연이 끊겼는지 도리 없이 죽게 되었네. 내가 만일 죽게 되면 의복치레 뉘 거두며 조석공궤 뉘라 할까? 사고무친 외로운 몸이니 의탁할 곳 전혀 없는지라, 지팡막대 거머잡고 더듬더듬 다니다가 도랑에 떨어지고 돌에도 발길 채어 넘어져 신세를 자탄하여 우는 모양이 눈으로 보는 듯하고 기한을 못 이기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밥 좀 주오!' 슬픈 소리가 귀에 쟁쟁이 들리는 듯하니 죽은 혼이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밤낮없이 바라다가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 못 먹이고 죽다니 무슨 일인고! 어미 없는 어린것을 뉘 젖 먹여 길러내며, 춘하추동 사시절을 무엇 입혀 길러내리! 이 몸이 뜻밖에 죽게 되면 머나먼 황천길을 눈물이 가려 어찌 가며, 앞이 막혀 어찌 갈고! 여보시오 봉사님, 저 건너 김동지 댁에 돈 열 냥을 맡겼으니 그 돈일랑 찾아다가 내 죽은 초상에 쓰시고, 항아리어 넣은 양식 해산 쌀로 두었다가 못 먹고 죽어가니 장사나 치른 다음 양식으로 쓰시고, 진어사댁 관대 한 벌, 흉배에 수놓다가 끝내지 못하고 보에 싸 농 안에다 넣었으니 남의 귀중한 의복일랑 나 죽기 전에 보내시고, 뒷마을 귀

덕 어미는 나와 친한 사람이니 내가 죽은 뒤에라도 어린아이 안고 가서 젖 좀 먹여달라 하면 괄시는 아니 하리다. 하늘이 도와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살아나서 제 발로 걷거들랑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에 찾아와서 '아가 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무덤이다'라고 또렷하게 가르쳐서 모녀 상봉 시켜 주오. 천명을 못 이겨 앞 못 보는 가장에게 어린 자식 떼쳐 두고 영이별로 돌아가니 가군의귀하신 몸 애통하여 상치 말고 천만보중하소서. 이승에서 미진한 일 후생에서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살고 싶소.“

 

유언하고 한숨 쉬며 돌아누워 어린 아이에게 낯을 대고 혀를 찬다.

 

”아차 내가 잊었구료. 이 애 이름을 얀순이라 불러 주오. 이 애 주려고 만든 굴레 진 옥판 붉은 술에 진주 드림 붙여 달아 함 속에 넣었으니, 아기가 엎치락뒤치락하거들랑 나 본 듯이 씌워주오.“

 

말을 마치매 딸꾹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그쳤다. 슬프다, 곽씨 부인은 이미 다시 이승 사람이 아니었다. 슬프다. 사람의 수명을 어찌 하늘이 돕지 못하는가! 심봉사는,

 

”에고 마누라, 참으로 죽었는가?“

 

가슴을 꽝꽝, 머리를 탕탕 치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며 부르짖는다.

 

울다가 기가 막힌 심봉사는 머리를 방바닥에 부딪치며 몸부림치니 이리 덜컥 저리 덜컥, 치 둥글 내리 둥글 엎어져 슬피 통곡하니 이때 도화동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가 아니 슬퍼하리!

 

비록 가난한 집안의 초상이라도 동네가 힘을 모아 정성껏 차렸으니 상여 치레는 매우 현란하였다. 상두꾼을 두건, 제복, 행전까지 호사하게 차려입고 상여를 얼메고 갈지자로 운구한다.

 

”댕그렁 댕그렁 어화 넘차 너호.“

 

그때 심봉사는 어린아이 강보에 싸 귀덕 어미에게 맡겨두고, 제복을 얻어입고 상여 뒤 체를 거머집으며 미친 듯 취한 듯 겨우 부축을 받아 나아간다.

 

”에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도 갑세, 나와 가! 만 리라도 나와 가세! 어찌 그리 무정한가? 이제는 자식도 귀하지 않소. 얼어서도 죽을 테고, 굶아서도 죽을 것이니 나와 함꼐 갑세다.“

 

그럭저럭 건너가 안산으로 돌아 들어 양지바른 자리를 가려서 깊이 안정한 우에 평토제를 지내는데, 심봉사가 본래부터 맹인이 아니라 이십 후의 실명이라 머리 속에는 들어 있는 학식이 많으므로 원한이 사무치는 축문을 지어 몸소 읽는다.

 

”슬프다 부인이여! 이토록 요조한 숙녀를 맞아 좋을 때에 짝으로 삼고서 백년을 같이 늙자 하였거늘, 이제 갑자기 죽으니 부인의 혼백은 아주 갔노라. 젖먹이를 남겨두고 영이별 하니 장차 내 무슨 수로 기를 수 있으리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부인이 떠나가니 어느 때고 다시는 오지 못하겠기에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무성한 언덕에 깊이 묻었으니 푸른 묏부리와 더불어 길이 쉴지어다. 생전에 듣던 음성과 모습이 아득히 멀어지니 슬프다! 이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리라. 백양나무 가지 밖으로 달이 지니 산이 적적하고 밤은 깊은데, 어디서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니 무슨 말씀이든 하소연한들 저승과 이승이 가로막혀 길이 다르니 그 뉘라서 위로할 수 있으리오? 후유! 주과와 포혜로 간략히 차려 놓았으니, 부인이여 부디 많이 먹고 돌아가 주소서.“

 

심봉사는 부인을 매장하여 공산야월 쓸쓸한 곳에 혼자 두고 허둥지둥 돌아오니, 부엌 안은 쓸쓸하고 방안은 텅 비었는데 분향은 그저 피어 있었다. 휑뎅그렁한 빈 방안에 벗도 없이 혼자 앉아 온갖 슬픔을 짓씹고 있을 때 이웃집 귀덕 어미가 사람 없는 동안에 아기를 데려다 돌보아 주었다가 건너와 아기를 주고 가는지라, 심봉사는 이를 받아 품안에 안고서 지리산 갈가마귀 게 발 물어다 던진 듯이 혼자 우뚝 앉았으니 슬픔이 하늘에 사무치거늘 품안에 어린것은 자지러져 울어댄다. 그렁그렁 그날 밤을 넘기는데 아기는 젖 못 먹어 기진하니 심봉사는 어두운 눈이 더욱 침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동녘이 밝아지매 우물가에 두레박 소리가 귀에 얼른 들리기에 날이 새었음을 짐작한지라,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단 숨으로 우둥퉁 밖 에나가 애걸한다. 

 

"우물가에 오신 부인 뉘신 줄은 모르나 칠일 만에 어미 잃고 젖 못 먹어 죽게 된 이

아기를 젖 좀 먹여 주오."

 

그러나 그 부인 대답한다.

 

"나는 젖이 없소 마는 젖 있는 여인네가 이 동네에 많으므로 아기 안고 찾아가서 좀

먹여 달라 하면 누가 괄시하겠소?"

 

심봉사는 그 말을 듣자 품속에다 아기 안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거머 잡고 더듬더듬

동네로 걸어가서 젖먹이 있는 집을 찾아 사립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며 애걸복걸

빈다.

 

"이 댁이 뉘시온지 사뢸 말씀 있나이다."

 

"어쩐 일로 오셨소?"

 

"현철하던 우리 아내 인심으로 생각하나 눈 먼 나를 보더라도 어미 잃은 우리 아기 아니 불쌍하오! 댁의 아기 먹고 남은 젖이 있거들랑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근방의 부인네들 심봉사의 사정을 알므로 한없이 측은히 여겨서 아기 받아 젖을 먹이고 돌려주며 말한다.

 

"여보시오 봉사님, 어렵게 생각 말고 내일도 안고 오고, 모레도 안고 오면 이 애를 설마 굶게 하겠소."

 

백배로 치하하고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요를 덮어 뉘어 놓고, 아기가 노는 사이에 심봉사는 동냥을 다닌다. 이렇듯이 구걸하여 매월 초하루 보름의 삭망과 소상을 빠뜨리지 아니하며 지나갈 때, 얀순은 크게 될 사람이라 천지신명이 도와주어 잔병 없이 자라나니 흐르는 물 같은지라, 그의 나이 육칠 세가 되어가니 소경 아비의 손을 잡고 앞에 서서 인도한다. 다시 얀순의 나이 십여 세가 되어가니 얼굴은 일색이요, 효행이 지극하였다. 소견도 능통하고 재주도 매우 빼어나서 부친께 바치는 조석 반찬과 모친의 기제사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므로 어른을 넘어설 지경이니 아니 칭찬하는 이 없다. 세상에 덧 없는 것은 세월이요, 무정한 것은 가난이라. 심청의 나이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세도 군색하고 늙은 부친은 병으로 시달리니, 어리고 연약한 몸이 무엇을 의지하고 살리오. 하루는 얀순 부친께 여쭙는다.

 

"아버님 들으십시오. 눈 어두우신 아버지가 험한 큰 길을 다니시면 다치기 쉬우며, 비바람을 무릅쓰고 나다니시면 병환 나실까 염려되오니,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에 앉아계시오면 소녀 혼자 밥을 얻어 조석 걱정 덜겠습니다."

 

얀순이는 그날부터 밥을 빌러 나섰다. 

 

‘아버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는구나... 필시 하늘이 모친 돌아가시게 한 이 죄 많은 몸에게 내리는 천벌이렷다.’

 

하며 피어나는 감정을 애써 무시한채 밥을 벌러 나섰다.

 

이렇듯이 봉양하여 춘하추동 사시절을 쉬는 날이 없이 밥을 빌어 왔고 나이 점점 들수록 바느질과 길쌈으로 삯을 받아 부친 공경을 한결같이 하였다. 세월은 흐르는 물 같아서 얀순이가 열다섯 살이 되니 얼굴이 나라에서 첫손 꼽는 국색이요, 효행이 극진한데 재질마저 비범하고 문필도 넉넉하니 여자 중에 군자요, 새무리 중에 봉황이요, 꽃 중에서는 모란에 비길만했다. 원근에 이 소문이 퍼지매 저 건너 마을 무릉 촌의 장승상 부인이 심소저를 청하니 시비를 따라갈 때 천천히 발을 옮겨 승상 댁에 당도한다.

 

"네가 틀림없는 얀순이냐? 과연 듣던 말과 같이 아름답구나.“

 

자리를 주어 앉힌 후에 승상부인이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한 바도 없거늘 타고난

자태가 아리따워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녀였다.

 

"얀순아 내 말 듣거라. 승상이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아들은 삼 형제 이나 모두 다 황성에 가 객지에 벼슬살이요, 다른 자식과 손자는 없다. 슬하에 말벗이 없으니 자나 깨나 적적한 빈 방에서 대하느니 촛불이요, 기나긴 겨울 밤에 보는 것이 고서로다. 네 신세를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서 저렇듯 빈곤하니, 내 집의 수양딸 되면 여공도 손 익히게 하고 문자도 학습시켜 친딸같이 출가시켜 말년 재미를 보고자 하는데 너의 뜻이 어떠하냐?"

 

얀순이 싸늘한 말투로 여쭙기를,

 

"팔자가 기구하여 저 낳은 지 칠일 만에 모친이 세상을 뜨셨기로 앞 못 보는 늙은 부친이 저를 싸안고 다니면서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겨우 겨우 길러 내어 이토록 컸으나, 모친의 모습과 몸가짐을 전혀 몰라 철천의 한이 되어 그칠 날이 없기로 내 부모를 생각하여 남의 부모 공경하였거늘 오늘날 승상 부인 존귀하신 처지로서 미천함을 불구하시고 은혜 입으면 이 몸은 부귀영화 누리겠지만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사철의 복, 조석 공양 뉘 있어 하오리까? 길러 내신 부모 은덕 사람마다 있거니와 이 몸은 더욱 부모 은혜 견줄 바 없으니 잠시라도 슬하를 떠날 수 없습니다."

 

승상은 그 말투에 당황하며

 

"네 말 들으니 과연 하늘이 낸 효녀로다. 망령된 이 늙은이 미처 그 일을 생각지 못

하였구나."

 

부인이 애틋이 여겨 비단과 패물이며 양식을 후히 주고 시비와 함께 보내며 말씀하신다.

 

"얀순아 내 말 듣거라. 너는 나를 잊지 말고 모녀 간의 굳은 의를 지켜라."

 

이리하여 얀순이는 하직하고 돌아왔다. 그 무렵 심봉사는 무릉촌에 딸을 보내고 말벗없이 홀로 앉아 딸 오기만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발자취는 전혀 없다. 심봉사

는 갑갑하기에 지팡막대 거머잡고 딸 마중 나가본다. 더듬더듬 주춤주춤 사립문 앞에 나가다가 비탈에 발이 삐긋 밀려 개천 물에 풍덩하고

떨어지니, 얼굴에는 진흙이요 의복이 다 젖었다. 두 눈을 희번덕, 두 팔을 허위적, 나

오려면 빠지고 사방 물이 출렁출렁 물소리만 요란하니, 심봉사 겁을 먹고 외친다.

 

"거기 아무도 없소? 사람 살리시오!"

 

몸은 점점 깊이 빠져 허리 위로 물이 돈다.

 

"아이고 나 죽는다!"

 

차츰 물이 올라와서 목덜미를 감돈다.

 

"허푸 허푸, 아이고 사람 죽소!"

 

아무리 소리를 친들 오가는 사람이 그쳤으니 뉘 있어 건져 줄까. 이때 몽운사의 화주승이 지나가다가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이 개천 물에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그 중은 깜짝 놀라 굴갓 장삼을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버려두고, 짚고 있던 구절죽장은 되는 대로 내 던지고, 행전 대님을 다 벗고 누비바지 아래를 똘똘 말아 올려 붙이고는 백로가 고기 새끼 노리듯 징검징검 들어가서 심봉사의 가는 허리를 후려쳐 담뿍 안고 '어뚜름 이어차!' 끌어내어 밖에다 앉힌 후에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심봉사였다.

 

"허허 이게 웬일이오?"

 

"나 살린 이 뉘시오?"

 

"소승은 몽운사 화주승이올시다."

 

그 중이 손을 잡고 심봉사를 인도하여 방안으로 들어가서 젖은 의복을 벗겨놓고 마른

옷을 입힌 후에 물에 빠진 내력을 물으매 심봉사가 신세를 한탄하며 전후 사정을 말

하니 중이 일러준다.

 

"우리 절 부처님은 영검이 많은지라, 빌어서 아니 되는 일 없고 구하면 응하시니 부

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비시면 살아 생전에 눈을 떠서 천

지 만물 두루 보고 성한 사람 됩니다."

 

심봉사는 그 말을 듣더니 신세 처지는 생각지 않고 눈 뜬다는 말이 반갑다.

 

"여보시오 대사!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에 적어 가소."

그 중은 허허 웃는다.

 

"적기는 적겠으나 댁의 가세를 둘러보니 삼백 석을 주선할 길 없을 듯합니다."

심봉사가 화를 낸다. 화주승이 다시 허허 웃으며 권선문에,

 

'심얀붕 미 삼백 석.'

 

이라 대서특필하고는 하직하고 돌아갔다. 심봉사가 중을 보내놓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는 긁어 부스럼이요 도리어 후환이라 홀로 앉아 스스로 탄식한다.

 

"내가 공을 드리려다 만약에 죄가 되면 이를 장차 어찌하잔 말인고?"

 

묵은 근심 새 걱정이 불같이 일어나 신세를 탄식하며,

 

"천지가 아주 공평하여 별로 치우침이 없건마는 이내 팔자 어찌하여 형세 없고 눈도 멀어 해 달같이 밝은 것을 분별할 수 전혀 없고, 처자 같은 정든 사이도 마주 대하여못 보는가? 우리 망처 살았으면 조석 근심 없을 것을, 다 커가는 딸자식이 동네 품을 팔아 겨우 풀칠하는 중에 공양미 삼백 석이 어디 있어 호기 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궁리하나 방책이 전혀 없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장독, 그릇 다 팔아도 한 되 곡식 못 살 것이며, 장롱, 함을 방매해도 단돈 닷 냥에도 사지 않으리라. 집이라도 팔자하나 비바람을 못 가리니 나라도 아니 사리라. 내 몸이나 팔자 한들 눈 못 보는 이 잡것을 어느 누가 사가리오? 에고 에고 서러워라, 에고 에고 서러워라."

 

한동안 이렇게 슬피 울고 있을 때에 얀순이가 급히 돌아와서 닫힌 방문을 벌떡 열고,

 

"아버님!"

 

하고 부르더니, 저의 부친의 모양 보고 깜짝 놀라 달려든다.

 

"애고 이게 웬일이시오?”

 

승상 댁 시비에게 불을 때달라고 부탁하고 치마를 걷어쥐고 오는 길에 부친 얼굴 생각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겨우 식히며 얼른 밥을 지어 부친 앞에 상을 놓는다.

 

“아버지 진지 잡수시오.”

 

“나 밥 안먹으련다.”

 

“무슨 근심이라도 계시오?”

 

“네 알 일 아니로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오? 본래 부모와 자식 간에는 비밀이 없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소녀 비록 불효이나 말씀을 속이시니 마음이 서럽습니다.”

 

“아가 아가 울지마라. 너 속일 리 없지마는 네가 만일 알고보면 지극한 네 효성이 걱정이 되겠기로 진작 말 못하였다. 아까 너 오는 가 문밖에 나가다가 개천 물에 빠져

죽게 되었더니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놓고 '몽운사 부처님이 영검하기 다시

없으니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시주하면 생전에 눈을 떠서 성한 사람이 된다.'기

로 형편은 생각지 아니하고 홧김에 적었으니 이 어찌 될 말이냐? 도리어 후회로다."

 

심청이 그 말 듣고 반기어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제 새삼 후회사시면 정성이 못 되니 아버님 어두우신 눈 정녕 밝혀보게 공양미 삼

백 석을 아무쪼록 마련하여 보겠습니다.”


얀순이는 부친의 소원을 듣고 그날부터 뒤뜰을 정히 하고 황토로 단을 모아 좌우로 금줄 매고 정화수 한 동이를 소반 위에 받쳐 놓고 북두칠성 호반에 향 피우고 재배한 다음에 공손히 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빈다. 이렇듯이 밤낮으로 빌었더니 도화동 심소저는 하늘이 아는 바라 흠향하시고 앞 일을 인도하시었다. 하루는 유모 귀덕 어미가 오더니,


"아가씨, 이상한 일 보았나이다."


"무슨 일이 이상하오?"


"어떠한 사람인지 십여 명씩 다니면서, 값은 고하간에 15세 처녀를 사겠다고 다니니 그런 미친 놈들이 있소?"


얀순이 속마음으로 반겨 듣고,


"여보, 그 말 진정이오? 정말로 그리 될 양이면, 그 다니는 사람 중에 노숙하고 점잖은 사람을 불러오되, 말이 밖에 나지 않게 조용히 데려오오."


귀덕 어미 대답하고 과연 데려왔는지라, 처음은 유모를 시켜 사람 사려는 까닭을 물은즉 그 사람의 대답이,


"우리는 본디 황성 사람으로서 장사치로 배를 타고 만 리 밖에 다니더니, 배 갈 길에 인당수라 하는 물이 있어 변화 불측하여 자칫하면 몰사를 당하는데, 15세 처녀를 제수로 제사를 지내면, 수로만리를 무사히 왕래하고, 장사도 흥왕하옵기로 생애가 원수로 사람 사러 다니오니, 몸을 팔 처녀가 있사오면 값을 관계치 않고 주겠나이다."


얀순이 그제야 나서며,


"나는 본촌 사람으로, 우리 부친 안맹하여 세상을 분별 못하기로 평생에 한이 되어 하나님 전에 축수하던 중, 몽운사 화주승이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떠서 보리라 하되, 가세가 지빈하여 주선할 길 없삽기로 내 몸을 방매하여 발원하기 바라오니 나를 삼이 어떠하오? 내 나이 15세라 그 아니 적당하오?"


선인(船人)이 그 말 듣고 심소저를 보더니 마음이 억색하여 다시 볼 정신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섰다가,


"낭자 말씀 듣자오니 거룩하고 장한 효상 비할 데 없삽내다."


이렇듯이 치하한 후에, 저의 일이 긴한지라,


"그리하오."


하고 허락하니 심소저가 묻기를,


"행선 날이 언제이니까?"


"내월 15일이 행선할 날이오니, 그리 아옵소서."


피차에 상약하고, 그 날로 선인들이 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에 보냈다. 심소저는 귀덕 어미를 백 번이나 단속하여 말 못나게 한 연후에, 집으로 돌아와 부친전에 여쭈오되,


"아버지."


"왜 그러느냐?“

 

"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로 올렸나이다."


심봉사 깜짝 놀라서,


"그게 어쩐 말이냐? 삼백 석이 어디 있어 몽운사로 보냈어?"


얀순이 같은 효성으로 거짓말을 하여 부친을 속일까마는, 사세 부득이라 잠깐 속여 여쭙는다.


"일전에 만나뵈온 무릉촌 장승상 댁 부인께서 소녀보고 말씀하기를 '수양딸 노릇하라' 하되 아버지 계시기로 허락을 아니 하였는데, 사세 부득하여 이 말씀 사뢰었더니 부인이 반겨 듣고 쌀 삼백 석 주시기로, 몽운사로 보내옵고 수양딸로 팔렸습니다."


심봉사 물정 모르고 소리 내어 웃으며 즐겨한다.


"어허, 그 일 잘되었다. 언제 데려 간다더냐?"


"내월 15일에 데려간다 하옵니다."


"네가 게 가서 살더라도, 나 살기 관계찮지! 어, 참으로 잘되었다."


부녀 간에 이같이 문답하고, 부친을 위로한 후, 얀순이는 그 날부터 선인을 따라갈 일을 곰곰 생각하니, 사람이 세상에 생겨나서, 한때를 못 보고 이팔 청춘에 죽을 일과 안맹하신 부친 영결하고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여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없이 지내다가 다시 생각하여 보니 엎질러진 물이 되고 쏘아 놓은 살이었다.


"내 몸이 죽어지면, 춘하추동 사시절에 부친 의복 뉘라 다 할까? 아직 살아 있을 때

에, 아버지 사철 의복 망종 지어 드리리라.“

 

”...“


"쓰으읍... 하아..."


얀순이가 부친의 옷에 코를 박고 그 냄새를 한껏 들이키니 머리가 어질어질해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며 가랑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또 그 감정이로구나. 이 느낌은 무엇인가? 내 몸이 뜨거워지고, 머릿속에는 아버님 생각으로 가득 차니 참으로 기묘한 감정이로다. 더군다나 가랑이 사이도 젖어가니 이 병세를 어찌하리오?’

 

하고, 춘추 의복과 하동 의복을 보에 싸서 농에 넣고, 갓. 망건도 새로 사서 걸어 두고 행선 날을 기다릴 제, 하룻밤이 격한지라. 밤은 깊어 삼경인데, 은하수는 기울어져 촛불이 희미할 제, 두 무릎을 쪼그리고 아무리 생각한들 심신이 난정이라. 부친의 벗은 버선볼이나 망종 받으리라, 바늘에 실을꿰어 손에 들고, 하염없는 눈물이 간장에서 솟아올라,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부친 귀에 들리지 않게 속으로 느껴 울며 부친의 낯에다가 얼굴을 가만히 대어 보고 수족도 만지며 살포시 입을 맞추어 보았다.


"오늘 밤 모시면 다시는 못 뵐 테지. 내가 한 번 죽어지면 여단수족 우리 부친, 누굴믿고 살으실까? 애닯도다, 우리 부친. 내가 철을 안 연후에 밥 빌기를 하였더니, 이제 내 몸이 죽어지면 춘하추동 사시절을 동네걸인 되겠구나. 눈총인들 오죽하며, 괄시인들 오죽할까?

부친 곁에 내가 모셔 백 세까지 공양하다가 이별을 당하여도 망극한 이 설움이 측량할 수 없을 텐데, 하물며 이러한 생이별이 고금천지 간 또 있을까? 우리 부친 곤한 신세, 적수단신 살자 한들 조석 공양 뉘라 하며, 고생하다 죽사 오면 또 어느 자식있어 머리 풀고 애통하며, 초종장례 소대기며 연년 오는 기제사에 밥 한 그릇 물 한그릇 뉘라서 차려 놀까? 몹쓸 년의 팔자로다, 칠일 만에 모친 잃고 부친마저 이별하니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우리 부녀 이 이별은, 내가 영영 죽어 가니 어느 때 소식 알며 어느 날에 만나 볼까?

돌아가신 우리 모친 황천으로 들어가고 나는 인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터이니, 수궁에 들어가서 모녀 상봉 하자 한들 황천 가기 몇 천 리나 된다는지? 황천을 묻고 불원천리 찾아간들 모친이 나를 어이 알며, 나는 모친 어이 알리? 만일 알고 뵈옵는 날, 부친 소식 묻자오면 무슨 말로 대답할꼬? 오늘 밤오경 시를 함지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에 매었으면 하늘같은 우리 부친 한번 더 보련마는 밤 가고해 돋는 일 그 뉘라서 막을 손가? 마지막으로 포옹 한번 해보리라.“

 

하며 얀순은 부친을 꼬옥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향기가 어떤 꽃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그 어떤 벌레가 이 향기를 참으리오? 하늘도 무심하여라! 나 없으면 어떤 벌레가 아버지를 잡아먹을까 걱정되어 편히 눈도 못감겠다.’

***

원문도 지키면서 바꾸는게 진짜 개어렵네... 얀끼를 어떻게 터트릴지 피드백 해주면 그거 최대한 반영해서 원문 바꿔볼게... 마음에 안드는거나 "이렇게 바꿨으면 더 맛있겠다!" 하는거 있으면 뭐든 좋으니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