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의 수업은 훈련이 대부분이다.

직업을 이미 정한 학생들은 그에 관련된 수업을 받는다.

예를 들어 활을 선택한 학생은 궁수 직업 수업을, 불의 마법을 선택했다면 불원소 직업 수업을 받는 방식이다.

김진우의 몸에 내재된 <신검합일>을 익히려면 적어도 검술 숙련도을 Lv.5까지는 찍어야 발현이 된다.

즉 지금부터 밥만 먹고 검만 죽어라 휘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체력이 0.010 상승했습니다..>

<힘이 0.010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0.010 상승했습니다.>

<검술 숙련도가 1%로 상승했습니다>

<검술 도장실의 훈련 효과로 효율이 조금 상승했습니다.>

 

“하아… 하아….”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난 넓은 검술 도장실에서 검을 휘두르는 몇몇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각기 그럴싸 해보이는 검술을 휘둘렀지만 내가 휘두르는 검술은 책장에서 흔히 보이는 기본 검술 <삼재검법>.

마치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체르니를 배우는 것처럼 도장에 남아 마저 훈련하고 있던 학생들은 이곳까지 와서 무슨 삼재검법이냐 하는 시선으로 힐끗힐끗 곁눈질로 신기하단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남이사. 남 훈련에 뭐 이렇게 관심이 많은건지.’

 

1시간정도 검만 휘두르면서 땀을 뺏고 기분 좋은 능력치 상승 효과도 들렸으니 한 번 확인해보자.

 

<상태창>

 

이름 : 김진우

직업 : 미정

능력치 : 체력 : 1+(0.010) 힘 : 1(+0.010) 민첩 : 1(+0.010) 기 : 1 마나 : 1 마력 : 1 정신력 : 1 행운 : 1 

스킬 : 검술 숙련도 Lv.1(1%) 삼재검법 Lv.1

고유 스킬 : 설정안 Lv.1

 

“뭔가 RPG하는 느낌이 드네.”

 

그렇게 잠깐 땀을 식히고 다시 검을 휘두르고를 반복했다.

저녁 8시가 되어갈 때쯤.

김세현이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검술 도장실의 문을 열자 구석에 짱박혀서 검을 휘두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왔냐?”

 

다시 잠깐 쉴 겸 목검을 바닥에 두었다.

 

“설마 집에도 안 가고 여기서 계속 훈련했던 거야?”

“당연하지. 중간 고사때 퇴학 안당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하니깐.”

“……굉장하네. 마음에 들어. 후후. 몇 시까지 할 건데?”

“자정까지?”

“난 그렇게는 못해. 같이 있고 싶지만 잠깐 운동할 겸 여기 온 거라서.”

“응 그래. 세현아.”

“……이름 처음으로 불러줬네.”

“뭐?”

“아니야.”

 

김세현이 조금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내 옆에서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도 그에 질세라 다시 목검을 줍고 검을 휘둘렀다.

 

‘현실에선 운동도 귀찮아했는데…. 역시 사람은 살려고하면 뭐든 열심히 하게 되는구나.’

 

<체력이 0.010 상승했습니다..>

<힘이 0.010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0.010 상승했습니다.>

<검술 숙련도가 4.0%로 상승했습니다>

<검술 도장실의 훈련 효과로 효율이 조금 상승했습니다.>

 

기분 좋은 소리다.

옆에서 김세현과 같이 하자 좀더 흥이 났다.

역시 사람은 같이 해야 더 힘이 나는 모양이다.

 

 

 

*********

 

 

 

일주일이 지났다.

직업은 검사로 정했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검술 교수의 훈련을 보면 그것을 따라해보는 훈련이 주된 수업이었다.

당연히 나는 내가 유일하게 흉내낼 수 있는 삼재검법만 휘둘렀다.

검술 교수는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모양이지만 역시나 시비거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다.

5교시가 끝나자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 남2여1 3인방에게 멱살이 잡혀 음습한 골목으로 끌려들어갔다.

퍽! 퍽!

강력한 주먹이 얼굴에 내리꽂힌다.

 

“컥! 컥!”

“적당히 패. 애들 싸움 정도로 치부될 수 있게 말이야.”

 

금발의 비웃는 눈빛이 가득한 이 여자의 이름은 정수아.

큰 덩치로 날 패고 있는 놈의 이름은 김범수.

비실한 몸으로 내 몸을 뒤에서 꽉 붙들고 있는 녀석은 김재훈이다.

다시 강력한 주먹이 날아오르자 예상하고 있던 나는 머리를 움직여 주먹을 피했다.

 

“어쭈? 피해?”

 

몸은 움직일 수 없다.

다시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내가 고통에 신음도 뱉지 못할 정도가 되자 정수아는 김범수를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내게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난 너같이 무능력한 녀석이 젤 싫거든. 근데 이 학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일 걸? 회장은 중간고사를 빌미로 널 퇴학시키고자 하는 것 같지만. 바퀴벌레 같은 녀석이 기어다니는데 그걸 봐줄 수가 있어야지.”

 

정수아는 피가 떨어지는 내 뺨을 검지로 쿡쿡 찔렀다.

 

“일주일만 시간을 줄게. 알아서 자퇴해. 이건 널 위한 거기도 한 거야. 그야 시험 때 목숨을 잃는 것보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잖아? 후후.”

 

정수아가 가까이 있을 때.

나는 정신을 집중해 <설정안>을 발동시켰다.

 

<정수아>

 

약자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졌습니다.

과거 트라우마가 더 강해졌습니다.

??????

??????

……

설정안의 레벨이 낮아 더 열람할 수 없습니다.(현재 3%)

 

‘……왜 일주일밖에 안지났는데 시비 거나 했더니 이래서였군. 알만하다.’

 

성이 풀렸는지 3인방은 날 냅두고 사라졌다.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는 양호실로 갔다.

양호교사인 하얀색 가운을 입은 박예나가 긴 흑발을 뒤로 쓸어넘기며 문을 연 내게 말했다.

 

“흠. 괜찮니? 앉으렴.”

 

하나도 관심없다는 듯한 말투.

그야 생사가 오가는 전투도 있는 마당에 애들 싸움박질 정도야… 그런 경향이 내 소설 전반에 깔려있다.

 

“너가 그 소문의 꼴찌구나. 언제 양호실에 오나 했네.”

 

박예나는 손의 하얀색 빛을 띄우며 멍든 곳을 지우고 찢어지고 피가 난 곳은 반창고를 붙였다.

 

“잘 가. 비용은 학원 포인트로 나중에 청구 될 거야.”

 

박예나는 잊지 않으려는 듯 컴퓨터를 바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학원 포인트는 학원의 학생들만 가지고 있는 일종의 현금 시스템이다.

학원 포인트로 물건을 사면 PX보다 할인폭이 크기도 하고 그 외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후. 대충 3포인트 정도 깍일려나?”

 

내가 현재 갖고 있는 학원 포인트는 기본 200포인트.

이걸로 월세 내고 식비 내고 할 거를 생각하면 적으면 적지 많다고 할 수 없는 양이다.

 

“지각하면 얄짤 없이 깎이니깐 이것도 잘 써야지….”

 

그렇게 대충 화장실에 가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교실로 돌아왔다.

텅 빈 교실. 아마 쉬는 시간은 벌써 끝나 각자 수업을 들으러 나간 모양이다.

김세현만 빼고.

 

“……?”

 

왜 김세현만 교실에 남아있는 거지?

 

“왔어?”

 

김세현이 무서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분위기가 굉장히 무겁고 갑자기 소름이 끼칠 것 같다.

나는 분위기를 롼기하려는 목적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수업 안 가고 땡땡이라도 친 거야? 모범생인 주제에 왜……”

“응. 땡땡이 쳤어.”

 

내 말을 싹둑 자르는 김세현.

그리고 내리 꽂는 강렬한 시선이 내 상처에 닿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지금이 처음이야. 진우야.”

“……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널 발견했을 때 이미 상황이 끝나있었어.”

“…….”

 

김세현이 왜 분위기가 이리도 무서워졌는지 이해가 된다.

그녀는 스스로의 충동적인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있는 거다.

뚜드려 맞은 친구인 나를 위해.

 

‘하아…. 진짜 친구 잘 사귄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역시 내 주인공 답다!’

 

마음속에 저미는 감동을 물리치고 나도 분위기에 맞춰 연기를 했다.

 

“세현아. 건들지 마. 건들면 안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걱정 마. 다신 그런 생각 못 들게 손 한 번 봐줄게.”

 

그런 생각이 못 들 정도로 팬다면 징계를 받을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건 내 문제다.

한 번 당하면 백 배로 갚아줘야하는 게 내 성미기도 하다.

 

“그건 내 먹잇감이야. 세현아.”

“…먹잇감?”

 

김세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고 이쁘다. 정말.

 

“응. 내가 강해지면 그놈들을 가장 먼저 두드려 팰 거야. 근데 세현이 너가 손을 쓰면 내가 복수할 의미가 없어져. 무슨 말인지 알지?”

“…그야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김세현이 말끝을 흐렸다.

가능성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현재 내 처량한 신세. 당연히 이해한다.

나는 든든하고 정겨운 친구의 어깨를 양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세현아. 난 약속은 무조건 지켜. 반드시 그 놈들 줘팰거니깐 날 믿고 기다려 줘. 알았지?”

“…….”

 

그 순간.

 

<김세현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엥?’

 

갑작스러운 호감도 상승 메시지.

노린 건 아니었지만 방금 전 말이 김세현의 가슴속에 와닿은 모양이다.

 

김세현이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응. 믿을게. 진우야. 다른 사람은 안믿더라도 난 너 믿을게. 왠지… 그런 마음이 들어.”

 

그리고 내 손길을 느끼려는 듯 머리를 옆으로 뉘었다.

그 순간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