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또 내 면도기 썼지?!”


“아니~”


“그럼 이건 뭔데?”


“몰라~”


“아 쫌! 보고 이야기라도 하던가”


“어~어~, 알았어. 이것만 하고”


“어엄마~~ 누나가 자꾸 내 면도기로 다리털 깎아!!”


“너 그건 또 왜 엄마한테 말해!”


“쫌! 이 가시내야. 으짜 집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노!”


“아 엄마. 아파. 아파. 왜 나만 때..아파!!”


“아프라고 때리는기다. 어쭈? 막아? 막아?”


“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그라믄. 아 얼굴 깎는 면도기에다가 니 다리몽딩이 가따 대는건 말이 되나?”


“아. 아. 아프다고! 저게 잘 깎이는걸 어떡하란말야!”


“이눔의 자슥이! 오데서 말뽄새가. 누굴 닮아서 그래?”


오늘도 가정은 평화롭다.


하늘은 높고.

나비가 날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따사로운 태양이 베란다 빨랫감을 드리운다.


—-


8살 무렵까지만 해도 여자는 외동딸이었다.


지금도 사는 집의 명의는 집주인의 명의고.

10년마다 찾아오는 경제 불황에 아버지의 직장이 바뀌고.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도 알음알음 돈을 벌러 나간다.


TV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

어린 나이에 혼자 놀이터로 놀러 나가긴 힘들다.


요즘 시대에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대번에 전문가가 아동 학대니 방임이니 떠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뾰족한 수가 없다.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라는 이야긴, 

태어난 아이를 목매달아 죽이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여자의 부모는 언제나 아쉬웠다.

하나뿐인 딸에게도 예쁘장한 새 옷을 사입히지 못하는게 아쉬웠고

마트에서 다른 아이들이 사달라며 자지러지는 인형을 사주지 못하는게 아쉬웠다.


가장 아쉬운 것은, 딸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보채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애가, 

이제 초등학교나 들어갈 법한 나이의 딸아이가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7살 어린이날에 데려간 대형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아이가 말하던 이야기를 엄마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냐. 괜찮아. 집에도 저런거 있어”


차마 아이 앞에서 울 수가 없어서

아이 아빠에게 무작정 던져두고

엄마는 마트 화장실에서 문을 걸어잠근다.

이를 악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 날 뒤로, 엄마는 아이를 집에 둔 채로

일하러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필요한건 돈보다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지만

조르는 법보다,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에게

가난까지 배우게 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8살이 되었을 무렵.

별안간 아버지가 남자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에 들어왔다.

평소에 잘 입지 않던 검은색 양복까지 입은 모습으로.


처음엔 엄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무리 봐도 아이는 아버지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지만

그 시절엔, 두 집살림을 한다던 남자들이 알음알음 있었으니까.


“아..아냐! 여보. 그게…. 잠깐 들어와봐.”


비장한 각오로 현관문을 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해를 대번에 이해하고 당황했다.


“이 아는 눈데? 말 해봐라. 퍼뜩”


“들어와 보라니까. 애 듣겠다. 우리 딸? 잠깐만 동생이랑 놀고 있을까?”


“동생? 도오옹생? 당신 참말로..”


“아니라니까! 애 들으니까 방에서 이야기 합시다.”


아버지는 6살 남짓의 남자아이를 여자의 손에 들려주고

쏜살같이 어머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

“...”


“너 이름이 뭐니?”

“...”


“어디서 왔어?”

“...”


“우리 소꿉놀이 할까?”

“응”


말주변이 없는 남자애를 데리고, 여자는 장난감 상자로 향한다.

남자아이가 가지고 놀기엔 영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과 하늘색 인형들이 많았지만…


이따금씩, 안방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당신 미칫나, 아 키우는데 얼마가 드는지 알기나 해?”


“좀 조용히! 애한테 들리겠다.”


“나가 지금 말이 작게 나오게 생겼어?
 속이 안뒤집어지게 생겼냐고!

 우리 아한테 좋은거 입히고, 좋은거 맥일라고

 쌔가 빠지게 나르고 닦고.

 저 핏덩이를 혼자 집에다 내버려두고 돈벌러 나가는데.


 으짤라고 저 아를 데리왔는데!?”


“그럼 저 애를 그냥 혼자 버려두고와?”


“저 얼라 친척들은? 왜 쌩판 남인 우리가 저 아를 키워?!”


“저 애 혼자야. 혼자라고. 아무도 없어.

 그래도 친한 친구 자식인데. 차마 내버려둘 수 없어서…”


“사람이 으디까지 착해 빠져가지고 있을래. 으이?

 나한티는 암말도 없이 지 혼자만 따악 결정해가지고. 

 저만 착하고 아주그냥 나만 나쁜년이여. 

 안그라요?! 


 내가..내가.. 우리 딸애 옷도 예쁜거 하나 못사입히 봤는데…

 저번에 핑크색 드레스도 그리 이쁘장한거

 사주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결국엔 안방에서 엄마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아빠는 엄마를 꼭 껴안는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여보. 아..아파. 아파… 미안해...아파..아파”


어머니는  비어있는 아버지의 간장에 주먹을 꼽는다.


—--


“밥묵자. 아빠도 나오소”


남동생이 생긴지 두달이 지났다.


별 일이 있진 않았다.


아이들끼린 금새 친해져서

엄마가 일하러 나가도 오도카니 혼자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아빠가 쓰던 연필과 볼펜으로

거실 벽지에다가 그림을 크게 그려넣었고

화장실이 비누거품 천지가 된 적이 한 번 있었고

의자에서 뛰어 내렸다 넘어져서 온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운 적이 한 번 있었고

오뚜기 케챺 한 통을 아무것도 없이 홀라당 마셔버린 적도 있고


아이들이 친 온갖 사고를

원흉의 원흉인 아버지가 퇴근하고 나서 치우길 반복했지만.


뭐. 그러니까 별 일이 있진 않았다.


남자아이는 아빠 친구인 여자의 아버지 앞에서나

비슷한 나이 또래인 여자아이 앞에선 

곧잘 말하고 행동한다.


이따금씩 밤중에 친아빠가 보고싶어서 울기도 하지만

누나같은 여자아이나, 여자의 아빠에게 토닥토닥, 달래지기도 한다.


문제가 있다면…


“와 안묵나, 소시지 시르나?”


“아…니요. 좋아요”


“무라, 마이 했으니께. 마이 무라. 그래야 쑥쑥 크지”


“네…에”


여자의 엄마만큼은 어렵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이 불편한 존재라는걸 

나이가 어려도 아주 잘 안다.


아이라면 싫어할법한 매운 김치도 

엄마의 앞에서는 곧잘 집어먹으려 하고

돈까스나 소시지 같은 음식은 누나인 여자에게 앙보하려 한다.


여자의 엄마는 남자아이에게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부족하지 않도록, 식사를 평소보다 좀 더 많이 준비하고

남자아이에게도 많이 먹으라 말만 해준다.


“...냅둬라, 널찔라”


식사를 금새 마친 남자아이가 

수저와 밥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놓는다.


엄마는 남자아이에게 한 번은 말리는 시늉을 한다.


“제가 할래요. 좋아요”


남자아이는 설거지감을 넣어놓고, 식탁에 다소곳이 앉는다.


“저녁에는 뭐 먹고싶은거 읎나?”


식탁에 계속해서 한파가 내리 불어친다.

여자아이의 아빠도 엄마의 눈치만 보며 밥을 쑤셔넣고

여자도 자신이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지 눈치를 본다.


“모..몰라요”


“없어?”


“없어요. 괜찮아요”


[탁]


드디어, 2달만에 엄마의 이성이 끊어져 찢겨나갔다.


자신이 먹던 숟가락도 내려놓고

남자아이를 식탁에서 끌어내린다.


“자..잘못했어요”


남자아이는 영문도 모른채로 잘못을 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화가 단단히 난 듯이 보인다.


“당장 말해라! 뭐든지 해줄테니께. 말 혀!”


“으..으으…”

남자아이는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운다.


“여보, 다그치지 말고. 애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


“당신은 입 다물고 밥이나 드소!”

 

“,,,”


“말 해도 괜찮다. 내가 다 해주께!”


“히윽. 흐윽”


“울지만 말고! 아면 아답게.

 먹고싶으면 먹고싶은게 있다고 떼도 쓰고

 먹기 싫으면 싫다고 반찬투정도 하고.

 밥묵는 것보다 놀고 싶은기 급하기도 하고!

 이거 사달라 저거 보고싶다 울기도 하고!

 

 배고프고 못묵는기 얼마만치로 서러븐데!

 와 나한티 말을 안하는 것인데!!”


“히윽. 히윽”


무엇이 여자의 엄마를 화나게 한걸까.

남자아이는 모른다. 그래서 우느라 바쁘다.


여자의 엄마는 속이 답답하다. 터질 것 같다.

저 남자애만 보면 떠오른다. 자신의 어린시절이 보인다.


못사는 집의 여자아이라고, 어릴 때 부모 손에도 버려져서는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한 끼 밥을 먹기도 힘들고, 의무교육 이상의 교육도 받기 힘들었다.


¼ 든1/8든 꼴에 피붙이라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데

항상 눈치를 보면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했다.


요즘엔 과거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땐 그랬지

‘식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다.


저 남자아이를 보면 자신의 식모살이 시절이 떠오른다.

사촌인지 육촌인지 하는 다른 애들이 먹던 하얀 쌀밥이

그렇게도 먹고싶었는데.


한 숟갈이라도 먹으려 하면 죽도록 매맞던 시절이 떠오른다.


안다.

애를 대할땐 살살 달래가면서, 윽박지르지 말고. 보듬어줘야 하는걸 알지만.

저 애가 자신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저 애한테서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인다는 사실이

자신한테서, 그렇게도 죽여버리고 싶던 외숙모의 모습이 보인단 사실이

자신의 속을 뒤집어서 찢어발긴다.


“말 해도 개안타! 하루뿐인 생일인데

 엄마가 다 들어주께!

 먹고싶은거 있으믄 뭐라도 다 만들어주께.

 가지고 싶은기 있으믄, 뭐든 하나는 꼭 사주께.

 

 이제 니도 우리집 아니께.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꼭 다 해주께!”


“흐윽..흐아아아앙”


“사내자슥이 울지만 말고! 퍼뜩 말해본나!”


“케이 히윽. 케이크 먹고 히윽 시픈데”


“그래! 케이크 사러 가자. 

 밥 묵고, 엄마랑 케이크 사러가자!”


“생크림 케이크으으 으아아아앙”


그제서야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먹고싶던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외친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엄마란 존재는 방금 처음 가져봤으니까.

먹고싶은 케이크만 주구장창 외치면서 엄마 품에 안겨 운다.


—--


여자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일년에 한 번 겨우 먹을 수 있던 케이크를 만족스럽게 퍼먹었다.


남자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토닥토닥,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빠는 거실에서, 딸아이를 품에 안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 딸, 동생 생긴거 괜찮아?”


“웅! 케잌도 먹구 좋아”


“하하….그런거 말고. 엄마 뺏긴거 같아서 싫거나 하지 않아?”


“아니, 집에서 있어도 이제 안심심해서 좋아 ”


“그래…그렇구나. 고맙다. 우리 딸“


“뭐가?”


‘아냐. 그냥.

 동생 잘 챙겨주고, 이제 누나니까. 알았지?”


“내가 이제 누나야?”


“그럼, 우리 딸이 이제 누나지”


“웅!”


당장 내일 아침에, 남은 케이크 위에 딸기 하나를

네가 먹네 내가 먹네

동네가 떨어져가라 싸우지만.


으례 남매들이 그렇듯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도 하고

부모님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든든한 동지가 되기도 하고.

평생의 라이벌이자 가장 깊은 이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8살의 여자에겐 꽤나 괜찮은 친구가 한명 생겼을 뿐이다.


—--


“그래서, 그 1학년 남자애가 진짜 네 동생이야?”


“어. 동생이야.”


“하나도 안닮았는데?”


“아 성별이 다르잖아. 성별이”


“근데. 왜 성씨도 달라? 남매라며”


“하아…그게…”


“혹시.. 너희 부모님이 저……”


“아 그런거 아니라고”


친구들에게 적당히 어물쩍 넘기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사연많은 재혼가정으로 알려질 판이다.

아니면 엄마가 불륜녀가 되려나?


수능에 집중할 시기인데도

친구들이 여자를 둘러싸고 신입생 1학년 남자애의 신상정보를 캐묻는다.


“자. 짦고 굵게 설명해줄까, 상세하고 길게 설명해줄까?”


그간의 사정을 잘 설명하려면 30분도 넘게 걸린다.

10분의 쉬는시간은 짧다.


“짧고 굵게. 얼른 말해”


“아빠가 달라, 동생은 입양. 끝”


“어…미안타”


“아 그런거 아니라고! 한참은 어릴때 우리집에 입양와서 같이 사는거라고”


동생이 우리집에 올 때 까지 산 세월보다

같이 산 세월이 훨씬 길다.


면도기좀 썻다고 대번에 엄마한테 이르는 꼬마애가

뭐가 좋다고 친구들이 꼬치꼬치 캐묻는지 모르겠다.


분명하다.

아빠 친구네 집에 어릴때 자신이랑 동생이  뒤바뀌었고.

실은 동생이 엄마아빠 친아들이고

자신이 입양된 아이인게 분명하다.

이러저러 기구한 사연을 거쳐서 6살 남동생이 드디어 친부모를 만난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선 엄마가 그렇게 남동생만 싸고돌 수 없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억울하다.


“그러면…너랑 동생이랑 피 한방울도 안섞였네?”


“어…그렇지?”


“와, 대박. 훈훈한 남동생이랑 한 지붕아래서. 대박”


“쫌! 동생이면 동생이지, 유전자까지 따지냐?”


거실 하나 방 두개짜리 집이라, 같은 방에서 잔다는것 만큼은

여자는 끝까지 숨기고싶다.


“관심 없어?”


“제발…쇼츠나 틱톡좀 그만 보고 제발…”


죽어도 새 스마트폰은 안사주는 엄마가

음식 하나만큼은 배가 터지게 해주신다.


생물 시간에 배웠던 DNA 염기서열이야 다르겠지만

그 염기서열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이쯤 먹었으면 99% 일치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100% 피붙이 가족이다.

가족끼린 그러는거 아니다.


“그럼 나 좀 소개시켜줘. 누나 친구중에 예쁜 누나 있다고”


“야 저기 떨어졌다.”


“뭐?”


“양심 새꺄 양심”


“야!”


동생이 잘생겼다는것 쯤은 안다.

주관적이지만 자신이 보아도 인물값은 한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경험이 동생의 외모를 증명한다.


중학생때 집안 사정을 모르는 ‘년’들이

사귀지도 않으면서 동생과 같이 하교하는 누나에게 손찌검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니까.


아니…아무리 그래도 피붙이 동생인데.

그런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


“니는 그래가꼬 우짜 대학갈래?”


“몰라. 안가”


“안가믄 밥은 뭐시로 벌어묵고 살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6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눈 앞에 두고서

엄마와 딸이 티격태격한다.


“동생 봐봐라, 전교 10등 아래로 떨어진 즉이 없다.

 누 닮아서 그리 공부를 안해쌀꼬”


“엄마닮아서 그래. 엄마도 공부 안했다며”


“엄만 안한기 아니라 몬한기고! 이 가시내가 따박따박 또!”


“아 아파. 아파!” 


“막아? 막아? 아프라고 때리는기다”


“몰라! 대학 안가! 보내줄 돈도 없으면서!”


“있다! 니 하나쯤 대학 보낼 돈은 있으니께,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가면, 동생은 어쩌고. 동생 보낼 돈은 있어?”


“허매, 니 그른 생각 하고 있었나?

 참말로 갸륵한 누나 납싯네


 극정 하덜들 마라, 갸는 갸 아빠가 알어서 해줄끼다”


“아빠가? 아빠가 뭔수로 그 큰 돈을 벌어와

 로또라도 됐어? 진짜?”


“하이고마, 니 아배 말고, 니 동생 친아빠.

 니 아빠 친구, 남겨준 돈이 쪼매 있다.

 대학 보낼 정돈 된다.

 

 엄마가 몰라가꼬 니 동생 우리 호적에 안올린줄 아나.

 친양자인지 뭐시긴지 까딱 잘못하믄

 우리만 나쁜 사람된다. 


 니도 그니까. 동생한티 빌붙을 생각 하덜들 말고

 돈 좀 생긴거 같다고 뻐댈라 카지 말고!”


“안 그러거든!

 몰라, 그래도 대학 안가. 공부하기 싫단말야”


“이눔의 가시내가, 기껏 말을 쳐 해줘싸도 

 뭐해묵고 살낀데!”


“아! 아프다고!!”


“어매 친구 딸 보니께…”


“그만! 엄친딸인지 엄친아인지는 쫌 그만!”


“이야기쫌 고마 끝까지 들으바라!

 니도 간호사 해볼래?”


“네?”


“공부 쪼매만 더 해바라.

 인스울은 아니더라도, 수도권에 간호학과라도 가봐라.

 일은 쪼깨 힘들어도, 먹고사는데는 큰 문제 없단다.

 

 간호사도 ‘사’짜다 안카나”


“인터넷에 맨날 힘들고 죽겠다는 이야기만 나오던데

 엄만 딸한테 그런 일 시키고 싶어?”


“그라믄, 다른 일은 안힘들고?

 남의 돈 벌어묵고 사는기 오데 쉬운일처럼 보이드나?

 

 내가 니 공부라도 잘혔으면, 검사에 판사라도 시킬라카지.

그라게, 이눔의 가시내가, 좀, 평소에, 으이?”


“아 아파아아아!!”


“아프라고 때리는 기라고!”


고3의 여자에게 조건이 붙었다.

9월 모의고사까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점수를 올려올 것

이미 휘양찬란하게 망가진 내신을 메꾸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수시니 논술이니 챙겨줄 여력이 되지도 않으니

남은 6개월, 정시에 몰아친다.


어떻게든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점수를 만들어내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간다.


전문직이든, 기능직이든,

‘사’짜 직업은 고되고 힘들다.

대신 직장은 안정적이고 기대수입이 높다.


만국 공통의 규격이 있어서

여차하면 외국에서도 먹고살기도 나쁘지 않다.


물론, 여자의 외국어 실력이 따라줘야 하지만


“동생, 자니?”


“아냐.”


“들어가도 돼?”


“왜, 언제는 뭐 물어보고 들어왔어?”


“하아…참자…참자…”


“손에 든건 뭐야?”


“음료수. 니 마시라고”


“누나 어디 아파?”


“참자…참자…참자…”

“왜? 뭔일인데?”


“누나, 영어공부좀 알려줘”


“어?”


“까딱하단 엄마한테 맞아 죽게 생겼다. 이시간에 물어볼게 너뿐이라고.

 누나 살려주는 셈 치고.”


“아니…누나 고3이잖아

 난 고1인데 어떻게 그걸 해”

“누나가 수학 물어보는거 아니잖아!

 어차피 수학은 버렸고

 영어라도 해야지. 영어에 학년이 어딨냐?”


“그게 나이 어린 동생한테 할 말은 아닌거같은데…”


“누나가 딱 한 번만 더 참는다.”


“....알았어, 봐봐. 교재”


“어?”


“누나 뭐라도 있을거아냐. 영어문제집이든 뭐든”


“...어?”


“없어?’


“너 가지고 있잖아. 내가 왜 들고와”


“....누나 알파벳은 알지?”


“이리와, 이리와. A부터 Z까지 쳐맞자.

 내가 혼자 맞은게 억울해서 안되겠다”


“어엄마! 누나가!!”


“야야야야. 쫌! 알았어, 알았어.

 문제집좀 빌려줘, 너 있잖아.


“하아…어디서부터 해야하냐”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공부를 잘하는 동생에게 영어과외를 받는다.


다른 시간에는 국어나 탐구과목도 봐야하고

수학의 정석은 포기했다 하더라도 개념수학은 풀어봐야한다.


“누나도, 대학 가려구?”


“어쩌겠냐. 먹고 살려면 가야지”


“...”


“왜. 너는 안가려고?”


“아니…그냥…”


“헐. 엄마가 너한테 말 안해줬어?”


“뭘?”


“쓰읍…하아… 씨, 말하면 또 맞아 죽을거 같은데”


“...왜?”


“아니다. 누나가 간호사 해서

 네 학비 대줄테니까.


 넌 공부만 해”


“누나 대학 졸업하려면 나 3수는 해야하는데?”


“쫌! 그냥 신경 끄고 공부만 해. 알았지?”


“그럼.. 나도 대학 가도 돼?”


“그럼. 우리 동생 하고싶은거 해야지.”


여자는 과외선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설령 그 돈을 쓰지 않고 전액 학자금 대출로 메꾸더라도

여자는 동생의 대출을 대신 갚아줄 의향이 있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당장 먹을 밥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당장 몸 뉘일 공간이 없는게 아니다.


자신과는 다르게, 변변찮은 과외 한 번 못시켜도

상위권 3%를 놓쳐본 적이 없는 동생인데

고졸로 학창시절을 끝내버릴 수는 없다.


드디어, 여자에게 진학에 대한 목적과 목표가 생겼다.


—--


“다녀왔습니다.”


“하이고마, 고생했다. 야간근무도 사람 할게 아니구마”


“엄마가 하라며~”


“그랴그랴, 엄마가 나빴다. 밥 무야지”


“잘래”


“묵고 자, 허기지면 잠도 안온다.”


“자알래. 졸려.”


“그려, 얼른 자라.”


여자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어오기 시작하자

엄마가 여자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아버지가 직장을 한 번 더 옮기긴 했어도, 정년퇴직을 하지는 않았다.

집안에 소득자가 한 명 더 늘어나니

살림살이가 퍽 달라진다.


아이들 생일 뿐만 아니라

부모님 생신때도 케이크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점화부가 망가져도 고치지 못하던 가스레인지를

드디어 새걸로 바꾸었다.


압력밥솥 말고도, 전기밥솥을 들여놓았다.


조만간 운명하실 것 같은 냉장고와 세탁기도

망가지는 순차적으로 바꿔줄 요량이다.


저축이 좀 더 쌓인다면

방이 한 개 더 많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겠지만…


“누우나 왔다”


“으엑! 2층 가서 자. 왜 내 자리에 누워”


“조올려, 못올라가. 누나 미끄러져. 니가 올라가”


“그럼 좀 나와. 못일어나잖아.”


“누나 못움직여.”


“무..무거 으헉!”


남자의 명치께에 주먹이 꼽힌다.


“안무거워”


“아..안무거워”


“그래. 잘자”


“에휴. 일어나봐, 자리 비켜줄테니까”


“...”


“누나?”


“진짜 미국 갈꺼야?”


“누나가 학비 대줄테니까 대학원 가보라며”


“그렇다고 외국으로 갈 줄은 몰랐지”


“따악, 석사만 후딱 따고 올거야, 나도 취업 해야지”


“지금 취업해도 되잖아”


“대학원 가지말까?”


“가”


“뭐 어떻게 하라는거야 참…”


남자의 대학원 진학이 결정되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내로라하는 공과대학에 진학하고

기능사니 기사니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군대도 집에서 출퇴근 하는 산업체로 돈 벌면서 다녀왔다.


산업체에 남자를 꼽아준 교수는

남자를 대학원으로 알음 알음 꼬시더니

대뜸 외국의 대학원으로 동생을 보내버린다


아니…그놈의 교수는 동생이 잘났으면 한국에서 지가 끼고 살 것이지

왜 애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까지 대학원에 보내는지 모르겠다.


동생 말로는 취업연계니 뭐니

이름도 잘 모르는데 유명하다고 박박 우기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갔다가….빨리 와…”


여자는 팔꿈치로 남자의 얼굴을 뭉갠 채 잠에 빠진다.


“누나 숨…숨…숨 크헉”


—-


“고마 엄마랑 살자. 뭐 땜시 맹키로 쌘프란시스콘지 프란치스콘지.

 다 때리치라”


마지막에 마지막에 가서, 결국 엄마의 울음이 터진다.

인천공항 제 2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엄마가 남자의 손을 꼭 잡는다.


“금방 갔다 올게요. 군대 대신 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아덜내미 군대 안간다고 그리 욕을 해쌌는데

 그게 이리 될줄 우야 알았겟노. 흐잉….”


“아휴 울지마요 엄마. 연락 자주 할게요”


“그래,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밥도 잘 챙겨먹고.”


“네. 아빠”


“에휴. 그 녀석이 네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또 그 소리한다.”


아빠도 20년 전에 죽은 친구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방학땐 올거지?”


“대학원이 방학이 어딨어?”


“없어?”


“휴가는 있겠지. 아이고. 이젠 누나까지 울어?”


“안우러 .…”


“남사스러워서 증말, 남들이 보면 평생 가는줄 알겠다.”


“갔다가, 훌쩍. 빨리 와.”


“알았어, 빨리 올게. 면세점에서 살거 있어요?”


“아빠 담배 한보루ㅁ..크흡”


아버지의 등짝에도 손바닥이 내려쳐진다.


“이눔의 남편네가  몬하는 말이 없어.

 멀리 공부하러 가는 아한테 담배심부름 시키물거요?”


“저 이제 진짜 가요.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출국장 게이트 너머로 남자가 가족들에게 손을 흔든다.

엄마도 떠나가는 아들에게 손이 떨어져라 크게 흔든다.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자식새끼 키워봤자 암 짝에도 쓸모가 읎다. 에휴. 훌쩍”


“또 맘에도 없는 말 한다. 엄마”


“마. 고마 가자! 훌쩍. 알아서 지 살길 찾아 간다는데. 훌쩍”


“나보고 왜 데려왔냐고 할 땐 언제면서”


“그 말이 지금 입에서 나오소?”


“아냐 아냐…미안해…”


한마디 거들다 본전도 못챙긴 아빠는

엄마를 꼭 붙잡고 집으로 향한다.


여자도 마지막으로 한 번, 뒤돌아서 보이지 않는 동생의 모습을 찾는다.



“동생한테 연락 왔나?”


“왔어요.”


“요즘 와이리 연락이 뜸하노. 뭔일 있나?”


“바쁘데요”


“참말로. 밥은 뭇데?”


“아 몰라. 나도 물어보는 중이야”


“퍼뜩 좀 물어봐라. 엄마 답답해서 쓰러지겄다.”


“27살이나 된 애가 그럼 굶고 다니겠어요?”


“엄마가 해준 밥 안무면 그게 굶는기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접때 김치에 밥에 쌀에 한가득 택배 보냈잖아요”


“이눔의 가시내가. 또 말대답을 따박! 따박!”


“아. 엄마 잠깐 뼈맞.. 아…아파 아파!”


남자와 인천공항에서 헤어진지 6개월이 지나간다.


첫 한 달 동안은 매일같이 연락을 했다.


국제전화는 비싸니까.

와이파이가 닿는 학교에서.

한참이나 느린 영상통화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원에서 내어준 자그마한 숙소에서 지낸다고 들었다.

그 조그만한 숙소의 월세가격이, 2년만 지내면 우리집 전세보증금을 뛰어넘는다 들었다.

학교에서 월세 지원이 나와 다행이라고 말한다.


마트에서 고기나 야채를 사는것보다

햄버거를 사먹는게 훨씬 저렴하다고 들었다.

등하교는 문제가 없는데 주말에 할 게 없다고 들었다.


대번에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평범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가 많다고 들었다.

하나같이 한 입 베어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

먹고나면 느끼해서 김치가 먹고싶단다.


대학원에서 정해진 지역 이외엔 조심하라고 안내를 받았단다.

코로나 이후로 약쟁이들이 많아지고, 치안이 나빠졌단다.

엄마가 통화하다 말고 한 번 울었다.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다.


엄마가 우체국에 큰 박스를 하나 택배로 보냈다.

쌀만 5kg

김치도 쌀만큼

구석구석에 조미김을 찔러넣고

라면으로 뚜껑을 덮었다.

국제특송 가격이 비싸다고 엄마가 한참을 투덜댄다.


한 달이 지나니까

매일 하던 연락이 이틀에 한 번으로 줄었다.


두 달이 지나니까

그나마도 삼일에 한 번으로 줄었다.

엄마가 연락좀 자주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울었다.

동생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오늘은 열흘만에 연락이 닿았다.

동생은 바빠서 그랬다며 문자만 남긴다.

전화도 못 받는다고 한다.


밥은 먹었는지, 별 일은 없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그냥, 바빠서…]


어물쩍 대답을 피한다.


“엄마”


“와. 또”


“좀. 딸내미가 말하는데 살갑게좀 말해주면 덧나?”


“하이고마 사춘기가 이제싸 왔나”


“증말…나도 함 가봐야겠어”


“오데?”


“미국, 아무래도 이상해”


“와? 갸한테 뭔 일 있데?”


“아니. 아무 일도 없다고 잡아떼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니 병원은 우짜고”


“이번년도 연차 하나도 안 썼어. 15일 다 끌어다 쓸거야”


“그라도 되나?”


“몰라. 꼬우면 자르라지, 갈데 많아”


역시, 뭐가 되었든 ‘사’짜 직업은 강력하다.


“비행기 표값은 엄마가 도와주께”


“괜찮아. 적금 든거 있으니까”


“니 차산다고 모은거? 차는 우짜고”


“지금 차가 문제야?

 분명히 뭔 일이 있어.  

 가서 아무일도 없으면 등싸대기를 한대 후려 갈기고 올거야”


 비행기가… 다음주에 하나 있다.

 돌아오는건 천천히 잡아도 되니까.”


“하이고, 이러고 있을기 아니다. 니 아빠한테 연락좀 해야 쓰것다.”


“왜?”


“올 때, 배추좀 사오라고 시킬라꼬”


“엄마아! 그걸 내가 어떻게 들고가”


“그라믄. 김치도 없이 밥을 우짜 물라고”


“쫌! 내가 알아서 할게”



“가믄 니도 연락 매일 하고. 알았제?”


“뭔 일 있으면, 내가 끌고 돌아올게”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엥? 이건 왠 달러야? 아빠?”


“비상금은 있어야지. 아빠 담배 끊었다.”


“하이고 니 아배. 담배 끊은 스트레스를 내한테 다 난리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고마 퍼뜩 가라. 비행기 늦을라”


엄마는 여자를 출국장쪽으로 툭툭 밀어낸다.


“와… 딸 차별 대박”


“그라믄 아가 지금 아픈지 으짠지 연락이 안되는데. 

 니는 누나가 되가꼬 극정도 안되나?

 맘같아선 내가 기냥 쌘프란시스콘치 프란치스콘지 날라가봐야겠는데

 하이고…”


“또 운다. 엄마도. 

 나도 걱정되니까 가잖아요.

 별 일 없을거야”


“몸 조심하고”


“네~”


남자가 갈 때처럼 국적기 직항을 타는게 아니다.

30만원을 아끼기 위해서 경유만 2번 하는 외국의 저가 항공을 탄다.

순수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넘어가고

수하물의 제한도 빡빡하다.


비행기만 탑승했는데도 벌써 외국에 온 것 같다.

탑승객이나 승무원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한국말을 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의 학교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손에 꼭 쥔다.




“어…익스큐즈미. 하우 캔아이 고 히어?”


“..Who are you? #xehuwu /*~wx”


“하아… 구글 번역기가…”


난관에 난관의 연속이다.

경유를 할 때마다 수하물 찾느라 고생이고

그 와중에 2번째 비행기는 이륙지연이다.


25시간만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당도한다.


이상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여진 캐리어를 찾고

가판대에서 가장 먼저 선불유심을 사고.

공항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면을 하고.


출국장 게이트를 찾게 된 것 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공항에서 실리콘밸리 시내까지 차로 30분.


버스를 타도 되고.

전철을 타도 되고

택시나 우버를 잡아다 타도 된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몇 번 버스를 타면 동생의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아는데, 버스 승차장을 모른다.


전철 승강장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2층부터 지하 까지, 커다란 공항 내부를 2번 왕복했다.


포기하고 1층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는데

택시기사라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구글 맵스에 동생의 대학교를 찍어서


“아이 원트 고 히어. 하우 머치?”


대한민국 유치원생도 할 법한 영어를 구사한다.


“70 dollor”


“잇츠 투 익스펜시브! 피프티 달러 플리즈”


“Nope. 70 dollor.”


분명 인터넷에선 40~50달러면 택시를 탈 수 있다고 했는데.

기사는 여자의 캐리어를 가리키며 70달러만 외친다.


그새 물가가 많이 오른건지

딱 봐도 호구잡기 좋은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하루 술 값을 더 벌려는건지…


여자는 아직 동생을 만나지도,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숙소도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무작정 이곳에 온 참이다.


“오케이 오케이. 세븐티 달러. 허리허리. 레츠고”


“Welcome to San Francisco”


여자는 택시비로 10만원 가까이 하는 돈을 처음 써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면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써버린 돈이다.

어차피 시내에서 대학까지 이동하는것도 한세월이다.


뒤죽박죽인 머리를 부여잡고

부디 동생에게 별 일이 없어서 등짝을 후려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아임 히즈 올더 시스터. 패밀리!

 아이 원트 미트 힘!”


“Wait. We need to check your ID”


“아..아이디? 아이 해브 구글 어카운트”


“... Please wait a minute. Miss.”


“아 진짜. 좀 그냥 들여보내 달라고요!”


여자가 결국 한국어로 소리친다.

경비실 직원도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방문객의 신원과 목적을 확인하는 것.

별게 아니다.


“히어. 잇츠 마이 패스포트. 코리안.

 아임 히즈 올더 시스터.

 아이 원트 투 밋 힘!”


“Sigh. Okay. 

 Please hold Visiter Card everytime.

 db ~zb(js746~ %_♂49”


드디어 경비실에서 출입증을 내어준다.

뒤에 무어라 말하긴 하지만, 알아듣기 힘들다.


여자는 드넒은 대학부지에서 

남동생이 있는 연구동을 찾는다.


캐리어를 끌고. 모를때마다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다.


누군가는 헤드폰을 쓴 채 여자를 무시하기도 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 여자를 위해 손짓발짓을 써가며 설명하기도 하고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막상 연구동 랩실을 찾아갔더니 기껏 허탕이다.

불은 꺼져있고 사람이라곤 딱 한명.

그마저도 동생이 아니다.


런치가 어쩌구 하는거 보니 

밥먹으러 간 것 같은데…


“웨…얼 이즈 힘?”


여자는 남자의 사진을 내밀며 동생의 위치를 묻는다.



“미스터 킴. 그거 또 먹어?

 냄새난다고. 몰라? 마늘 냄새.

 실례라고. 공공장소에서”


식당도 아닌 휴계실에서 남자가 혼자 식사를 한다.

남자의 맞은편에 금발의 여성이 마주한다.


공과대학에서, 그것도 대학원에서 여성은 흔치 않다.

하물며 반듯한 옷차림에 잘 꾸며진 모습을 한 미모의 대학원생도 흔치 않다.


그런 여성이 굳이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서

남자의 식사에 왈가왈부한다.


“...”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도시락을 열어서, 하얀 쌀밥에 김치를 꺼낸다.

다른 반찬은 없다.


한국의 가족들이 보내준 쌀로 만든 

다 식어버린 냄비밥과 김치.


서양인들의 식습관 기준에선 꽤나 강렬한 마늘향이 난다.

그래서 교내 카페테리아를 가지 않고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카페테리아에선 밥을 사먹지 못한다.


미국의 물가는 상상 그 이상이다.


신선식품을 사는 것은 꿈도 못꾼다.

정크푸드가 오히려 저렴하다.

헌데 그 정크푸드도 비싸긴 매한가지고

매일같이 사먹기엔 입에도 맞지 않는다.


정말로 쓰레기로 만든건지, 물갈이가 심한건지

자주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


아프면 병원도 못간다.

의료보험도 없다. 

드러그스토어에서 진통제만 사다가 버틴다.


“동양인들은 예의를 중시한다던데.

 모두 거짓말인가?”


금발의 여성은 대꾸하지 않는 남자가 재미없다.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깊숙히 들이마신다.


“후~”


남자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뱉는다.

도시락의 냄새나는 빨간 채소에 담뱃재를 턴다.

하얀 쌀밥에 담배를 비빈다.


“이런 저급한 음식 말고, 나랑 식사하러 갈까?

미안하게도 내가 당신의 식사를 망친것 같은데.”


“...”


남자는 수저를 내려놓는다.

이 사람은 왜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걸까?


이미 충분히 힘들다.

연구실 급여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파트타임잡을 알아보고 싶어도 시간이 여의치 않다.


지금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샘플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쓰고, 다른 논문을 읽어봐야 한다.


하얀 쌀밥에 꼽힌 담배를 보면서

남은 가장자리 부분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이 든다.


어지럽다.

여성의 향수냄새와 담배냄새가

남자의 머릿속을 붙잡고 뒤흔든다.


남자는 입을 열어서

상대방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려 한다.


거절하려 했다.


“으헉!”

남자의 오른손이 급작스럽게 위로 당겨진다.


“집에 가자!”


“누…누나? 여긴 어떻게…”


“집에 가자! 더 볼것도 없다!”


“아니…그게…”


“말대답 하지 말고! 누나 말 들어라”


여자는 안다.

저 여자가 자신과 다르게 잘 사는 집안의 여식이라는 것 쯤. 충분히 안다.


잘 정돈된 머릿결과 눈썹.

한 눈에 보아도 고급진 원단의 옷감

언뜻 언뜻 보이는 손목의 시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향수향

하다못해 말투, 손짓, 행동 모든게 자신과 다르다.


저 금발의 여성이 남동생에게 보이는 감정과 행동이 ‘순수한 호의’에 있다는게 아니란걸 안다.


학창시절, 지겹도록 겪어봤으니까.

소위 있는 집 새끼라는 것들이

없는 집 아이들을 깔보는 행동을 여자는 아주 잘 안다.


“이 창년은 또 뭐야?”


금발의 여성이 두 남녀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여자는 이 코쟁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비치’라는 말이 해변가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안다.


[짝]


누나는 금발 여성의 뺨을 올려친다.


“입 닥쳐, 썅년아”


그리고 걸쭉한 한국식 욕을 내뱉어준다.


살면서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금발의 여성이

다짜고짜 소리친다.


“못배운 동양인 족속들이 감히!”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지만 그뿐이다.

달려들지 않는다.


단 한대의 타격에서 서열이 정해졌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누가 위인가. 누가 아래인가.


서열이 낮은 동물은 

몸을 지키기 위해서 짖어대기만 한다.


여자는 다시 남자의 팔을 잡아 끈다.


“집에 가자!”


당장에 돌아갈 비행기표도 없다.

남자의 학사일정이나 석사논문이 어찌되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면 먹고 살 방법이 뾰족히 있지도 않다.

모아둔 저축도 이번 여행 경비에 홀라당 다 써버렸다.


그래도 안다.

반경 10마일 대학부지 내에서 가방끈이 가장 짧은 여자이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걸

누나는 잘 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여자는

금발 여성의 뺨을 한 번 더 올려친다.


10년 즈음 전에, 동생의 환심을 사지 못해서

대신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던 양아치들.

손을 있는데로 봐주고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이 금발에게 전한다.


“한 번만 더 내 동생한테 허튼짓 해봐.

 그땐 이렇게는 안끝나. 알겠어?


저건 내꺼라고. 내꺼.

처음으로 가져본 나만의 것이라고.

너같은 년들이 함부로 넘볼 수 있는게 아니야.

알아들어?!”


비로소. 금발 여성이 조용히 입을 다문다.

여자는 하나뿐인 남동생을 이끌고

휴게실을 나선다.



“누나 잠깐만. 다 설명할테니까”


“...”


“어쩌려고. 집에는 어떻게 갈건데?”


“...”


“괜찮다니까? 여긴 왜 온거야.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뭐가 괜찮은데? 니 꼴좀 봐!!!”


“내가 뭐 어때서…”


“어때서? 하. 반 년만에 사람이 뼈만 남아서

당장 내일이라도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릴 표정으로

남이 담배꽁초 쑤신 밥을 퍼먹으려고 하는데.


어때서? 지금 누나랑 장난해?”


“...”


“너 사는 집에좀 가보자. 보나마나 거지꼴 이겠지”


“아냐. 정리 잘 해놨…”


“더러운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겠지!!

 이 옷 봐봐. 엄마가 사준 옷 그대로잖아.


 세탁은 하니? 

 냉장고에 먹을 건 있어?

 잠은 제대로 자는거야?


내가 이 꼴 보자고 너 대학원 보낸 줄 알아?

눈만 꿈뻑꿈뻑 동태눈깔마냥 허여멀건해선

도대체 뭐가 괜찮은건데에!!”


“...미안”


“빨리. 숙소로 안내해”


오후에 해야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남이있는데도

남자는 여자의 손에 밀쳐져 숙소로 향한다.


—-



“이야. 황량하기 그지없네.”


[찰칵]


여자는 스마트폰을 들어 남자의 숙소 전면 사진을 찍는다.


어질러진건 이불 하나가 전부다.

남자가 사는 방 치곤 깔끔하다.


이제는 여자가 혼자 쓰는 방에 비하면

이곳이 사람 사는 집이고 

그곳은 돼지우리다.


그럴 수 밖에.


50리터도 안하는 냉장고 하나와 이불이

보이는 것의 전부이니까.


옷이야 옷장안에 있을거고

베란다에 세탁기도 있을테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 사는 집 치고 너무 황량하다.



“왜…찍어?”


“나도 엄마한테 이르려고 한다.

 어쩜 사람 사는 집에 밥먹는 상도 하나 없니.”


“아냐. 저기 있어.”


“말대답 한 번만 더하면 맞는다.”


“...”


“냉장고 봐라. 생수라도 좀 넣어놓고!

 여긴 수돗물 못마신다며


….이건 뭐니?”


 여자가 냉장고 안에 노란색 약병을 꺼낸다.

병원에서 하듯, 뒷면의 성분표를 확인한다.


“진통제, 약국에서 산거…왜?”


“네가 이걸 왜… 먹어?”


“가끔 배아프거나 열날때 먹지. 상비약이야.”


“아니. 내가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

 니가 이 약을 왜 먹냐고.”


“드럭스토어가서 아프다고 하니까 줬다고.

 먹고 남은거…뜯었으니까 냉장보관이라도 하는거야. 

누나가 얄약 보관은 잘 해야한다며”


저번에 뭘 잘못먹었는지 열나고 설사할 때

약국에서 안내해준 저 진통제를 먹고나니 좀 버틸만 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법한 하얀색 진통제 알약.

타이레놀이겠거니. 냉장고 한 켠에 밀봉시켜 보관해놨다.


“도대체 어떻게 아프면 마약성 진통제가 냉장고에 들어있는데에?!!

 똑바로 말 안해! 누나 눈깔 뒤집히는거 보고싶어?!!!”


“...어?”


“이거 다발성 골절이나 암환자들이 먹는거야.

 너. 똑바로 말해. 어디 많이 아파?

 아니면 힘들어? 

너도 막… 그 뉴스에서 나오는 것 처럼 마약하니?


안돼…안돼. 어디봐봐.”


여자는 동생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살핀다.

눈 밑에 충혈된 자국은 없는지

등이나 팔뚝을 긁어댄 흔적은 없는지

이를 갈거나 입안에 헌 곳은 없는지.

코 안쪽에 출혈이 있는지….


“ 그만! 아냐. 이거 그냥 약국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거란 말야.”


“누나한테 거짓말 하지마.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왜 이런걸 먹어!”


“...없는걸.”


“이런건 의사 감독하에 정량으로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고. 

 내 말 알아들어?!”


“돈이 없는걸 어떡하라고!!

 여기서 의사 얼굴 한 번 보려면 얼마나 깨지는지 알아?”


“누나가 돈 보내주잖아! 그건 어따쓰는데!!”


“집세내면 없단말야!

 2달 전에 집주인이 집세 올렸는데

 학교에서는 차액분 나보고 부담하래. 못 도와준데.

 

 집세 내고, 교통비 쓰고나면, 밥 먹을 돈도 없어.

 햄버거도 못사먹고. 마트 가기도 힘들어.

 

 연구비 받는것도 얼마 안되고.

 그런데. 의사 보러 가라고?

 이 약도 겨우 산건데?

 

 그냥 나가서 굶어 죽을까?”


“...”


“나 아까 그 여자가, 밥 사준다 그랬을때 무슨 생각 들었는지 알아?

 저 담배 묻지 않은 가장자리 밥은 먹을 수 있을까?

 이 여자랑 밥 한번 먹으면 배부를까?

 저녁은 안먹어도 되겠지?.“


“때려쳐. 집에 가자. 이러고 살 필요 없어.”


“못해! 지금 돌아가면 취업이고 뭐고 다 끝이라고!”


“너 하나쯤은 내가 먹여살릴 수 있으니까. 그냥 가자”


“거기 회사 연봉이 얼만줄 알기나 해?

 석사 초봉이 팔천이야, 팔천.

 연말에 성과급 받으면 일억도 넘어.

 

 아빠 엄마 누나 다 버는것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고!!!”


[짝]


이제는 여자가 남자의 뺨을 올려친다.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데에!!

 우리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배는 안굶기고 대학도 다 보냈어.

 이거 보여? 엄마가 너 주라고 스팸 통조림 쥐어주더라.


 너 햄 소시지 이런거 잘먹는다고.

 가서 밥이랑 해서 먹이라고.


  그래도 한국인인데 빵쪼가리 먹으면 허기진다고

  돈 조금 없어도. 괜찮잖아”


“그럼 아빠 임플란트는 누가 해줘?

 어금니 없어서 식사도 잘 못하신다며.

 엄마 골반에도 인공관절 해야한다며. 그건 누가 해줘?

 다음번에 집주인이 전세금 올린다 그러면, 우리집은 어떡해? 


 그냥 가족 째로 싹 다 땅바닥에 나앉을까?


[짝]


여자는 한 번 더 남자의 뺨을 올려친다.


“때리지만 말고 말을 해보라고! 할 말 있어?! 해결책이 있냐고!”


남자가 자신의 뺨을 올려친 여자에게 윽박을 지른다.

처음으로 누나에게 진심으로 대든다.


“몰라. 없어…다 모르겠어….

 누나 어떡해?

 그냥 이러구 가?”


“괜찮아. 버틸만 해. 2년밖에 안돼. 

 너무 걱정만 하지 말고.”


“으..으아아아아앙….어떻게 이런데 너만두고 가아아아”


이제는 여자가 주저앉아서 운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해 생지옥에 동생을 버리고 갈 수도 없다.


미국 유학, 아메리칸 드림 전부 다 거짓말이다.

미국에 대학원만 나오면 다들 떵떵거리면서 살고

가방끈이 땅에 질질 끌려다닐정도로 길어지는게 좋을 줄 알았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간호사 동료들 중에

미국에 간호사로 이민갈거라며

그곳은 연봉도 높고 처우도 괜찮다며 영어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부 다 허상이고 거짓말이….다?


“훌쩍..스읍…훌쩍..”


“그만 울고. 돌아가는 비행기는 언제야?

 오늘 잘 곳은 있어?”


“...있어”


“어딘데?”


“누나. 여기서 살거야. 대사관에 가자.”

 

대사관은 워싱턴에 있으니까

정확히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목적이 정해지고, 목표가 세워진다.

머리 회전이 빨라지고,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중요한 건,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활용한다.


무비자 관광기간은 90일 남짓.

시간싸움이다.


“어..어? 으아아악 잠깐만!!”


남자의 손을 이끌고 여자는 숙소를 나선다.


—-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 이외에 처음 만나는 한국인.

대화도 쉽게 통하고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


“하아. 좋네요. 여기까지 오기 너무 힘들었거든요.”


“하하…어떤 업무가 필요하신가요?”


보아하니 뜨내기 관광객 같은데

여권이라도 잃어버렸나?


비행기표가 4시간 뒤인데 여권을 잃어버렸다며 어쩌냐는 사람들이

한 달에 최소 30명, 하루에 한명 이상 나타난다.


비행기라도 놓치면 차액을 물어내라며 영사관 안에서 뒤집어진다.

외교부 공무원은 한 시라도 빨리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싶다.

아메리칸 드림이니 뭐니 전부 거짓말이다.


“혼인신고서 주세요”


“네…에?”


“혼인신고서, 달라구요. 여기서 할 수 있잖아요”


“외국인과 결혼하신 경우, 재외공관에서 발행한 혼인증서를 지참하셔야…”


“둘 다 한국인이에요.”


“네…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물론 이곳 영사관에서 혼인신고서의 접수를 해주기는 한다.

신원을 확인하고, 서류를 접수해서. 대한민국의 각 지자체로 신고서를 전달한다.


늦어도 1~2주면 가족관계증명서에 배우자로 상대방의 이름을 기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이런곳에서 혼인신고를 할까.


“누나. 무슨 말이야. 왠 혼인신고. 누구랑 누가”


“너랑 나.”


“왜? 아니 어떻게. 우린 남매잖아”


“법적으론, 남남이야. 가족관계증명서 떼볼까?”


남자의 친아버지가 물려준 유산 때문에

여자의 부모가 친양자 등록만큼은 차일 피일 미루었다.

보호자로서 의무를 행사하기 위해 양자 등록이야 해놨지만

친양자와 양자는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다.


“다 좋다 쳐도. 왜 내가 누나랑 결혼해”


“누나, 여기서 살거야.

 무비자 관광일수 끝나기 전에

 너랑 결혼해서, 영주권 따내야해.


 너 취업비자 내놔봐. 학생비자니?”


외교부 공무원 앞에서 두 남녀가 옥신각신한다.

대화의 내용이 흥미롭다 못해 도파민을 자극시킨다.


“저… 혼인 신고서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8촌이내 혈족간에는 혼인이…”


공무원은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남맨데, 남매 아니에요. 확인해보셔도 돼요”


“...밖에서 신고서 작성 후에 여권과 함께 제출해주세요”


여자는 신고서를 챙겨들고 남자를 끌어당긴다.


“아니. 엄마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하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엄마? 하. 그래 한번 물어나 볼까?”


남자는 여자와 다툴때, 언제나 불리해지면 엄마를 찾는다.

여자가 먼저 핸드폰을 들어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엄마, 난데”


[이눔의 가시내가, 출발한지 언젠데 이제싸 전화를 해쌋노, 

 엄마 속 뒤집어지는 거 보고싶어?]


“동생, 만났어”


[그래. 잘햇다. 잘 있드나? 옆에 있나? 바까봐라. 내 한마디 해야겠다]


“나 동생이랑 결혼할거야”


[니 미칫나. 뭐라캐쌋나. 햄버거가 입맛에 안맞드나]


“동생 봐. 보여줄게”


여자는 스마트폰을 들어 영상통화로 화면을 바꾼다.


화면에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어…엄마.. 안녕”

남자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에 손을 흔든다.


[끼야야아아악! 이게 무신일이고. 와 아 얼굴이 반쪽이 되뿟노?

 이게 으찌된 일인교!! 말해봐라. 

 내 저녀석을 어떻게 먹여서 키워놨는데 왜 반쪽이 되가 있냐는 말이다!!]


“어디보자… 동생 숙소 사진이…”


[이게 뭐..꼬. 아가 설마 여기서 사나?

 지..진짜?]


“얘 여기서 이러고 살았데. 6개월동안”


[니 거기서 딱 기다리그래이. 

 내가 프란치스콘지 쌘프란시스콘지 가야쓰것다.

 

 아빠요. 일로 와보소. 여기서 이것좀 봐보소]


“엄마. 그런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누나좀 말려봐”


남자는 카메라에 자신의 의견을 소리친다.

하지만 두 여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 갔다가, 데리고 와야 쓰것다. 거선 몬산다. 안디야. 안돼!]


“엄마. 진정하고. 내말 들어봐”

여자가 눈이 팅팅 부은 얼굴로 엄마를 진정시킨다.


[나가 지금 진정하게 쓰것냐고오! 

 메추리알만한 아를 보듬고 키워다가 미국이랍시고 보내놧더니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해져가. 

으이?

 

 엄마가. 당장에!]


“내가 해결할게. 내가 여기서, 동생 먹여 살릴거야”


[니가 우짜 그서 애를 묵여살린다고]


“간호사 면허, 엄마가 따라그런거. 미국에서도 통해.”


[으이? 진짜?]


“여기서 일 해서, 이 애 먹이고 키울게. 내가.”


[근댜 와 혼인신고를 한다는겨. 니들 남매여 남매]


“미국 간호사 면허로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해.

 영어 시험도 봐야하고. 영주권이 필요해.


 동생 비자에 얹혀서 있으려면. 혼인신고 해야해”


[니 결혼이 뭔지는 알고 그리 쉽게 말하나.]


“알아. 나 얘 처음부터 남자로 봤어.

 얘가 내 첫사랑이야”


[워매 니 9살에 말한거 농담 아니였니?]


“아니라고 내가 몇번을 말했잖아. 엄마도 해도 된다며”


[그땐 아니께. 그냥 그러는갑다 했지]


“아니면, 딴 여자랑 동생 결혼시킬 수 있어?

 오늘 와서 보니까. 담배 뻑뻑 피고 밥에다 비벼끄는 여자애가 동생 꼬시던데”


[안~디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런 년은 절대 안디야]


“얘가 죽어도 한국 안돌아간데. 석사 따야겠데

 나도 두손 두발 다 들었어.


 나도 그런 년이 내남자한테 꼬리치는거 못봐.

 이러고 사는것도 못봐.


 엄마가 하지 말래도. 할거야. 할 수 있어”


[하이고 내만 들어서 하라 마라 할 수 있는것도 아이고. 

아빠요. 빨리좀 와 보소. 아까부터 뭘 그리 해싸!]


[뭐좀 찾느라고… 아들? 들리니?]


“아빠…누나하고 엄마하고 이상해. 도..도와줘”


남자는 마지막 동앗줄을 붙잡는다.


[그래. 알았다. 대학교 교수님 성함이 뭐라고?]


“그건 갑자기…왜”


[아냐아냐. 잠깐…

 여보. 내 수렵면허 어딨지?]


직장을 자주 옮기고 돈벌이가 신통찮던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

젊은 시절 밥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특전사에 들어갔다가

총을 만발은 쏴봣다고 자랑하는 아버지.


만발중 3발만 놓쳤다고 항상 허풍을 떠는데

정작 겨울철 수렵 성과는 신통치 않다.


그나마 낚시나 골프처럼 돈버리는 취미가 아니라

돈 벌어오는 취미라 어머니가 별 말 하지 않아왔다.


[와요? 그건 갑자기… 당신 미칫나.

 돼지 잡으라는 총으로 사람은 와 잡을라카는데?]


[돼지도 죽을땐 사람처럼 울어. 여보.

 딱 한발. 딱 한발이면 되니까.

아들이 저리 피골이 상접했는데…]


[빵은 묵는기지 가는게 아니라꼬!


하이고마 니 아빠 사람잡겠다. 

결혼을 하던 뭘 하던. 니 알아서 해라.

하지말라케도 듣지도 않을낀데.


고마 끊는다.


이 양반아 가만히 좀 있어봐라!]


남자는 잘 모르고 있었다.

엄마의 폭발점은 낮다.

아빠의 폭발력은 높다.


그리고…


“자 들었지?. 빨리 써. 여기 이름.

 요즘에도 지장 찍나?”


누나는 폭발점이 한없이 낮은데

폭발력은 다이너마이트다.


“...저기..누나?”


“토달지 말고. 누나 말 듣자?”


“...응.”


남자는 혼인신고서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적어나간다.


성미가 급한 여자는 남자가 신고서를 써내려가는동안
손가락으로 서류를 계속해서 두드린다.

"빨리, 누나 할거 많단 말야"


“애기엄마. 요즘 애들은 어디갔어?”


“미국 갔지, 돈벌러. 공부하러”


“어머, 아들 말고 딸도 갔어?”


“그…렇게 됐지라. 우리 딸이 간호사아녀.

미국가서 간호사 한답시고 날라가더니.

턱 하니 미국에서 취직했잖여.

지금 거서 살어. 샌프란시스콘지 프란치스콘지”


“애엄마가 딸애 공부 안한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잘 됐네 그래.

내 말대로 간호사 시키길 잘했지?”


“갸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머리는 지 동생보다 좋아”


“맨날 지 남동생만 싸고돌드만. 그래가지고 결혼은 언제 하려는감?”


“했어…이미”


“결혼했어? 언제? 왠 말도 없이 번갯불에 콩꿔먹듯이 했데?”


“하아… 사연이 기~~일어”


“빨리 말해봐요. 궁금하게 하지말고”


“저…그… 지 동생이랑 결혼 했어”


“지금 이게 무신소린감?”


“그렇고 그런게 아니라!

 아들내미가 실은 애 아빠 친구 아들인디.

 여차저차 우리집에 입양왔다 안카요.


 딸애가 남동생 좋다구 그리 싸고 돌더니.

 결혼한다카길래… 고마 시키뿟지”


“어머나. 아들내미가 입양이였어요?

 애엄마가 아들내미 끔찍하게 이뻐하길래 난 그런 생각도 못했는데”


“거 말에 티끌이 있소”


“사람 참 까탈스럽긴. 그래도 맘 놓이겠어요.

 끔찍한 아들내미 장가보낼라믄 언년이 와도 성에 안찰텐데.”


“내가 우리 딸도 어느땐 눈에 안차는디.

 내 딸이라 꾹 참는겨. 내가 그리 키웟응께”


“한국엔 언제 돌아온데요? 평생 거기서 산데?”


“다다음달에 온다 했지. 아들내미가 여서 취직자리 구했다고… 

거 이름이…셀…머시기라 했는데.”


“어느 회산데 그래요”


“몰라요. 화장품도 맹글고, 약도 맹글고 한다고.

 딴데 다 거절하고 그 이름도 모르는데 간다 해싸가 마 내 속이 에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죠.”


엄마와 엄마 친구 사이에 대화로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기 힘들다.


많은 일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여자는 영주권 취득과 미국 간호사 시험을 병행하면서, 영어공부도 틈틈히 해야했다.


비행기삯을 빼고 남은 저금 600만원이 떨어지기 전에

여자는 어려운 그 모든걸 전부 해치웠다.


남자는 알아보지 않던 한인사회 커뮤니티에도 들고

평생은 가보지도 않던 교회에 나가 도움을 구하고

무작정 랩실에 들어가 교수와 담판을 짓고

따귀를 한대 올려친 금발의 여성을 한 번 흘겨봐주고.


당당히 미국 병원 간호사로 취업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외국 국적 간호사가 하는 일이라곤

치매환자를 돌보는 힘든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근로시간도 짦고, 페이도 높다.

남자 하나쯤 먹여살리는건 크게 문제가 없다.


“근디… 나중에 손주 태어나면… 나는 할머니여 아니믄 외할머니가 되는것이여?”


“흐음…그러게요”


“흐음…으짜쓸까…”


엄마와 친구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손주의 호칭을

한참동안이나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