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저녁먹자. 수저좀 놔줄래?”


“네에~이것만 하구요”


“...”


“어…아빠?”


“그것만 하고, 나와서 밥 먹자꾸나”


“아..아냐! 아냐아냐. 지금 게임 껐어.

  수저 놓을게요”


“호호호. 우리 아들 착해라.

 오늘은 엄마가 불고기 전골 했지~”


상 한 가운데에, 가스버너와 전골냄비가 올라간다.

흡사 판매하는 음식처럼 색깔과 모양마저도 잘 갖춰진 불고기 전골.

그 외에도 김치며 나물이며 쌈이며 양념장까지

엄마가 준비한 반찬이 한가득인 저녁상이다.


“잘 먹겠습니다~”


“...”


“많이 먹어요. 고기도 더 있으니까.”


엄마도 앞치마를 벗고 상에 앉는다.


“이번에 요리학원에서 배운건데 어때? 맛있지?”


“좋네요! 국물도 깔끔하고. 버섯도 맛있다.”


“정말? 다행이다. 어때어때? 여보 입맛에도 맞아?”


“...간도 잘 베어있고.

 야채도 알맞게 익었고.

 고기도 좋은거네. 맛있어.”


“다음에도, 한 번 더 해먹자”


“...”


아빠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생각에 잠긴다.


아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다.

엄마가 요리를 하고

아빠는 엄마의 요리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어색하다.


부서질 것 같은 이 사상누각 위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내기라도 한판 하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엄마가 요리를 하고.

아빠가 근엄한 모습이라니…


‘그 사람’ 나타난 뒤로 

우리집은 완전히 바뀌었다. 


엄마는 이상해지고

아빠는 망가저버렸다.


아들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이 궁금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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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어디까지 되돌려봐야 할까?


3년 전,

‘그 남자’가 여자 앞에 나타났을때가 시작이었다.


“나가자! 엄마 프로젝트 끝났다!”


여자가 드디어 큰 업무가 마무리 되었다며

가족들끼리 외출을 제안했다.


“아 왜. 아빠랑 둘이서 다녀와. 난 안가.”


“그러지말구, 가자아~. 엄마가 맛난것도 사줄게”


“세상에 이 나이먹고 부모님 데이트에 끼는 아들이 어디있어”


“여기 있네~. 우리 아들~”


“아 알았어. 알았어. 옷갈아 입을테니까”


“당신도, 얼른 준비해요.”


“어? 어. 얼른 나갈준비 할게. 차 타고 갈거지? 밥은 뭐 먹을래?”


엄마의 호령이 떨어지면 아빠는 언제나 혼비백산.


여자가 하는 말에 한 번도 거절을 한 적이 없고

무어라 토를 단 적도 없었고

마음대로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한 적도 없었다.


“차 타구 가야지. 음… 수원에 스타필드 새로 생겼다니까. 거기로 가자

 밥도 거기서 먹고”


“그래. 운전은 내가 할게”


“고마워요~ 여보오~”


“엄마아! 아들 방에서는 쫌!”


도저히 부모님의 스킨쉽은 용납할 수 없다.

어릴 때도, 다 커서 자라난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새로 생긴 쇼핑몰에서

30분을 기다려서 겨우 주차를 한다.


차에서 아들은 스마트폰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아버지는 주차 장소를 찾느라 전전긍긍

어머니는 오랜만에 외출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입이 귀에 걸린다.


“이거. 이거 이쁘다. 어때?”

“아들! 이거 한 번 입어봐. 너한테 딱 맞겠다.”

“여보도. 신발 새로 살 때 되지 않았어?”


모든 가게를 하나씩 찔러보고, 입어보고, 둘러본다.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고카페인 고설탕 음료를 한 잔 주문하기도하고

무슨 박물관 같은 이름의 빵집에서 국밥 한그릇이 넘는 돈을 주고 베이글도 시켜먹는다.


엄마 혼자 신나는 나들이

아들은 슬슬 다리가 아파오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 차마 싫은소리를 낼 수 없다.


엄마의 말에 하나하나 맞장구를 치고

양손에 가득 쇼핑한 옷을 들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빠를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도 든다.


뭐. 행복하면 됐지.

이젠 키우지도 않는 애견용품 코너를 둘러보다가


‘그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진 괜찮았다.


부모님 나이대의 신사.

강아지 한 마리를 대동하고

아빠와는 달리 말끔한 세미포멀 스타일의 모습으로

쇼핑몰을 홀로 돌아다니는 중년의 신사.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고선 엄마의 앞에 멈춰섰다.


“어머 죄송해요”


신사와 부딛친 엄마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사과를한다.


“...정말 너니?”


“누구…시죠?”


신사는 엄마를 바라보며 입을 살짝 벌린다.

동공이 확장되고, 손이 떨린다.


“내가 미안해. 다시는 널 버리지 않을게.

 평생 너만 생각하고 있었어. 잊을 수 없었어.

 그래서 헤어졌어.

 

 아무것도 상관없어. 네가 그 맞선 이후로

 결혼을 했던, 아이가 있던. 다 이해할 수 있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8시 반에 KBS에서 할 법한 일일드라마 대사를 내뱉는 신사.

아들은 엄마가 소싯적에 인기 좀 날렸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정도일줄 몰랐다.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너무 무례한거 아냐?


“저기요. 아저씨. 누구신지는 모르게…으각!”


재수없는 샌님 신사에게 한마디 해주려는 아들을 밀치고

엄마가 아빠를 향해 달려간다.


엄마는 그새 울상인 얼굴로 아빠의 손을 붙잡는다.


“아…아냐. 나 저런 사람 몰라.

 아냐.

 알잖아. 나 당신밖에 없는거.


 아니라고. 아냐.

 저사람 몰라. 누구야. 도와줘 여보.”


동공에 지진이 났다는걸 저럴 때 쓰는건가 싶을 정도로 눈을 가누질 못한다.

눈에서 눈물이 결국 한방울씩 떨어진다.


아빠는 엄마의 어깨너머 중년의 신사를 바라본다.

중년의 신사는 착잡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본다.

신사의 강아지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뭐야. 엄마. 왜 그래. 저사람 누군데 그래?”


“모..몰라! 엄마 저런 사람 몰라! 모른단말야!!”


잘못했을 때 말곤 한 번도 자신에게 소리친 적 없던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하.”


아빠가 마지막으로 웃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빠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


여자는 콧대높은 대학생이었다.


옷을 차려입고, 거리를 걷기만해도 남자들이 뒤돌아본다.

언제나 손 한켠에 외국어 원서를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의 엘리트.


데모와 집회를 다니며 최루탄을 맞고 다니는 사람들과도 친하지 않다.

대학생인데도 한량처럼 허구헌날 술만 마시는 골빈놈들과 친하지 않다.


도도하게, 고상하게, 때로는 고지식하게.

취미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독서를 즐기며.

미술관 전시회를 관람하는걸 좋아하는 사람.


‘칵테일 사랑’이란 노래 가사를

그대로 빼다 박아서 사람으로 만들면

그 시절의 여자가 나온다.


외교부에 들어가서, 미국이나 유럽의 대사관에서 일하는게 꿈이다.

연애는 하지만, 결혼에 큰 뜻이 있지는 않다.


아이가 생긴다는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릴적부터 자신이 꿈 꿔왔던 모습은

어린 아이를 안고 자상하게 노래를 불러주는 현모양처의 모습이 아니라.

영어로 된 자료와 서류 더미 사이에 파묻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꾸어나가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껏, 일도 사랑도 모두 쟁취한다.

여자는 천하의 욕심쟁이라 자기 손으로 모든걸 쥐어야 했다.


같은 대학 법학과의 남성과 교제를 나눈다.

각각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틈틈히 사랑을 나눈다.

여자를 만나는 남자는 여자의 결혼관에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자녀나 가정에 묶여있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도 가지 않거니와

공부와 일에도 열심인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보였다.


여자도 남자도 한 회차만에 사법고시와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초임 검사와 햇병아리 외교관이 되어서


각자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


남자의 부모는 여자를 살갑게 맞이한다.

애도 낳을 생각이 없는 며느리를 반대하고 내칠법도 한데

예비 시부모는 그런 기색은 전혀 없이 자기 가족처럼 여자를 환대한다.


어쩌면, 자신을 인정해주는 집안을 만나서

꿈꾸던 외교관의 일을 하면서도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없이도, 이 남자와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꾼다.


친정 집에 인사를 하러 갈 때 까진…


“안된다. 결혼 하고나면, 애도 낳고. 집도 꾸미고. 한국에서 살아야지.

 여자애가 어쩔려고 그래”


“아버지! 저 지금까지 하는 일 한번도 반대 안하셨잖아요. 왜 갑자기 그러세요!”


“다 니 시집 잘 가라고 준비시킨거다. 

 요즘 세상에 머리 비어가지고 밥 잘하고 내조만 해가지곤 결혼 못한다!

 

 봐라! 데려온 남자도 떡하니 검사님이지 않냐”


“아버님, 이 사람 뜻대로 해도 괜찮습니다.

 외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해도, 기다릴 자신도 있습니다.”


남자는 찬찬히 여자의 아버지를 설득한다.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니까

여자의 꿈도, 결혼생활도 양립할 수 있도록 중재하려 해본다.


“하이고. 그런 생각 하지도 마세요.

 사람이 태어났으면, 이름을 떨치는 것도 중하지만, 후사도 남겨야지.


 결혼하는건 찬성한다.

 대신에, 여기 대한민국에서 집 구해다가. 여기서 살아라.

 그게 내 조건이다.

 돈도 대주마. 혼수도 기깔나게 넣어주마.

 금성에서 나온 세탁기네 냉장고네 애비가 전부 해줄게.

 사돈댁에 예단하고 예물도 부족하지 않게 해드리마.

 

 그래야 애도 낳고. 잘 키우면서 살지.

 결혼하고나면, 너도 일 그만둘 준비 하고…”


“어떻게 들어간 외교부인데 일을 그만둬요!!”


“그럼 애는 누가 키우고!. 엄마 없이 애가 어찌 자라?!”


“애 안낳는다구요! 우리 둘이서만, 잘 살수 있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그딴소리나 할꺼면, 썩 나가!


 검사님도, 사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실망입니다!”


그대로 친정집에서 두 남녀가 쫒겨난다.

상상도 못했다. 항상 자신의 편에서 응원해주던 가족들이

이렇게 배신을 할 줄이야…


“괜찮아. 기다려보자.

결혼을 일찍하나, 늦게하나

달라지는건 없으니까”


울상이 된 여자를 남자가 안아준다.


그렇게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무의미한 시간싸움을 계속한다.


일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다닌다.

짬짬히 남자를 만나 연애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붙잡고 세월아 네월아 설득을 한다.


여자의 아버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여기서 집 사고, 애 낳고 살아라.

 아빠가 다 해줄게. 

 남들은 다 그러고 산다는데. 부모가 도와주면 좋다고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는데

 너는 왜그러냐?

 아빠가 뭘 잘못했길래. 이 아비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 조만간 외국으로 발령난다구요!

 여기서 어떻게 살아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출근할까요?”


“때려쳐! 외국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외국이야. 거기서 애를 어떻게 키우려고”


“아빠아!!”


“내 말 들어라!”


가정을 위해서 직장도, 꿈도 포기하라니…

여자는 방 문을 세게 닫는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후사를 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살다보면, 자녀를 가지지 않는 집안도 있고

자녀를 많이 가지는 집안도 있는 법이다.


여자의 어머니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얘야. 아빠 말 너무 고깝게 듣지 말고…”


“듣기 싫어요. 요즘 시대가 어느땐데. 

 집에서 애만 키우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라는게 말이 되요?”


“...엄마도, 그게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다고 무작정 외국으로 가서 사는것도..”


“내가 무작정 나가요?

 나도, 행정고시 합격한 5급 공무원. 외교관이에요.

 남들은 다 외국나가서 대사관이네 영사관이네 들어가 일한다는데.

 나만 주구장창 서울 본부 짱박혀 있어요?”


“...”


“엄마도. 내가 준비하는거 봐 왔잖아. 

 맨땅에 머리만 들이미는거 아니라는거. 엄마가 제일 잘 알잖아…”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사람도 그사람 직업이 있으니까… 외국에 발령난 동안은 어쩔 수 없죠.”


“계절에나 한 번씩 만나려고?”


“그럼 어떡해요!!”


“하아…그게 결혼생활이 맞긴 하니?”


“그럼, 그사람보고 검사 때려치고 저랑 외국에 나가자고 해요?”


“말도 안된다. 검사님이시잖니”


“나도 외교관님이라구요… 그사람이나 나나 같은 5급 공무원이에요”


“...생각 좀 더 해보려무나.

 무조건 한국애서 애낳고 설거지나 하면서 살라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년에 한두번이나 만나는 부부도 아니다.


 차라리…”


“...이건 뭐에요?”


“엄마 아는사람중에 괜찮은 남자 있다는데…”


“엄마아!! 지금 뭐하는거야!”


“소리만 지르지 말고 부모님 이야기도 들어!

 너 나이가 이제 몇인지 알기나 해?

 엄마 친구 자식들은 죄다 결혼해서 애도 있다는데

 언제까지 네 고집만 부릴꺼야!”


“...”


“지금 남자친구랑 헤어지라는 게 아니잖아.

 여러 남자도 만나보고 그래야...”


“나보고 지금 바람피라는거에요?”


“그런게 아니라…”


“됐어요. 더이상 엄마랑도 할 말 없어요.”


“엄마도… 지금까지 네가 하는 말 다 들어줬잖니. 응?

 너도… 너도 엄마 부탁 한번만 들어주라.


 그 남자친구가 뭐라그러면 이 애미가 손이 발이 되도록 그 검사님한테 빌테니까.

 그냥 나가서 차만 마시고 와도 되니까.. 응?

 눈 한번만 딱 감고. 엄마 체면 살려준다 생각하고…”


부모라는 작자가. 결혼을 준비중인 예비신부에게

맞선을 권유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딸에게 하소연을 한다.


—-

—-

—-


남자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부모와도 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남자와도 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끊어내지도 못하고

모든건 손에 쥐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마냥 새어나간다.


“안녕하십니까. 처음뵙겠십니더. 허허”


딱 이 사람과 차만 마시고 오는거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보다 키도 작고, 생김새도 영 아니다.

직업이나 집안은 더욱 가관이다.


평생 농사만 지어 왔단다.

할 줄 아는게 풀 베고 비료 뿌리고 물 대고 잡초를 뽑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건 아니지만

자신과 너무나 다른 생활상이다.


충청도 평야지대에 땅 좀 있다는 사람이

아들내미가 삼십이 가깝도록 여자 한번 못만나고

장가 가기 글러서 알음알음 선자리를 알아봐 나왔단다.


소유한 농지 일부분이 서해안 고속도로에 수용되었단다

차액이 꽤 된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해줬다.


그런 졸부들의 돈따위 관심이 없다.

아무리 공무원 임금이 짜다지만, 5급 이상의 고시 합격자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자의 집안도 여자를 대학보내고 공부 시킬정도로 돈이 부족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마시는 커피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오늘 입으신 옷이 참 예쁘시네유. 허허”


이 사람은 뭐가 좋은지 연신 웃음만 짓는다.


“네..고마워요”


“지도 이번에 처음 서울 올라와봤는디. 건물은 높고 빽빽해가지고는

 정신이 없네유.

 

 차도 많구, 사람도 많구. 오다가 길 잃을뻔 했네유”


“돌아가실때도. 조심히 가세요”


여자는 표현만 완곡하게, 남자를 밀어낸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싶은데. 꾹 참는다.


“아휴. 말만으로도 감사하네유. 허허”


이 사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아까부터 계속 사람좋게 웃기만 한다.



“당신, 부모님이랑 이야기는 잘 돼?”


남자는 여자에게 예비 장인 장모의 의향을 묻는다.


“아니. 말도 안 통해… 하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우리 둘이서 살까? 부모님 도움 받을 필요도 없잖아.”


“결혼식은 어떡하구. 부모님 안 모실꺼야?”


“혼인신고만 하고 살면 되지. 

 나 이제 부모님이랑 얼굴 보고 살기 힘들어. 못하겠어

 우리 엄마아빠 아닌거같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있잖아…”


“왜?”


“그냥. 돈은 내가 벌어올테니까.

 당신은 집에서 쉬는게… 어때?”


“하… 당신마저 그래?”


‘아니… 뭐하러 힘들게 일해. 나도 당신이 고생하는거 보기 싫으니까…”


“돈 내가 벌어올게. 나랑 같이 외국가서 살자.”


“....”


“당신도 말문이 막히지? 지금 나랑 장난해?”


“장난은 당신이 하지.”


“말 꼬투리 잡지 말고. 집에서 집안일 할 사람 필요하면 가정부나 들이던가!”


“당신은 그래서 경비원 알아봤어? 저번 주말에?”


“그게…무슨…소리야”


“내가 모를거 같아?

 그 졸부자식이랑 차 마시니까 좋아?”


“아..아냐! 엄마가 하도 나가보라 그래서…어쩔 수 없이…”


“그만해  변명하지 말자. 

 그냥. 이쯤에서 끝내자.

 

 나라고 맞선 안봤던거 아니고. 서로 얼굴 붉히면서 헤어지지 말자고

 구질구질하게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지도 말자.”


“....뭐?”


“고맙다느니. 미안하다느니 말하지 않을게. 

 나도 조만간 결혼할거야. 잘 살아라.”


수많은 정보가 한 번에 물밀듯이 밀려온다.

맞선 이야기를 저 사람이 왜 알고 있고

저사람은 어디서 다른 사람과 만나서 결혼을 하며

자신은 왜 이별 통보를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인가?


손에 가득가득 쥐고 있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이제는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

—-

—-


“허허. 서울은 몇 번을 와도 익숙하지가 않네유. 허허”


“...”


“헌디. 뭔일 있어유? 와 그리 얼굴이 안좋아유”


“...”


“배고파유? 차 말구 밥 먹으러 갈까유?”


“...당신은,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나,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좋아요?”


“저…그게…”


“똑바로 말해봐요. 답답하게 끌지 말고”


“좋지유. 그래서 오늘도 만나쥬”


“어디가, 뭐가 좋아요? 난 당신한테 퉁명스럽게 한 것밖에 없는데”


“모르겠어유. 서울 여자들 다 이쁘다고 그래도 눈에 하나도 안들어오는디.

 당신은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꽉 찼어유.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디…”


“저. 결혼해도 일 계속 다닐거에요”


“그람유. 요즘 시대가 어느시댄대. 농사는 내가 지면 되유”


“알죠? 저 외교관이에요. 외국에 나가서 오랫동안 살지도 몰라요.”


“같이 가야쥬. 으짜겠어유. 농사는 소작줘야 쓰것네.”


“나, 애 낳고 키울생각 없어요.”


“애는 내가 보면 되유”


“자녀를 볼 생각 자체가 없다구요.

 애 낳으면…그대로 잘릴지도 몰라요.”


“저번에 티비 보니께, 외국에선 애 없어두 강아지 한마리 키우면서 다들 잘만 살더만유.

 고양이는 요상하고 요망한게 좀 그렇고.”


“...조건이 있어요. 지켜만 준다면, 당신이랑 결혼할게요”


“지..진짜유?”


“그 사투리좀 쓰지 말아봐요. 네?! 사람 답답하게 정말”


“아..알겠어…요. 노력해볼게…유..요”


남자의 말이 더욱 늘어지고 뜨문뜨문해진다.


“하아…나, 욕심만 많아서. 내 손에 쥔 모래들이 다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도

 아무것도 포기 못해요”


“ㅇ….예”


필사적으로 사투리 억양을 참는다.

서울 사람들은 표준어를 쓰지만

충청도 사람이라 서울 말을 쓰기 위해 연신 노력한다.


“일도 다닐거고, 외국도 나가야겠어요. 당신은 내 말대로만 해요.

 뭐라고 의견도 내지말고. 집 안 집 밖 대소사는 내가 모두 결정할거에요.

 내가 가장이에요.”


“아..알겠어유…아니. 알겠어요.

 내…나는. 당신이랑 결혼만 할 수 있으므언..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정말. 지킬 수 있어요?”


“충청도 남자는 거짓말 못해유우.. 

 아이고. 거짓말 못해요.


 미안해요. 사투리는 아무래두 시간이 좀 걸리지 싶은디”


“하아…”


여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관자놀이를 붙잡는다.


여자는 이제, 모래 부스러기만 남은 손바닥을

털어내는 것 조차 아까워서

손바닥을 비비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옛 남자도 밉고

부모도 밉고

세상이 가증스럽다.


엄한 맞선남에게 폭언에 가까운 말을 건네서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해줄 심산이었다.


근데, 이 남자가 그게 좋단다.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밀어서 결혼하겠냐 물어보는데

그런 자신과 하겠단다.


“허허…”


그게 좋다고 저리 웃어댄다.


여자는 이제, 제 마음대로 자신의 인생조자 망가뜨리는데 실패했다.



“그래두 학교에서… 영어는 배웠는디..”


“사투리, 안쓴다고 했죠?”


“노력 할…노력하고 있어요”


“하아… 영어, 얼마나 할 줄 알아요?”


“마이 네임 이즈. 킴 춘 석. 아임 코리안

 나이스 투 미 츄. 하와유?”


“하아…”


한숨의 연속이다.

이 사람을 데리고 외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데려가자 마자 김치 없이는 아무것도 못먹는다고 떼를 쓰는건 아닐까?


“어…고우 스트레이트. 엔 턴 라이트”


“그만. 어느정도인지 충분히 알았으니까.

 내일, 저랑 종로에 교보문고 다녀오죠”


“..예? 하이고, 서울 시내는 복작복작해서…”


“조건.”


“나가면 너~~어무 재밌겠네요.”


“부모님한테 말 한거 없죠?”


“뭘…요?”


“내가 내년에 뉴질랜드로 발령난다는거”


“말 안했어요. 입 꾹 다물고 있어요”


“당신 부몬…아니. 시아버지하고 시어머님 말구요.

 장인 장모님한테도 말 안했죠?”


“절대.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그 이상한 서울 말도 좀 고쳐봐요.

 못하겠으면 그냥 편하게 말 하던가아!”


“알았…어”


다시 남자의 말이 추욱 늘어진다.

어미만 바꿔봤자 음정과 억양은 바꿔지지가 않는다.


“하아…”


교보문고에서 잉글리시 스피킹 교재를 사고

이 남자에게 일일 과외도 시키고

평소엔 외교부 본부에 출근도 해야하는데다가

발령나갈 준비도 해야한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벽면에

결혼식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남자가 사람좋은 얼굴로 크게 웃는 모습이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저 사진이나 똑같다.



[김서방.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인가.

 집에는 왜 아무도 없고.

 짐이며 가전이며 아무것도 없이 싹 빠진데다가.


 사돈댁도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고

 외교부에 연락해도 이상한 국제전화번호만 알려주고.

 어?


 연락은 두달이 넘도록 안되고.

 지금 어디야?!]


장인어른이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댄다.


“저..저희 신혼여행 못 갔으니까.

 아내랑 같이 신혼여행… 왔습니다.”


[신혼여행을 가는데 무슨 집을 싹 다 비워서 가?

 딸애는 어디있어. 

…설마… 너네 ?]


“아이고, 장인어른. 그런거 아닙니다.

 여기서 몇 년 살다가. 금방 다시 돌아갈겁니다.”


[지금 나랑 말 장난해!

 내가 그러라고 혼수해주고, 돈 쥐어준줄 알어?


 너네 지금 어디야?! 당장 말 안해!!]


“전화기 내놔. 아빠지? 내가 말할게.”


남자가  손을 뻗는 여자의 손을 붙잡아 막는다.

표정을 찡그리며 입모양을 맞춘다.


‘내 가 해 결 할 게’


“전화기 내놔.

 이대로는 나도 못살아.

 내 인생 내가 산다는데, 돈대주고 그러면 인형처럼 살아야해?”


[오냐, 옆에 있구나. 목소리 다 들린다.

 야!! 이놈의 가시내가. 

 

 어디야?! 당장 한국에 돌아오지 못해?!]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던 남자가 큰 소리에 인상을 찌푸린다.

여자도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 변한다.


“장인어른, 저희 지금 뉴질랜드 웰링턴 입니다.

 아내 직장이 발령나서, 어쩔 수 없이 왔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인생이 있습니다.

 아버님 뜻을…저희도 모르는건 아니지만.

 여기도 다 사람사는 곳입니다.”


[시골 졸부 노총각이 뭘 안다고 장인을 가르치려 들어!]


장인의 폭언이 도를 넘는다.


“전화기 당장 내놔 저건 아빠도 아냐!

 내 말 들으라고! 약속했잖아!”


여자도 옆에서 남자의 전화기를 뺏기 위해 방방 뛴다.


“장인어른, 방금 하신 말씀은…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여기도 다 사람 삽니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겨울에 사우나도 간답니다.


 한국에서만 사람이 자라고 크는 것도 아니고.

 저도 아는기 없지만서도. 이제는 글로발 시대랍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추석때. 

 여선 땡스기빙데인가 뭔가 하던데.

그때 함 연락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쉰다.


 “당신 뭐야. 나랑 한 약속 안지켜? 

 이럴거면 뭐하러 결혼했어? ”


“아니…그래도 친아빠인데…척 질 필요는 없잖아..”


“왜 내가 하는 말에 말대답을 하는건데.

 이젠 결혼하고 나니까 당신도 내가 우스워?

 제 맘대로 주물러도 될 만만한년 같아?”


“그래도. 이라믄. 나랑 장인어른만 얼굴 붉히고 끝나는 거니까.

 나중에 전화라도 한번 해봐. 응?”


“몰라. 당신 알아서 해!”


여자는 방문을 콱 닫고 들어간다.

외교부에서 준비해준 숙소 거실에서 혼자 오도카니 남는다.


생각보다 외국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돈이 부족하거나, 살 곳이 없거나 하는게 아니다.


뉴질랜드 웰링턴은 대사관이 주재 도시 치고 그 규모가 작다.

한국으로 치면 막 시로 승격된 지방 행정도시와 비슷한 규모인데

명목만 행정수도다.


충청 평야 시골 논자락 출신의 남자가

수학여행때나 겨우 가본 바다가 도시 코앞에 펼쳐진다.


건물들의 높이가 서울에 비해 확연히 낮고

사람들이 복작복작 거리며 다니지 않는다.


명목상이라도 수도인데, 특별한 관광지라고 할 만한게 없다.

마치 오래된 옛날 서양 영화의 항구도시같다.


모든게 노을빛으로 색이 바래있다.

갈매기가 까악까악 날아다니고

항구 한 켠엔 낚싯배가 흔들거리고

듬성듬성, 노인들이 산책을 다니고


해가 중천인데도 일찍 문 닫은 가게

신문 보는 사람들

뛰노는 아이들.


활기찬 도시보단

정겹고 평온한 동네다.


…좋게 말해서.


아무것도 없다.

즐길 것도, 볼 것도, 배울 것도, 느낄 만한 것도 없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북섬의 최대도시 오클라마로 향한다.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 호주로 가지, 뉴질랜드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꼴에 대사관이라고 할 일이 없는건 아니지만

여자가 꿈꾸던,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외교관의 일도 아니다.


하물며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3년차 햇병아리다.


남자는 숙소 한 켠에 정원이 딸려있는게 썩 맘에 든다.

촌 사람 성미는 어디 버리지 못해서 그냥 노는 땅을 두지를 못한다.


이곳에서 일을 구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집안일을 한다.

밭고랑을 만들고,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씨앗들과, 현지에서 구매한 작물들도 심는다.


아내와 저번주에 강이지를 분양받기 위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다음 주엔, 어쩌면 새로운 가족이 이 정원을 노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남자는 이외로 타지에서 적응이 빠르다.

남자의 말대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고향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보기만 해도 눈에 꽉 차는 아내가

영 힘들어하는게 보기 좋지 않다.



“저… 많이 힘들어?”


“...”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


이제는 남자에게 사투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꽤나 유창하게 표준어를 구사한다.


“...먼저 먹어”


“알았어. 내일은 주말이니까. 강아지 데리고 산책이라도..”


“기운 없어. 말시키지마, 쉴래”


뉴질랜드에 온지 세달이 지나간다.

여자와 결혼한지 일년 하고 반이 지나간다.


똑같은 노을빛 생활이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인구밀도도 낮으니 한인타운이나 한인 교류도 얼마 없다.

영미권 사람들 답게 개인주의 성향이 알음알음 있어서

이웃들, 하물며 잘 모르는 동양인 외국인에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남자도, 하물며 여자도 대화를 나눌 사람이라곤 서로뿐이다.

그나마도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볼 때마다 사람이 수척해져간다.


향수병.


단순히 고향이 그리워서 몸부림 치는 그런 병이 아니다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간다.


남자는 그런 여자가 안쓰럽다.

결혼 하기 전, 여자의 말이 떠오른다.

욕심쟁이라서 손에 쥔 모래알이 다 흩어져 나가도 멈추지 못한다고.


저렇게 예쁜 사람이

가만히만 있어도 모든걸 가질 수 있을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저리 용을 쓸까.

왜 자기 자신에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며 채찍질을 할까?


오후 다섯시면 공관 업무가 끝이 나는데

여자는 구태여 6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8시가 넘어간다.


어딜 함부로 싸돌아 다니거나

현지에서 바람이 난게 아니다.


공관에서 뒷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굳이 문을 잠그고 제일 늦게 나온다.


신문 가판대에서 종류별로 신문을 하나씩 구매해서

그 자리에서 전부 읽어본다.


1면부터 사회면 칼럼까지 영어로 된 글자를 전부 읽는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자료는 스크랩을 해둔다.


테이크 아웃으로 커피를 한잔 구매해서

집까지 걸어서 퇴근한다.


자신이 꿈꾸던 어릴적 외교관 생활을 어거지로 만들어낸다.


미국의 워싱턴 주재 대사관처럼 매일이 정신없는 곳도 있는 반면에

이렇게, 업무 성향이 다른 대사관도 있다.


실제로는 업무가 적지 않다.

대사관 답게 뉴질랜드의 현지 동향이나 정치적 이슈를 보고서로 만들기도 해야하고

하다못해 스포츠 구단에 무슨 선수가 이적을 했다는 일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다면 조사해서 서류로 작성한다.


시장의 물가가 어떠한지

기름값은 오르지 않았는지

해수면 상승 폭이 크기 않은지. 

어획량이 줄지는 않는지. 최근 잡히는 생선이 뭐가 많은지

조사하고 보고해야할 것이 많다.


그게 여자의 성미에 차지 않을 뿐이다.

여자가 보기에 이곳은 충청도 촌동네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손바닥에 묻어서 남은 모래알 마저도,

욕심때문에 털어내지 못하고 어쩔줄을 몰라한다.


남자는 하나뿐인 아내를 위해

아직도 보기만 해도 눈에 꽉 차는 예쁜 아내를 위해

커다란 고무 대야와 소금을 준비한다.


—--------


“왔어? 밥먹자.”


“먼저 먹으래도, 생각 없어.”


“그러지 말고, 저녁 안먹었짆아. 이리 와서 앉아.”


여자는 식욕이 없다.


매일같이 먹는 샌드위치나 파스타나 피자나 햄버거들.

밀가루로 된 음식들이 물리기만 한다.


외국까지 와서 한식을 찾는 머저리가 되기도 싫고

설사 먹는다 해도 재료를 구할 수 없다.


이곳에서 쌀은, 그것도 한국처럼 찰기와 윤기가 흐르는 쌀은 취급하지 않는다.


이제는 혀에서 모든 음식들이 그맛에 그맛같다.

닝닝하고, 느끼하고, 맹맹하고, 헛구역질만 난다.

초콜릿 바 하나만 겨우 우겨넣고 식사를 끝낸 적도 많다.


“안 먹는다니까. 내가 하는 말에 토달지 말라고 했지.”


“미안해. 그래도… 기껏 준비했는데”


여자의 코끝을 음식냄새가 자극한다.

밖에서 항상 맡던 묘한 치즈냄새 같은게 아니다.


향부터 짜고, 맵고, 진한 감칠맛이 퍼져나간다.


무언가에 홀린듯, 여자가 식탁에 앉는다.


“...이게 뭐야?”


“내가 밥 먹자고 했잖아.”


남자가 전자레인지에서 공깃밥을 꺼내 여자의 앞에 내민다.

반찬뚜껑을 하나씩 연다.

가운데 휴대용 버너를 놓고. 스튜용 냄비를 올린다.


뚜껑을 열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얼큰한 향기가 퍼진다.


“이건 김치찌개랑.

 여기 시금치 나물이랑.

 호박전이랑.


 김치 담그고 남은 겉절이랑…”


“이게… 다 어디서 났어”


“키웠지.”


“어?”


“앞에 밭에서. 조금씩 심어다 키웠지.

 사시사철 날이 따뜻하니까. 잘 자라네”


“..밥은. 쌀이 어디서 났어”


“그것도 밭에다 심었지. 밭 벼 몰라?”


“..어?”


“설마, 당신도 쌀나무 믿어?”


“아니…그래도. 밭에서 어떻게 쌀을 키워..”


“딱 한공기 나올정도로 조금만 키웠지”


“...왜?’


“한국인은 밥심 아니겠어?”


1년 반동안, 수확한 농작물들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

토양이 안맞아서 금새 죽어나가던 작물도 많았고

날이 따뜻하고 살기 좋은만큼 벌레도 많아서 고생을 했다.


소금은 구하기 쉽지만 액젓을 구할 수 없다.

생각보다 김치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찌개로 끓여내고 남은건 겉절이로 담가버렸다.


호박전도 주키니 호박으로 부친 것이

남자는 못내 아쉽다.


여자는 포크와 나이프가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든다.


밥을 한 숟갈 먼저 퍼먹는다.

겉절이를 한 입 베어물고

호박전을 그대로 입에 우겨넣는다.


물을 한 컵 마시고 그대로 꿀떡 삼켜낸다.


다음으로 밥먹던 숟가락을 그대로 들어서

냄비에 푹 담근다.


고깃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빨간 국물을

호로록 입가로 가져간다.


다시 밥을 한 입.


“흐…흐윽..”


밥을 씹다 말고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밥 먹 말고 왜 울어”


“엄마…흐흑..보고싶어.“


“많이 힘들었지.”


“집에도 가고싶어… 초코파이 먹고싶은데…”


“다음에 장인어른한테 전화해서 부탁하자.”


“어떻게 전화해… 그렇게 싸웠는데”


“싸운건 나니까, 괜찮아. 당신은.”


“흐윽…흐윽…”


“먹다가 울지 말고, 체 할라”


“당신은?”


“먹었어”


아내한테 처음으로 하는 거짓말.

탈곡기도 도정기도 없어서

사람 손으로 손질할 수 있는 분량은 저만큼이 전부다.


“흑….흐윽…”


“괜찮아. 괜찮아.”


남자가 여자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와중에도

남자가 해준 밥을 입으로 쑤셔넣는다.



다음 달에, 대사관 앞으로 국제 특송이 하나 왔다.

쌀만 20kg 한 포대

오리온 초코파이 한 박스

정석대로 조미김까지 구석구석 둘렀다.


남자는 커다란 쌀 한포대를 보며 헛웃음을 짓는다.

자신이 타국 밭에서 1년 반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키워낸 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 여자의 말문이 트였다.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남자에게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아무래도 일이 재미 없다느니

큰 일이라는게 국회의원의 불륜 스캔들이라느니

대한민국에서 이곳 대사관은 신경도 안쓴다느니

섬나라치고 생선음식이 한국만 못하다느니

이래서 영국놈들은 안된다느니.

뉴질랜드 원주민들이 들었으면 천인공노할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저녁은 언제나 집에서 같이 먹는다.

밤의 바닷가 거닐며 남자와 커피를 한 잔 하기도 한다.

다음 발령까진 족히 5년을 넘게 이곳에서 지내야한다.


여자는 해변가의 백사장 모래를 한 손으로 가득 움켜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대로 바짓단에 손바닥의 모래를 털어낸다.

바닷물에 손을 한 번 씻어낸다.


“그걸 바지에 닦으면 어떡해! 다 묻겠다!”


남자가 타박을 한 번 한다.

여자가 남자를 보며 씨익 웃는다.


—-


뉴질랜드 생활 7년차,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세살이 될 무렵에. 10살된 강아지가 죽었다.


남편이 정원에 강아지를 묻었다.

흙을 덮다 말고 우는 남자를 여자가 토닥여주었다.


아이가 5살이 될 무렵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12년의 타향생활을 끝으로, 본국으로 돌아왔다.


충청도를 먼저 방문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인사를 올렸다.


고봉으로 된 밥이 나와서 여자가 먹느라 힘이 들었다.


서울에 있는 친정에도 들렀다.

인상이 찌푸려진 아버지 앞에

여자는 치사한걸 알지만, 5살 손주를 안겨드렸다.


현관문을 통과하기까진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장인어른과 남편의 사이는 아직도 서먹서먹하다.

남편은 장인어른의 폭언을 다 잊어버린 듯 했지만

장인어른 자신이 그 일을 떨쳐내지 못하는 듯 하다.


자존심만 강해서 사위에게 미안하다 한 마디를 지금까지 건네지 못한다.


남편은 언제나 집안 대소사를 아내에게 묻는다.

추석때 어느 집에 먼저 들릴건지

주식은 어디로 투자할 것인지


아이 학교는 어느쪽으로 보낼 것인지

태권도 학원을 보낼지, 피아노 학원을 보낼지.


차를 세단을 살지 SUV를 살지


약속했던 대로, 집안일은 모두 남자가 보면서

여자의 의견을 묻고, 존중한다.


여자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높다.

욕심쟁이라서 일도, 가정도 포기하지 못한다.

일하는 와중에도 자녀의 초등학교 운동회와 졸업식까지 모두 참석했다.

1등이 아니면 성미에 차지 않아서

학부모 달리기를 기를 쓰고 달려나가 1등 깃발을 잡아챘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신나하는 모습을 남자가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여자가 진급 심사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야근하는 날이 잦아졌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6개월정도 단기 출장을 나갈 일이 생겼다고 했다.

남편은 한국에 남아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는 저 멀리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남자가 양갱 한 박스와 쌀 한포대를 국제특송으로 붙였다.

새벽에도 남편은 잠을 지지 않고 TV를 보다가

아내를 위해 국제전화로 모닝콜을 한다.

아들은 아빠 몰래 밤에 컴퓨터게임을 하지 못하는게 항상 불만이였다.


대학 진학을 두고 아이와 아내가 한번 대판 싸웠다.

엄마는 공부 해봤냐고, 전교 1등 해봤냐고 대드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걸 지지 않으려고 고등학교 성적표를 본가에 들러서 가져왔다.


엄마의 1등 성적표를 보고, 잠잠해진 아이를 보고 남편이 크게 웃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

정년이 짱짱한 공무원이라. 여자는 퇴직에 대한 걱정이 없다.


남편이 대장내시경을 했다가 용종이 나왔다.

크기가 커서 조직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여자가 하루 종일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다행히, 의사는 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운동이나 열심히 하란다.

그뒤로, 남자는 1년에 한번씩 꼭 대장내시경을 한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아들과 남편을 깡그리 무시하곤

여자의 손을 붙잡아 별안간 사랑고백을 해왔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번 웃고는

그 뒤로 웃지 않는다.


“여보, 그런거 아냐. 

나 평생 당신만 사랑했단말야. 당신밖에 없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계속해서 변명을 한다.


뒤에서 듣는 아들이 지켜보아도, 엄마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 쯤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이 없다.


여자가 대학교 시절에 잘 나가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예전에 만나던 남자가 있었단 사실이 이제와서 불만인게 아니다.

조선시절에나 따지던 정절을 이제와서 논할 정도로 남자의 집안은 학식이 드높지 않다.


여자가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있었단 사실도 불만인게 아니다.

상대방인 남자가 자신보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부장검사라는게 불만인게 아니다.


심지어, 여자가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는것도 크게 화가 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의 변명을 들으며, 생각에 깊게 잠긴다.


아들을 먼저 집으로 올려보낸다.

차 안에서 겨우, 여자에게 한마디를 꺼낸다.


“당신, 괜찮으니까, 진정하고.”


“나..나 당신한테 거짓말 안해. 진짜야. 진짜라구”


“예전에 만나던 남자 하나쯤 있었다고 뭐라 하려는게 아니야”


“진짜…진짜야?”


“정말이야. 그냥, 하나만 물어보자.”


“...응?”


“지금부터, 내가하는 질문에 거짓말 하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알았어.”


“당신이 예전에 만나던 남자 하나쯤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게 불만인건 아냐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던 사람이 있다해도… 괜찮아.

 이제와서 어쩔거야. 나랑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았잖아.


 그걸 묻자고 하는게 아냐.”


“거짓말. 안할게. 약속해”


“스읍…하아…”


“...”


여자가 남자의 질문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킨다.


“당신, 아까 그 사람을 사랑해서, 

나랑 결혼했어?


....아니…

결혼 할 때, 나를 사랑하긴 했어?”


“...여보…”


“옛날 애인 골탕 한 번 먹이겠다고 나랑 결혼한거냐고!”


처음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소리를 지른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여자가 남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남자는 여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


“...”


“하…그렇구나.”


“지금은 당신만 사랑한단말야. 세상에서 제일.

 당신 없으면 나 못살아.

 다른 남자따위 관심 없다구! 아니란말야!”


“당신,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셔츠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


“아냐…아냐…”


“모두 풀러내. 전부”


남자는 차에 여자를 두고 내린다.

그 뒤로, 남자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

—-

—-


한 달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몰골이 꽤 봐줄만 했다.

술에 있는데로 취해서

수염도 머리도 듬성듬성해서

기름이 얼굴에 반들반들해서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집으로 기어가다시피 해서 들어왔다.


여자가 한달음에 현관으로 달려가 남자를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내가 잘못했어..여보”


“여보어어어…”

남자는 술에 취해서 말도 제대로 맺지 못한다.


“나 여기 있어. 응.”


“내가… 내가 당신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알아. 나도 당신 많이 사랑해.”


“당신이…욕심쟁이라고 말하던거 기억…해?”


“응. 기억해”


“실은…나도 욕심이 많아.

 이렇게 예쁜 여자가. 말도안되는 조건을 내밀면서

 충청도 노총각보고 결혼하자 말하면, 거절 했어야 했는데.


 눈에 꽉 차서

 당신이 눈에 꽉 차서 

 아무것도 딴게 보이지 않아서

 

 덥썩 물었어”


“...”


“다~~아 괜찮았어

 장인어른이 개무시를 해도 괜찮았고

 당신이 날 거들떠 보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 바다건너 뉴질랜드에서 혼자서 강아지랑 집을 지키고 있어도 괜찮았어”


“여보…”


“내말 끝~~까지 들어! 끊지 말란 말야!”


“...”


“이거…이거보여?”


“뭐가?”


“내가 입은 셔츠. 눈에 보여?”


“어..”


“어때? 똑바로 입혀져 있어?”


“아니..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어”


“내가 술에 자아아안뜩 취해서. 옷도 제대로 못 입었어.

 이러고 하루 조오오옹일 돌아다니다가

 방금 알았어.


 똑바루 입지도 못하는 옷을

 하루 쥉일

 

입고다닐 수도 있구나”


“...”


“끌러서 다시 입으려고 했는데.

 못하겠어.

 처음부터 잘못 꿰진 단추를, 차마 풀러낼 수 가 없었어.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어.


 욕심이 가득해서. 제대로 입지도 못한 옷을

 벗지도 못해서.

 손에 꼭 쥐고 아무것도 못했어”


“여보…”


“내 말 끝까지 들으라고! 마지막이니까!”


“...”


“그래서…. 결정했어.’


“뭘?”


“나…난. 아직도. 당신 많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게 아냐 .그걸 말하려는게 아냐.

 나…나는

 당신 사랑해


 당신이…너무 미워.

 어떻게 하지 못할정도로 미워”


“그만…미안해..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이게 내 마지막 복수야.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평생에 걸쳐서.


 당신을 미워할거야.


 그게 내. 마지막 복수야”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밀쳐낸다.


잘못 꿰어 입은 셔츠를 끌러낼 수 없어서

뒤집어 벗어 던져버리고 욕실로 기어 들어간다.


그 뒤로, 남자는 여자에게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먼저 웃어주지 않는다


어떠한 일도, 여자에게 묻지 않는다.

청소도 설거지도 하지만, 식사도 평소처럼 남자가 준비하지만

여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여자가 먼저 나서서 남자에게 요리를 해주었다.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주던 방법을 떠올린다.


처음 남편에게 해주는 요리가

 라면이나 계란후라이인게 싫어서, 주말마다 요리학원을 다녔다.


요리를 시작으로 여자가 집안일을 직접 한다.

반대로 집안 대소사를 남자에게 물어본다.


가족 여행, 저녁 식사, 보고싶은 영화, 시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의 선물

아들의 취업, 결혼. 

결정해야할 그 모든것을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생각에 잠기다가. 결정만 해줄 뿐이다.


가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뉴질랜드 시절부터 적어오던 오래된 노트를 꺼내서 읽는다.


그곳엔, 여자가 남자에게 해주던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남자는, 여자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여자가 해주었던 말들을 그대로 따르는 것 뿐이다.


여자를 아직도 사랑해서

사투리도 더이상 쓰지 않고

여자에게 무어라 반박을 하지도 않고

여자의 의견을 무시하지도 않고

여자가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절대로 웃어주지 않는다.

23년동안 사람좋게 웃던 양반이

단 한번을 여자 앞에서 웃지 않는다.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여자만 안간힘을 쓴다.


그게 현재 가정의 모습이다.


근엄한게 아니라 웃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이목을 끌고싶은 어머니.


아들은 지금 상황이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남자가 보던 노트를 결국 여자가 찢어버렸다.

남자는 현재의 자신에게 말 한번 걸어주지 않는데

 노트 속 과거의 자신이 밉고 질투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전부 기억하고 있어”


오랜만에, 남자가 여자에게 한마디 먼저 건넨다.

여자는 찢어진 종이더미를 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질리지도 않고 부장검사란 양반이 다시 여자 앞에 나타났다.


무어라 여자에게 말을 건네기도 전에

여자가 옛 연인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할퀸다.


“너 때문에. 왜! 난 행복할 수가 없는건데에!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너만. 너만 없으며어언!!”


 유치장에 갇힌 여자에게 남자가 면회를 온다.


“나, 그 사람이랑 아무런 사이도 아냐. 봐..봤지?

 나. 당신만 있으면 돼. 당신만 사랑한다구”


부장검사를 죽일듯 잡아 패서 유치장에 갇혀지고는, 

그게 마치 사랑의 증표라도 되는 듯이 남자에게 자랑한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아직도 밉나보네. 나처럼.”


 남자는 여자가 아직도 그 남자에게 연연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으…으…으아아아아아!!”

 여자가 유치장 안에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나.. 나는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는거야?

 

 왜.. 왜!

 왜 나를 이렇게 미워만 하는건데!!!”


“...”

남자가 여자의 말에 생각에 잠긴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이제 나랑 대화하기도 싫어?!”


여자가 악을 쓰며 남자에게 소리를 지른다.

큰 소리에 경찰들이 유치장으로 다가온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해를 하는 여자를 보고 수갑을 채운다.


“...아냐, 아직도. 당신 정말 많이 사랑해.”


남자는 가만히 서서, 여자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만 보면 눈에 가득차서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