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깨달은 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사랑을 느꼈던 건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오래전이었겠지. 아마 어렸을 때부터.’

 

처음에 그 감정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것은 당혹감이었다.

세간의 비웃음을 당할 금단의 사랑.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서로 그렇게 사랑하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포기했다.

하지만 포기한다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수록 마음이 들끓었다.

오빠에 대한 사랑이 말이다.

이은지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그렇게 이른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사과 해야지…. 그래도 얼굴은 보고 싶으니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경계하지 않으면 덮쳐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미치도록 두렵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욕망에 자신이 허물없이 잡아먹히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나 자신을 조심해야지…. 관계가 끝날 수도 있으니깐.”

 

이은지는 방을 나와 간단히 씻고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로 향했다.

아직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오늘 저녁에 정식으로 사과할 생각이다.

 

 

 

******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체육시간. 반 애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멍하니 보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말실수 한 부분이 뭔지 계속해서 되짚어봤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승혜 말대로 사춘기라 그런가…. 어렵네.”

“나 불렀어?”

“어?”

 

허승혜는 얼굴로 햇빛을 가리며 차가운 음료수캔을 내 이마에 갖다 댔다.

 

“차갑다.”

“기분 좋지?”

“…너희 반도 체육 수업이구나.”

“후후. 보나마나 여동생 생각 중이네.”

“…….”

 

나는 말 없이 캔을 따서 한 입 마셨다.

허승혜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

“그게 말이지…”

 

나는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렇구나.”

“반응이 그게 다야?”

 

허승혜의 심드렁한 대답에 나는 실망했다.

 

“…그건 그렇고 나 주겠다고 한 떡볶이는 도시락에 잘 싸고 왔어?”

“그렇긴 한데… 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

 

허승혜가 내 말을 짜르고 말했다.

 

“안 먹을 거야.”

 

나는 그 대답에 또 실망했다.

 

“아무리 별로일 것 같아도 그렇게 단칼에 말하기 있냐?”

“그게 아니라… 내가 저번에 말했었는데 기억 못하나 보구나?”

“뭐가?”

“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긴 요리를 만들면 좋아할 거라고.”

“뭔 소리하나 했네. 그래서 결과가 이렇게 됐는데….”

 

허승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걸거야. 아마. 눈치 못챘으면 됐어. 아무튼 나도 그런 건 입맛에 맞지 않으니깐. 그 대신…”

“대신?”

“오늘 수업 끝나고 영화관 가자.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거든. 흐흐.”

“…윽.”

“이번엔 b급 영화 아니라고? 명작이라니깐?”

 

허승혜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고르는 안목이 없다.

어떻게 평이 애매한 영화만 골라서 보는 건지 신기할 정도다.

부담스럽지만 내 상담을 자주 봐주는 허승혜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가 끝나고 먼저 가있으라는 허승혜의 말을 듣고 학교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아.”

 

누구의 입에서 튀어나온건지 모를 탄성이 튀어나왔다.

다른 공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위기의 여동생 이은지가 마침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마주쳤다.

 

‘어떡하지? 뭐라 사과해야할지 아직 생각 정리도 못했는데.’

“…….”

“…….”

 

잠깐의 어색한 침묵.

나는 여동생과의 이런 어색함이 싫어 일단은 어깨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때.

 

“오빠.”

“……어?”

 

갑작스러운 부름에 나는 놀라 뒤를 돌아봤다.

이은지는 바닥을 보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할 말 있으니깐 집에 돌아와.”

“…이따 밤에 말해. 지금 약속 있어서”

 

말이 툭 튀어나왔다.

할 말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은지가 저자세로 나오자 내 삭힌 감정이 암막을 뚫고 튀어나왔다.

 

“알았어. 그럼 밤에 애기해. 알았지?”

“……그래.”

 

그렇게 학교를 나오고 근처 역에서 허승혜를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을까?

약속시간을 10분을 초과해 문자도 하고 전화도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거리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집중시키는 여자가 점차 걸어왔다.

청바지와 나시티만 입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패션이 되는 사복의 허승혜였다.

 

‘뭐 이런 종족이 다 있지?’

 

공부도 잘해 집안도 좋아 인간 관계도 서글서글해 얼굴 이뻐 몸매 늘씬해.

잡지에 나오는 모델을 가위로 오려 눈 앞에 놓은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건 은지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그런 걸 거야.’

 

그렇게 이쁜 여동생을 옆에서 십 년넘게 봐왔으니 눈이 안높아 질래야 안높아질 수가 없다.

허승혜는 내 앞까지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 옷좀 고르느라 늦었네.”

“…영화만 보고 갈 건데 고를 게 있어?”

“기분이지. 맨날 교복 입고 의자에 앉아 공부만 하는데 이럴 때 기분 안 내면 언제 내겠어?”

“나야 괜찮지만. 잘 어울리네.”

“……큼. 그것말고 다른 말은 없어? 그것도 저릿하게 기분 좋긴 한데.”

 

속눈섭을 바르르 떠는 허승혜의 말에 아무리 둔감한 나라도 눈치 못챌 수가 없다.

나는 친구를 위해 성심껏 그 말을 꺼냈다.

 

“이쁘네. 그 옷 너랑 진짜 잘 어울린다.”

“흣!”

 

허승혜가 순간 어깨를 쭈뼛 서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왜,왜 그래?”

“…너무 위험한데.”

“이 말을 원한 게 아니었어?”

 

허승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맞는데. 생각 이상의 파괴력이네. 응응. 옷 고를길 잘했어. 고마워. 오늘 티겟값이랑 팝콘은 내가 살게. 지각도 했으니깐.”

“오케이.”

 

영화관으로 이동해 팝콘을 사고 스크린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중앙 자리에 착석했다.

허승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을 거야. 엄청 기대돼.”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났을 때 재미가 없는지 허승혜의 고개가 서서히 내 어깨로 기울어졌다.

 

“…….”

“…….”

‘자나? 이거 깨워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썸씽을 기대한 건 전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두근거려도 되는 걸까?

마음에 걸렸다.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마음이 닫힌 여동생이.

 

“승혜야.”

“…….”

“일어나. 영화 봐야지.”

“…으응.”

 

내가 조심스럽게 속닥이자 허승혜가 깨어났다.

허승혜는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 잠깐 잠들었네.”

“괜찮아. 별로 안놓쳤어.

”……하아.“

 

별로 안놓쳤다니깐 왜 한숨을 쉬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자 별이 보이는 밤이 됐다.

허승혜가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재밌었어. 같이 영화도 보고.”

 

침묵을 깨는 그 말을 받았다.

 

“응. 잘 자더라 아까?”

“……그래. 잠 정말 잘 오더라. 에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 택시 오네. 이만 갈게. 다음에 또 오자.”

“잘 가라.”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나는 손을 쉴새없이 흔들었다.

하지만 허승혜는 그 손짓을 보지 못했다.

막막함.답답함이 눈앞을 가렸다.

그녀는 차가워진 얼굴로 생각했다.

 

‘힘드네. 범수 따먹으려면 여동생의 존재가 너무 굳건한 것 같아.’

 

서늘한 눈빛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어떻게 치워버릴까? 눈에 가시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