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마리아 폰 발데마르는 그녀가 집어 던진 스테이크를 머리에 얹은 채 허리를 숙이고 있는 스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성에 온 지도 어언 3백 년이 되었건만.”


고귀한 데이워커는 얼굴에 웃음을 띄운 채 말했다.


“네 재주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스폰은 저 끔찍한 웃음 뒤엔 여느 때나 폭력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소리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굳은 표정과, 온 힘을 다해 숨기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살기어린 눈빛을 만끽했다.


“흥.”


가소롭다는 듯이, 또 만족스러운 듯이 마리아는 작게 웃었다.


“커헉!”


우득, 뿌드득,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스폰의 목을 뱀파이어의 손이 낚아챘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명을 달리했을 것이고, 막강한 데이워커 휘하의 스폰이라고 해도 중상에 이를 힘이었다.


“내가 잡아오라 한 인간이 몇 마리였지?”


“다··· 다섯··· 입니···”


마리아의 손에 붙들린 시종은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오늘 네가 잡아온 인간은?”


“하, 한 마리···”


마리아는 그대로 스폰을 내동댕이쳤다.


돌벽을 향해 힘없이 날아간 그는 우드득,


방금 목에서 났던 소리를 척추 마디마다 연주해냈다.


“커헉···!”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리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의 앞이 쭈그려 앉은 그녀는,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피를 손가락으로 훑어 가볍게 혀로 할짝거렸다.


그 모습을 증오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유일한 스폰의 모습, 그러나 마리아의 눈에는 그것이 되려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런, 이런, 아이작. 내 사랑스러운 아이야.”


마리아의 달콤한 목소리와 하께 아이작의 머리는 조심스럽게 위로 들어 올려졌다.


“우리 귀여운 꼬마는, 주인의 식탁 위에 올라갈 음식을 훔쳐먹는 들개 새끼같은 교양 없는 짓을 할 리가 없겠지?”


“다··· 당연하지요.”


아이작의 입에서 기침 소리와 함께 피거품이 튀어나왔다.


“제가··· 제가 사람의 피를 빨았다면 주인님께서 알아차리시지 않았겠습니까.”


“후훗, 잘 알고 있구나.”


마리아는 강아지를 쓰다듬듯 두 손으로 아이작의 뺨을 매만졌다.


그리고,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창백하고 가녀린 손가락이, 전혀 가녀리지 않은 우악스럽고도 정적인 움직임으로 아이작의 눈을 꿰뚫었다.


그의 눈을 숟가락으로 과일의 속을 파내듯 휘저으며 마리아는 말했다.


“그럼 아이작, 어째서 점점 할당량을 채우는 날이 적어지는 걸까? 사지에 못이 박고 눈에 밀랍이 부어넣어진 지난 날이 그리워졌니?“


스폰의 눈에서 피인지 눈물인지 모를 걱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마리아는 살며시 손가락을 눈구멍에서 뽑아냈고, 그에 맞춰 핏줄기가 작은 냇물처럼 아이작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월터.“


마리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갑옷을 입은 거구의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게 파인 눈구멍에서 푸른 빛을 내뿜는 섬뜩한 해골은 오직 주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작에게 저녁을 가져다 주고 ‘생각하는 방’으로 데려가렴.”


아이작은 남은 한 쪽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경악에 찬, 그리고 방금 쏘아냈던 것의 몇 배나 되는 분노와 살기.


그것을 본 마리아는 아랫배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흐음, 책표지로 쓸 가죽을 좀 벗겨내 볼까?”


“으, 흐아아아아악!!!”


아이작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쿵.


문이 닫혔다.


“하아···”


마리아가 탄식을 뱉었다.


그 탄식은 애틋하면서도 어딘가 야릇한 기운을 풍겼다.


“역시 너는 눈이 제일 예쁘다니까.“


마리아는 아직 스폰의 피가 남은 손가락을 가볍기 핥았다.


•••

절그럭, 절그럭,


쾅.


사슬과 갑옷이 몇 번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생각하는 방'의 문이 닫혔다.


“허억, 허억···”


아이작은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이미 살가죽이 남아나지 않은 등에선 피가 줄줄 흘렀고, 아주 작고 옅은 바람에도 칼날 수백 개가 훑고 지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럼에도, 아이작의 눈은 공포와 고통에 잠겼을지언정 분노를 거두지는 않았다.


아이작의 주인, 해 밑을 걷는 데이워커, 전능하고 가학적인 뱀파이어 마리아 폰 발데마르도 처음부터 그에게 이러한 짓을 즐걌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가학 성향이 심해진 건, 2백 년 전 그가 발데마르 성에서 도망치려 한 그 날부터였다.


탈출이 실패하고 붙잡힌 그 날,


마치 포획당한 들개처럼 목에 사슬이 매인 채 비참하게 성의 바닥을 구르던 그 때.


마리아는 말뚝에 팔과 다리가 꿰뚫린 채 바닥에 나뒹구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화가 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작이 그 날 보았던 그녀의 감정은,


놀랍게도,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기대감과 만족이었다.


그 날부터 훈육을 빙자한 고문은 시작되었다.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고문하고, 뱀파이어로써 갈망하게 되는 피는 언제나 쥐나 딱정벌레 따위로 제공되었다.


원래도 인간의 피를 빨지 못하게 한 그녀였지만, 적어도 그 날 이전엔 개나 돼지의 피 정도는 빨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아이작에게 제공되는 피는 딱 갈증을 축일 정도로, 언제는 그마저도 주지 않아 피에 미친 아이작이 바퀴벌레라도 잡으려 성 바닥을 헤집고 다닐 정도였다.


흡혈 충동으로부터 인간을 지킨다는, 인도적 차원으로써 벌인 일 따위는 전혀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제약을 건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아이작을 점차 쇠약하게 만들고,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것.


뱀파이어 로드의 의도는 딱 들어맞았다.


그 날 이후로 아이작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뱀파이어 스폰으로써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그렇게 고문당하고 학대당할 때마다 그의 원망은 더욱 커져갔다.


그럴수록 탈출에 대한 그의 열망은 더욱 커져 갔다.


하지만 마리아가 씌워 놓은 굴레와 족쇄는 아이작은 더욱 강하게 옭아 매었다.


그가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그 시도는 쇠약해진 몸 탓에 번번히 실패로 돌어갔고, 그 때마다 주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고문이 가해졌다.


어쩌면 마리아는 일부러 허점을 남기고,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작은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마리아를 보며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어쩌면 그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그의 눈 앞에 놓인 쥐를 콱 물어뜯으며 아이작은 생각했다.


내일 뱀파이어 로드의 식탁에 올라갈 그 인간.


아이작에게 붙잡히기 전, 그녀는 분명 텔레포트 스크롤을 갖고 있었다.


그 스크롤만 있다면···


아이작은 욱씬거리는 고통을 참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작은 재생된 눈동자를 몇 번 깜빡였다.


아직 뻣뻣한 눈꺼풀을 부릅 뜬 채, 그는 두꺼운 문을 열어젖혔다.





더 써올지는 몰라레후

이정도 썼는데도 귀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