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주의! 초반에 NTR 시도 묘사가 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얀순을 둘러싼 다섯 양아치들, 얀순의 미간이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진다.


하와이에 놀러온 젊은 여성을 노리는 전형적인 건달 무리이다. 그녀에겐 외모로나 명예로나 한참 떨어지지만, 그들은 단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들이대본다.


“어이, 누나 혼자서 뭐해? 애기 같은 튜브 타고 말이야.”


“어딜 봐서 누나야 인마. 딱 봐도 꽤 어려보이는데? 귀염둥이, 어디서 왔어?”


“아, 씨… 한국에서 왔다 새끼야. 아랫도리 지키고 싶으먼 꺼져.”


“코리아? 오, 케이팝! 야, 이 누나 알고 보니 케이팝 걸그룹 아니야?”


“걸그룹 뺨치지. 걔네보다 더 어리고 예쁘니까! 하하하하!”


“이런 쪼다들 말고 난 어때? 밤에 여기로 오면 신세계를 보여줄게, 자기야.”


“남자친구 있으니까 꺼지라고.”


“남자친구? 어디? 설마 저 게이 같은 아시안 가이야?”


금발 머리에 피부를 바싹 태운 양아치가 저 멀리서 걸어다니는 남성을 가리킨다.


혹시나 그인가 싶어서 봤지만, 모든 면에서 부합하지 않는 남성1일 뿐이다.


더욱 성질이 오른 얀순이 이어피스를 조작하며,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는 그때였다.


“하… 경호처장.”


“예, 장관님.”


“빨리이잇?!”


-풍덩!


“경호원도 있나본데? 야, 이 누나 돈도 좀 만지나 봐!”


“푸하! 이 개새끼드읍! 으읍!”


“장관님?! 장관님!! 비상! 장관님이 습격당ㅎ”


-치직, 지지직…


“이어폰도 깔롱진 거 끼고 있네. 오늘 월척을 낚았구만, 낄낄낄.”


“이 귀염둥이는 내 아들녀석을 받을 수 있으려나? 전의 아시안은 1분도 채 못갔다고.”


튜브가 갑자기 뒤집어지며, 물이라는 족쇄에 수감된 그녀. 가까스로 나오자마자 거대한 손이 그녀의 입을 막고 뭍으로 끌고 나간다.


수컷들은 마음에 드는 암컷이 튕길수록 더욱 대담해지고 흥분한다. 마침 얀순에게 계속 작업을 치던 다섯 남자들의 인내심도 한계가 찾아왔다. 


이어피스는 바스라진 채 물 속으로 사라졌고, 튜브는 다행히도 부표에 걸려 떠내려가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으브읍! 으읍!”


“가만히 있어 이 년아. 오빠가 천국으로 보내줄게.”


‘오, 빠아… 어딨어…? 나, 나 좀 도와줘어…’


“왜이리 힘이 세? 어려운 방법을 원하는거야?”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더 맛있는 법이지.”


오늘따라 유독 썰렁하던 해변이 복선이었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발휘할 수 없으면 그녀의 몸은 여리여리한 일개 여성일 뿐이다. 


경호원이고 경찰이고, 그녀의 머릿속에선 오직 한 남자만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이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란다.


어릴 적 함께 읽었던 용사와 공주 이야기처럼, 그녀를 지켜줄 용사가 되어줄 그이는 안타깝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자, 자, 어디부터 요리해줄까?”


“으읍…! 읍!”


“괜찮아, 괜찮아. 우리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하와이답게 놀자는거야.”


“쉬시시, 다쳐?”


“읍… 윽… 흑…”


“야, 왜 울리냐 새끼야.”


“다 처음엔 그래. 그러다가 맛들리면 캬. 오히려 자기가 찾는다니까?”


무력감과 허무함에 눈물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오빠만을 생각하면서 만든 몸인데,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이 자신에게 군침을 다신다.


무리 중 하나가 접이식 칼을 꺼내들어 수영복의 어깨끈으로 천천히 들이댔다.


“움직이면 안 돼?”


“으급…”


-찌직…!


“끅?!”


왼쪽 어깨의 끈이 힘없이 양단되어 떨어진다. 처량하게 처지는 끈을 본 그녀의 동공이 수축하며, 패닉에 빠진 걸 여지없이 드러낸다.


반대로 양아치들은 그녀의 반응에 잔뜩 흥분한 얼굴로 저급한 발언을 늘어놓으며 나머지 오른쪽 끈으로 칼을 들이댄다.


“야… 라인 봐 이거…!”


“가슴도 크고 크…”


“읍! 으으읍!!”


“아, 씨발… 움직이지 말라고 이 썅”


-퍼억!


“…!”


“개새끼가…!”


칼날이 닿는 순간,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기적처럼 그이의 모습과 목소리가 느껴졌다.


칼이 날아가면서 어깨가 베이긴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자, 그녀의 아랫배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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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철퍽!


“!!! 저저저 씨발놈들이…!”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아껴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그대로 툭 떨어진다.


하와이에서의 달콤한 휴가는, 역겨운 악몽으로 변했다.


“그윽…! 읍!”


“괜찮아, 괜찮아.”


“쉬시시…”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서 다섯명의 개새끼들에게 희롱당하는 한 여성, 얼굴을 보자 아주 익숙하고 어제부터 쭉 보고 싶었던 여성이다.


안에서 무언가 툭 끊어진다. 동시에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있던 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이 썅…”


-퍼억!


“…!”


“개새끼가…!”


“아아아악!!!”


칼로 얀순이의 수영복을 찢던 놈의 머리에 파이프를 그대로 내려꽂았다.


동료가 고통에 울부짖자 나머지 네마리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고, 그중 나와 제일 가까운 새끼의 턱주가리를 이어서 후려쳤다.


“끄아아아악!”


“이 새끼 뭐야…!”


“쬐끄만 옐로몽키 주제ㅇ”


-퍼억!


“엑!? 으어걱… 꺽, 꺼윽…”


“씨발새끼들… 대가리랑 불알 두쪽 다 으깨줄게.”


우락부락한 몸뚱아리를 자랑하던 거구의 흑인이 사타구니에 킥을 맞고 말도 못 끝내며 쓰러진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제일 위험하게 생긴 새끼가 머리는 멀쩡한 걸 보자, 곧바로 온힘을 다해 사커킥을 날리고 짓밟아댔다.


“이이익…! 네가 이 년 남자친구냐?!”


“씨, 씨발, 맛만 보는 것도 못하게 하네 이 좆만한 새끼가!”


“얘 오빠다, 이 개씹새끼들아...”


“오, 빠아…”


마지막으로 남은 두 놈들이 당황하다가 이판사판으로 칼을 꺼내들며 나한테 달려든 뒤로, 기억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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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아…! 흐으윽…”


“아… 안녕, 얀순아…”


“너무 보, 고 싶었어… 저 개, 새애끼들이… 갑자기이 튜, 브… 오빠가아, 사준 튜브를… 끅…”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정신을 차렸을 땐 수많은 차량들과 경호부대가 현장을 둘러싸고 있었고, 주저앉아 있던 내 몸 위로는 얀순이가 안겨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깨에 상처가 생겼네. 제일 먼저 머리가 깨진 놈이 나한테 맞음과 동시에 칼을 놓치면서 베였나보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 천벌받을 새끼들은 하나같이 머리와 사타구니가 피범벅인 채로 경찰차 대신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고, 다행히도 난 피를 흘리진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피가 얼굴에 튀어 기분이 더럽다.


무기가 된 쇠파이프는 내 손자국과 피가 진하게 남았고, 깨진 벽돌조각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경찰관이 증거품으로 수거했다.


“흐윽… 흑…”


“아휴, 힘들어라… 울지 마, 뚝…”


“훌쩍, 오빠아…”


“응, 오빠 여깄네… 어깨는 안 아파?”


“우응…”


“다행이네… 자, 이거 입어…”


입고 있던 후드집업을 벗어 얀순이에게 둘러줬다. 수영복 차림에 상처난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으니 오빠로서 볼 수 없는 꼴이다.


그러면서 아까 입은 상처가 붕대와 함께 드러나자 얀순이가 크게 놀란다.


“오빠… 이, 이게 뭐야?! 얼마나 크게 다친거야…!”


“아 이거, 별 거 아니니까 걱정마…”


“걔가 말해주긴 했는데… 이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뉴저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지…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줘. 아, 카린과 애들한텐 오늘 일, 절대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으응…”


“그럼, 일어나자…”


음, 둘이서 서로 만나고 있는 건 맞나보다. 얼떨결에 알게 되네.


격렬하게 싸워대서 삭신이 쑤시지만 최대한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얀순이는 아직 진정이 안 된 듯 하니, 조그만 선물로 달래줘야지.


“우리 얀순이, 많이 놀랐겠네… 자, 오빠한테 업혀. 걸어나가는 건 무리야.”


“무, 뭔 소리야…?! 오빠야말로 멀, 쩡한 곳이 없는데…”


“에이, 어렸을 땐 같이 언덕에서 구르고도 업히라고 하면 바로 업혀댔잖아.”


“그, 그건… 으…”


“괜찮아, 괜찮으니까, 어서.”


“...그럼, 실례할게…”


덩치도 힘도 모두 커졌지만 여전히 나에겐 작디 작은 여동생 얀순이이다. 최근에 힘이 너무 세져서 내 머리 위에 섰고, 선도 넘긴 했지만…


아무튼 골목 밖으로 나와 피와 땀을 닦던 중, 얀순이의 보좌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안절부절해 하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저, 저 녀석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경찰이랑 협의 하에 저희가 직접 처리할 수도 있는데…”


“일단 언론은 다 막아놨으니 걱정마시길…”


“튜브랑 가방도 회수했습니다! 어디다… 둘까요…?”


“다, 꺼져… 보기도 싫으니까… 오늘은 오빠랑 있을거야…”


“예, 예옙! 지휘관님과의 자리, 바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얀순이와 재회했을 때 만난 비서 아저씨가 온몸이 홀딱 젖은 꼴로 동료들을 차에 던져넣고 재빠르게 사라진다.


튜브도 직접 수영해서 가져왔지만 턱도 없다. 첫인상부터 별로였던 아저씨긴 한데, 이렇게 어이없는 일로 밥줄이 끊길 위기라니, 좋다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아무튼 하와이의 태양은 슬슬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노을이 아름답게 비추는 해변을 등에 업힌 얀순이와 거닐며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얀순아.”


“응…”


“어제랑 오늘은 어디 있었어?”


“히캄에서, 쭉 일했어…”


“놀러가도 일을 시키다니, 나쁜 놈들이네.”


“응…”


“너도 인정하는구나. 아주 나쁜 놈들이지. 오각형놈들. 그리고 어제…”


“어제는 일했다니까…”


“그냥, 계속 안 보이길래 걱정됐거든. 마침 재회를 이딴 식으로 하니… 야, 옛날 생각 나네…”


“아… 무슨 생각…?”


“어렸을 때, 동생들이랑 바다 갔을 때.”


“으응…”


“거기서도 너 혼자 돌아다니다가 길 잃어서 큰일났었잖아.”


“엣, 그, 그때는…! 난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오빠랑 애들이 사라졌다니까…!!”


“하하하, 그러면 잘 따라왔었어야지 인석아.”


“으… 흥…”


“할 말 없지?”


“쳇… 시끄러…!”


마치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말투와 분위기가 많이 귀여워진 얀순이다.


그 시절의 많은 추억이 담긴, 비서 아저씨가 양복차림으로 입수해서 회수한 얀순이의 튜브가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흔들린다.


“맞다, 이거 언제 사줬던거지?”


“시입… 오년 전…?”


“히익, 그렇게나 오래 됐어?”


“응…”


“그동안 안 터진 게 신기하네… 얼마나 관리를 잘한거야?”


“오빠가, 사준거니까…”


“아하하… 그래도 오래 됐으면 바꾸지…”


“싫어.”


“아, 그래…”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귀엽게 웅얼거리던 목소리가 저때만 날카롭고 또박또박하게 들렸다. 어리광을 부릴 때와 정색할 때를 딱딱 구분하는 저 기계적인 모습이 얀순이의 제일 무서운 부분이다.


어쨌든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슬슬 숙소로 데려다주기 위해 해변을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얀순아, 이제 가자. 어디로 데려다ㅈ”


“읏…!”


“왜 그래?!”


“아, 파…”


“어디가?!”


“아깐 안 아팠는데… 어깨가…”


얀순이가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린다. 아, 치료를 안 하고 나왔네… 이 나쁜 새끼들, 깜빵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잡아 쳐넣어버릴 거다.


카리나와의 약속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러면… 카리나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우선 오전에 치료를 받았던 의무실로 가 상처를 살피고, 소독했다.


“조금 쓰라릴 거에요.”


“으읏…!”


“조금만 참아. 옳지.”


“네, 됐어요. 이제 붕대를…”


“저, 선생님…”


“네, 환자분.”


이제 붕대를 감으려는 순간, 얀순이가 의사의 손길을 막아세우며 말했다.


“붕대는… 제 보호자가 감아줘도 될까요?”


“?”


“어… 보호자분이 아까 환자로 오셨는데 붕대를 어떻게 하는지 잘 아시던 것 같긴 하더라구요.”


“예? 아니, 알긴 아는데…”


“오빠가… 해주면 안 돼애…?”


얀순이의 여우 성질이 또 발동됐다.


분명히 약속을 하긴 했지만, 약속이란 게 욘석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고 코에 붙이면 코걸이일 게 뻔하긴 하다.


“아니, 전 남자잖아요… 선생님께선 여자시니 당연히 직접 하시는 게…”


“선생님, 보호자가 하게 해주세요. 제가 책임질게요.”


“흠, 그럼 보호자분이 하시겠어요? 전 마침 퇴근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예? 아니, 왜 이렇게 신나셨어요?!”


“감사합니다…”


“?????”


“그럼 부탁드릴게요! 다 끝나시면 문단속과 정리도 하시고 나와주세요~”


여자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봐.


의사선생님은 아주 해맑은 미소로 퇴근의 기쁨을 즐기며 사라졌다. 열쇠까지 우리한테 주고.


이게 대체 뭔 상황이지?


“후훗, 오빠아…♡”


“어어, 얀순아, 왜…?”


“얼른, 나 아픈데에…”


목소리가 슬슬 요염해지는 얀순이의 아우라가 좁디 좁은 의무실을 가득 채운다.


얀순이의 손바닥은, 내게 우주보다 넓다.


“아, 옷이 찢어져서 그래? 그럼 갈아입을게…”


“어, 응, 원래 입고 있던 건 찢어져서 좀 그러니까, 그냥 여기 버리고 가자.”


“혹시나 해서 그런데 나 갈아입는 거 보면 안 돼? 우리 약속했잖아.”


“절! 대! 절대 안 볼 거니까 걱정마!”


얀순이가 가방을 들고 커튼 너머로 사라진다. 나는 커튼 쪽의 정반대편을 보며 살면서 수행했던 임기응변들을 떠올린다.


‘그냥 도망갈까…? 씁, 이게 제일 확실한데… 근데 얀순이 혼자서는 붕대를 못 매잖아.”


‘그러면… 그냥 당당히 보면서 할까? 얀순이는 여동생이니까, 별 반응이 오진… 그럼 그날은 뭔데…’


‘...아! 저 후드로 가릴 거 가리고 하면 되겠네! 새끼, 좀 치는구만.’


-샤락!


“오빠, 다 입었어.”


“어어! 빨리 해줄테니 걱정 마아… 얀… 순, 아?”


“후후, 왜애ㅡ?”


세상에, 저게 수영복이야, 천쪼가리야?


얀순이는 늘 나보다 수천 수 앞을 본다. 이길 거라고 생각한 몇초 전의 내가 초라해진다.


노출도가 하늘을 뚫은 얀순이가 날 향해 요염한 미소를 보이며 반응을 즐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걸어와 내 무릎에 앉았다… 방금 전에 대책이랍시고 뭘 생각했지…?


“역시, 챙겨오길 잘했네.”


“아니, 잠깐만 얀순아, 네 말대로 우리 약속했…”


“아, 그거? 난 너무 잘 지키고 있는데?”


“이게 어딜 봐서…”


“전의 옷은 찢어지기도 했고 환부를 가리는 면적이 커서 이거로 갈아입은거야. 만약 노출 때문이라면… 오빠는 여동생인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 걸?”


“어… 맞는 말이긴 한데…”


맞는 말… 후후, 그럼 문제없지? 자, 어서 해줘.”


“그, 래…”


아주 완벽한 논리다. 반박할 여지도, 트집잡을 부분도 없는 완벽의 정석.


몇번인지 모를 패배를 오늘도 적립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들어 어깨에 댄다.


“읏…”


“왜왜왜?!”


“아파서…”


“어어… 살살 할게…”


“하아… 흐읏…”


“숨은 또 왜…”


“아니야… 얼른 해주기나 해…”


“응…”


얀순이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르고, 내 손이 피부와 닿을 때마다 몸이 살짝씩 떨린다.


분위기가 참으로 뭐한지라 집중이 안 돼서 붕대를 감는 속도도 점점 느려진다.


“오빠…”


“으응…?”


“카린 씨랑 약속 있지 않아…?”


“그걸 네가 어떻게…”


“오빠는,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이젠 자기가 직접 낙인 찍는구나.


이렇게 난 얀순이의 덫에 옥죄어진다.


“미안하지만, 오빠는 나한테 속은거야.”


“......”


“그 씨발새끼들이 내 몸을 더듬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화나고 더럽고 역겹지만, 덕분에 오빠랑 이렇게 단 둘이 있게 됐으니, 전화위복이라고 봐야겠지?”


“그리고 우리의 것이든, 그 여자와의 것이든, 모든 약속은 다 깨지라고 있는 거야…”


-스윽…


“.....!”


먹잇감을 발견한 아나콘다처럼, 그녀의 손이 슬금슬금 뒤로 온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수영복의 매듭을 잡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내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해…”


“왜? 오빠는 여자 취급도 못받는 나에게 전혀 욕정할리가 없어. 안 그래?”


“윽......”


“무언은, 곧 수락이야.”


손이 천천히 뒤로 움직이며, 매듭도 풀어진다. 


얀순이답게 약속을 귀도 아니고 코도 아닌 이상한 곳에 걸어버렸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러면…”


“응… 어서…”































“빨리 끝내줄게!”


“흐헷, 오빠?!”


“히야압! 자, 다 감았다! 밖에 추우니까 저 후드는 우선 입고 가고 내일 빨아서 돌려줘! 간다, 얀순아! 내일 보자!”


“아, 아니…”


단순하게, 아주 빠르게 할 거 끝내고 런하는 것이다.


얀순이를 상대하는 법을 알았다. 미친놈처럼 

행동하면, 천하의 얀순이도 당황하기 마련. 그때를 노려서 탈출하면 되는 거다.


마침 밖엔 뒤에서 몰래 졸졸 따라다니던 수행원들이 있었고, 아까처럼 그러면 당신들 모가지이니 쟤 좀 잘 돌려보내라고 협박해준 뒤 숙소로 돌아간다.


“아… 생각해보니까, 나 완전 씹새끼네…”


하지만 곧 찾아오는 자괴감. 아내 몰래 여동생처럼 여기던 아이와 몸을 섞은 것도 섞은 거지만, 아무리 유혹을 했다고 해도 한 번 더 그 아이에게 욕정하는 또라이가 될 뻔 했다.


그것도 몹쓸 짓을 당하다가 구해준 직후에 이랬으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다.


“인생 줘엇같다… 휴가 와서도 이러고…”


“내가 전생에 가스실에서 밸브를 돌렸나…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질 않네…”


의무실에서 한바탕 하는 동안 노을은 사라지고 대신 별이 하늘을 수놓는 저녁이 되었다. 


호텔에 터덜터덜 들어오자, 수영복 차림으로 입구에 서있던 카리나가 날 발견하고 깜짝 놀라 뛰어온다.


“지휘관님…? 윗옷은 어디 갔어요?!”


“돌아다니다가 얀순이를 만났는데 걔가 어깨를 좀 다쳤거든… 그래서 빌려주고 왔어.”


“뭐라고요?!”


“어, 왜…?”


“장관님도 참 이기적이네요! 다쳐봤자 당신보다 덜 다쳤을텐데 옷을 뺏어가요?!”


“뺏어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입혀준거야…”


“제가 뺏어갔다고 하면 뺏어간 거에요!”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많이 화가 난 듯 하다. 이 얘길 꺼내는 게 아니었어…


남편이란 놈이 아침에 염병쌩쇼하다가 다친 것도 속상할텐데, 연적에게 옷까지 줬으니 충분히 그럴만 하다.


무엇보다 그 연적에게 수차례나 날 뺏길 뻔 했으니… 심지어 한 번은 뺏었다가 못 이기는 척 돌려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단 둘이서 저녁 식사라도…


“저녁은 먹었어?”


“흥, 하도 안 오셔서 아이들이랑 먹었어요.”


“아, 그래… 고생했겠네…”


“아이들이 참 착하긴 하더라구요. 누구 닮아서.”


“...미안해…”


바로 컷.


난 이제 죽었다. 내 몸은 아까나 지금이나 내 것이 아니다.


“따라오세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어요!”


“응…”


카리나의 손을 잡고, 다시 해변으로 향한다.


서로 맞잡은 왼손의 반지가 별빛을 받고 반짝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반지를 사준 그녀를, 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건가? 왜 다른 여자들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까?


무언가 오기가 생긴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도차케엣?!”


“카린…”


“지, 휘관님…?!”


인적없는 어느 절벽 아래로 날 데려온 카리나의 손을 당겨, 품 안에 안았다.


돌발행동에 당황한 그녀의 등과 머릴 쓰다듬으며,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도록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 얀순이도 얀순이지만, 오늘도 794에서 2명이 날 찾아 왔어.”


“정말요?!”


“아직도 나에 대한 욕망을 못버린 것 같더라고… 경찰이 잡아가긴 했는데, 뉴저지처럼 얀순이와 짜고 돌아다닐지도 몰라.”


“그러면 잡힌 게, 의미가 없잖아요…”


“그치.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말이야. 절대 그럴 일 없어야겠지만, 만약 불미스런 일로 네 곁을 떠나는 일이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너 뿐이고, 너 뿐일거야. 약속할게.”


“지휘관님…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난 아직까지 794 일에서 자유롭지 못해. 총감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쪽에서 내가 여깄는 걸 알고 2명을 보냈으니까.”


“최악의 경우엔 794에게 납치를 당할 수도 있을거야. 이런 일이 없을거라곤 장담할 수 없어.”


“아......”


“천명에 달하는 인원이 날 10년 동안 욕보였고, 지금도 그럴려고 안달이 났을거야. 그리고, 얀순이도… 하… 끅, 카린, 미안해…”


“어라, 지휘관님… 울어요…?”


“정말, 정말 미안해… 끄윽…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 스스로가 너무 역겨워서… 말로만 사랑한, 다 하고… 끅…”


그러나 그 오기는 얼마 못가 후회와 죄책감으로 변질됐다.


나란 새끼한테 묶여버린 그녀가 안타까웠다.


나보다 수천배는 잘난 남자를 만날 수 있는데, 수만배는 더 사랑해주고 일편단심일 남자를 만날 수 있는데, 하필 날 사랑한 대가로 고통받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의 고백을 받으면서 뭐든지 이겨나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채 몇주도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나버렸다. 


“...지휘관님…”


“흐극… 윽… 미, 안해…”


“장관님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봐요…”


“크읍, 변명하, 지 않을게… 끅, 다 내 욕심, 이고 잘못이야…”


“하루하, 루가 두려워… 널 배신할까봐, 너에게 상처를 입힐까봐… 근데, 나란 놈은… 줏, 대도 없어서…”


그녀를 안은 팔은 천천히 힘이 풀리고, 몸도 힘없이 아래를 향하며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됐다.


이런 못난, 남편이라 불릴 자격도 없는 놈에게, 그녀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마음을 정리한 듯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은 빠르게 내 머리로 다가온다. 차라리 뺨이라도 한 대 맞고 싶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계속 맞고 싶었다.


“지휘관님…”


“으윽, 끅...”


하지만 머리엔 강렬한 통증 대신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똑같이 몸을 낮춰 날 껴안고 말하는 카리나. 이런 나를 끝까지 믿어준 의미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지만, 괜찮아요.”


“......?”


“지휘관님이 절 사랑하신다면, 저도 지휘관님을 사랑할거에요. 장관님과의 일도, 지휘관님이 원해서 하신 건 아니라고 믿어요.”


“...당신도 많이 힘들겠죠. 저와 장관님 사이에서 고통받고, 794 일로 고통받고, 아이들로 고통받고… 저도 결국 지휘관님을 괴롭히는 짐이 되었으니까…”


“아니야…”


“아까도 그렇고, 도와주는 거 하나 없이 지휘관님에게 떼쓰고, 애처럼 징징대고… 저야말로 죄송해요, 지휘관님…”


“이렇게 많은 고통을 삭히고 있었음에도 도움 하나 못준 제가 당신의 아내라 불릴 수 있을까요…? 그러니, 지휘관님이 저에게 사과하실 건 단 하나도 없어요.”


“물론 사과할 일이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용서할게요. 그리고 언제나 괜찮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러니,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지 마세요… 당신이 있어서 제가 사랑을 알았고, 하늘로부터 축복도 받았으니까요…”


결국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단 하나뿐이다.


이걸로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카리나가 원하는 사랑은…


“!”


“쪽, 지휘관님… 사랑해요… 지휘관님…”


“...나도, 카린…”


내가 생각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작았다. 아주 단순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만을 바라보면 되는 거 아닐까?


얀순이가 나한테 선을 넘든, 794의 누군가가 날 강제로 탐하든, 카리나를 생각하면서 버티면 되는 거였다. 그게 그녀가 원하는 것이고, 내가 그녀에게 참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의 손이 날 밀어 눕히고, 곧 그 위로 올라타 더욱 진한 키스를 나눈다.


“푸하… 하아… 하아… 히히, 서로 할 얘기는 다 끝난거죠? 


“응… 그런 것 같네.”


“그럼… 우리 아가한테 잠시 미안하다고 해야겠어요...”


“왜?”


“그… 사실… 요즘… 으… 보통 초기에는 안 그런다던데 왜 저는…”


“아하.”


“뭔 반응이에요 그게?!”


“설마 여기로 온 이유가…”


“흣…! 으, 그으, 네에…”


“아. 그거구나.”


“지휘관니이이임?! 꺄악!”


고민할 새도 없이 그녀를 안았다.


절벽 아래에서 열리는 단 둘만의 은밀한 밀회, 새로운 추억을 사랑과 함께 만들어 저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바라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두려웠지만, 그건 우선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의 그녀에게 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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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