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가치는 전무하다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 속에선. 결코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빛내기 위한 가방이고, 화려한 장식이었고.

다른 이들을 시샘 했기에 생긴 분노를 받아낼 허수아비에 다를 바 없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뭐?"


내 말에 그녀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시간이 좀 지나선,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헤어져? 너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그녀와 헤어지는 것 자체가 손해라는 듯. 내가 그녀보다 못났다는 듯.

이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듯이 옭아매는 그녀의 말.


지난 7년 간 들어왔던 그녀의 강요.

7년이다, 군대를 갔다 온 시간을 제하여도 5년 6개월이라는 시간.

심지어 그 시간조차 그녀에게 매달리기 바빴던 나에게, 이런 고압적인 태도.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녀가 아니라면 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더 이상은 싫다.


"…………."

"책임도 못 질 거면, 함부로 그런 말 따위 꺼내지마. 짜증나게."


그녀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넌 더 이상 나를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구나? 잘 들어, 난 네 소유물이 아니야!! 난 네 화풀이 용의 인형도 자랑하기 위한 가방도 아니고. 반드시 데리러 와야 하는 기사도 아니고 뭣도 아니라고!!"


감정이 북받쳤다.

아직도 마음 속에 남은 미련이 뜨거운 피가 되어.

눈에서 물로 새어 나오고 있다.


그런 그녀였지만. 그 처음의 마음으로는 나 역시 그녀를 좋아했기에.

지금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끝내야만 했다.


"난 더 이상, 네가 싫어!!!"


마음 밑바닥 속에서 잠들어 있던 감정을 꺼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쥐고 있던 손을 풀고. 숨을 헐떡거렸다.


그녀는 그런 나의 반항적인 모습에 어지간히 충격을 먹었는지. 멍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 할 말도 없어. 그대로 가방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 그리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며 달렸다.


더 이상 그녀가 보이지 않게.

그녀를 보고 싶지 않으니까.


타다닥──!!

쿵!


"읏──."


달리던 와중,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앞을 보지 못했다.

그 탓에 앞에 있는 것과 부딪치고 말았고. 나는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무언가 푹신한 것에 부딪쳤는데.

잠시 그 감촉에 대해 생각하다, 내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어? 사, 사람?! 죄, 죄송합니다──!!"


사람과 부딪쳤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 연신 사과를 하고 있는데.

허둥거리고 있는 내 손을. 가느다랗고 좋은 향기가 나는 손이 붙잡아주었다.


"괜찮냐구요──."


바람이 불어, 눈물이 날아가 게슴츠레 눈을 떴고.

그 앞에는 낯설게도 익숙한 모습이 서 있었다.


"오빠."

"아!"


이것이, 그녀와의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