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와 민우를 태운 검은색 세단이 밤공기를 가르며, 신작로를 달려 나간다.

차 안은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수아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민우는 곁눈질을 하며, 수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가로등 불이 빠르게 지나가며 수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이 빠르게 비추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민우는 수아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팠어요?”

겨울밤 같은 고요함을 깨고 수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살살하려고 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목은 좀 괜찮아요?”

수아가 민우의 목을 살피기 위해 몸을 돌려 그에게 손을 대려하자, 민우는 흠칫 놀라 문 쪽으로 바싹 붙어 그녀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수아는 자신을 아직 두려워하는 민우의 행동에 잠깐 몸이 굳더니, 천천히 손을 거두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들렸다.

수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았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이후로, 매일 작업이 있든 없든 그를 만난 그 상가 앞에서, 그를 만난 그 시간에 맞추어, 아무런 이유 없이 오지 않는 그를 기다렸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왜 그랬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이상한 남자가 오지 않을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운명의 장난으로 다시 한번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진 못하였다,

그러다 어떤 날은 마치 그와 만났던 그날처럼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그녀는 혹여나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빗물이 얼음송곳처럼 그녀의 어깨를 세차게 찔러대도 오지 않았다.

민우는 수아에게 두 번 다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수아는 그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민우 또한 그녀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아가 가지고 있던 혹시나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기대감은 점차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실망감으로 바뀌어 갔다.

그날 밤, 빗물에 피가 덜 씻겨나갔던 걸까, 혹시 그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던 걸까, 혹시 그날 젖은 옷에 속옷이 비쳐서, 나를 천박한 여자로 봐서 피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과 이유가 수아의 머릿속을 헤집고 어지럽혔다.

가지고 있던 모든 약들을 써보고, 잠을 잘 때면 꿈결에 그가 나올 것 같았기에, 깊은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을 마구잡이로 늘리며 원래도 짧았던 수면시간을 줄이면서까지 그 남자를 잊어보려고 하여도, 그 비가 오던 날의 남자는 녹슨 대못이 되어 수아의 머릿속에 박혀, 뽑으려고 만지면 만질수록 주위에 번지고 더럽혔다.

이에 따라 그녀의 편집증적인 성격은 일에 지장이 갈 정도로 더욱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산하 조직들의 간부를 불러 회의하는 날이었다.

수아는 회장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간부들과 회의하던 중 평소에도 고깝게 보던 늙은이 하나가 최근 그녀의 행보를 문제 삼자, 평소라면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여 좋게 좋게 넘어갔을 그녀가 그 자리에서 재떨이로 그 놈팡이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이를 앞자리에서 본 다른 간부들 사이에선 그녀의 포악함이 그녀의 아비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 정도로 수아는 그를 염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그를 보게 된 것은 부하가 가져온 사진들이었다.

“그때 부탁하신 그 검사분 사생활 관련 사진들입니다.”

“거기 두고 나가요.”

심드렁하게 사진을 넘겨보던 수아는 뜻밖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놀랐다.

‘이 남자는!’

사진 속 그는 그녀가 아주 잘 아는 년 앞에서, 그날 밤 자신에게 보여준 웃음을 보이며, 대화하고, 포옹을 하고 있었다.

그가 찍힌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수아는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동안 힘들었는데, 이 남자는 이 검사 년이랑 시시덕거리며 붙어먹고 있었구나. 그에게 안긴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내 어떤 생각이 수아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가 나한테 일부러 접근한 건 아닐까?’

그 생각들은 꼬리를 물고 점점 더 확증 편향적으로 부푼다.

‘그래, 이 검사 년한테 사주를 받아서 나한테 일부로 접근한 걸 거야.’

‘나 같은 어두운 사람한테 이런 남자가 떡하니 온 것부터가 이상했어.’

‘이전부터 날 감시하고 있었던 걸 거야, 나의 약점을 찾으려고!’

수아는 사진을 꾸긴다.

“씨발놈….”

수아는 전화기를 들더니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 삼촌. 사람 하나 잡아 와요.”


수아는 회상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는 어느새 새근새근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공장에서 민우가 나은과의 관계를 부정하였을 때, 수아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기뻤다.

그리고 민우와 나은의 전화 통화에서 둘 사이가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론, 안도감과 기대감이 몰려왔다.

수아는 민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잘생기지도 않은 이 얼굴이 왜 그렇게까지 보고 싶었을까.

민우는 수아의 이상형처럼 강인하게 보이지도, 연예인처럼 잘생기지도, 키가 자신보다 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수아는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 차 안,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같은 공간에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지는 듯했다.

이 남자를 가지고 싶다.

수아는 생각했다.

수아는 잠든 민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수아와 민우가 탄 검은색 세단이 밤공기를 가르며, 그들의 집을 향해, 신작로를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