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 몇 개 있었다.


혼자서 용의 생태계를, 용들이 사는 방식을 바꿔버린 용들의 재앙 아이잔


미쳐 날뛰는 오크들을 무력으로 평정한 위대한 정복왕, 라우나르


유일하게 시간의 구조를 완벽히 이해한 시간의 마법사, 브루먼


1000년 동안 지나치게 많은 마법을 뇌에 쑤셔박은 탓에 완전히 미쳐버린 엘프 마녀, 프쉬케


창조신의 편애를 받는 전지전능의 성녀, 레일라


그리고 단언컨대 가장 사악한 존재를 말해보라고 하면 나오는 이름, 발로리아


통칭, 마왕.


드래곤과 마족의 혼혈이자 태어나선 안 됐던 마족의 돌연변이.


아주 어릴 적부터 날고 기는 마족들을 단신으로 제압하고 스스로 왕이 된 폭군.


성격은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 그 누구도 그녀를 사랑하지 못했다.


오로지 그 때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극한의 기분파, 그리고 그녀는 24시간 중 23시간 동안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빠지면 하는 짓은 노예들을 학살하거나, 죄수들을 공개처형 하거나, 다른 국가에 침범하여 약탈을 저지른다.


신하들은 그녀에게 아첨하느라 바쁘며, 백성들은 언제 왕이 돌아와 또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두려워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나마 발로리아가 유하게 대해주던 남자가 있었다.


마족이 아닌 인간 남자였다. 다른 세상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남자는 강철로 만든 쇳덩이가 달리는 세상에서 왔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어도 상관없었다. 발로리아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름 흥미를 느꼈다.


물론 그 역시 발로리아의 기분이 나빠지면 끔찍한 학대를 당했지만, 그녀의 곁에 있고도 1년 넘게 살아있던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참으로 기묘한 관계였다. 묘한 애정은 있지만 서로를 지독히도 미워했다.


발로리아는 그를 이야기 하는 것 외엔 쓸모 없는 노예라고 하대했지만, 죽이거나 고문을 하진 않았다.


그는 발로리아를 불쌍하다고 말했지만, 결코 그녀를 사랑할 순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관계는 반란으로 끝났다.


지독한 폭정에 지친 백성들이 먼저 일어섰고, 호시탐탐 왕의 목을 치고자 했던 영웅 호걸들이 뒤따라 일어섰다.


마왕은 강했다.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한계 또한 분명했다.


수 천, 아니 수 만 명이 죽어나가는 내전 끝에 마왕이 패배했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용의 뿔은 부러졌고, 그녀가 다스리던 국가는 완전히 빼앗겼다.


간신히 목숨만은 잃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모든 걸 잃어버렸다.


나라도, 지위도, 뿔도, 전부.


평생 모든 걸 가지고 있었던 왕에게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자 상실이었다.


차라리 도망치지 말고 명예롭게 죽어야 했다.


발로리아는 그 남자와 함께 달아나는데 성공했지만, 매일 후회와, 분노와, 슬픔과, 원망과, 절망을 토해냈다.


이윽고, 망가져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던 힘마저 잃어버리고, 지능은 퇴화했으며,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아니, 스스로 지워버렸다.


그러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신에 비견될 정도로 강대했던 마왕은 이제 5살 꼬맹이만도 못한 상태로 전락했다.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며, 어제 있었던 일조차 까먹고, 성격마저 어린애처럼 변해버렸다.


그는 발로리아를 버릴 수도 있었고, 아예 죽여서 후환을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발로리아는 그가 떠나려고 하는 아주 약간의 조짐만 보여도 울부짖으며 자해했다.


모든 걸 잃어버렸음에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마저 떠나버리면 그녀에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는 어쩔 수 없이 발로리아를 돌봐주기로 했지만, 지난 날의 기억이 떠올라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순 없었다.


발로리아 때문에 죽은 무고한 사람이 몇 명이며, 그녀가 그에게 저지른 학대를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그러나 그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발로리아는 점점 그에게 집착하며, 심지어 과거의 잔재마저 끌어내


그를 속박하고 옭아매려고 하는데...









같은 느낌의 소설도 맛있지 않을까 상상해봤는데 좀 그릉가...


역시 새벽에 졸릴 때는 글을 쓰면 안 됨


이제 자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