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그래서 내가 쓰기로 햇슴



  잠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 나가듯 뛰쳐나가고, 상처투성이로 돌아와, 난로에 불도 피워주지 않는 술집에 앉아 술을 단 한잔, 마신다.

  

  내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못해 나는 나를 용병이라 칭했다. 그마저도 다른 이들에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는 일이라곤 잡일뿐이었다.

  

  보수는 내 인생의 빛든 날 만큼이나 드물었다. 물론 팔 한 짝 없는 잡일꾼에겐 그게 마땅한 처사였고, 나 역시도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목가적으로 보내는 쓰레기 같은 나날에서 가장 중요한 술조차 마시지 못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씹."

  

  더 암울한 건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한다는 사실.

  

  괜히 욱해서 필요도 없는 부상을 입은 건 전적으로 내 탓이었고, 하루도 술 생각을 거르지 않아 이 개 같은 감정을 하소연하지도 못하게 만든 것 역시 나였다.

  

  죽는 게 나은 인생이다. 바람을 막기는커녕 천장에서 물이나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인 판자 더미에 아늑해하며, 덮은 천 조각에 벌레가 알을 까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만 하고 매일 새로운 악취로 고통스럽게 하는 시궁창에서 살 바에야.

  

  마침 쳐들어온 비릿한 바람이 그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내가 내일까지 살아있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야."

  

  "여기 빌붙는 놈 중 사람이라 불릴 놈은 없으니까 다물고 잠이나 자!"

  

  무기력하게 읊조린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열화와 같은 성원이 돌아왔다. 죽을 용기도 없는 놈이 질리지도 않고 하는 말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리고 그런 점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든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한 말에도 발작하듯 달려드는 점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지 못해 살아있다는 점이. 나까지도.

  

  이들 중에선 내가 나은 편이라 같잖은 우월감을 찾아보려 노력하는 나도. 하나같이 비참할 뿐이다.

  

  "하."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어 다만 머리를 눕혔다. 비바람도 막지 못하는 판자 더미는 용케도 새어드는 별빛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막아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진짜 뭣 같아서."

  

  뒷말은 간신히 삼켰다. 쓸모도 없는 외팔이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의인한테 밉보여봐야 내 손해일 뿐이니.

  

  말실수 하나로 몇 주 동안 술은커녕 가벼운 식사조차 할 수 없었던 지옥 같은 나날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뒷말을 삼킨 것도 생존본능이 일으킨 기적이리라.

  

  외팔이에게 주어지는 일은 드물다. 열에 아홉은 목숨이 대가고, 하나는 외팔이가 아니라 외손가락도 할 수 있는 일처럼 쉬운 일이다. 즉, 다른 놈들이 먼저 채간다.

  

  그리고 나는 어젯밤 술을 마시지 못해 뭉그적대면서 일어난 놈이다. 사랑을 잃은 벌은 이리도 고통스럽게 돌아온단 말인가.

  

  목숨 그 자체를 푼돈에 걸게 되고야 만 나는 뒤따라올 욕지거리를 필사적으로, 다시금 삼켰다.

  

  다행히도 이런 불평 정도는 익숙했는지, 눈앞의 남성도 한 귀로 흘려듣곤 별다른 감흥 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할 일은 고기 방패다. 돈을 받고 싶으면 살아 나오고, 죽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누워 죽어라. 다른 걸 기대한 건 아니겠고. 할 말 있나?"

  

  "…고기 방패가 필요한 일이면, 대충이라도 씻게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죽을 땐 좀 단정하게 가고 싶어서."

  

  내 필사적인 변명을 듣던 남성은 귀찮은 티를 숨길 기색도 보이지 않고, 대충 품속에서 동전 두세 개를 꺼내 이쪽으로 던졌다.

  

  놓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몸을 반쯤 날려가며 주운 동전은 정말로 여관에서 물 한 바가지, 그것도 무려 뜨거운 물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안 좋은 시선 따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돈이기도 했고.

  

  "감사합니다!"

  

  물론, 나는 이 돈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몸이야 새벽 사이 내린 빗물에 대충 씻고, 가장 싼 술을 한잔 마시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리라. 벌써부터 행복감이 밀려온다.

  

  술 한잔의 취기와, 벌게 될 돈과 천둥을 쏟아내고 맑개 개인 하늘과 오늘 밤, 어쩌면 내일도 술을 어김없이 마실 수 있다는 모든 사실이 행복했다.

  

  다만 그런 행복들은 대개 언제나 너무도 멀리 있기 마련이었다. 별과 은하수가 배로는 갈 수 없는 곳에 있듯이.

  

  

  

  나는 뭐에 맞은지도 모른 채, 아니, 솔직히 맞았다는 사실도 방금 알아챘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늘을 날아 볼썽사납게 땅을 굴렀다. 굴러온 짬밥이 있어 즉사는 면했지만 더럽게 아프다.

  

  "아, 니미럴."

  

  이 짓을 몇 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비명이고 뭐고, 발악이란 건 일단 '지금 당장 죽진 않을 것 같다는 확신' 이 있는 사람이 하는 짓이란 거다.

  

  진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입에 거품을 물거나, 멀쩡하다는 듯 서 있다가 꼬꾸라지곤 했다. 그것도 아니면 괜히 아무 말이나 해보던가. 내 몸이 지금 딱 그런 상황이었다.

  

  "뭔… 뭔 상황인지도 모르고 죽나."

  

  시야 한구석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돌연 붉게 물들고 점점 흐릿함이 퍼지기 시작한다. 마치 붉은 눈이 세상을 뒤덮는 것만 같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붉은 겨울일 텐데.

  

  아픔도 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덕에 뛰고 있던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에 자신의 짝을 잃은 오른팔은 이미 감각을 잊은 지 오래였다.

  

  앞이 안 보여서일까, 오히려 머리가 깨끗한 느낌이다. 어쩌면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일지도 모르지.

  

  그 와중에서도 방금 술에서 깨서라곤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미련하지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법 아니겠는가.

  

  "사랑…? 뒤지기 전에 생각한다는 게…"

  

  흘러나온 말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번 웃었더니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 고개를 돌렸다. 

  

  이런다고 늦게 죽지도 않겠지만. 그저 죽기 싫다는 본능.

  

  그래, 속여 무엇할까. 심장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건만, 내 가슴은 여전히 삶에 대한 갈망으로 맥동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살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미 떠 있는 눈을 억지로 떴다.

  

  그곳엔 괴물이 있었다.

  

  몸져누워 있는 지금도 하늘을 볼 수 있건만, 그것은 내가 볼 수 있는 하늘보다 높았다.

  

  그것은 확실히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이들로만 채워져 있는 사람의 무리에 의해, 그것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불타고 있었다.

  

  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하늘에 피어오른 불덩이였다. 그것을 맞고 그것이 불타 괴성을 내뱉는다.

  

  '마법.'

  

  그제야 맡은 잡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났다. 한명씩 실습 나온 유망한 교회, 학회, 협회의 인재들이 무사히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고기 방패 역할이 되어주는 것. 나 이외에도 일곱의 일꾼이 있었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나까지 여덟 명을 죽여놓고 유망주라고 할 수 있을진 의문이지만, 그래도 공평하게 저 큰 것도 죽이는 걸 보면 나 때와는 사뭇 다르긴 해도 일단 재능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그나저나, 교회 소속이면서 재능이 있는 놈이 있단 건…

  

  심장이나 머리만 멀쩡하다면 살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 생각이 닿자마자 도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이나 되는 대로 해대기 시작했다. 의식만 놓지 않는다면, 어쩌면. 말 그대로, 어쩌면. 살 수 있다.

  

  "…! …"

  "…"

  

  순간이라기엔 너무 짧고, 영원이라기엔 너무 긴 시간이 지나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풀을 헤치며 걷는 바스락 소리, 사소한 언쟁을 벌이는 소리. 간절한 그것들만이 청각을 가득 채운다.

 

  두렵다. 교회라곤 한들 신앙이 부족한 놈이면? 내 모습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 그냥 지나가면? 시체에 명복을 빈다는 명목으로 치유를 해준다 한들 멀쩡히 살아 돌아가긴 힘들지 않을까? 희망이 생각에 묽어져 파묻혀간다.

 

  불현듯, 의심이 확신이 된다. 나의 삶이.

 

  "아."

 

  끝나지 않았다고.

 

  "살았다. 시발."

 

  앞으로 아침마다 교회를 향해 절과 기도를 잊지 않으리라. 고개를 들고 태양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오른손으로 태양을 감싸 주먹 쥐고, 그대로 얼굴을 쓸어 담는다.

 

  이 순간 머리에 가득한 것은 오롯이 살았다는 기쁨.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가치도 없었다. 치유마법이 완벽하지 않았던 건지 시체라 외상만 치유하고자 한 건진 몰라도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 세상이.

  

  한없이 유쾌하다.

  

  몸도, 마음도 놀랄 만큼 터무니없이 가볍다.

  

  "돈도 받으러 갈까."

  

  활기차게 지껄였지만, 예상대로 막상 일어나니 몸이 성한 데가 없어 통증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절뚝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도시를 향해 가려던 순간 한 작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저 작다고 말하자면 매정해 보이는, 소중하다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동화에 나올법한 어린아이가.

  

  햇빛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녹색 바다처럼, 어린아이는 더없이 맑은 눈빛으로 방금 죽은 괴물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동물의 존재를 모르는 극지방의 겨울과도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아이와 대비되는 검은 연기를.

  

  검게 피어나는 연기 모양의 꽃들로 둘러싸여, 그 안에서 겨울을 피워내는 어린아이. 나는 그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인간의 적으로 태어나 인간의 적이기 위해 존재하는 생물. 인간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니만큼, 행동도 생각도 인간을 닮은 생물.

  

  '마족이 왜 여기까지.'

  

  당혹스럽긴 했지만, 신경을 끄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 목숨을 살린 유망주들이 괴물을 죽인 걸 보고할 테고, 괴물의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 알게 된 집단들은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사건을 짚어가다, 그 끝에 마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엔 눈앞의 어린 마족을 토벌해 내겠지.

  

  그러니 평소라면 아무렇게나 지나갈 일이다. 뭘 해보겠다고 나서봐야 좋을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분명 뭔가 이상했다.

  

  제정신으로 할 행동은 확실히 아니다. 머리라도 세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였을까. 방금 살아난 나는, 눈앞의 살고자하는 생물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검을 허리춤에 채우고 천천히 마족에게 다가갔다. 땅을 구르기 전에 뭔 지랄이 있던 건지 손잡이와 무딘 날밖에 남아있지 않긴 했지만.

  

  허나 그 지경이 되어서도 칼은 생명을 죽일 수 있기에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그 서슬 퍼런 모습이 전부 드러나지 않더라도, 손잡이와 적당한 자세만으로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마족."

  

  어린 마족은 시체라고 생각한 인간이 말을 걸어오고 심지어 검을 쥔 채로 다가온 것이 상당히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괴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향해 손을 뻗은, 마족이 가장 무방비한 모습 그대로 고개만을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살고 싶나."

  

  가장 무력한 상황에서 닥친 인간의 물음에 어린 마족은 엷게, 그러나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어리다 한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태어나는 종족이니, 확실히 이해했으리라.

  

  "나는 널 죽이지 않겠다. 그러나 넌 결국 인간에게 죽는다. 만약 적에게 빌붙어서라도, 조금이나마 더 살고 싶다면 시체를 처리하고 따라와라.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지."

  

  잠깐 내 눈치를 살핀 마족은 악을 지르며 연기를 더 강렬히 들이마셨다. 숱하게 봐온 모습, 마족이 살기 위해 하는 추악한 발버둥이었다.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마족은 평범한 수단으론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다른 생물, 특히 인간의 시체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추출하며 생존해 나간다.

  

  아무리 하얀 피부와 옷으로 자신을 감춰봤자 시체를 먹어 치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추해 빠진 생물이다, 나처럼.

    

  그래,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의뢰비를 받고,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고.

  

  놓치고 있던 중대사를 떠올리자마자 나는 식사를 마친 어린 마족을 지나쳐 그대로 도시로 향했다. 

  

  "생김새를 바꿔라. 천애고아처럼 보이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발소리에 긴장을 거두지 않으며.




3편 더 있는데 쫘라락 올리면 도배 될까봐 시간차 두고 올리겟슮,,, 연재탭은 맞으니 봐다오,,,
오탈자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