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그래서 내가 써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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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로 목숨이라 하면 비싸야 함이 이치에 옳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람의 목숨값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아마 어떤 세상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겠지. 돈, 연고, 지위.

  

  "난 아무것도 없는데."

  

  그리고 내겐 그 셋중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높게 책정된 목숨값에 나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눈앞의 은화를 가져가길 망설였다. 그러자 눈앞의 남성은 명백히 깔보며 말했다.

  

  "많이 줘도 불만인가. 애초에 보수를 받을 것이라 상정하고 걸린 의뢰가 아니었다. 근데 뭐, 보수를 후려쳤다가 네가 선동이라도 하면 귀찮아지는 노릇이니, 그냥 가져가라."

  

  "그럼 그냥 줄 것이지 괜히 마음 뒤숭숭하게… 이거 뭐, 나 잘 때 털어가려는 거 아닌가?"

  

  괜히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아닌가 싶지만 내 입장에선 합당한 의문이었다. 잠자리가 사나우면 술도 마음놓고 못 마시니, 당연한 처사다.

  

  "버러지 하나 죽이고 치우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달아 감사를 표하며 은화를 주워 담았다. 은화 여럿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는 두 번을 했다.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예의다.

   

  "아휴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는, 그리고 제발 그러지 말아줬으면 하는 남성에게 허리를 굽히며 급히 문밖으로 나선 후, 한숨을 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공기가 더러워진다 느껴지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악취와 함께 소음이 점차 가까워진다.

  

  나름 사람 사는 곳 같이 최소한의 정리가 되어있는 통로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건물을 나서자, 빛을 볼 일이 없는 어두운 색채가 곳곳에 새 들어 살고 있었다. 구석마다 텁텁한 먼지와 재가 피어나 삼킨다.

  

  참 한결같게도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더러운 분위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 시궁창에 사는 모두는 도시의 연기를 마시는 짐승이다. 사람이기 이전에 그러하다.

   

  '사람이라.'

  

  적어도 나와 내가 데려온 것엔 처음부터 관계가 없던 말이리라. 나는 여타 동냥꾼보다 왜소한 체격을 가진 인영에게 손짓한 후. 잠깐 주위에 시선을 돌려 뭔가를 확인하는 척했다.

  

  탁, 탁.

  

  들려오는 짧은 울림의 발소리, 나는 내가 방금 자연스레 느낀 음습한 동질감에 불쾌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서서히 상념에서 멀어져갔다. 탁탁거리는 울림과 함께.

  

  

  

  탁, 탁.

  

  은화 몇 개로는 애석하게도 싸구려 검을 하나 샀다. 아무리 부러진 검으로 허세를 부려봤자 조용히 칼을 뽑으며 혀를 핥짝이는 것보다 못하니 어쩔 수 없는 투자였지만 아까운 건 사실이다. 이걸로 날린 술이 몇 잔일까.

  

  마침 뒤따라오는 발소리도 조용하기도 하고, 골목으로 들어온 겸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모르겠다. 언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셨던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은화에 너무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그게 아니리면 달고 있는 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거고.

  

  아니, 분명 충동적으로 데려온 짐 때문일 테지. 은화 탓이 아니다, 아무렴 술을 마시게 해주는 귀한 몸인데 은화 탓일 리가. 

  

  그러니 결국 이 모든 일은 왜 데려온 건지 이해도 못할 마족 때문인 거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물론이요 괜한 시비까지, 전부 마족 탓이다.

  

  너무 오래 들려오지 않은 발걸음 소리와 대뜸 느껴진 인기척에 검을 뽑아 뒤를 향해 겨눴다.

  

  "손 놓으소. 그러다 큰일납니다."

  

  "애가 불쌍해 보이면 창관에 갖다 박아야지. 몸 팔 수 있을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안 그래요? 안전하게 보내줄 테니 받는 값의 2할만 나눠주쇼."

  

  어린아이를 보자마자 눈앞의 칼은 안중에도 없이 몸값부터 흥정하려 하곤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곳에서 어린아이가 살아남아 성장하기 위해선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방법임은 틀림없으니.

  

  "금마 남자애 아닙니다. 애 데려왔다고 손으로 돈 받기 전에 손 잘리는 게 먼저입니다."

  

  구태여 시궁창의 주인을 자청한다는 놈이 지독한 남색가라는 것만 빼면, 이 마족에게도 아주 그럴싸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와, 썅. 큰일날 뻔했네. 미친것도 아니고 여기 여ㅈ… 남자 반대 성별을 왜 데려와!? 규칙 바뀐 것도 몰라?!"

  

  부리나케 달려가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맞춰 검을 집어넣고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달려간 누군가에 이어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나는 기겁하며 황급히 주변을 살피고, 조금 전까지 붙잡혀 있어 아직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마족에게 벗겨진 후드를 다시 씌웠다.

  

  영문도 모르고 그저 발버둥 치는 마족을 반사적으로 품 안에 들이는 동시에 손잡이에 손을 옮겼다. 비정상적으로 흰 머리칼을 가진 어린 마족이 청록빛 눈동자로 의뭉스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쌓아댄 건물 사이의 골목인지라 폭은 좁고 하늘은 어둡다.

  

  빛을 온몸으로 맞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는 마흔 걸음쯤.

  

  아무리 마족의 머리색과 눈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누가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어려운 조건.

  

  그 모습 그대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해지자 나는 남자가 도망가기 전 남긴 말에 반박하듯 속삭였다.

  

  "아니까 데려온 게지…"

  

  내 나름의 변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일어서 도망치듯 걸음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유와는 별개로 빨리 도착할수록 좋은 곳이니. 어리둥절해 있던 마족도 흘겨봐 눈을 마주친 것으로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이쪽을 쫓아왔다.

  

  다시 들리기 시작한 탁탁거리는 가벼운 발소리가 골목길에 깔린 스산한 정적을 한껏 부숴댔다. 그러나 한편 발소리는, 그 정적에 알게 모르게 일조하고 있던 내 생각마저도 자연스럽게 기상시켰다. 

  

  왜 이런 귀찮은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저 어린것을 버리질 못하는가?

  

  "벙어리처럼 있으라곤 했지만 너무 조용했다. 납치되는 것보단 나을 거란 마음으로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어. 알아서, 생각해서, 행동해라."

  

  언제까지고 이런 생각을 했다간 될 일도 안 되기 마련, 늦어도 모레까진 결론을 내려야 한다.

  

  

  

  기뻐하자.

  

  사색을 끝낼 기회는 예상대로라 해야 할지는 헷갈리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주 금방 찾아왔다.

  

  대뜸 살릴 목숨이 하나 늘어난 팔자가 되자 당장 오늘 밤을 안전하게 보낼 곳을 찾아야 했다. 만에 하나라도 마족을 숨겨준 걸 들키게 되면 마족은 물론이고 이쪽도 최소가 사형이니.

  

  능숙하게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족이었다면 이런 걱정은 필요 없었겠지만, 이 빌어먹을 마족은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이면 모습을 바꾸는 마법이 풀리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나는 인기척이 드물고,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들키는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달빛이 들어야 하며, 복잡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북적거리는 곳과 적당히 거리가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말해 무엇할까, 고된 작업이었다. 혼자라기라도 했다면 훨씬 쉬웠겠으나 이미 전적이 있던지라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실 시간까지 헌납한 끝에 그럭저럭 괜찮은 처를 찾았지만, 그 대가로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나는 알코올을 증오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칭송하는 것에 가까울 테지. 하지만 나조차도 알코올의 부재와 과다가 불러오는 재앙만큼은 증오한다.

  

  술은 언제나 정기적으로, 정량만큼 만인에게 보급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마족을 내버려두고 술을 마시러 갈 수도 없는 노릇. 내가 부재중일 때 마족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나는 지친 눈빛의 마족을 억지로 이끌면서 버려진 판자를 회수하여 나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낸 후, 피에 알코올을 보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기절했다.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움직였다. 정신을 차린 건 그 이후였다.

  

  기껏 찾은 밤하늘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눈이 뜨이자마자 자연스레 기척을 쫓았다. 술이 없어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의도적으로 소리를 숨긴 기색이 느껴졌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가만히 누워있는 상태로 기습을 맞받아칠 준비를 했다.

  

  전장에서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상대가 역으로 공격해 오리란 생각은 하기 쉽지 않으나 방심도 하고 있지 않겠지. 상대가 인간이건, 마족이건.

  

  마족. 격해지는 두통 때문에 가까워지는 팔을 참지 못하고 잡아챘다. 팔의 주인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뜨자 새하얀 어린아이가 보였다. 인간인가, 마족인가. 어느쪽인진 모르겠지만 살려둬야 할 이유는 없었다.

  

  품속에서 단검을 찾기 위해 왼팔을 움직이려 했다. 분명 움직이려 했고 그 생각에 망설임은 없었건만 왜인지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 당황하며 나는 내 모습을 살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흘러넘치는 기억, 내게는 왼팔이 없었다. 바야흐로 몇 년 전부터.

  

  나의 이름은 용병이다. 그외엔 필요 없다. 나는 용병이다. 그저 용병이다. 시궁창에 기생하는.

  

  눈앞의 마족을 바라봤다. 그러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 그래. 너희들은 항상 그랬지."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이 구름을 이겨내고 판자 사이로 살짝 새어 들어오는 순간, 가느다란 팔을 유감없이 한껏 쥐어짜자 고통이나 후회보다 앞서 아쉬움과 경악만이 느껴졌다. 

  

  잠시간의 그림자만을 남기고, 밤에 뜨는 달은 다시 구름 너머로 숨어들었다. 빛은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잔영은 여전히 춤추고 있었다.

  

  한순간 달빛에 비친 잔상을 머릿속으로 가늠하며 잡고 있던 팔을 꺾어 내동댕이친 뒤, 체중을 앞으로 실어 역으로 넘어트려 덮친다.

  

  팔의 굵기와 하늘의 조명이 남기고 간 잔상을 토대로 생각해 봤을 때 자신을 덮친 이는 어린 마족이었다. 자신이 데려온 마족.

  

  순수하게 인간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족. 쓰러지는 것 외에 움직임을 보이는 기색은 없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오른팔로 목을 찍어 눌러 압박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불태우는 새하얀 달이 구름을 완전히 떨쳐냈다. 마족의 머리카락과 얼굴이, 달빛 아래 창백한 빛을 내었다.

  

  하늘과 땅, 양쪽 모두에 달빛이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달은 저 찬란히 빛나는 별과 함께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고. 땅의 달은 이름 모를 판자 더미에 파묻혀 비굴하게 컥컥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어린 마족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고 한번 지껄여보라는 듯 목의 압박을 살짝 풀어주었다. 혹여 벌써 언어를 배운 건가.

  

  "어…떻게…?"

  

  "아까 그게 답이다. 내가 깰까 봐 검을 건드리지 않은 건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당연한 일이었다. 마족이 하는 행동의 정석이라고 할 만했지."


  언어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과 배우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언어뿐만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허락하는 것이다. 외부의 지식이 자신을 채우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인간을 배우는 것을 마족은 스스로 허락한다. 언제나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었기에,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을 죽이기 수월해지기에. 배움은 오염이다.

  

  갑작스레 다시금 머리가 아파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힘겹게 두통의 근원지를 찾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었다. 행복을 일상에서 찾듯, 무미건조한 날로부터 내가 잊고 있던 나를 찾았다. 

  

  나는 내 과거를 배우려 하고 있었다. 발단은 전적으로 술의 부재, 그리고 마족.

  

  저도 모르게 팔에 힘을 준 것인지 아래에서 켁켁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팔을 치우고 그새 회복된 마족의 팔을 잡아 일으켜 앉혔다. 두통이 심해져 갔다.

  

  "닥치고 있어라."

  

  고통을 잊으려 부단히 애쓰는 마족은 뒤로하고. 음주로부터 잉태된 두통에서 나는 나를 배워나갔다.

  

  나를 노려보는 마족의 눈을 조명 삼아 분노와 원망을 배우고, 자괴감과 좌절을 배웠다. 후회와 절망으로 마음을 채우고, 책임과 슬픔으로 마음을 달랬다.

  

  회한이 찾아왔다. 공포가 밀려왔다. 추억이 악몽에 잠겨 익사했다. 기억이 먹히고 먹는 것을 반복하여 고독을 낳았다.

  

  그 끝에 얻은 결론은, 그것들은 전부 필요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잊으려 했던 나로부터 나를 허락했으나 얻어낸 것들은 전부 무용한 것들이었다.

  

  또 그제야 나는 내가 마족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 참으로 불행이었다. 술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나는 그저 허송세월을 살면 그만이다, 어떻게 보면 그러기 위해 마족을 데려온 것이니.

   

  이유를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살고자 하는 마음만큼 그 이유되는 뜻에 충실했으니까. 이는 내 과거에 대한 죗값이다. 나는 과거를 잊으려 애쓰며 평소 일어나던 대로 일어나려 했다.

  

  쿠당탕―!

  

  '제기랄.'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왼팔을 받치며 일어나려던 결과는 현실적이기 그지없었다. 나는 모포로 덮어봤자 딱딱함이 가시지 않는 땅바닥에 처참하게 턱과 가슴과 무릎을 순차적으로 박았다.

  

  '술에 빠져 살다 해버린, 새삼스레 진지한 독백과 회상의 결과로다.'

  

  고작 바닥을 구른 정도로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아프다. 낮때와는 다르게 술을 마신 지 한참이 지나서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술을 못 끊는 이유는 많고도 많지만, 고통을 잊는다는 명목의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즉, 시급히 술을 마셔야 한다.

  

  아니, 슬슬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

  

  그렇게 잠시 불가피하게 바닥의 차가움에서 술의 차가움을 그리워하던 중, 불현듯 영문을 모르겠다는 지긋이 노려보는 어린 마족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 또한, 이제서야 어린 마족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화 속 겨울같이 빛나는 달빛 색의 새하얀 머리카락, 청량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동시에 활기차게 망울진 청록빛 눈동자.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버릴 것만 같이 짙고 어두운 검은색 동공,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모습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보드랍게 부풀어 오른 뺨 위로 내려앉은 연한 선홍빛 노을.

  

  아이가 가질법한 것이 아닌 무채색의 표정과 감정은 얄궂게도 그랬기에 차분한 매력을 부각시켰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그저 한결같이 달빛 아래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표정은, 사람보다 인형에 가까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생김새. 나라고 다를 바는 없어 일견,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얼굴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을법한 그 어떤 표정도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고쳐먹어야겠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원래 그런 생물이니, 당연하다고 여기기만 했다.

  

  진심으로 뚫어지길 원하며 노려보는 듯한 눈빛에 비웃음을 뱉고 흥미를 돌릴만한 질문을 꺼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답변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충 먼지를 털고 도로 편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았다. 무슨 답이 들려올진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당신을 죽이고 안전하게 도망칠 방법이 없나 생각하고 있었어."

  

  자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차범위 이내의 대답이 들려오자 진지한 고민 끝에 잠에 들기로 했다. 뭐라고 해봐야 이쪽만 손해일 뿐이니. 수면시간은 귀중하다. 술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특히.

  

  "그래, 잘살아 보지. 너나, 나나. 다만 오늘은 자둬라. 내일부턴 아침에 나가서 밤에 쉴 테니."

  

  내 나름대로 아무렇게나 내뱉은 대꾸가 단어의 짜임이 된 걸 확인하자 의식이 절로 몽롱해졌다.

  

  선선하다 못해 차가운 밤공기와 쥐 죽은 듯, 실제론 쥐는커녕 더 덩치가 큰 동물도 죽었겠다만. 과정이 어떻건 조용한 시궁창은 잠자리로 안성맞춤이었다.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땅의 달과 보내는 하룻밤은 그렇게 무탈하게 지나갔다.



오탈자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