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와 민우가 사는 집은 오래된 다세대주택이다.

복도 끝 호실에서 기침을 하면 반대편 호실에서도 들릴 정도로 방음도 되지 않는 참혹한 주거환경에서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여 10년을 지냈다.

복도에서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진다.

발소리는 뭔가 급하기라도 한 듯, 열쇠의 철컥거리며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박자로 울린다.

이내 잠시 조용해졌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지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30분이나 걸리는 그 거리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10분도 채 되지 않고 달려왔다.

그럼에도 힘들지도 않은지, 쉬지도 않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다.

민우가 매번 잘 때면 자신에게 양보하던 집에 하나뿐인 침대, 그곳에 그가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곳에 그가 있길 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부풀어있는 이불을 걷어내자, 그곳엔 오직 베개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보이지 않던 민우가, 방 안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민우가 보이지 않는다.

지우는 그 자리에 석상이 된 것처럼 선체 굳어버렸다.

숨 가쁘게 내쉬던 숨도 멈춰버렸다.

지우가 메고 있던 가방이 그녀의 어깨에서 스르르 흘러내려, 바닥에 크게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평소에 지우가 집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민우는 그녀에게 아랫집 아주머니가 싫어하신다며 조심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 말해줄 민우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민우가 다른 여자들과 대화하며 웃던 기억들이 지우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지우는 속이 뒤틀린 듯 구토감을 느꼈다.

“욱.”

지우는 변기 앞으로 달려가 속을 게워 냈다.

이때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아랫집 아주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지금 몇 시인데 이렇게 시끄럽게 해!”

철문을 치는 소리가 온 집안을 신경질적으로 울린다.

오빠가 없어지자, 모든 것이 낯설고, 날이 선 듯이 매섭게 지우를 대한다.

지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몸도 다 뉘지도 못할 좁고 차가운 화장실에 갇혀, 자기 교복 소매  끝을 쥐어짜며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민우를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려 하는 지우였지만, 가장 민우에게 의지하고 의존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지우는 이 세상에서 숨으려는 듯, 몸을 움츠리면서 나직이 “오빠, 오빠….”만을 되뇔 뿐이었다.


    민우는 꿈을 꾸고 있다.

“민우아, 지우랑 집 잘 지키고 있어.”

꿈속의 남자는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집을 나간다.

민우는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익숙한 그 남자가 이렇게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같은 꿈을 셀 수도 없을 만큼 꾸었지만, 민우는 꿈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번 이 꿈은 지우의 손을 잡고 엄마의 관이 화장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쩌면 이것은 민우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끝나지 않는 지독한 악몽일지도 몰랐다.

민우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꿈에서 깨어났다.

민우가 슬며시 눈을 뜨자 머리 위로 거대한 반구의 무언가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밝은 빛이 일식이 일어난 것처럼 반구의 아래 테두리를 그리며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민우는 눈앞의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민우의 손안을 가득 채우고, 이내 부들부들 떨리는 여성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흐읏…!”

민우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허겁지겁 여성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수아는 뭔가 아쉽다는 듯이 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는 수아에게서 떨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넓은 공간을 마감하고 있는 대리석 바닥,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목 가구들과 가죽 소파, 모든 것들이 민우는 살면서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민우가 깔고 앉은 털 카펫도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간지럽혔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건물 2층은 되어 보이는 높고 넓은 공간의 한 벽면을 가리고 있는 아라베스크 무늬의 태피스트리였다.

태피스트리에는 태양과 달을 중심으로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민우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 그 거대한 예술품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수아가 민우에게 말을 걸고서야 민우는 제정신을 차리고 수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우는 수아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게 되었다.

“죄, 죄송합니다……”

수아도 민우의 눈빛에서 아직도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역시 나 같은 여자는 무서워하겠지.’

수아는 한숨을 쉬었다.

“뭐가요?”

“예?”

“뭐가 미안하냐고요.”

“가, 가슴……”

민우는 부끄러운지 말끝을 흐렸다.

그런 민우를 보고 수아는 민우가 귀엽게 느껴졌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민우의 몸을 훑어보던 수아의 눈에 더러워진 옷들과 상처들이 보였다.

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민우에게 다가갔다.

민우는 수아를 피하려고 했지만, 수아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끌려갔다.

“상처 치료해야 하니까, 씻고 나와요.”

수아는 통 하나를 가리켰다.

“입고 있는 옷도 더러우니까 다 저기에 넣고, 씻고 나서 목욕가운으로 입고 나오면 돼요. 그리고 저기가 샤워부스. 안에 있는 건 다 써도 돼요. 대학생이니까 이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죠?”

민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는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는 욕실을 나갔다.

민우는 욕실을 둘러보았다.

욕실은 민우가 사는 곳보다 넓고 밝았다.

욕조가 있는 넓은 욕실에,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딸린 형태였다.

이 모든 것이 민우가 집에서 보던 노랗고 곰팡이 핀 줄눈 타일로 뒤덮인 화장실이 아닌, 매끈한 대리석으로 마치 하나처럼 틈새가 보이지 않게 마감된 욕실이었다.

 민우는 화장실도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욕실에 들어서고야 알았다.

민우는 옷을 벗어 통에 넣었다.

거울에 생채기투성이인 민우의 온몸이 비춰 보인다.

민우는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뭘 눌러야 물이 나오는 거지?”

민우는 수도꼭지 대신 버튼이 있는 걸 보고, 수아를 불러야 하나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던 수아의 눈빛을 떠올리곤 몸서리친다.

“이건가…?”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따뜻한 물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으앗!”

민우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물의 따뜻함에 몸을 맡겼다.

물이 상처가 난 곳을 지날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편안해졌다.

민우가 샤워를 마치고 부스에서 나오자, 욕조에도 물이 받아졌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민우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다.

“따뜻해….”

욕조는 민우가 들어가고도, 사람 여럿이 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넓었다.

민우는 따뜻한 물에 노곤함이 풀리는 듯했다.

이때 민우는 욕조 옆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상처투성이 얼굴에 새빨개진 눈, 터진 입술을 손으로 더듬더듬 만졌다.

모르는 남자들에게 납치당하고 구타당하다, 모르는 여자애의 집에 감금당했다.

맞다, 지우.

지우 혼자 있는 거 싫어해서 데리러 가야 하는데.

민우는 지우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넓은 욕실 안이 물방울 소리와 민우의 훌쩍거림으로 채워졌다.


   


 민우는 목욕 가운으로 갈아입고 욕실을 나왔다.

이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지라, 어설프게 묶은 끈이 위태로워 보인다.

민우는 원래 있던 거실로 돌아왔지만, 수아가 보이지 않았다.

민우는 거실을 돌아보다가 탁상 위에 올려진 자신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민우는 주위를 살펴본, 핸드폰을 집어 들어 전원을 켰다.

금 간 화면에 브랜드 로고가 뜨고 부팅이 되는 그 시간이 민우에게 천년만년 같았다.

이내 화면이 켜지자 수많은 부재중 전화 알림이 울렸다.

민우는 소리를 숨기려는 듯, 핸드폰을 품에 안고 볼륨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역시나 부재중 전화는 전부다 지우에게서 와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아서이겠지.’

민우는 지우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민우는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라면 바로 받던 지우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우는 그런 지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민우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민우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한 손에 응급 상자를 든 채 자신을 노려보는 수아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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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이 어렵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