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감각.

마치 목을 옥죄어오는 듯한.

그런 감각을 느끼면서도, 펜을 멈추지 않고 일을 이어간다.

차라리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을 늦출 수 있을 것 같아서.

"박사."

사각사각사각사각-

"박사."

사사사사사사사삭-

"..."

스르르르르륵- 휘익-

툭. 드르륵.

시원스레 날아간 펜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것을 주워온 눈앞의 *쿠란타는 이제 날 내려다보고 있다.
(쿠란타:명일방주의 말 수인 종족)

"어이."

"어이? 어이가 없네 이-"

"박사."

"아, 미안. 재밌게 본 영화가 있어서."

"마리아와 방에서 나온 건 그 일의 연장선이라 보아도 되는 건가?"

아.

망했네 이거.

"니어, 네가 블레미샤인- 그러니까, 마리아를 걱정하는 건 잘 아는데."

텁-

내 얼굴을 가려주는 마스크를 붙잡고.

휙-

그대로 던지듯 들어올린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마스크가 올라가며 같이 벗겨진 모자를 정돈해주던 니어는, 이내 귀에 속삭여온다.

"마리아는 성인이다. 충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성인이지."

어깨가 쥐어짜이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니, 진짜로 쥐어짜고 있겠지.

"그렇기에 더욱 더, 너를 지키려는 거야. 박사. 마리아의 감정을 나라고 모르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 너를 향한다는 걸 느끼니까!"

"니어!"

"내가 박사를 좋아한다. 그것으로 끝나면 되는 거야. 누구도 필요 없어.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나와 너. 그 외에는 필요없다고."

그것이 설령, 로도스의 박사라도.

또한, 카시미어의 빛의 기사라도.

내게 방해된다면 필요없어.

"슬슬, 말해주면 좋겠는데."

"으, 응...?"

"...대답을, 해달라고 하는 거다."

새빨개진 얼굴.

방금까지 날 심연으로 끌어당기던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모습.

"...니어, 너를 좋아해."

정답은 이거겠지.

아니어도 한 번은 이걸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고.

"아..."

"니어?"

"흐윽-"

운다고?

갑자기?

왜?

???

"힘들었다, 말투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거절할 수 없게 하라던가, 사소한 친절을 베풀라던가. 공부할 것도 많은데, 박사와 만날 기회도 적었고..."

1, 2, 3.

...박사는 상황을 이해했다!

"설마, 하루 종일 한 행동들이 전부... 고백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훌쩍거리던 니어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응."

"골때리네..."

무서웠다.

최근 나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이상해지더니, 갑자기 집착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런데, 이게 어설픈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

웃을 수 없는 농담이다.

미학 없는 촌극에, 체크메이트까지 몰렸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이다."

"나도 니어가 좋아."

부웅- 부웅- 부웅-

이래서야 오퍼레이터 자료를 수정해야 한다.

마치 *페로 어린아이같이 꼬리를 흔들어댄다니.
(페로:명일방주의 개 수인 종족.)

"박사,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응?"

"마리아와는 무엇을 했지?"
"저번 주 일요일 오후 8시부터, 블레이즈와 술을 마시러 가서 11시에는 나왔음에도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더군. 뭘 했지?"
"최근 조피아와도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던데. 마치 무슨 일이 있어 껄끄럽다는 듯이."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