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카페에 갔을 때였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대화 소재가 떨어진 나는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 요즘 날씨 진짜 좋다. 이런 날씨만 계속됐으면 좋겠어. ”

 

 

“ 그러게, 말이야. 거리에 꽃도 많이 피었던데. 이참에 우리 벚꽃 구경 가보지 않을래? 리프 공원 둘레길이라고 알아? 거기가 벚꽃도 예쁘게 피고 풍경도 좋데. ”

 

 

“ 어 알지. 거기 커플들 많이 가더라. 공원 중앙에 삼림욕장도 있는데, 거기 바닥에 돗자리 깔고, 그 공원 근처에 맛있는 닭강정 집 있는데 그거 사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고 그러더라. 먹어보니까 맛있던데? ”

 

 

“ 그래? 그런 거까지는 몰랐는데? 왜 이렇게 잘 알아? 가본 적 있어? ”

 

 

“ 어? ”

 

 

재앙을 불러 버렸다. 사실 옛날에 전여친이랑 그 공원에 가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은 걸 말해버렸다. 지금 내 여자친구는 내 전여친의 유무를 모른다.

 

 

“ 아 아니? 가본 적 없어. 내 친구가 가봤다고 해서 아는 거야. ”

 

 

“ 근데 닭강정은 어떻게 먹어봤어? ”

 

 

“ 그 공원 근처 사는 아는 형이 사준다고 해서 먹어봤어. 사준다는데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야? ”

 

 

“ 아까는 안 가봤다며. ”

 

 

“ 어.. ”

 

 

좆됐다. 위기를 빠져나가려다 더 큰 위기를 마주해버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냥 여자친구한테 키스나 갈기고 입을 막아버릴까?

 

 

아니다. 이 방법은 저번에 썻으니까 이번에는 키스만으로는 안 끝날 거다. 거기다가 이번꺼는 전여친 문제니까 이런 1차원적인 행동으로는 상황을 무마할 수는 없을 거다.

 

 

사실대로 말하면 화내겠지? 화나면 뭘 해달라고 하려나. 저번에 화났을 때는 자기를 내 부모님께 소개 시켜 달라고 했었으니까 이번에는 설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겨야 한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단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밖에는 없는 거 같다.

 

 

“ 난 죽음을 택하겠다! ”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옆에 있던 창문으로 몸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카페에서 뛰어 내렸다.

 

 

그래도 좋은 인생이였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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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온몸이 아프다. 고통이 느껴지는 걸 보니까 난 아직 살아있나?

 

 

혹시 여기는 이 세계가 아닐까? 

 

 

드디어 그녀의 손바닥에서 벗어난 건가? 

 

 

약간의 기대와 함께 나는 혼신을 다해 눈을 떴다.

 

 

어렵사리 뜬 눈앞은 너무 눈부셨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빛이라 그런가? 눈의 초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 점차 초점이 잡히더니, 눈앞에 어떤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점점 실체화되며 어떤 형체로 변하더니.

 

 

여자친구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일어났구나? ”

 

 

아쉽게도 이 세계는 아닌듯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병원인 것 같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걸 보면 나는 온몸에 깁스를 했나 보다. 

 

 

“ 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아니 그거 하나 제대로 말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

 

 

“ 미안... 미안해... 난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

 

 

“ 대체 왜 거짓말을 한 거야? 내가 너 전여친 있었던 것도 모를까 봐? ”

 

 

“ 알고 있었어? ”

 

 

“ 응 처음부터.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었지. ”

 

 

“ 다 알고 있었구나..... ”

 

 

“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마. 그리고 거짓말도 하지 마. 헤어지자는 말 다음으로 나쁜 게 거짓말이야. 알겠어? ”

 

 

“ 정말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이번꺼는 내가 봐도 너무 무모했어. ”

 

 

“ 근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 ”

 

 

“ 뭔데? 다 말해봐. 이제 거짓말은 절대 안 할게! ”

 

 

“ 전 여자 친구랑은 어디까지 갔었어? ”

 

 

( 퇴원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 74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