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해."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해봤다. 4월 2일. 



 "...만우절 지났는데?"

 "알아."



 내 질문에 김진아는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대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가지 더 물어봤다.



 "그거 혹시 술이야?"

 "아니, 커피."



 얼굴에 붉은 홍조 따윈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맨정신에 진지했다.



 하긴 점심시간 카페에서 술을 마실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되려 내가 표정 관리가 안되기 시작했다. 당혹스럽달까, 급작스럽달까...



 한 30초 정도 최대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가장 적당한 말을 끄집어냈다.



 "...축하해?"



 말꼬리는 왜 또 올라간건지.



 진아의 눈매 끝이 움찔하더니,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소리나게 탁 내려놓고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누구냐곤 안물어보네."



 물어보고 싶은게 한 삼천개쯤 생기면, 그게 다 목구멍에서 막혀 아무것도 안나오는다는걸 오늘 처음 깨달았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것부터 천천히 물어보기로 했다.



 "진아야."

 "응."

 "우리 22살이야, 그렇지?"

 "맞아. 네 생일은 2003년 11월 2일, 난 2003년 8월 13일. 만으로 21살이지."

 "내 생일은 또 어떻게 안대."

 "난 다 알아."



 뭔가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그녀를 보자니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꾹 참고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22살에 결혼은 좀... 너무 이르지 않나?"

 "성인이 결혼하는데 뭐 문제 있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저출산 저혼인 시대에 이런 특출난 인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문제는...



 "너 주변에 남자 없잖아."



 진아의 표정이 순간 악귀처럼 변했다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차분하지만, 어딘가 굉장히 억누르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무례하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주변에 남자 한둘은 있어."

 "너네 오빠랑 아버지?"



 아, 이건 말하지 말걸.


 조금 늦었다. 쿠션 하나가 얼굴에 날아왔다.



 "다음은 이 커피잔이야. 신중하게 말해."

 "...응."



 저건 진심이었다.



 팩트라는 건 참 무서운 법이다. 그토록 예쁜 얼굴도 무시무시하게 바꿔버릴수 있으니.



 그래도 물어볼건 물어봐야지.



 "그래서, 그 결혼한다는 남자는 어떤 사람이야?"



 드디어 원하는 질문이 나왔는지, 진아는 화를 누그러뜨리고는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띵, 띵 하는 찻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뒤에 대답이 나왔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



 작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놓치기도, 빼앗기기도 싫은 사람. 그냥 내 옆에 아주, 아주 오랫동안 두고 싶은 사람이야."



 이번엔 정말로 놀랐다.



 어렸을 적부터 진아는 무언가에 대한 집착이 이상하다시피 없는 애였다.



 작게는 장난감부터, 크게는 사람에 관한 것까지.



 연락이나 모임같은건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마 나 역시 옆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우리 엄마와 진아네 어머니가 친구가 아니었다면 예외가 아니었겠지.



 어쩌면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도 있었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여자애의 유일한 소꿉친구라는... 뭐 그런거.



 그런데 지금 저 표정은, 정말로 진아가 행복하고 즐거울 때만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나조차도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보네."

 "응. 정말로. 가끔 바보같지만."



 바보같다라, 그럼 난 아니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왜 지금까지 말 안했었어? 아예 모르고 있었네."

 "네 놀란 표정을 보고 싶었거든."

 "진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언제부터였는데?"

 "꽤 됐어. 만난 기간은 14년. 결혼을 결심한 건 일주일 전."

 "엥?"



 14년?


 14년????????



 단위가 좀 많이 다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잠깐만, 14년이라-,"

 "여기 청첩장."



 내 말을 자르고 진아가 아주 고급스런 종이 한장을 나에게 건넸다.



 엉겁결에 받아 읽어봤다.







 <오랜 인연이 이제 영원한 맺음으로>


 - 저희 결혼합니다. 오세요.


 - 오시는 길 : XX시 OO구 ㅁㅁ동 XX로 302호


 - 오시는 날 : 2024년 4월 3일.







 깔끔하다 못해 딱딱한 글씨체와 내용. 진아의 필체였다.



 그런데 이거도 뭔가 이상하다.



 "내일? 내일이라고?"

 "응."

 "그리고 이 주소... 302호면... 네 집이잖아!"

 "맞아. 우리집에서 열 거야. 그리고 뒷면에 사진도 있어."



 그말을 듣자마자 그놈 면상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청첩장을 뒤집었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진아의 결혼식을 이렇게 대충 넘기려...



 어, 잠깐.



 어.







 ..................어?







 "잘 나왔지?"

 "..."

 "사진 찍느라 애좀 썼어."

 "..."



 사진 속 진아는 메마른 백합 같았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무표정의 미녀.



 건조한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있었는데....



 "...이거 나 아냐?"



 대충 가위로 오려붙힌 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사진을 봤다.



 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커피를 한번에 들이키고 잠시 먼산을 본 뒤 다시 사진을 봤다.



 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나네."

 "너야."



 누가봐도 예전에 찍은 사진을 잘라다 어설프게 붙여넣은 모습.



 아까 읽었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희 결혼합니다. 오세요.



 "이거... 설마..."

 "응."

 "아니, 그럼 그 사람이..."

 "응."

 "그럼 14년이라는 건..."

 "우리 알고 지낸 기간."



 사람이 너무 놀라면, 진짜로 정말 놀라면, 단 한글자만을 말하게 된다.




 "왜?"




 그 한글자에 모든 의문이 담겼다.



 진아는 내 질문에 한참동안이나 날 바라만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저번주 금요일 저녁에 뭐했었어?"

 "뭐? 금요일? 그날 나 밤새도록 게임했잖아. 그래서 네가 다음날에 시끄러워서 잠 못잤다고 뭐라 했었고. 그거 말곤 별일 없었어."

 "금요일 저녁 11시 29분에 경제학과 24학번 신세희가 카톡으로 너한테 고백한건 별일이 아닌가봐."

 "쿠, 쿨럭! 쿨럭!"



 사레가 거하게 걸렸다.



 분명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얼음장 같은 말이 또다시 날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매몰차게 거절은 못할망정 일부러 어디가 좋느냐고 물어보는 건 되게 징그러웠어."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주변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페 주인은 은근슬쩍 음악 소리를 낮췄다. 덕분에 건조한 진아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싫다고 했어야지."

 "아니, 내가 언제... 아니, 그걸 어떻게...?"



 간신히 내뱉은 내 질문에 그녀는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난 다 알아."



 그 말로 난 깨달았다.



 진아는 다 안다. 말 그대로, 다 안다.



 다행히 나에게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그, 그래도 거절했어! 그 애랑은 그냥 동아리 친구사이로 남기로 했다고!"

 "원하는 칭찬은 다 듣고 나서 말이지. 오빠는 상냥해서 좋아요, 저 힘들 때 옆에서 제 말도 다 들어주-,"

 "으아아악! 그만, 그만!"



 숙덕이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디선가 '쓰레기'라는 말이 들렸다.



 황급히 진아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내 손바닥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읍므으으음ㅁ므으응ㅁ응읍."



 아직 할말이 많은가 보다.



 본능적으로 말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일단 사과했다.



 약간 치켜뜬 눈썹으로 나를 본 진아는, 한결 풀린 표정으로 내 손을 입에서 잡아 떼냈다.



 "용서해줄게. 바보같을 정도로 솔직한 점도 네 장점이니까. 그리고 거절한 것도 잘했고."



 내 스스로 연애 기회를 걷어찬건 솔직히 좀 후회되긴 했다. 그건 말하지 말자.



 "하지만,"



 아직 더 남았나보다.



 "앞으로도 그런 불여시 같은 년들이 너에게 꼬리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어. 그러니 이참에 확실하게 선언해둬야 해."

 "뭘 선언하는데?"

 "네가 내 거라는거."



 낯간지러운 말에 순간 목 밑에 열기가 확 올라왔다.



 헉,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카페주인은 잔이 넘쳐흐르는것도 모른 채 우리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진아야. 그러니까... 지금 이게... 고백...인거야?"

 "아니, 청혼."



 언제나 내 생각보다 다섯 수는 앞서있는 여자가 있을 줄이야.



 그녀가 서류 한장을 더 내밀었다.



 혼인신고서였다.



 "사인해."



 정정한다. 열 수는 앞섰다.



 그리고 보통의 상식보다도 열 수 더 앞서있고.



 "진아야, 원래 이런건 서로 연애부터 하고 천천히 진행하는게 맞지 않을까?"

 "난 14년 전에 이미 내 마음을 밝혔어. 그리고 그때 너도 동의했잖아."

 "14년 전이면 우리 8살 때야! 뭐 아무것도 모를 때라고! 어린애가 뭘 알겠어?"

 "그럼 매 여름방학때마다 같이 불꽃놀이 보러 간거는?"

 "그거야 옆집에 사니까 같이 가는게 좋-,"

 "크리스마스마다 같이 놀러나간건? 내 생일날 깜짝 파티를 열어준 건? 네 생일날 같이 밤새도록 게임했던건? 시험기간마다 같이 도서관 가서 공부한건? 네가 우리 엄마한테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 내가 술취한 너를 위해 해장국을 끓여준건? 우리 둘이 찍은 사진이 2419장이 넘는건? 졸업식날 같이 하굣길을 걸으면서 같이 대학가자고 말한건?"



 속사포 같이 날아온 말에 난 아무런 말도 못했다.



 서로 진짜 시간을 많이 보냈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목이 탔는지 진아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인해. 지금."



 두 눈에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서려있었다.



 솔직히 이런 호감은 고마웠다. 나도 뭐... 진아를 그렇게까지 사심없이 대한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건, 이건 좀 아니었다.



 진도라는게 있잖는가.



 서로 설레고, 마음을 확인한 뒤 연애를 이어가다 어느 순간 결혼을 확신하는, 그런 순애보적인 진도.



 이건 그걸 한참 뛰어넘는 광기 비슷한 거였다.



 거절해야만 한다.



 거절하고, 첫 단추부터 다시 올바르게 채워야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써먹었던 가장 강력한 수를 꺼냈다.



 "일단 부모님이 허락하실지를 알아야지. 우리가 나이도 어리고, 아직 준비도 안됐는데-,"

 "받았어."

 "...엥?"



 이번엔 휴대폰을 꺼내 어떤 음성파일을 키는 진아.



 - 안녕하세요, 어머니.

 - 어머, 진아야. 무슨일이니? 태현이는 나가고 없는데.


 익숙한 목소리. 엄마다.



 - 저 태현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우당탕,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놀란 엄마의 비명같은게 들렸다.


 진아가 볼륨을 높이자 소리가 카페 전체에 울려퍼졌다.

  


 - 허락해주세요.



 침묵이 이어졌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무턱대고 하는 저런 말을 그냥 들어줄 리가 없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뒤에 이야기를 꺼내보라고 할게 분명했다.



 - 아가, 넌 이미 우리 집안 사람이란다. 언제 말하나 한참 기다렸단다.



 "엄마!?"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진아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댔다. 쉿.



 - 그럼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 데려가렴. 우린 두팔 벌려 환영이야.

 -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제부터 저는 이 집안의 며느리입니다.

 - 어머, 듣기 좋네.



 녹음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검지손가락으로 다시 혼인신고서를 가리켰다.



 "사인."



 얇고 가늘으면서도 단호한 손가락.



 이게 장기라면 외통수고, 체스라면 체크메이트였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나는 위압감을 느낀단 말인가?



 톡, 톡 하고 서류를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졌다.



 싫진 않다. 오히려 기쁘다. 하지만,



 두렵다.



 무서워서 죽을거 같다.



 저 광기어린 애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의 발악을 해본다.



 "내, 내가 싫다고 한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비루한 자존심이라도 챙겨야했다.



 진아는 대답 대신 살며시 시선을 테이블 옆으로 돌렸다.



 거기엔 아까 빵을 먹을 때 쓰던 작고 날카로운 빵칼이 있었다.



 빵칼을 보고, 나를 본다. 그리고 다시 서류로.



 오, 맙소사.



 나에겐 자존심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한없이 나약해지는 나 자신이여.



 선택권은 이제 단 하나만 남았다.



 어쩔 수 없이 이름 석자를 적어넣기 위해 펜을 찾았다.



 "펜이..."



 처음으로 진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거려보지만, 딸려나온 손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아차."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내가 말했다.



 "나도 사인하고 싶은데 펜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네. 나중에 다시 만나서 좀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는-,"

 "저기, 실례합니다."



 굵은 목소리가 뒷편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덩치 큰 카페주인이 서 있었다.



 "아, 저희가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혹시 펜을 찾으시는가 싶어서요. 여기 빌려드릴게요."



 씨발.



 내 손에 펜이 하나 쥐어졌다.



 그리고 테이블에 커피가 두잔 더 놓여졌다. 아까 철철 흘러넘치던 커피였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두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내 두번다시 여기에 발도 붙이지 않으리라. 세상의 모든 카페가 몰락할지라도 이곳만큼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리라.



 "감사합니다. 저희 남편이 여기 커피를 참 좋아해서요."

 "어이쿠, 그거 영광이네요. 엿들으려고 한건 아니었습니다만, 두분 부부 되신거 축하드립니다. 요즘 시대에 참 낭만적이에요."



 그러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곤 살짝 윙크까지 보낸다.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소리는 순식간에 퍼져 카페 모두의 손뼉에게서 터져나왔다.



 모두의 축하 속에서,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심정으로 내 이름 석자를 아주, 아주 천천히 혼인신고서에 적어넣었다.



 최태현.



 펜을 떼자마자 진아가 내 품에 달려들었다.



 "이제 진짜로 이루어진거야. 14년의 꿈."



 건조한 백합이 만개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내 청춘과 황혼이 이제 그녀의 것이 되었다는 선언이자 선고였다.



 결국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웃고야 말았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애정이야말로 진아에게 가장 어울리는 애정이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 애는 여덟이 좋아."


 그리고 이제 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