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쎈 뱀파이어 얀순이에게서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 12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이번 화도 빌드업이라 얀데레 첨가 1도 안 돼있음

안 봐도 무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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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북부 공국들의 경계를 잇는 국경지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지만, 몰락한 땅을 관통하는 길은 그리 선호되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몰락한 땅은 숲이 우거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마차 정도는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은 천혜의 길을 다져 놓았고,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험한 푸른 산맥의 국경과, 동굴과 바다에서 튀겨져 나오는 소금물의 습도 탓에 하루가 지나면 옷이 땀에 젖은 것마냥 축축해져 버리는 오지안의 국경보다는 훨씬 쾌적하다는 나름의 이점은 있었다.


하지만 3백 년 전에 일어난 저주받을 발푸르기스의 밤,


그리고 그 밤 이후 창궐하기 시작한 마물들과, 그 마물들에 걸린 현상금 탓에 시체꽃에 홀린 파리마냥 달려든 모험가들, 그리고 그 모험가들이 몰락하고 변질된 도적들과 노상강도들까지.


몰락한 땅의 국경은 사람이 지나기 힘든 벽지(僻地)로 변하고 말았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무릎이 쑤신다는 노인의 투덜거림과 바다와 동굴의 습기 탓에 답답해 죽겠다는 아녀자의 푸념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참기 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국경 검문소는 여느 때처럼 파리만 날리었고, 이따금 주머니를 짭짤하게 채워 주는 뇌물을 먹이고 들낙거리는 밀수꾼들과 거지 꼴의 모험가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혹여나 전쟁이 터진다 하더라도, 높으신 나으리들이 어지간히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어하시는게 아닌 이상 이 국경지대로 군대를 보내는 미친 사령관은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망루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두 병사가 목격한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이. 일어나."


창을 든 병사는 마찬가지로 창을 든 채, 그 창을 기둥처럼 붙잡고 선잠을 취하고 있는 동료를 팔꿈치로 찔렀다.


"으음... 뭐야?"


"사람이야."


그제서야 병사는 눈을 비비고 국경 검문소로 접근하는 두 명의 사람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저거 뭐냐?"


그리고 얼빠진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칠색조 깃털로 장식된 모자와 깔끔한 검정색 튜닉, 잘 빠진 가죽 바지와 고급스러운 장구두를 신은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핏 보면 남자인지, 남자 옷을 입은 여자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반면 그 옆에서 붉은 외출 드레스와 장미색 페도라, 무도회에서 쓸 법한 검정 실크 마스크로 치장한 사람은,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두 개의 주머니 덕에 단번에 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의 색채만큼이나 시뻘건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고풍스러운 복장의 두 사람은 검문소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고, 병사는 보기 드문 광경에 입을 헤 벌리며 망루를 내려갔다.


'귀족? 상인?'


뭐가 됐던 이 국경지대에서 보기 드문 족속들이다. 차라리 북부 공국에서 먹잇감이 부족해 이따금 국경지대를 쑤시러 날아오는 겨울철의 만티코어가 더 자주 보이는 손님이었다.


검문소의 다른 이들도 진귀한 광경에, 또 두 사람의 외관에 집중하여 가끔 시선을 흘긋거리기는 했지만 곧 자신들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개인의 할 일에 집중했다. 누군가는 포커를 쳤고, 누군가는 근무 중의 음주를 즐겼다.


결국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망루 위에서 내려온 두 병사의 몫이 되었다.


"멈추십시오."


병사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했다.


"아! 마침내!"


검은 정장의 남자가 과장된 몸짓을 했다.


그제서야 병사는 그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며칠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군요. 이 곳이 무트로 향하는 국경 검문소가 확실하겠지요?"


"그렇소."


"아! 위대하신 솔께서 태양빛으로 우리에게 길을 내려 주셨구나!"


남자는 환희하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검문소 안에서 여유를 즐기던 병사들도 시시덕거리며 눈 앞의 화려한 남자를 구경했고, 두 명의 병사들 역시 서로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웃음을 참고 있었고, 한 명은 질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원을 밝히십시오."


질린 표정의 병사가 입을 열었고, 남자는 그제서야 기도를 멈추고 둘을 마주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검문소의 전사 분. 아이작 폰 발데마르, 인사 올리겠습니다."


남자는 예법을 차린 정중한 인사로 둘에게 허리를 숙였고, 병사는 남자의 성을 어디서 들어봤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폰 발데마르? 폰 발데마르 백작?"


"오호, 저희 당주님의 명망이 이 곳 국경에까지 닿았군요?"


"명망이랄 것 까지야."


병사는 그리 중얼거리며 코를 씰룩거렸다.


귀족 중에서도 백작 이상이 되면 기행을 벌이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은 민중에게도 익히 퍼져 있었고, 폰 발데마르 백작 역시 그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폰 발데마르 백작. 여느 사교회나 예식에도 참가하지 않고, 오직 영지에 틀어박혀 사는 괴짜 엘프.


황족인 친왕의 초대마저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성 밖으로 나오지 않는 여자였고, 영지민들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은 1년에 한 번도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라고 한다.


발데마르 영지에서 재배되는 포도,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제국에서 손꼽을 만한 진미였지만 결국 내세울 건 그게 전부였고, 가주 역시 이따금 포도주 농장의 투자에 관해 길드의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뿐, 중앙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 보기 힘들었다.


아니, 애초에 가주가 중앙 정치에 욕심이 있는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찌나 귀족 사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영부인들 사이에선 사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 정도였고, 그렇기에 폰 발데마르라고 소개한 눈앞의 이 경박한 남자에게서 씻을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백작가의 일원께서 이 곳에는 어읜 일로 오셨습니까?"


"이 곳이 에스타니아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 하여 왔지요."


"그건 맞긴 한데... 수행원 한 명 없이 몰락한 땅에 오셨단 말입니까?"


"아, 나의 용맹한 수행원들! 그들은 백전무패의 전사들이었으나, 숲 속에서 흉포한 놀들의 습격을 당하였습니다! 트롤과도 견줄 만한 그 거대한 몸집이란! 몇 명은 죽고, 살아남은 이들도 뿔뿔히 흩어졌지요. 결국 저와..."


설명을 하던 그는 옆의 여자의 손을 꼭 잡았고,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의 아내만이 이 곳에 다다를 수 있었지요."


그녀의 귀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시뻘개져 있었다.


"허어."


병사는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깔끔한 복장 위로 은은하게 흙먼지가 쌓여 있었고, 두 사람의 머리도 제법 헝클어져 있어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몸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폰 발데마르 백작은 엘프라고 들었는데."


방금 전부터 남자의 말투에 신경이 거슬린 듯한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제국의 선대 황제와, 그 선대의 황제, 그리고 그 선대의 선대와 그 선대 황제의 치세까지 목도한 분이시외다."


"그런데 당신은..."


병사는 아이작의 귀를 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엘프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연유에서 그리 생각하셨는지,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수상한 남자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격식을 차린 질문을 해 왔다.


병사는 여차하면 바로 구속할 수 있도록 허리춤의 수갑을 만지작거렸다.


귀족 사칭은 중죄 중의 중죄이고, 만약 사칭당한 귀족의 가문 귀에 들어가면 바로 그 영지의 단두대와 마주할 일이었다.


"그야, 당신 귀는 엘프 치고는 지나치게 뭉툭하지 않소. 딱 봐도 사람 귀구만."


그 말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의 창백한 피부는 붉게 물들어 갔다.


"이런 무도불순한!!!"


남자의 불호령에 두 명의 병사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목소리는 겨울철 이 검문소로 날아온 만티코어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우렁찼다.


"선대 황제와 그 선대의 황제, 그리고 그 선대의 선대의 치세부터 살아온 나를, 어찌 감히 사칭범이라 매도할 수가 있는가, 무지몽매한 종족 차별주의자 같으니!! 나는 네 증조할미가 소녀일 때, 그리고 그 할미도 소녀일 때부터 이 제국 땅에서 살아왔다!!"


"아니, 그, 진정하시고..."


"이 반지를 보아라! 어엿한 폰 발데마르 가문의 일원인 나를, 귀가 뭉툭하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우려 하다니!! 폰 발데마르의 이름을 들은 그 순간부터 그대들이 수갑을 만지작거렸다는 사실을 내 모를 것 같은가!!!"


"하이고, 나으리, 죄송합니다, 일단 고정하시지요."


웃음을 참던 병사는 이제는 난처하다는 미소로 폰 발데마르라 칭하는 남자를 달랬고, 귀 이야기를 꺼낸 동료를 원망의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그, 용서하십시오, 나으리. 요즘 귀족을 사칭하는 사칭범들이 극성을 부려서 말입니다. 혹시 나으리의 반지를 감히 저희가 검증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는 일부러 한껏 띄워주는 표현을 섞어 눈 앞의 남자에게 굽신거렸다.


"흥, 얼마든지 해 보시오! 그것으로 나의 결백과 그대들의 추례함이 증명된다면!"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그들에게 던지듯 건넸고, 병사들은 귀족들의 인장이 기록된 책을 펼쳐 하나하나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토마스, 이 병신 새끼야."


어느 한 페이지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춘 병사는,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욕지기를 뱉었다.


그 페이지에는 반지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폰 발데마르 가문의 인장과, 반지 안쪽에 새겨져 있던 황실의 문구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엘프 종족 중에서도 가끔, 인간과도 같은 뭉툭한 귀를 지니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수명은 다른 엘프들과 별 다를 바가 없으나, 마법 능력은 동족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마법 능력을 중요시하는 엘프들의 관습에서 그들의 취급은 인간 사회의 기형아와 딱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뭉툭한 귀를 가진 엘프들은 그들의 귀를 크나큰 콤플렉스로 여겨, 귀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씻을 수 없는 모욕으로 여긴다.


그런 엘프에게 병사들은 모욕을 저질렀다.


그것도 폰 발데마르 백작가의 도련님에게.


"포, 포, 폰 발데마르 가의 도련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흥!"


남자는 병사들이 굽신거리며 건네는 반지를 받고 다시 약지에 끼웠다. 병사들은 그들이 저지른 짓의 무게를 깨닫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 혹시 옆의 아가씨는 혹시..."


"내 아내에게도 무례를 표하려 하시오?"


폰 발데마르의 도련님은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 그게 아니라, 옆의 아가씨는 혹시 성함이..."


"메를린 폰 발데마르."


"호, 혹시 무슨 연유로 국경을 넘어 에스타니아로 가려 하셨는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반지를 맞춰주기 위해서요. 에스타니아에는 솜씨 좋은 보석공들이 많으니."


병사는 여자의 약지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통 반지는 결혼 전에 맞추지 않습니까?"


귀족의 표정이 순식간에 화난 미노타우르스처럼 변했다.


"토마스, 제발 좀 닥쳐! 이 머저리 새끼야!"


병사는 속삭이듯 소리치며 갑옷발로 그의 동료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갑옷 너머에서 느껴지는 찡한 기운 탓에 토마스라 하는 그의 동료는 쓰러져 다리를 부여잡았고, 병사는 죽을 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귀족을 어르고 달래었다.


"하이고, 저 놈의 말은 무시하십시오. 배운 게 워낙 없는 골 빈 놈이라 거듭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귀족은 영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진 병사를 노려보았고, 병사는 쩔쩔매며 그의 아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혹시 마스크를 벗어주실 수 있습니까?"


여자는 몸을 움찔거렸다. 갑작스런 요청에 놀란 모양이었다.


잠시 머뭇거린 여자는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걷었고, 그 속에 감춰진 미(美)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귀족 여자들은 다들 이렇게 아름다운가? 라는 응큼한 생각과 함께 병사는 여자의 외모를 찬찬히 살폈다.


'잠깐만.'


그녀의 모습에서 익숙한 기시감이 지나갔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

맑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


왠지 그녀를 수배서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번 기억을 되새긴 병사는,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를 가리키며 외쳤다.


"브, 블러디 마리...!?"


"무도불순한 것!!!"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천둥 소리가 검문소를 강타했다. 검문소 안의 비번인 병사들도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감히 나를 기형아 엘프라 부른 것도 모자라, 남의 아내를 솔도르프 투기장을 불사른 마녀라 칭하다니! 이 모욕은 결코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스릉ㅡ!


날카롭게 칼을 뽑는 소리와 함께 귀족의 검이 병사의 목을 겨누었다.


"검을 뽑아라!! 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결투를 통해 닦겠다. 네 놈의 피로 이 모욕을 씻겠노라!!"


"마리우스, 이 등신 새끼야!"


발을 짚고 있던 병사는 당한 것을 되갚아주려는 듯 있는 힘껏 동료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허리를 정확한 직각으로 숙여 귀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무지한 동료의 탓입니다, 부디 백해와 천산의 은혜를 베풀어 저희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흥."


귀족은 콧방귀를 뀌며 검을 거두었다.


"마리아 폰 발데마르께서는 일을 크게 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지. 수 차례 모욕적인 언사를 지껄였으나 결국 그대들도 제국의 병사들. 그대들의 언사를 생각하면 세 번 죽여도 아깝지 않으나 가주와 가문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이 두려워 내 칼을 거두노라!"


"가, 감사합니다!!"


용서의 뜻을 들은 두 명의 병사가 넙죽 절을 했지만, 그의 분노는 가라앉은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병사들이 사비를 털어 그들을 무트와 에스타니아로 데려가 줄 마부와 마차를 고용하고 통행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럽게 그의 아내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





다음화에 얀순이가 나가쉬의 응시 쓰면서 존나강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