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졸고 있다가, 옆에서 말 소리가 들려와서 일어났다.


"...네..?네에..?"


내가 생각해도 좀 멍청해보였지만. 어쩔 수 없지. 제대로 못 들었는데 어떻게 하라고.


"아하하...참.. 졸고 계셨네, 어쩐지 말 수가 없더라"


"...어...음...네..죄송합니다. 운전하는데, 옆에서 졸아서..."


누구는 대구서 강원도까지 쉬지도 않고 계속 차를 몰고 있는데. 졸고 있으니까. ...좀 그렇긴 해.


"...여자친구 없죠?"


"어...네. 여자친구 없어요."


"...신기한 일이네요. 얀붕씨 같은 사람이 왜 여자친구가 없지? 운동도 좋아하고, 유머도 있고...매력있게 생겨서, 여자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면 있었던 적은?"


"...없어요"


"...어? 정말..? 거짓말..?"


"진짠데"


차 안의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이 나이 먹도록 한번도 여자친구가 없었던건 그렇긴 하지... 상품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누구의 선택을 받지도 못하고 창고에 박혀 있으면. 그것 만으로도 결격 사유니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때는 남자 주제에 화장도 하고, 염색도 하고. 매일매일 예쁜옷을 입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꾸미려는 노력도 안 하게 되더라.


정확히 달걀 한판이 넘어간 순간부터는 자기 관리를 놓아버린거지. 


...동호회 사람들끼리 서핑하러 가고 그런건... 자기 관리가 아니라 그냥 노는거고.


컴퓨터 게임 한다고 자기 개발이 아닌 것처럼.


"...서핑 동호회 사람치고는...특이한 사람이네요"


나는 어디 동호회에 가서 여자나 남자 만나는 사람을 엄청 싫어한다.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뭐. 문제 될 건 없죠. 그냥...얀붕씨는 좀 특별한 사람같아요"


예전에는 여자친구가 있냐..?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말문이 턱 막혔는데. 요즘에는 그냥 무덤덤하다.


"그러는 얀순씨는 남친구가 있어요?"


"놀랍게도 없습니다!"


"...어...네"


좀, 의외네. 


인스타 팔로워가 10만은 그냥 넘길 것 같이 생겼으면서. 남자 친구가 없다니... 


생각해보니까. 나 오늘 처음 여자랑 단 둘이서 차를 타보잖아. 근데, 놀라울 정도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다.


이거 그린 라이트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해보는것도 어느정도 레벨이 비벼져야 할 수 있는거지. 이런 식으로 압도적인 격차가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조용히 입 다물고 차가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는 걸 봤다. 


...분명, 출발 할 때는 아침이었는데, 벌써 능선 너머로 태양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아니, 얀붕씨. 조수석에서 졸고 계셨잖아요. 누가 보면 하루 종일 깨있었는 줄 알겠네"


"...죄송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거 싫어해요."


"...할 말이 없네요. 커피라도 마실래요?"


"그냥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어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기지개를 켜는 얀순씨였다.


"...헨들 그거 안 잡아도 되는거에요?"


"크루즈 모드 몰라요..?"


"...뚜벅이라서"


"..."


살짝 나를 빤히 쳐다보는 얀순씨였다.


어...그렇게 쳐다보면 부담스러운데.


"...됐고, 얀붕씨. 할 말도 없는데... 이야기나 하죠. 아까는 내가 질문 했으니까, 이번에는 얀붕씨가 질문해요. 나한테 궁금한거 없어요?"


"저는 딱히 질문할게 음... 혹시...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와... 갑자기 여기서 호구조사를 한다고? 이 사람 여자친구가 없었던 이유를 알겠네."


"...아니, 그 갑자기 질문하라고 하시니까. 생각나는게... 그것밖에..."


"저는 보육원 출신이에요"


"...허..."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자동차는 이제 산 기슭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호회 사람들이 묵으려는 숙소는 꽤 깊숙한 곳에 있었는지, 네비게이션도 터지지 않았다.


사실, 휴대폰 신호가 잘 안터지거나, 네비가 좌표를 못 잡는건. 지금의 내게는 너무 사소한 문제였다.


"그렇게 좆됐다는 표정 안 지어도 되는데. 이제는 익숙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제가 보육원 출신이라고 말을 하는건. 얀붕씨가 지금까지 모쏠로 살았다는 걸 익숙하게 말 하는 것처럼."


얀순씨가 기분 나쁘게 생각은 안 해서, 다행인가..?


"예전에는 좀 상처 받고 그랬었거든요? 얘는 고아니까, 막 건드려도 되겠거니. 그런 생각으로 달라붙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고... 이제는 없지만."


"어... 그렇군요. 그런데, 좀 성공하신 것 같아요. 아, 잠시만...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알지, 알아요. 고아인데 왜 이렇게 잘 나가냐. 그렇게 말 하는 사람들도 한 트럭이라서... 음...대한민국은 얀붕씨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좋은 나라라서. 머리만 좋으면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걸로 노력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런 의미죠. 물론...! 좀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보육원 출신 아동들은 그런게 있거든요?"


이런 곳에 숙소가 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차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소유욕이라고 하죠...? 보육원에는 만성적으로 물건이 부족해요. 당연한게 애들이 50명 정도 살고 있는데. 걔네들이 전부 다 컴퓨터를 원하고 휴대폰을 원하고 예쁜 옷을 원하는데. 그걸 일일이 다 맞춰주기는 힘들죠. 무슨 북유럽도 아니고. 당연히 그렇기에 한정적인 자원을 차지하려고 매일 박터지게 싸웠고, 싸웠어요. 이제는 그럴 일이 없기는 하지만... 아직도 제 가슴에는 그때의 투쟁심. 본능적인 소유욕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진짜 개처럼 열심히 일해서 좋은 차도 사고... 뭐 성공했죠"


어두운 달빛 아래, 산장이 한 채 있었다.


"...문은 열려져 있을거에요. 나는 주차하고 정리할게 있어서, 얀붕씨 먼저 들어가 계세요"


"...다른분들은 안 오셨네요?"


"그러게요. 조금 일찍 왔나보네. 안 쉬고 왔으니까."


얀순씨는 정리할 게 있다고 해서, 먼저 들어갔다.


산장은 호화스러웠다.


왜, 그...미국식 산장이라고 해야하나...? 벽난로도 있고, 사슴 박제도 있고. 영화 같은거 보면 나오는 그런 산장.


좀 신기해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근데, 그럴 수 있잖아. 어차피 여기서 며칠 묵을 건데. 


...지하실도 있네..?


좀...신기해서 아래로 내려가봤다.


지상은 따뜻했는데, 아래는 축축하고...살짝 피 비린내가 났다.


지하에는 뭐가 있을까?


벽면을 더듬더듬 만져서 전등을 켰다.


-파팟...!


하는 소리와 함게 낡은 전구 하나가 켜졌고.


그 아래에는 피투성이가 된 여자 한명이 앉아 있었다.


얀진씨. 그래, 몇번 나랑 같이 서핑보드를 같이 탔던 사이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는게 힘들더라구요"


...? 


그리고 얀순씨는 피범벅이 된 얀진씨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 옆에 두고. 관리 하려고요"


"...? 누구를..?"


"얀붕씨요"


"...누구로부터..?"


"...당연히 다른 여자들로부터죠! 얀붕씨! 아니, 내가 말했잖아. 왜, 당신 같은 남자 주위로 여자가 없는지...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 물건을 다른 사람한테 뺐긴적이 한 번도 없었어. 전부 다 대가리를 반으로 쪼갰으면 쪼갰지. ...나도 알아요. 나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싶었는데, 당신 하는거 보니까. 내가 늙어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일은 안 생길 것 같더라고. 너는 그냥 내가 강제로 입을 벌려서, 떠먹여줘야 되는 사람이야"


"....지금까지 그랬던거야...? 당신이 동호회에 들어온 몇년동안... 아무 소식 없이 사라진 사람들."


"이런건 잘 받아먹네"


"...나...나는..."


"...이런 저런 말 할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얀붕씨는 납치된거야. 당신이 내 사랑을 받아주기 전까지. 너는 이 지하실에서 못 빠져나가"


....이런 식으로 크레이지 싸이코 얀데레가 얀붕이 조교하는 소설 없음...?


나 숟가락 챙겨놨어... 빨리 퍼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