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어?"


오늘도 내 곁에서 잔뜩 재잘거리는 그녀.


"그래서 그때 내가 느비예트한테 뭐라고 말했냐면♪"


느비예트의 부탁으로 분명히 나는 물의 신이 이별을 받아들일 때까지만 함께 하기로 약속했을 터.


하지만 그런 뒷사실을 알 리가 없던 푸리나.


"아, 벌써 차 다 마셨구나. 내 꺼 마셔!"


내가 다름아닌 그녀를 위해 폰타인에 남아주기로 한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헤헤... 이러면 간접 키스려나?"


푸리나는 귀찮은 타입의 여자.


아침마다 내 방에 쳐들어와서 아침 식사를 하자고 식당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틈이 날 때마다 이렇게 같이 티타임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푸리나의 망상에서 우러나온 진짜 행동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내가 그녀의 애인이라는 된다는 양, 마을에 나갈 때면 내게 팔짱을 끼면서


지나던 행인들로부터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베시시 웃어댄다.


나는 푸리나의 연인이 아닌데.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던 입장에서 푸리나가 하는 언행들이 전부 귀찮게 느껴졌다.


"뭐야뭐야♪왜 아까부터 대답이 없어? 설마 이 슈퍼스타 푸리나님의 매력을 깨닫고 반성하는 중인 걸까~?"


언제까지나 나를 바라보는 연청색 눈동자.


청한 그것은 내 모습을 제 것에 담고 있었기에.


"그만두자 푸리나."


나는 푸리나의 그 눈동자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이제는 연심이 아니라 의존에 가까워진 여신의 그릇된 집착이었으니까.


"너... 지금 무슨 소리야?"


"문자 그대로야 푸리나. 나는 너한테 질렸어. 너한테 맞춰주는 것도, 이제는 못 해 먹겠어."


이제는 내가 푸리나를 떨쳐낼 시간이었다.


"그, 그게 무슨... 아, 그, 그러니까, 미, 미안... 나 많이 시끄러웠어? 말을 너무 많이 했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푸리나."


"..그럼 대체...!"


성대를 덜덜 떨면서, 내게 손을 뻗쳐오는 푸리나의 팔목을 턱 붙잡고 나지막하게 고한다.


"나는 푸리나를 사랑해 줄 수 없어."


".......아니야."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대 위 슈퍼스타의 완벽해야 할 가면이, 나의 진솔한 고백 때문에.


"언제는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일이 끝난 이후도 내 곁에 남아줬잖아...?"


"느비예트의 부탁 때문이었어. 게다가 내가 비록 네 편이 되어줬어도 그건 연인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었는걸."


"아니.. 아니야... 너는 나의..."


"여기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내 옷깃을 붙들던 푸리나를 마저 떨쳐내자 물에 젖은 걸레처럼 푸리나가 힘없이 철퍼덕 쓰러졌다.


"흐깃, 흐읏... 나 넘어졌잖아? 어서 평소처럼 따뜻하게 안아줘...?"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마음속 갖던 짐을 내려놓은 후련함.


내가 푸리나를 내려다보자 울먹이며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부디 나한테 마지막 기회를 줘..."


...그래, 어쩌면 근며칠은 내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푸리나한테 미안해서라도 죄책감으로 악몽을 꿀지도 모르겠지.


그렇게 나는 푸리나를 뒤로 하려 했다.


"기회를 달라니까... 제발."


푸리나의 원소가, 내 발을 묶어버렸으니까.


•••


그렇게 푸리나한테 붙잡힌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멜모니아 궁에서 푸리나가 갖다주는 밥만 먹는 것은 물론 화장실까지 통제당하는 삶을 살았다.


푸리나는 밤마다는 알몸으로 내게 안겨 와 어설프게 사랑을 구했다.


그것이 그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있잖아, 곧 있을 결혼식 말인데... 느비예트가 주례를 봐준다고 약속했다? 이 푸리나님이 부탁하느라 아주 혼났다구?"


느비예트가 나를 구해주지는 않았다. 푸리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예 푸리나와 결혼을 올리라고 직접 주례까지 봐주었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거 알지? 후훗, 영원히 함께해♪ "


그렇게 결혼식까지 올리고 나니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상을 통제받으며 살 바엔 푸리나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왜곡된 자유를 찾기로 했다.


"푸리나 미안해.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심한 짓을 했는지..."


그녀를 잔뜩 사랑해 준 밤, 필로우 토크 중 푸리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 앞으로 펼쳐진 너와 나의 테아트르에 불우한 뒷배경은 필요 없으니까."


푸리나는 피식 웃고 내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이야... 슬슬 나한테 반해주지 않으면 같이 '포기'해버릴까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왕자님은 공주님께 반하는 법! 우리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이후 너와 나의 관계는 달라졌지."


"마침내 내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게 된 거야..."



과연. 그럼에도 이것은 그녀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닐까. 그것은 나를 그녀의 사랑으로 덮어버릴 정도의 집착이었다.

확실한 것은, 내가 이제 푸리나의 것이 되었다는 상황.


"키스해주겠어? 내가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는 푸리나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야겠지.


머리가 아프다. 내게 안겨오는 푸리나의 턱을 살포시 잡고, 그대로 입술을 맞추었다.


이것도 그녀가 가르쳐 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