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라고 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빨리 일어나!”


“아…좀만 더…아직 8시잖아…”


“씻고, 아침먹고. 빨리이~”


여자가 이불을 끌어올리는 남자를 다시 잡아당긴다.


한참을 바쁘긴 했지, 

3월이면 어느 직장, 어느 회사든 바쁘다.


누군가는 결산 신고를

누군가는 새 학기의 준비와 적응을

누군가는 새로운 계절에 맞춘 신상품 개발을

일교차가 커지느라 환자도 많고, 병원도 붐빈다.


같은 집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부부도

한 달을 넘게 얼굴도 잘 보지 못했다.


집으로 귀가하면 누군가는 아직 돌아오지도 못했고

아니면 너무 늦어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에 단 5분이라도 잠을 더 자기 위해서 꼼지락거렸고

씻는둥 마는중, 세수와 양치만 겨우 하고 집을 나선다.


밤에도 ‘잘 다녀왔어?’ 라고 물어보지 못하고

아침에도 ‘잘 다녀와’라고 말하지 못한다.


드디어 그런 생활과 안녕이다!

마감이든 개장이든 개학이든 러시아워든

그 모든것에서 해방된 4월이 되었다!


날씨가 춥다며 벚꽃축제가 열리네 마네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벚꽃이 만개하고. 하늘이 높고 파랗다.

연례 행사처럼 찾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대기를 덮치지만

어느 누구도 여자의 주말을 막을 수 없다.


“흐아아아암….알았어…..알았다니까…..으악!”


결국 이불을 가지고 줄다리길 하다가.

남자가 그대로 침대에서 뒹굴러 떨어진다.


“꼴 좋다. 흐흐. 얼른 씻구 나와”


잘도 결혼했다.

전형적인 인도어 집돌이 남자와

전형적인 아웃도어 밖순이 여자.


캠핑을 가더라도

안락의자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남자.

다른 집 텐트 모양과 나무 생김새까지 모두 보아야하는 여자.


쇼핑을 가더라도

생필품 코너만 둘러보고 계산대로 향하는 남자와

건물 안 모든 매장을 전부 찔러보고 입어봐야하는 여자.


집안에 있더라도

앉아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TV 채널을 하나씩 돌려보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무릎에 누워서 가보고싶은 행선지를 찾아보는 여자.


신년부터 점점 바빠져서는

3개월을 개고생을 하고

겨우 찾아온 황금같은 주말이다.

허투루 보낼 수야 없지!


“벚꽃 지기 전에 꽃구경부터 가보자”


“사람 많을걸…”


“어딜 가나 사람 천지라구. 어차피 인파에 치이는거, 가보고 싶은데 갈거야”


“알았어. 가보자.”


샤워도 했고, 양치도 했다.

아침은 먹지 않았고, 나가서 브런치를 먹을 요량이다.


꽃구경을 가려면 돗자리도 챙겨야 하고

마스크도 여유분까지 두개 더 챙기고

여자는 벚꽃에 뒤지지 않을 화사한 봄나들이 옷과 모자를 챙기고

남자는 언제나 입는 단색 가디건을 입는다.


나가는 길에 남자의 잠을 깨울 메가사이즈 커피를 하나 주문해야하고

시키는 김에 여자는…음…딸기? 달달한 딸기요거트가 당긴다.


“다 챙겼지? 불도 다 껏고?”


남자는 아무도 없는 방안을 살펴본다.

가스불도 잠궜고, 안쓰는 멀티탭도 뽑아놨다.

화장실 문은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열어놓았고

로봇청소기 버튼을 마지막으로 누른다.


벌써 신발을 신고 서있는 여자가 폴짝폴짝 뛴다.


“빨리이~ 나가자~~ 늦겠다아~~”


“알았어. 가자. 가자.”

남자도 여자도 피크닉 물품을 한가득 챙겨들고서

도어락을 제낀다.


문을 열고, 주말 외출을 시작한다.


—-------


“토요일이라고 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빨리 일어나!”


“으…어?”


남자가 침대에서 눈을 뜬다.


분명 현관문을 열고 여자와 주말 외출을 나서려 했다.


“씻고, 아침먹고. 빨리이~”


“오늘…무슨 요일이지?”


“토요일이지. 아직도 잠 덜깼어?”


“아..아냐..아냐. 일어날게”


남자는 이불 밖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온다.

굴러떨어지며 부딫친 뒤통수를 만져보지만 혹 하나 없다.


꿈은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이다.


“꿈자리 하고는”


“얼른 나가자아~. 벚꽃 다 지겠다!”


여자는 침대에서 느긋하게 일어나는 남자를 보챈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한다.

아침식사는 나가서 브런치로 적당히 때울 예정이다.

돗자리를 챙기고, 마스크를 챙긴다.


불도 모두 껐고, 안쓰는 콘센트도 뽑아놨다.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고, 현관 문 앞에 선다.


“안나가고 뭐해?”

여자가 현관문을 막고 선 남자를 바라본다.


“그냥.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남자는 도어락을 해제하고, 아파트 복도를 바라본다.

딱 꿈이 이쯤에서 깼는데.

남자는 생생한 꿈자리를 떠올리며 한발짝 내딛는다.


—----


“토요일이라고 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빨리 일어나!”


“어…어? 어?...어?”


여자가 남자의 이불을 잡아당긴다.

남자는 그대로, 잠옷바람으로 침대에 걸터 앉는다.


“씻고, 아침먹고, 빨리이~~”


“벚꽃구경. 가야지…”


“맞아!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남자는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다.


씻지도 않고, 양치도 하지 않고, 돗자리도 챙기지 않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방 안에 등이며 콘센트며 모두 내버려두고

로봇청소기도 켜지 않은채로


맨발로 현관문을 연다.


아파트 복도가 보인다.


“뭐해? 무슨 일 있어?”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하던 여자가 현관 앞 남자를 바라본다.


“아니. 그냥…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라고 말하려 그랬다.


꿈이 워낙에 생생했고

요즘 아내외 외출은 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도 못했고

일이며 생활이며 치어선 3개월동안 정신이 몰릴대로 몰렸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


“토요일이라고..어? 일어났어?”


“응. 일어났어…”


“앉아서 뭐해?”


“그냥…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어디 몸 안좋아?”


“그런가봐. 영…이상하네”


“오늘은 나가지 말고 집에 있을까?”


“그게 좋겠어. 미안해. 벚꽃구경 가고 싶었을텐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꿈인가?

꿈이 아닌가?

호접지몽도 이보다 기묘하지는 않다.


현관 문 밖에 단 한걸음만이라도 나서면 그 즉시 침대에서 눈을 뜬다.

핸드폰을 확인해도 시간이며 날짜까지 변하지 않는다.


“얼굴 파란거 봐. 무슨 꿈이었는데 그래?”


“그냥… 내가 현관만 나서면, 집으로 되돌아오는 꿈”


“그냥 나가기 싫으면 싫다고 해라. 흥”


“아냐! 그런게 아니라…”


토라진 아내를 뒤에서 꼭 껴안는다.


“뭐, 용서해줄게.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고

 대신 내일은 꼭 나가는거다?”


“그러자. 오늘은 음식도 하지말고, 전부 배달시키자.

 먹고싶은거 있어?”


현관 밖으로 발만 내딛지 않으면 된다.

음식을 받을 때도 조심히 받으면 된다.

택배 시킨것도 없고, 급작스럽게 불이 나거나 지진이라도 날 일도 없다.


요즘 피곤해서 꿈이 생생하고 뒤숭숭한 것이고

정신머리를 추스르고, 잘 쉬면 나을 것이다.


아내 말대로 애지간히 밖에 나가기 싫나보다.

내일은 꼭, 아내의 의견에 따라 벚꽃구경이라도 가자.


시 외곽으로 가도 좋고

멀더라도, 여의도 한강공원에 미친척 하고 가보기도 하자.


“...있어”


“뭔데 뭔데. 돈까스? 피자? 치킨? 햄버거? 중국집?”


남자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배달음식들을 읊는다.


“소시지”


여자는 남자를 침대로 밀친다.



“배달이요~”


“네에~ 금방 가요”


우당탕탕, 남자가 옷가지를 챙겨입는다.

아침도 아니고 브런치도 한참이 지나서

2시에 첫 끼니로 점심을 먹는다.


현관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음식만 받는다.


설거지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으니

맨손으로도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시켰다.


피자나 햄버거처럼 손에 기름기도 묻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는 사장이 만든 프랜차이즈인데

소스 맛이 참 악마적이다. 


“밥 왔어?”


한 낮에 여자가 나이트 웨어만 걸치고서 침실을 나온다.

집에서나 입지, 저런 차림으론 분리수거도 버리러 나가지 못한다.


“손씻고 와. 당신은 베이컨 들어간거지?”


“응. 콜라는?”


“같이 시켰어”


소파에 앉아서, 어깨를 서로 기대고

샌드위치를 먹고 콜라를 마신다.


TV에선 주말 예능이 한창이고

그와중에도 여자는 핸드폰으로 쇼츠를 본다.


배덕적인 주말의 한 때다.

이보다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는 있어도

이보다 느긋하고 나른하고 자극적이게 보내긴 힘들다.


“콜라”


“여기”


“아~”


고개는 남자의 어깨에 기댄채로

시선은 TV와 스마트폰만 왔다갔다 하면서

한 손은 샌드위치를 들고,

다른 손으론 스마트폰을 만지느라


남자가 입으로 빨대를 가져다줘야 겨우 음료를 마신다.

나이트웨어가 가려주지 못하는 하반신에 샌드위치 소스가 떨어진다.


“아. 흘렸다. 닦아줘”


남자가 허벅지에 묻은 소스를 물티슈로 닦아준다.

겸사겸사, 여자의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도 닦아낸다.


“애냐”


“지도 입가에 소스 다묻혀놓고선”


여자도 남자의 입가를 손으로 훔친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핥는다.


참으로 퇴폐적이고 문란하면서 보잘것 없다.

샌드위치가 담긴 봉투를 거실 식탁위에 널부러뜨리고 치우지도 않는다.


TV를 보다가, 입을 맞추고, 

다시 쇼츠를 보다가, 2차전에 돌입한다.



축축한 감촉과 갈증에 눈을 뜬다.

남자가 핸드폰을 바라본다. 시간은 일요일 아침 6시를 가리킨다.


나가기전에 이불 빨래를 돌려놔야겠구만…


“눈부셔어…추워어~”


여자가 이불을 끌어올려 핸드폰 째로 남자를 덮어버린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서 다시 꿈나라로 보낸다.


어제 꿈자리 한 번 뒤숭숭했다.

무사히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고 

이 감촉과 감정은 분명 꿈이 아니다.


집돌이 남자도 좀이 쑤신다.

아내와 약속도 지켜야 하고, 황사먼지로 가득찬 바깥공기도 한 번 마셔야겠다.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남자도 눈을 감고 여운에 빠진다.


—-


“마스크”


“챙겼어”


“돗자리”


“챙겼어”


“보온병”


“커피 타놨어”


“소등”


“했어”


“옷”


“이뻐, 잘어울려”


“나”


“사랑해”


“나가아아아자!”


여자가 연신 남자를 현관쪽으로 밀친다.

남자도 여자도 피크닉 물품을 양손에 한 가득 짊어지고

배와 옆구리로 도어락을 풀어서 밀친다.


일부러 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자에게 미리 언지는 줘야지


“술은 조금만 마셔야…”



“토요일이라고 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빨리 일어나!”


“....하….진짜 뭔데”


“지금 나한테 짜증내는거야?”


“아..아냐. 그…있잖아.”


아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아무래도 자신이 미친것 같다고?

광장공포증이라도 걸렸는지, 문 밖만 나서면 토요일 아침이 된다고?

이제와서 초능력이라도 생겼는지 시공간을 넘나든다고?


월요일이 되면 정신과부터 가보자 그럴거고

그러면 문 밖을 나서자마자 다시 토요일 침대 위로 되돌아올 것이다.


자신이 지금 꿈속의 나비인지

이게 지금 현실은 맞는건지

실은 금요일날 회사에서 쓰러지고

중환자실에 식물인간마냥 누워있는게 현실이고

이 모든 상황이 상상이고 망상인건 아닐지


현실과 상상과 공상과 망상이 뒤섞여서 가늠이 가지 않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오늘은 나가지 말고 집에 있을까?”


여자가 안쓰러운 기색으로 남자를 살핀다.


“여보… 그…미안. 아마. 죽진 않을거니까.”


남자는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그대로 안아든다.


베란다 창문을 연다.

아파트 단지에도 만개한 벚꽃이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저 멀리 지평선엔 누가 보아도 노란색 모래바람이 몰아친다.


“뭐해? 이불을 왜? 빨지도 않은걸 널려고?”


여자가 베란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남자를 바라본다.


“나중에… 다 설명할테니까. 미안”


8층.

TV에서 5층까지는 안전하다 그랬다.


애매한 높이다.

무슨 김성모 만화도 아니고

머리와 상체를 둘둘 이불로 감싸고

남자는 그대로 허공에 몸을 내던진다.


바이킹을 탈 때 처럼, 무중력의 간질간질함이 배 속을 덮친다.




“허억...허억…허억...”



침대 위에서 눈을 뜬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내가 깨울때 마냥 해가 중천에 떠있지 않다.

새벽의 어두운 어둠이 방 전체를 감싼다.

왼 팔에 무게감과 압박감이 있다.

꼼지락 꼼지락, 조금씩 움직여보니, 아내의 머리카락이 만져진다.

그대로 한 번 쓰다듬는다.


“으음…왜에…”


“아냐. 더 자”


남자는 남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붕대를 감거나, 깨지거나, 아픈 곳은 없다.

병원 침대도 아니다.


핸드폰을 들어서, 날짜를 확인한다.


[토요일 05:11]


아직도 주말을 벗어나지 못했다.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른다.

뛰어내린 감촉도 현실이고

아내와 빈둥빈둥 보내던 주말도 현실이고

부산스럽게 외출줄비를 하던 시간도 현실이다.


나가질 못한다.

집 안에만 있으면 분명 시간이 가는데

전용면적 84m^2를 벗어나면 도로 제자리다.


이대로 집 안에서 가만히 있다보면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출근은 어떡하지?


미친놈아, 이 상황에서도 출근 걱정이나 하다니

생신지 꿈인지 뭔지 구분도 가지않는 판국에

노예근성이 투철하다 못해 남다르다.


“여보.”


“왜에… 더 자라며어…”


“우리, 주말에 나가지 말고 이러고 있자”


“우웅…”


“알았지?”


“모올라… 자고 일어나서 얘기해”


여자는 팔을 뻗어서, 남자의 입을 막는다.



남자는 분명 그저께 점심에 먹었던 샌드위치를 아침나절부터 배달시켜 먹는다.


TV도 틀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아내는 남자에게 기대서 핸드폰만 본다.


이대로 이틀 연속 집안에 있으면,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월요일이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자신이 제정신이긴 한거고

매 번의 주말이 반복되는게 맞긴 한건가?


인셉션마냥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꿈 즈음 되려나?


샌드위치를 한 입 더 베어문다.

식빵의 거친 질감이 느껴지고

소스의 강렬한 단맛

베이컨의 짭짤한 맛

고기의 감칠맛

스크램블 에그의 비릿한 맛

모든게 현실로 다가온다.


배는 계속 고파져 오니까, 씹어서 삼킨다.



“여보.”


“왜에?”


 아내는 유튜브 쇼츠에 정신이 팔려있다.


“아무래도 나…미친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지금 제정신이긴 한데. 아무래도 미친것 같아.

 내가 하는말이 나도 이상하긴 한데…


 계속해서 주말이 반복하고

 이 집을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어.


 현관으로 나가는 순간 토요일 아침에 당신이 날 깨워.

 창문밖으로 뛰어내리니까, 토요일 아침이더라.


 지금 4번째인가 5번째 토요일인데

 월요일이 오는지도 잘 모르겠어.

 

 계속 나가려다가 실패했거든.

 당신이랑 꽃놀이 가려고…”


“당신… 많이 힘들어?”


“진짜야. 진짜라고!

 이 샌드위치만 두 번째 먹는거야.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어.

 근데 사실이야.


 지금 나도 내가 미친것 같긴 한데.

 완전히 제정신이야”


“...”


“이번 주말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보자.

 아니. 나갈 수 조차 없겠지만…”


자신이 말해도 이상하다.

나가기 싫어서 이상한 공상과학소설을 읊는 떼쟁이 남편같다.

평소에 아내가 나가자고 할 때,

군소리없이 잘 따라다니기라도 했으면 의심이라도 안받을거다.


아내가 마지못해 집에만 있던 것도 수십 번은 된다.


“알았어. 믿어줄게.”


“저...정말이야?”


“월요일 되면, 병원부터 가보자”


“어..어딜.. 가야하지? 이게 병이긴 한가?

 뭐라고 찾아봐야하지?”


“정신과부터 가보자. 나도 연차내고 같이 갈테니까”


“진짜라고!”


“믿어. 알아.

 정신이 헤까닥한게 아니라는걸 알아보러 가는거야


 어쨋든, 월요일에 밖에 나가면 만사 해결이고

 당신이 정신적으로 아픈게 아니라면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꿈 한번 이상한걸 꾸는거야”


“꿈이...아니란 말야!!!”


“알아. 알아. 말이 그렇단거지

 진정하고. 화내지 말고. 알았지?”


여자는 정신이 한계까지 몰린 남자를 토닥인다.

이럴땐, 함부로 밖으로 나가자고 해봤자 오히려 역효과다.


어르고 달래서. 안정시키는걸 최우선으로 한다.


이래가지고 병원이나 가볼 수 있으려나.



일요일 저녁

한참을 보지 않던 개그콘서트마저 시청한다.


신경증에 걸린 남편이 손톱을 물어뜯는걸 말리느라

여자가 양손을 꼭 붙잡고 있다.


남자가 이미 먹었다고 주장하는 저녁식사메뉴도 피해서 

다른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일 병원 가보면 끝날 일이니까”


“내일 나갈 수 있겠지? 못나가면 어떡하지? 또 토요일이면?

 월요일이 오긴 할까?”


“괜찮아. 어차피 나랑 있는건데. 그렇지?”


여자가 남자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애를 대하듯 볼에다 입맞춤을 한다.


첫 번째 토요일과는 다르게 여자가 오히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개그콘서트 끝났다. 이제 들어가서 자자.”


여자는 기지개를 펴며, 남자를 회유한다.


“자…자고일어나면 다시 토요일 아냐?

 어떡해? 괘..괜찮을까?”


“12시까지만… 있어볼래?”


“그..그러자! 조금만 있으면 12시니까.

 5분만 있으면… 월요일 이니까”


남자가 다시 손톱을 물어뜯으려 하기에 여자가 양 손을 잡아챈다.


소파에 앉아서, 서로가 양 손을 잡고. 300초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남들은 주말이 언제오나 기다리고만 있는데

이 남자는 빨리 월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차라리 워커홀릭같은 정신병이면 좋겠다.

퇴근을 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면 매사가 불안해져서

집에 있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거면 좋겠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걱정하지마”


남은 시간은 214초

여자가 한 손을 놓고, 천천히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요즘 일이 바쁘긴 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긴 해도

남자랑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둘이 같이 얼굴을 마주보고 식사한게 몆 달만인지 모르겠다.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도 많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크게 몰릴 만 했다.


남자가 다음에 눈을 뜨면,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남은 시간은 94초


여자의 손을 맞잡고서, 스마트폰의 시계가 다음 날 00시를 가리키길 기다린다.



“당신은 왜 소파에서 자고 있어?”


“으..어? …정말?”


남자가 소파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언제 잠이 든 거지?

항상 침대에서 일어났었는데, 지금까지와 달리 여자와 앉아있던 소파에 누워있다.


“왜그래? 어디 아파?”


“아..아냐 아냐..

 오늘..오늘 무슨요일이지? 추..출근해야지”


“당신도 차암”


드디어, 내일이 찾아온 것일까?


남자는 스마트폰을 찾아 거실 바닥을 더듬는다.

주머니에도, 손닫는 곳에도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는다.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 테이블을 살핀다.

충전기에 꼽힌 핸드폰을 켠다.


[토요일. 07:44]


“오늘 토요일인데 무슨 출근이야. 잠 덜깼어?”


“하…하하하하하하”


남자는 이제, 웃는것밖에 할 수 없다.


—--

—--

—--


정말


저어어엉말 힘들었다.


신년이 되고나서부터 어쩜 3달을 내리 몰아칠까.


겨울엔 롱패딩 대신 숏패딩을 팔아야한다며 사람을 들들 볶더만

결국 남은 재고를 처리해야한다며 봄이 다가오도록 판매처를 들쑤시고 다니게하고

그리고나선 신상 S/S를 계획해야한다며 사람을 쪼아댄다.


여자는 디자이너지, 의류판매원이 아니다.


한 번에 시안이 통과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원단, 원가, 수급문제는 타 부서와 협의해야하니 충분히 이해한다.

세상엔 수만가지 ‘빨간색’이 있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최종.최종2차.최종3차.최종4차.진짜마지막.찐막.찐찐막.ai’ 파일이 만들어진건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S/S 신상은 봄이 오기전 2월엔 매장에 전시되야하고

디자인 완성본은 1월엔 어느정도 잡혀야

공장에 보내서 초품을 받고, 양산을 한다.


지퍼면 어떻고

찍찍이면 어떻고

단추면 또 어떠한가?

여미고나면 안보이는게 똑같은데

대표란 사람이 뭐가 그리 잘났는지 자꾸만 바꾸라고 한다.


남편 얼굴이야 매일 보긴 한다.

출근 하기 전에 5분?


마감이 닥친 남편도 바쁘긴 매한가지다.


퇴근하고나면 

남편이 먼저 침대에 누워 자거나.

아내가 먼저 침대에 누워 자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설 연휴에 조상덕 잘 본 놈들은 해외여행도 간다는데

여자도 남자도 잔업과 당직을 사유로 본가에 내려가보지도 못했다.


3월만 지나가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여름 옷은 4월 말에나 준비하고

신상 SS가 빠져나가는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끝이 안나는 마감작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만우절이 되어서야 겨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여자가 집에 문을 열자, 엉망진창의 집꼬라지가 반겨준다. 남편도 보이지 않는다.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걷는데 눈물이 난다.


이 모든게 만우절 거짓말같다.


결혼도 했고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힘들고 죽겠다.


“주말이 안끝나면…좋겠네”


혼잣말로 거짓말같은 소원을 빌고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4월 첫 번째 주말을 맞이했다.


알찬 계획을 많이 세워 놓았다.

일단 꽃이 지기 전에 벚꽃놀이를 즐겨야하고.

인스타에 올라오던 맛집도 가봐야하고.

시장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옛날과자도 사먹어야한다.


남자를 어르고 보채고 달래고 밀다시피 

주말 외출을 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토요일 아침이다.


꿈인가 싶어서 다시 남편을 보채 벚꽃구경을 나섰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토요일 아침 침대 위다.


집에서 단 한발자국만 나서면 과거로 돌아온다.

일요일 24시가 되어도. 다음날은 토요일이다.


끝나지 않는 주말이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하느님인지 부처님인지 알란지 뭐시긴지

하여튼 소원이 이루어졌다!


지긋지긋한 회사에 다시는 안가봐도 되고

하루종일 남편 얼굴만 파먹고 있어도

다시 주말이 돌아온다.


월화수목금금금만 계속하다가.

토일밖에 없는 1주일이 계속된다.


배달을 아무리 시켜도, 통장잔고가 되돌아온다.

하루종일 티비에 유튜브 쇼츠만 보며 시간을 보내도. 주말이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횡설수설하는걸 잘 보듬어주었다.

아무리 문제가 없다지만.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는건 가슴이 아프다.


여자는 3번째 토요일에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는데

남자는 10번째 토요일에 무너져 내렸다.


글쎄. 항상 같은 토요일인데 숫자를 세는게 맞는지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300번째 토요일까진 꽤나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생각하는걸 포기한 남자는 외부 생활 자체를 신경쓰지 않았다. 하루종일 여자의 옆에 붙어다니면서 허리만 흔들어댔다.


토요일 아침부터 여자를 침대로 넘어뜨리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배달을 시키고

먹고 나면 다시 여자를 안고.


거실, 욕실, 침실, 베란다, 현관, 옷방.

가리지 않고 원숭이마냥 허리를 흔들었다.

피임기구도 없이 말이지.


여자는 충실한 결혼생활을 보내는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800번째 토요일을 맞이하니까 남자가 시들해졌다. 


안 선다는게 아니라!


우리 남편 그 쪽으론 짱짱하거든!


하여튼.


그러니까…

성욕이나 식욕이 없는건 아닌데, 반응이 늦다.

창 밖에 황사낀 누런 허공만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갈까?”


라고 물어봐도.

한참이나 있다가


“됐어”


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남자가 결혼생활에 으례 있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토요일도 심부름센터와 퀵서비스는 하더라.

신용카드 한도는 이틀만 지나면 원상복구다.


무작정 5성호텔 도시락을 시켜서 먹어보기도 하고.


지방의 비싼 전통주며 고급 양주도 배달을 시켜서 마셔보고


게임기를 주문해서 밤 새도록 놀아보기도 하고


그렇고 그런 물품들을 주문해다가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게 퇴폐적인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괴롭힐때면 남편의 반응이 살아나는게

재미있었다.


글쎄, 삼천번째? 이쯤부턴 세지도 않았다.

어쨌든 어느 순간의 토요일부턴

남자의 반응이 없어졌다.


느린게 아니라, 없어졌다.


건드리면 반응은 한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몸을 겹치면 허리는 흔든다.


딱 거기까지다.

소파에 앉혀놓고 있으면

화장실도 가지않고 거기서 가만히 있기만 한다.


입을 반쯤 벌리고

초점도 잃어버리고

화면이 꺼진 티비만 계속 바라본다.


여자는 그게 너무나 좋았다.

48시간동안 남편과 함께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깨와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만 번째 토요일을 맞이했을때.

여자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남편은 이제 이름을 불러도 대답조차 해주지 않는데.

혹여나 소원을 잘못 빈걸까?

 

만번 하고도 한번째 토요일 아침이 되어서

옆에서 잠들어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볼을 한 번 콕 찔러본다.

코를 두드려보고

누워있느라 떡진 머리를 쓸어넘기기도 한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오히려 정상이고

그 엿같던 이전의 시간이 잘못된거다.


자신의 얄팍한 소원으로 지금의 꿈같은 시간이 계속된다.

까딱 잘못하면 월요일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끔찍하다!


48시간씩 만 번을 넘게 남편과 꼭 붙어있었는데

하루에 반나절 이상을 떨어져서 보내야 한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쨌든, 남편은 여기서 떠날 수 없다.

지내다보면, 다시 정신을 차리겠지.


시간이야 많다.


결혼식때 분명 이야기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 까지.


늙기는 하려나?


아직도 남자가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잘 자고있는 남편의 볼을 한번 깨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