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씨에게


며칠째 연락이 안되셔서 걱정되는 마음에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네요.


전화도 문자도 못 해주실 만큼 바쁜 생활을 보내고 계시다면 조금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이 편지 보시면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그나저나 신기하지 않나요? 제가 벌써 편지를 쓸 정도로 한글이 유창해졌답니다.


집에 돌아온 이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남는 게 시간이라서 말이죠.


아직 말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다음에 볼 때 깜짝 놀라게 해드릴게요.


또 아버지 권유로 운동도 시작했어요. 그런 일을 겪었다 보니 걱정이 되시나 봐요.


힘들긴 하지만 끝까지 해내면 성취감도 느껴지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


이러다가 기성씨가 저보다 약해지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요. :)


편지 쓰는 건 조금 부끄럽네요. 처음 써봐서 잘 쓴지도 모르겠어요.(그래도 최선을 다했어요!)


어쨌든 답장 기다릴게요. 건강하세요!


스테파니가.




편지를 다 읽은 남자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풀린다.


남자의 걱정 아닌 걱정은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편지로 연상 되는 여자의 모습은 남자가 기억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여전히 밝고 명랑한 여자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편지를 읽은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여자에게 전활 걸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 두 번째 편지를 뜯었다.


남은 편지는 두 통이니 다 읽고 전화를 걸어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남자는 두 번째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비가, 소식에 없던 비가, 깊고 무거운 비가 내리는 것도 모른 채.

 



사랑하는 기성씨에게


당신과 연락이 끊긴 지 벌써 1달, 아니 2달? 3달인가? 모르겠네요.


요즘 날짜 세는 게 귀찮아서요. 오늘이 며칠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슬프더라고요.


그래도 이해하기로 했어요. 연락 한번 못 해주실 만큼 바쁘실 테니까요.


아니면 설마 일부러 제 연락을 피한다거나 다른 여자가 생기신 건 아니죠?


저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네요.


최근엔 뭘 해도 재미없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운동을 해도, 누굴 만나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아요.


모든 일정이 끝나면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당신을 생각하는 게 유일한 행복이랍니다. 


그 행복이 넘쳐 흘러서 참을 수 없게 되면 주방에서 몰래 가져온 나이프를 꺼내


스스로에게 벌을 주곤 해요. 한번 두번 손목 주변을 그을 때마다 조금씩 힘이 빠지고 


그러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 된답니다.


처음엔 조금 아팠지만 갈수록 노하우도 생기고 뒷정리도 능숙해져서


아직 아무에게도 들킨 적 없어요. 당신에게 처음 말해주는 거에요. :)


편지를 쓰며 당신을 생각하니 또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그 증거를 이 편지에 남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제 마음이 당신에게 닿길 바랄게요.


당신만을 사랑하는 스테파니가.


추신.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나만의 당신.




남자의 얼굴이 굳어진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뒤따르는 천둥소리에 남자가 간신히 정신을 붙잡는다. 


다시 살펴본 편지지의 구석엔 적혀진 대로 여자의 '사랑'이 보인다.


남자의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품은 것인가.


혹시 여자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남자의 머릿속을 때린다.


고뇌의 시간도 잠시, 남자의 시선이 세 번째 편지에 닿는다.


남자의 머릿속 수많은 감정들 중 가장 큰 두 개의 감정


두려움과 호기심에 이끌려 홀린 듯 편지 봉투를 뜯는다.


그 봉투에서 나온 물건은 편지가 아닌 작은 녹음기였다. 


예상과 다른 내용물에 당황한 것도 잠시, 남자는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찾는다.


스읍



크게 한번 숨을 들이쉬고는 버튼을 누른다.





이제 클라이막스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다음화가 마지막화가 될것같네요.

얀챈의 다른 글들을 보면서 글의 가독성이 정말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걸 인지하고 제 글들을 읽어보니 아주 개판이더군요.

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보고 배운대로 한번 개선해봤습니다. 

마음에들 드셨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