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편네야 돈을 가져오든 술을 가져오든 하라고!"


와장창-


또, 또 저 소리다. 새벽만 되면 울리는 알람같은 고함소리.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라는 작자는 술을 진탕 퍼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집안의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던지고 부순 후 잠들었고,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달래주신 후 집안을 정리하신다. 유리조각 치우는걸 도와드리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달려들던 나를 한사코 말리시던 어머니의 손에는, 늘 그러했듯이 반창고와 피멍이 가득했고, 조용히 빗자루로 유리조각을 쓸어담으시며, 언제나처럼 어린 아이에게 못볼 꼴을 계속 보여준다며 미안하다고 자책하셨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나는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엄마가 뭘 잘못했는데?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거라며...맨날 물건 집어던지고 엄마 때리는 아빠는 왜 사과 한 마디도 안하고 엄마만 매번 나한테 사과하는거야? 사과하지마 엄마...우리 나가서 살자 응?"


처음으로 어머니께 불만을 토로한 그 때,


드르륵-


"이 호로새끼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가서 산다고? 네까짓게 밖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연유에선지 일어난 아버지가 욕지거릴 내뱉으며 주먹을 올렸고, 두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퍼억-


"끄으....이 미친 여편네가..."


"나한테 손대는건 다 참았어도, 우리 아들한테까지 손대는 건 못참아. 여태까지 당신 행패 다 받아줬으니, 이제 얀붕이랑 둘이서 나가서 살아야겠어."


보지 않았음에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상황.


"이 시발 애미랑 새끼가 쌍으로 미쳤구나...너희가 나 없이 뭐라도 할 수 있을거 같아?"


"할거야. 우리 아들 위해서라면 뭐든지. 여태까지 못해준게 미안해서라도, 우리 아들 이제 좋은것만 먹이고 좋은것만 보게 할 거야."


직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옷가지만 걸친 채 술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뒤에서는 뭐라뭐라 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어머니께서 내 귀를 막아버려 무슨소린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새하얀 눈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계속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자, 어머니께선 다 낡은 코트를 내게 벗어 주셨다.


"엄마는 이제 우리 아들 위해서 뭐든지 다 할거야...그러니까 얀붕아, 너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게 무엇이든간에 열심히 해야해?"


몸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너무나도 따듯했던 그 날 이후로, 어머니는 약속대로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다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노력에 화답하고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했고, 어머니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등골이 휘어갈 무렵,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아주는 최상위 대학에 전액 장학금으로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

.

.

.

.

"몇 시간 공강이냐?"


"3시간."


"병신 ㅋㅋ 시간표를 왜 그따구로 짰어 그러게."


"이 시발 내가 내 돈 주고 대학와서 왜 내가 원하는 수업을 못 들어야 되냐고."


"니가 냈냐? 니네 부모님이 내주셨지?"


"지는 전액 장학금이라고 존나 놀리네 십새끼가."


오티 뒷풀이때 거하게 한 잔 마시고 가정사를 싸그리 털어놓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린 얀붕이. 다행히 새내기들은 전부 꼴고 남아있던 주당 한 명은 본인의 이야기를 이해해주었고, 지금에선 둘도없는 친구 얀돌이가 되어 본인 앞에서 욕을 박고 있다.


"야 근데 그 얘기 들었냐?"


"뭐가? 또 병신같이 헛소리 할거면...."


"아니 들어봐 시발아. 요새 우리학교에 과외선생 찾으러 누가 돌아다닌다는데?"


"보통 굳이 대학까지 와서 직접 찾으러 다니진 않는데 좀 이상하긴 하네."


"근데 그 돌아다니는 사람이 얀챈그룹 회장 비서라는 소문이 있어."


"그럼 더 이상하잖아? 과외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 누군지도 모르는 아무나 잡아서 과외선생 시킬것도 아닐테고."


"모르겠어...암튼 보이면 바로 잡아야지."


"원하는 강의도 못잡은년이 사람은 잡을 수 있을 줄 아나."


"이 시발련이 진짜."


"ㅋㅋ 수고하고 난 교양들으러간다."


부들대는 얀돌이를 뒤로 한 채, 정말 더럽게도 재미없는 교양 두 시간이 지난다. 햄버거나 먹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 때


또각또각-


"수석으로 입학하신 이얀붕씨 맞으시죠?"


살짝 내려간 둥그스름한 눈에 사각안경, 그리고 단정한 정장 차림과 구두. 분명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어딘지 모를 살벌함이 느껴지는 여자가 말을 건다.


"맞습...니다만."


"얀챈그룹 비서실장 김얀진이라고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현재 얀챈그룹 후계자 자리에 있으신 김얀순 아가씨의 과외선생을 찾고 있습니다."


"감사한 제안이긴 합니다만..."


"달에 700 드리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일처리가 빨라서 좋네요. 내일부터 보내드리는 주소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시간은 저희가 알아서 가능한 시간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제 남는 시간은 어떻게..."


"저희 회사 스마트폰 쓰시잖아요?"


그렇다고 정보를 이렇게 막 갖다써도 된다는 말인가.


"저기 그렇다면...제가 만약 급여값을 못한다면요?"


"짤리는거죠 뭐."


간단하지만 제일 살벌한 말이다.


"알겠습니다...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앞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날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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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단편으로 쭉 길게 쓰려다가 중간 묘사가 좀 세밀하게 들어가면 좋을거 같아서 장편으로 우회하려고. 너무 길지 않게 시간 날때마다 써서 올릴테니 앞으로 잘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