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릇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신이 벌인 일은 스스로 매듭지어야 한다.
때문에 나 역시, 내가 벌인 일에 늘 책임지며 살아왔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든 간에, 늘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만우절을 기념으로 꾸민 이 소소한 장난은.
“아아, 지휘관님……지휘관님…….”
“주인님!!! 주인님……아흐흑…….”
도저히, 책임질 자신이 없다.
***
원인은 이러했다.
만우절, 매년 4월 1일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재미있게 남을 속이면서 즐기는 날.
나 역시 절찬리 사용하는 연례행사였다. 이따금 장난의 희생자가 된 적이 있고, 대부분은 남을 속이며 즐겼다.
그건 모항에 와서도 마찬가지,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며, 우리는 서로 즐겼다.
때문에 이번에도 가볍고 소소한 장난을 하나 준비했다.
바로 아무 예고도 없이 퇴사한 척하기, 가벼운 장난이라기에는 규모가 조금 크긴 했지만, 그래도 만우절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날까지 하하 호호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나를 보며 함선 소녀들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상상만 해도 궁금했다.
당황하며 놀랄까. 만우절 장난인 걸 진즉에 눈치채 웃음을 참지 못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속 시원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까.
무슨 반응이 나오든 상관없었다. 즐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나는 3월 31일, 만쥬들을 불러 계획을 설명하며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새벽에 몰래 지휘관실을 비우기 위함이었다.
작은 탁자 하나를 제외한 모든 가구를 지하에 대충 옮겨놓은 후, 홀로 덩그러니 남은 탁자 위에 남은 종이 하나.
‘미안해.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그동안 즐거웠어.’
그리고 나는 지하 창고에서 CCTV로 상황을 지켜본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짜잔, 넝담~ 하며 나타나는 것이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시시덕거리며 만쥬들과 열심히 가구를 옮겼다. 새벽이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미리 준비한 CCTV를 바라보며 지하에 눌러앉았다.
“지휘관……찾으면 꽁꽁 묶어둘 거야……다시는 우리를, 나를 떠나지 못하도록, 예쁘게 묶어둘 거야.”
“……전부 제가 부족한 탓이에요. 주인님……흐흐흐……주인님.”
“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
그 결과가 이거다.
차례대로 뉴저지, 벨파스트, 아카기였다. 죽은 눈으로 미친 듯이 모항을 뒤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단순한 장난이었지만, 그 파급은 장난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벨파스트의 손에 발견된 소식은 모항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내 모항은 개판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이내 멀리 못 갔으니 최대한 주변을 둘러보자는 의견으로 귀결되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에 나는 절로 대견한 마음이 따라왔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저 두려울 따름이었다.
요크타운은 허둥지둥, 급하게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평소 보여주던 총명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평소보다 거진 세 배가 되는 범위를 레이더로 스캔하는 헬레나의 모습은 일전에 마주한 메타 헬레나의 모습에 가까웠다. 눈동자가 붉어진 것이 그 증거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또한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짜잔~ 넝담~하면서 그들 앞에 등장하는 순간, 내 사지가 멀쩡하지 않으리란 걸.
결국 오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나는, 창고 구석에 박혀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게 전부라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정신 나간 상황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제발.”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여기, 지휘관님의 냄새가 나요.”
“…아.”
“지휘관님을 찾아……평생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아카기의 옆에 둔다면……후후훗, 후후후훗.”
.
.
.
무릇 감정은 제각기 그것에 대한 원인이 실재한다. 인과, 지극히 단순한 이치이다. 이는 존재가 가진 가장 원시적인 메커니즘이다.
분노는 성질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슬픔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즐거움은 무언가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또, 공포는 두렵기 때문에.
한 차례 파고 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대체 무엇에 겁먹었기에 존재는 공포를 느끼는 걸까.
지극히 단순하다.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현재 가진 것에 해를 끼쳐서, 무언가 자신의 입지에 타격을 입힐 것 같아서.
함축하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바로.
“아, 하, 하……지휘관님……지금 어디 계실까요???”
살고 싶어서.
딱 지금의 내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
아카기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뼈를 가른다.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호흡이, 호흡이 가라앉질 않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눈가는 파르르 떨리다 못해 더 이상 바로 앞도 바라보지 못할 지경에 다다랐으며, 벌벌 떨리는 손은 이미 기능을 잃었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눈을 굴려 화면을 바라본다. 차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아카기가 보인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 으, 하, 흐.
한 번 리듬을 놓친 호흡은 제멋대로 움직이며 날 괴롭혔다. 감추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만 해. 괜찮지 않으면 안 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안정을 갈구한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만우절은 장난을 치는 날이니까. 이건 단순한 장난에 불과하니까.
“지휘관님~ 여기 계실까요~”
허나 그런 와중에도 목소리는 들려오고.
쾅, 하고, 옆 방의 문이 짓이겨지는 소리, 귀를 막는다. 눈을 감는다. 제 기능을 잃은 손을 억지로 움직이며 최대한 구석으로, 그 어떤 소음도 내지 않으며 고요히.
암시한다. 그녀는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장난에 불과하기에, 설령 찾는다 한들 웃으며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별일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전부 장난에 불과하니까. 어차피 그녀는 날 찾지 못할 테니까.
“냄새가 나요~ 지휘관님의 사랑스럽고……아름다운……그런…….”
한 자 한 자, 두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분명 온화하기 짝이 없었으나, 기저에 깔린 검은 색은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형태를 가지지않은 목소리에 불과했지만, 저것은 분명 붉었으며, 속은 검었다. 마주한다면, 도저히 삼키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울 거예요 분명, 아카기의 곁에서 평생 계실 지휘관님의 모습은…….”
손을 뚫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가슴까지 꿰뚫린다. 나는 감각을 닫고, 스스로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공포에서 도망치기 위해.
“오늘은……만우절.”
괜찮다. 괜찮아, 오늘은 장난을 치는 날이니까. 아무런 문제 없다.
읊조린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반복한다.
삐걱 삐걱, 차츰 내게 다가오던 걸음 소리도 이젠 잦아들었다. 그녀는 날 찾지 못했다. 그래. 애초에 말도 안 된다. 고작 냄새로 사람을 찾는다니.
이곳은 만쥬들과 비밀리에 준비한 공간이다. 그리 쉽사리 찾아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절대, 내가 들킬 일은 없다.
“하아……하아…….”
좋은 생각만 반복하니, 호흡도 차츰 제자리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세상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천천히 바로잡으면 된다.
왜냐하면,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이건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소동에 불과했으니까.
“후우…….”
크게 심호흡, 귀에서 손을 뗀다. 어느새 소음은 모두 가라앉았다. 불안정한 호흡, 날뛰는 심박, 그리고 아카기의 발소리까지.
할 수 있다. 바로 잡을 수 있다. 우선 비밀리에 만쥬들을 소집해, 빠르게 모항을 정상화하자, 나는 할 수 있다.
생각하며, 천천히, 감은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
.
.
“……아.”
아카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