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세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검도 선수였고 어머니는 평범한 의사였다


 어머니가 검도 연습을 하다가 다친 아버지를 치료해주다가 만났다나 뭐라나


 현대 시대에서 보기 드문 무력만을 추구하는 직업 중 하나인 검도 선수와 공부를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도 되기 어려운 의사의 만남이라 퍽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검도 선수인 자신을 이어서 검도를 했으면 하셨고, 어머니는 평범하게 자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했으면 하셨다.


 아마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세상 어떤 남자아이가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것을 싫어할까


 나는 결국 어릴 적 부터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검도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검도를 배우며 교복을 입을 나이가 되면서 공부도 병행하였는데 머리가 좋은 어머니를 닮아서일까

조금만 공부하여도 성적은 고공행진을 하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재능까지 이어받은건지 출전하는 청소년 검도 대회마다 상을 휩쓸었다


 시간이 흘러서 나도 성인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던 나는 가고 싶었던 대학교인 얀챈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제 검도는 취미 정도로만 하고 컴퓨터에 관심이 생겨서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의 소개로 예쁜 여자친구까지 생겼고 학교에서는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교우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예쁜 애가 나랑 왜 사귀는지 궁금했지만 좋은게 좋은거니까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걸까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 얀붕아.. 많이 힘들지.. "


나는 장례식장에 찾아온 여자친구인 얀순이를 껴안고 몇 시간 동안이나 울었다


" 얀붕아, 곧 있으면 종강인데 일본여행갈래? "


" 얀붕아, 오늘 저녁은 너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먹으러 갈까? "


" 얀붕아, 우리 학교에 검도 동아리 신설되었다는데 같이 들어갈래? "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반동으로 좋아하던 검도도 때려치고 방안에 틀어박힌 나를 세상으로 꺼내준 건 다름 아닌 얀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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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대학도 그만 두고, 모든걸 뒤로 한 채 취미로만 하던 검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후에 난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검도 선수가 되었다


" 얀붕 선배, 오늘도 경기 고생하셨어요!! 회식도 오실거죠?? "


오늘도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 했지만 최근 우리 검도장에 새로 들어온 얀진이가 회식을 갈거냐고 묻는다


원래라면 얀순이가 내가 회식같은 곳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해서 불참하는 편이지만 신입으로 들어온 얀진이 환영회 겸 회식인데 빠지기는 뭐해서 오늘은 참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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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회식이라 달리는 바람에 모두가 만취 상태였다


" 얀붕아, 너 집이 인천쪽이랬지 얀진이도 인천쪽이라는데 얀진이 좀 데려다주고 가줄 수 있냐? "


그나마 멀쩡한 나를 본 코치님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같이 택시에 올랐다


" 얀진아, 정신 좀 차려봐 얀진아 "


" 으응..? 어! 얀붕선배다 에헤헤헤.... 얀붕선배가 왜 내 옆에 있찌.. 꿈인가... "


애는 술도 못마시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많이 먹은 건지 택시에서 정신을 차리자 마자 내 얼굴을 보고 배시시 웃는다


" 얀진아, 집이 어디야? 술 좀 깼어? "


" 집...집... 몰라... 헤헤 "


집이 어딘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데려다 준단 말인가 환장하겠다


우리집에서 재우기는 뭔가 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근처 모텔에 재워놓고 내일 아침에 픽업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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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저찌 얀진이를 끌고 모텔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눕혔다


" 얀진아,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



잠깐 앉아있다가 나가려는 내 팔을 붙잡은 건 다름아닌 얀진이의 손이었다


" 선배... 같이 있어줘요... "


순간 사고가 정지하고 머리가 하애졌지만 얀순이를 떠올리며 이상한 생각을 떨쳐냈다


" 얀진아, 너 많이 취했다 나 여자친구 있어 "


" 에...? 거짓말, 여자친구라뇨 선배 "


" 진짜야... 티는 안냈지만 주말마다 데이트 하고 있고.. "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얀진이가 붙잡고 있던 손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을 했다


갑자기 우는 바람에 달래주느라고 의도치 않게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렇게 모텔을 떠나서 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지지직 소리와 함께 목 쪽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