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다지 만만하지 않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사실을 상당히 빠르게 깨우친 듯 하다. 


딱히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거나 

찢어지게 가난하다거나

그런 거창한 문제는 아니다. 


그저 학교에서 내 물건이 자꾸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학교에 도둑이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도둑에게는 몇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첫째, 내 물건만 훔친다. 

다른 이들의 피해는 확인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해 보인다.


둘째, 비싼 것은 훔치지 않는다. 

체육복, 리코더, 슬리퍼 등의 준비물이나 의복만을 훔친다. 

대놓고 내 무선 이어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동 수업에 다녀온 결과 없어진 것은 오히려 사물함에 있던 내 체육복이였다.


셋째, 훔치는 주기가 정해져 있다. 

빈틈이 있을 때 마다 매번 훔치는 것이 아닌, 약 2~3일 정도를 주기로 하나씩 훔친다. 


위 세가지 특징을 적절히 종합해보면, 

이 도둑은 절대 돈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며,

철저히 나를 불쾌하게 하기 위한 심산으로 이러한 행동을 지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 물건이 없어진 날, 담임 선생님에게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해서 미안하다며

꼭 범인을 잡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종례 시간에 반 아이들을 모아 우리가 흔히 아는 '범인찾기'를 시행했다. 

(눈을 감고 자수하도록 유도하는 그것이 맞다.)

물론 '범인찾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결말로 끝났다. 

결국 범인은 찾지 못하고 선생님은 다시 한번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 이후로도 내 물건은 계속 없어졌다. 

그러나, 내가 방금 말한 범인의 세 가지 특징 덕분에, 애석하게도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솔직히 나 같아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내가 여학생이였다면 누군가 변태적인 목적을 가지고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남고에 다니는 평범한 남학생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추측을 강하게 부정했다. 


어느정도 범행이 지속되고 나는 결국 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을 직감했고, 

나는 내 용돈으로 물건을 채워넣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담임 선생님만은 나를 믿어주었다.

자주 나를 불러 면담을 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어째서 선생님만은 나를 믿어주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서도 다정한 선생님의 말씀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야자를 끝내고 잠깐 교실에 들러 교과서를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 학교는 야자를 참여자만 다른 교실에 모아서 진행한다.)

교무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아, 아직도 일하시는 선생님이 계신 겉 같았다.


잠깐 교무실의 창문을 통해 보니 우리 담임 선생님 같았다. 

어차피 교실 열쇠도 필요하기에 잠깐 교무실에 들러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교무실에 들어간 순간 내가 본 광경은

선생님이 오늘 없어진 내 체육복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장면이었다. 


왜?

어째서?

무엇을 위해?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가득 차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너, 봤구나."


도대체 왜? 그 다정하고 예쁜 선생님이? 뭐가 아쉬워서?


"봐 버렸으면 어쩔 수 없겠네"


"흐음. 왜? 라는 의문이 가득찬 표정이구나"


"왜? 왜겠어,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물론 사제관계가 아닌 남녀관계로서 말이야"


"너의 땀 냄새가 가득한 체육복도, 너의 침이 가득한 리코더도, 

 침울해진 네 표정도, 나와 상담하면서 위로받았다는 그 표정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생님만이 널 이해해준다고 믿고 있는 너의 그 순진함도, 

 정말 너무 좋아."


"네 사진도 잔뜩 찍어놨어. 

 수업을 듣다 조는 모습,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 

 체육 시간에 넘어진 모습, 밥 먹는 모습,

 볼일 보는 모습, 친구들과 노는 모습, 전부."


그녀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나의 사진이 그녀 말대로 잔뜩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기를 바랬지만, 나의 의지와의 반대로 그녀는 아직도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다. 


"이건 내 비밀 일기인데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매일매일 보고 느낀 너의 사랑스러운 점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뒀어.

 너는 매일매일 사랑스러우니까 일기장 페이지가 항상 모자르더라."


글씨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일기장에는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나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말해야겠지?

 선생님은 너를 정말정말 사랑해.

 그러니까 선생님이랑 결혼해주지 않을래?"


선생님은 젊고 예쁘고 다정하다.  

나도 며칠 전 까지는 선생님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이런 미친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아니다. 


나는 충격에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누고, 당장 몸을 문 쪽으로 틀어 도망가려 했다. 


"하아. 역시나 이런 여자는 싫다는 건가"


그녀는 빠르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목에 가져다 대었다. 

 

파치치직 -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낯선 천장이였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무언가에 강하게 결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 일어났구나"


선생님이다. 


"아직 고등학생에게 결혼 얘기는 좀 일렀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괜찮아. 앞으로 선생님이랑 같이 살면서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줄게."


그녀는 묶인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정말 사랑해. 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