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을 졸업하고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


무협(武俠)지


무술을 연마하고, 협의를 행하는 그런 흔해빠진 이야기.

사람들에겐 뻔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부모 없는 고아

학대하는 고아원장

자살한 친구

얼마없는 돈까지 뺏어간 사기꾼


죄를 저지른 자가 마땅히 처벌받지 못한것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을때


죄를 저지른자에게 벌을 내리는 협(俠)이,

약자를 내버리지 않는 협(俠)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러다 커뮤 추천으로 본 신작 무협물 

“회귀한 남궁세가 소가주만 무공이 레벨업“

이름은 꽤 구렸지만 무료로 볼 수 있기에 봤다.


…그대로 각혈했다.

갈!! 이런건 무협이 아니야!


초중반까진 주인공이 열심히 협객노릇을 하지만, 

중후반부터 천마한테 쳐발리더니 히로인이랑 떡만 친다.


그리고 객잔에서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레드 와인을 판다. 심지어 그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


그대로 분노의 57,000자 메일을 보내고 그 소설로 빙의당했다.








                                                                                            ***



어느덧 빙의한지 10년이 지나고 첫 강호행을 끝내고 본가로 가던길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검은 먹구름.

심상치 않아보여 달려가니 역시 산적이었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범해라!“

”크하하하! 등짝,등짝을 보자!“


…근본 없는 무협이랄까봐 두창 산적은 또 뭐냐?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으며 산적 두목에게 달려갔다.


“두목! 이상한 놈이 달려옵니다!”

“흐흐흐 얼굴이 반반하니 저건 내꺼다!

”닥쳐라 대머리.”

“뭐? 이 새끼가 이 채주님이 예뻐해줄려고 했는데! 넌 사지를 잘라 오나홀로 만들어주마!”


말은 저렇게 했지만 산적 수준이 그렇지 뭐.

그대로 목을 베고 뒤를 돌아보니 다 도망가고 없었다.









                                                                                            ***


산적들에게 털린 잔해들을 치우며 마을 사람들을 돕다가 한 소녀가 잔해에 깔린 것이 보였다.

서둘러 잔해를 치우니 다행히 숨은 쉬었다.


이윽고 소녀가 정신을 차리곤 나에게 묻는거였다.


“…왜 살리셨어요?”


이 소녀…눈빛이 죽어있었다.

내가 오기전에 부모님이 죽임을 당했던걸까?


“음…나는 협객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했을 뿐이야.”

“하… 협객?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세요.”

“…왜 협객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

”이 마을에 산적이 온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저번에 산적이 왔을때 협객으로 유명한 문파의 문주에게 도움을 청하니  뭐라 한줄아세요?“

”…무슨 말을 했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무시했어요.”


쯧. 그런 새끼들이 협객이라는 이름을 자처하다니


“음…그 문주라는 자는 진정한 협객이 아닌것 뿐이야.”

“하. 그 사람 말고도 협객으로 유명한 자들은 말로만 협객이던데요? 협객들은 싸울려고만 하면 몸이 병신이 되기라도 하나보죠?”

“…그 자들은 나랑 달라. 나는 진정한 협객이다.”

“흥. 그걸 어떻게 믿죠?”

“그럼 이렇게 하는것은 어쩐가? 너가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협객이 맞는지 평가하게.”

“말만 이렇게하고 협객 아니면 뭘 해줄거죠?”

“나를 죽여도 좋다.”

”무림인을 제가 어떻게 죽여요?“

”아… 그렇다면 무공도 알려주지.“

”그래도 되나요? 무림인들 무공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잖아요.“

”음…내가 만든 무공이니까 괜찮아. 내가 없으면 못 배우기도 하고.“

“그러면… 좋아요.”

“좋아. 잘부탁해 이름이…”

“…린이에요.”

“그래 린아. 나는 남궁혁이라고 한다. 잘부탁하지.”


그렇게 혼자다니던 일행에 한 명이 추가됐다.









                                                                                            ***


5년이 지났다.

린은 여전히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린아. 언제쯤 나를 인정할거냐?”

“흥. 공자님은 바보에요.”

“뭐? 이 무림에서 제일가는 협객인 내가 바보라고?”

여자 마음 하나도 모르는게 바보가 아니면 뭐에요?”

“뭐라고? 잘 안들렸어.“

”아,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늘 무슨 날이라도 있나요 조금 소란스럽네요.“

”아, 최근 마교가 극성이라서, 무림맹에서 지원을 요청해서 말이야.“

”아하… 그러면 가주님과 장로님들만 가는건가요?“

”아니.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뺄 수 없지, 나도 간다.“

”네? 위,위험하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안간다고 하는거 어때요?“

”갈! 사내로서 그럴 수 없다!“

”진짜…! 걱정된다고요!“

”흥! 협객은 죽지 않는다. 아, 무공은 열심히 수련하고 있나?“

”말 돌리기는… 최근 일류의 경지에 올랐어요.“


괴물이군. 약관인 내가 겨우 절정인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벌써 일류라니.


“ 다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거야.”

“흥! 제가 잘 나서 그런거거든요?!”

“하하! 그래서 조만간 곤륜산으로 출정할텐데, 올때 기념품이라도 사오지.“

”기념품은 됐거든요?! 다치지만 마세요.“

”나 좋아하냐? 그만 걱정해.“

”아,안 좋아하거든요? 공자님 진짜 싫어요!“


좋아해요. 이 말이 턱끝까지 올라온걸 겨우 삼켰다.

고백은…이번 일이 끝나고. 그래 이번에야 말로 고백하고 말겠어.



그렇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1년이 지나고, 무림맹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

가주와 장로님들은 보이지 않은채, 

소가주와 몇몇 병사들만이 세가로 돌아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가주님과 장로님들은…“

”천마와의 싸움에서 동귀어진 하셨다.“

”!!!“

”우리 세가 뿐만이 아니지 무림맹의 고수들이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았다면 다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천마는 막강한 무인이였어.“

“천마는…죽었나요?“

”하… 아니. 천마는 죽지않았다.“

”네에?“

”팔 하나가 뜯기고 가슴에 구멍 하나 뚤려도 죽지않았다.“

”그러면…공자님은 어떻게 살아 오셨죠?“

”그냥…유희였다. 무림맹의 고수들과의 싸움도 그자에겐 유희에 불과했어. 재밌게 놀았으니 그냥 돌아간거지.“

”…공자님.“

”잠깐…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나가줄래?“

”네… 공자님.“


닫히는 문 너머의 그의 어깨는 유난히 작아보였다.








                                                                                            ***

그 후 공자님은…아니 가주님은 달라지셨다.

돌아가신 가주님과 장로님들에게 속죄라도 하듯 수련에 집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교는 잠잠하지만 

최근 기승을 부리는 혈교와 사교도, 북방의 야만인등등

강호를 어지럽히는 일이 발생하면 그가 가장 먼저 나섰다.


“가주님… 이제 그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뭐를 말이지?”


그의 눈빛은 텅 비어버렸다. 텅 비어서 언제 쓰러져도 모를 만큼.


“…사람들도 이제 하늘에서 용서하실거에요. 이제 가주님도…쉬세요.“

”아니…내가 약해서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협행이니 잘난듯 떠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


아무리 말려도 그는 바뀌지 않았다.


세가를 돌아오는 날마다 그는 다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필시 죄책감 떄문에 몸을 가혹하게 하는것이 틀림 없었다.


어느날은 그렇게 나가고 싶으시면 나를 밡고 가라고 검을 들고 막은적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수련했다고, 칭찬하더니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다 마교의 천마가 다시금 강호에 온다는 소식이 퍼졌다.

나는 울며 그에게 가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기어코 갈려고 하자 무력을 써서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그는 나보다 강했고, 결국 떠났다.


내 마음을 모르고 떠나는 가주님이 미웠다.

가주님 홀로 강호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무림맹이 미웠다.

그의 희생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이 미웠다.

무엇보다도 그를 막지 못해, 그를 아프게 만드는 내가 미웠다.


문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주님을 막을수만, 아니 천마를 죽일 수 만 있다면 가주님이 다치지 않을텐데.’


그떄 목소리가 들렸다.


“강해지고 싶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난 너다.”

“네?”

“너의 무의식이다. 너는 너의 본능을 억제하고 있어서 약한거다.“

”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죠?”

“가주님은 살겁을 일으킨 천마를 증오하고있지. 

살겁을 이르킬 자질을 가진 너는 가주님이 너를 경멸할까봐 너의 재능을 억제하고 있어.” 

“제가…그런 재능이 있다고요?”

“그래. 넌 천살성의 별을 지니고 있다. 넌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어.”

“…누구보다? 가주님보다 더… 아니 천마보다 더?”

“그래. 내 손을 잡아라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어주마.”

“…알겠어요.”


누가봐도 수상해 보였지만 더 이상 가주님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내 몸이 붉은색 기로 휘감겼다.


아, 이 힘이면 공자님이 아프지 않을 수 있어.


그녀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지어졌다.







                                                                                        ***



“허억, 허억.”

“쿨럭! 하! 너의 아버지는 나에게 닿지 못했는데, 너는 닿았군 남궁혁.“

”그, 아가리로 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말하지 마!“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필사적으로 검을 내질렀지만, 

천마에게 닿지 못했다.


“뭐… 재밌었다 남궁혁. 이만 죽어라.”

”크윽.“


죽을때가 되어서 후회가 되었다.

협이니 뭐니 떠들었지만

결국 진정한 협객이 되지도 못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게 신경쓰였다.

특히…린 그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자존심이라곤 비참하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것이었다.


”죽여라…“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데,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벌써 죽은 건가?”

”푸흣. 아뇨?“


익숙한 목소리. 들려서는 안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린?“

”네. 가주님.“

”어떻게 여기에…“


그렇게 눈을 떠보니 천마의 목이 사라져 있었다.


“린아… 너가 한일이더냐?”

“네에~ 그렇습니다.”

“허어… 언제 이렇게 강해졌나, 아니지 얼른 돌아가서 우리의 승전보를 알리자!”

“흐음~가주님 그건 곤란해요”

“어째서?”

“가주님한테 모든일을 맡긴 그딴 버러지 새끼들한테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평소대로의 목소리였지만, 무언가 달랐다.

뭔가 질척거리고, 끈적거리는 목소리…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갈려고 할 때 눈을 뜨니 하늘이 뒤집혔다.

아니. 내가 땅에 박히고 있었다.


쾅!


“커헉!”

“가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말은 무시하시는 군요?”

“허억…이,이게 무슨일이더냐!”

“돌아가지 말자고 말 했잖아요.”


여기에 오고서 처음 본 그녀의 얼굴.

그녀의 얼굴은 무언가 이상해졌다.


입꼬리는 웃고있지만, 섬뜩한 붉은 눈동자는 심해처럼 고요했고, 피부는 창백했다.


“가주님…아니 가가. 왜 돌아가면 안되냐면…”


가가는 돌아가면 또 무림맹 씨발련들에게서 위험한 일을 받고, 다치시겠죠?

저는 다치신 가가를 보면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시는지 아세요?

가가가 다친 상처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찢어발기듯 아프다고요?

그리고 협객이라고 모든일을 마다하지 않으니 호구처럼 부려먹히겠죠.

그 무림맹 씨발것들은 그러면서 보수도 주지않았죠.

개새끼들…뭐 다 죽이고 오는길이지만요.

어쩃든… 저는 가가가 더이상 협객이라는 개지랄을 하면서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가주님이 협을 행하시는 고귀한 일을 해도 세상은 알아주지도 않잖아요.

오직 유일하게 저만이, 가가의 린만이 알아주는걸요.

우둔한 가가는 이런 사실을 모르시고, 

자꾸 다칠려고 나가기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막을 수밖에 없겠네요. 

넓은 집도, 숙련된 시녀들도 없지만

작은 집에서 10명의 자식을 낳으며 사는것도 좋지 않겠어요?

아, 저는 가가만 있으면 되요…그러니 가가도 괜찮죠?


스윽


그녀가 내 목에 검을 겨루었다.


“아, 이건 부탁이 아니에요. 하지만 거절은 하지 않으실거죠? 순진한 시골 처녀를 꼬셨는데 책임을 지셔야죠? 가가는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잖아요?”


 내가 호랑이를 우리집에 데려왔구나

뒤늦은 한탄을 내뱉었지만 후회해도 바뀌는것은 없었다.

아, 하나 있다면 앞으로 햇빛을 보지 못할거라는 예감.







원래 구상은 주인공의 협에의해 구해졌지만, 주인공이 그거때문에 계속 다치고 심지어 여자까지 꼬신것때문에

각성해서 감금착정하는걸 쓰고싶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