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늦은 새벽에, 그것도 저 몰래 말입니다.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요?
우마무스메는 밤 귀에 아주 밝답니다. 트레이너가 되셨으면서, 저랑 3년 넘게 같이 있으면서 그것도 모르셨나요?
귀엽네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만, 어딜 가시려고 했던 거죠?
....밤 산책이라, 그거 좋네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혼자 산책하고 싶으시다고요? 그건 허가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일심동체, 당신이 어딜 가든, 제가 어딜 가든, 제 옆에 당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거기다 여긴 제 집, 메지로 가 입니다. 저 없이 멋대로 돌아다니다간 딴 년이랑 눈 맞을 수도 있는데 설마 딴 년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어떤 년입니까? 라모누 언니? 라이언? 아니면 골드쉽입니까?
하.... 딴 년 보면 안 된다고, 나만 보라고 어젯 밤에 침대 위에서 그렇게 알려줬는데 그새 또 잊어버리셨군요.
안 되겠습니다. 다시 주입시켜 드릴테니 빨리 제 옆에 누우십시오.
....그럼 왜 이 늦은 밤에 나가려고 했는 지 설명해주십시오.
밤 산책이란 개소리를 짓껄이시지 마시고.
.....제가 자고 있는 틈을 타 트레이너의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고요?
그리고 영원히 제 곁을 떠나시게요?
.....다시 돌아올 거라고요? 웃기는 소리 그만하십시오!
그래요. 다시 돌아올 수 있겠죠! 백골이 된 채로!
알고나 있는 겁니까?! 트레이너 고향은 전쟁터라고요!
제가 아무리 어리다 한들 그 곳에 가면 다시 못 돌아온다는 건 알고 있다고요!
그리고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밀어넣고 싶어하겠냐고요!
그러니 잊으십시오. 다 잊고 그저 어떻게 해야 저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 그거만 생각하십시오.
....네. 가족이요. 트레이너, 당신도 좋다고 했잖아요. 우마 레이스에서 이겨서 제가 당신에게 고백했을 때.
....저희 메지로 가에선 연인이 곧 가족입니다.
메지로 가 당주님, 그니까 할머님도 당신을 꽤 맘에 드셔하셨고요.
그러니 고향은 잊으십시오. 앞으로 이 곳이 당신의 집이니까요.
....저도 알고 있답니다. 지금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는 걸.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통해서 입대하는 방법 밖에 없죠?
그 말은 즉, 당신은 적군이랑 싸워야 된다는 소리인데.
제가 그걸 가만히 볼 거 같습니까?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고향에 가고 싶어한디는 걸.
몇 주 전에 그 나라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를 봤을 때 당신의 눈빛이 달라졌거든요.
그리고 예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전 궁금한 건 못 참는 우마무스메이기 때문에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동안 뭘 하는 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재력을 써서요.
그리고 알아버렸답니다. 당신의 과거와 혼자 있는 시간동안 뭘 하는 지.
23개월동안 육군 병으로 근무했었다는 걸.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동안 제 서랍 안에 있는 작별 편지를 쓰셨더라고요.
.....어떻게 알았지? 라는 표정이군요. 말했잖아요. 집안 재력 좀 썼다고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낸 게 있어요.
당신도 알 거에요. 군대를 안 가는 많고 많은 방법 중에.
십자인대 파열이 있더라고요?
.....우마무스메 상대로 도망가다니, 아니면 술래잡기라고 하실 생각이셨나요?
그거 좋네요. 어차피 이번이.
당신의 마지막 달리기가 될 테니까요.
움직이지 마세요. 그럼 정말로 다리 하나를 떼어낼 수 있으니까요.
아,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럼 당신은 평생 제가 아니면 걸을 수도 없으니까요!
이거야말로 진짜 일심동체가 아닐까요?!
....너무 그런 겁 먹은 표정 짓지 마세요. 농담이에요. 농담.
제가 그렇게 살벌한 짓을 할 순 없잖아요.
아 근데.
십자인대 끊어버리겠다는 건 진담.
****
아버지. 어머니.
또 못 받으실 걸 알지만, 혹여 이 편지를 받으실 거란 희망을 걸고 한 번 더 작성해봅니다.
사실 계획대로라면, 제 생각대로라면 오늘 쯤 부모님을 만나러 갔을 겁니다.
민간인 신분이 아닌 군인으로요.
그럼 오히려 더 뭐라했었을까요? 조용하게 있지. 뭣하러 여기까지 오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라고.
그럼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런 각오도 안 했으면 전 이 곳에 오지 않았을 거라고.
그럼 또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우린 걱정하지말고 그 나라에서 쥐 죽은 듯이 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는 중입니다.
아니, 정확하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를 너무나 사랑하는 제 담당, 우마무스메 메지로 맥퀸이 제 십자인대를 끊어버렸거든요.
제가 전쟁터에서 죽는 걸 원치 않다는 이유로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전쟁터에 갈 거 같다는 이유로요.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말씀하셨죠. 절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널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라고.
네. 그 사람이 바로 제 옆에 있네요.
사람이 아니라 우마무스메이지만 그래도 전 불만 없답니다.
그래서 얼른 부모님께 소개시키고 싶은데 전 그게 걱정됩니다.
지금 편지 8번 넘게 보냈는데 답장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 불길한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거기다 이번 뉴스에서 부모님이 살던 지역이 불바다가 됐다는 걸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걱정되서 밥도 제대로 먹질 못 하는데 그 뉴스를 보고나니 더 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아들이 걱정되시다면, 제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답장이라도, 아니면 꿈에서라도 나와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
미안하다. 우리도 전쟁통에 이제서야 편지를 받게 됐다. 잘 지낸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 아니 우마무스메를 만났다며?
그래. 행복하게 지내라.
이 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뭐든 오케이니까.
****
-아가씨, 송신처 위조는 어려운 게 아닙다만 내용은 정말 이렇게 보내도 됩니까? 너무 어설픈 거 아닙니까? 적어도 문체라도....-
"지금 민간인 사상자만 300만명이 넘어가.
남편이 살던 지역 뿐만 아니라 온 지역이 불바다라고. 거기다 전쟁은 안 끝났고.
사상자는 더 늘어갈 게 뻔히 보이는데 그 중에 우리 남편 시부모님이 포함 안 될 거 같아?
그리고 너희도 알다시피 이 나라도 전쟁의 불길을 피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자꾸 남편이 답장 받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니 내 속이 어떻겠어?
이렇게해야 겨우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다고."
-알겠습니다. 아가씨.-
사실 남편도 알 것이다. 시어머님이 쓴 편지가 아니라는 걸.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는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의 시부모님도 편지의 쓴 내용대로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짐 다 챙겼어? 여보?"
"어. 이제 가자."
일심동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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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우마무스메] 어딜 가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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