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른답지 못한 모습만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당장 주변에는 나의 영향을 받아 성장이 좌우될 수 있는 학생들이 꽤 많다.

물론 학생들끼리의 관계가 더 큰 영향을 주겠지만, 그것이 내 영향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면, 대표적인 건 이오리인가?"

첫 만남부터 못 보일 꼴을 보였다.

솔직히 발을 핥으라는 걸 어떻게 참냐고, 한번쯤 해보고 싶잖아?

물론 그 뒤로도 이래저래...

특히 저번에 기차에서 있었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기껏 붙잡은 카스미도 지금은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학생일 터.

"아로나, 이오리한테 연락 좀 넣어줄래?"

[네, 어떻게 전달할까요.]

"어라, 프라나? 일단 이번 주 목요일에 시간 되면 게헨나 출장 갈 때 동행해달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일어나세요 선배, 거기서 누워계시면 일을 할 수가-]

_____

[목요일에 시간 있어?]

"어라, 선생님?"

[목요일은 좀 여유롭긴 한데, 왜?]
[목요일에 게헨나 출장이 있거든, 괜찮으면 같이 좀 다녀줄래?]

"목요일에 출장이라... 음..."

출장을 오는 건 그냥 그렇구나 싶지만.

그렇게 무시할 일도 아니다.

이 어른은 게헨나에만 오면 사고를 치는 못 미더운 어른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루 종일, 둘이서.

_____

"안녕, 시로미 양."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나 말해봐."

"크흠, 오늘 일정은 일단 급양부, 응급의학부 쪽에 들렀다가 히나한테 근황보고를 간단하게 받을 생각이야."

"겨우 그 정도야? 동선이 꽤 좁아서, 그 정도면 오전 중에 끝나겠는데?"

"맞아, 오후는 텅 비었거든."

"그 정도로 날 부른 거야, 지금?"

아니, 뭐.

실망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뭐랄까, 저번에 기차 사건도 그렇고. 이오리는 늘 고생하니까. 오후엔 같이 쉬자고 하려고 왔거든. 싫다면 지금 돌아가도 상관"

"좋아."

"응?"

"트, 특별히 같이 다녀주겠다고."

"하하, 고마워, 시로미-"

"이오리. 이오리라고 불러 그냥."

"알았어."

성으로 부른다니, 그런 거 안 어울리니까.

평소처럼 괜히 가깝게 달라붙기나 하라고.

_____

일은 빠르게 끝냈다.

세나의 묘한 시선과.

후우카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히나의 뜻모를 펀치를 받긴 했지만.

"이제까지의 벌이라니, 뭔데..."

"글쎄, 왜일 것 같아?"

"이제까지의 못난 모습들...?"

"잘 아네."

어쨌든 이젠 놀 차례다.

"어디부터 갈-"

펑!

두두두두두-!

"알지? 이래야 게헨나라는 거."

"그러네."

"...미안하지만, 잠깐 다녀올게."

"지휘, 필요해?"

"아니, 저건 혼자서도 충분해."

이오리는 난리통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런 모습을 보이니까, 신경써줄 수 밖에는 없는 거잖아.

"어디 좋은 레스토랑이라도 데려가 줄까."

며칠동안 빵만 먹어야 하겠지만.

"거기! 멈춰! #(×*÷#*-----"

당장 일이 긑나는 게 먼저긴 한데.

_____

"미안해, 선생님. 좀 늦었지?"

"괜찮아,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뭐. 이오리 너는 괜찮아?"

"당연하지. 뭐, 옷이 좀 문제지만."

"그럼 정해졌네, 옷부터 살까?"

"좋네, 가자!"

드디어 데이트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음...

잘 모르겠네 이건.

"이오리."

"응?"

"고마워."

"뭐가."

"언제나 열심히 해줘서. 고등학생 때의 나보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도 어른스럽게 있어줘서. 못난 모습을 보이는 나를 믿고 따라줘서.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ㄱ, 갑자기 무무무슨 소리를..."

"그리고, 항상 노력하는 이오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아.

못 참겠는데 이건.

"...혼자 너무 나갔나? 이오리, 가자."

"으읏..."

_____

많은 일을 했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평범한 '데이트' 치고는 많다는 거였다.

영화도 보고, 격투게임도 해보고, 선생님에게 사격을 가르쳐주고.

선도부의 모두와 먹을 간식을 사고, 또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아코에게 목줄을 채웠다더니, 나한테도 목걸이를 채워서 내보일 셈이야?"

"아니, 그건..."

"농담이야."

정말로 그렇다고 해도, 오히려 그쪽이 더 좋지만.

이런 어른은, 내가 같이 있어줘야-

"이오리."

"응?"

"너는 힘들지 않아?"

"갑자기 그런 얘기는... 뭐, 이래저래 힘들지."

"...나도 그래."

"응?"

마치 초인과도 같았던 어른.

그러면서도 한심한 짓을 해대니, 이런 사람은 지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가끔은 내가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 뭐야."

"서, 선생님...?"

"그래서, 이오리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언제나 그렇게 힘내고 있으니까. 어쩌면 널 배신했다고도 할 수 있는 나와 이렇게 같이 놀아주고 있잖아?"

"그건 그냥, 그..."

어라.

뭐라 말해야 하지.

마치 떠날 것 같이 구는데도, 막을 수가 없다.

"정말 자랑스러운 학생이야, 이오리는."

천천히 머리를 향해 뻗어오는 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거운 책임에 눌려 있던 어른이, 이렇게 사라져버리려 한다면.

...더 무거운 책임을.

다시는 이곳을, 아니 나를 떠나지 못하게.

무엇보다도 무거운 책임을 지우자.

"선생님. 피곤하지 않아?"

"응? 나는 별로 그렇진 않은데. 이오리, 네 얘기 아냐?"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진짜 아냐. 꽤 지쳐 보이는데.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오, 정말? 부탁할게."

"응, 뒤로 돌아."

선생님의 등이 보인다.

지금 잡지 못하면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는 등이.

"아, 살살 ㅎ-"

퍼억-

"좀 셌나."

주변에 사람도 없고.

응, 이대로 들고 가면 되겠다.

_____

-선생 시점

"가끔은 내가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 뭐야."

일이 밀렸을 때, 가끔 그렇게 말하게 된다.

옆에서 듣는 유우카가 핀잔을 주지만.

"그래서, 이오리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언제나 그렇게 힘내고 있으니까. 어쩌면 널 배신했다고도 할 수 있는 나와 이렇게 같이 놀아주고 있잖아?"

맹세코 내 의지로 배신한 건 아니지만 이오리한테야 대충 맞지 뭐.

"정말 자랑스러운 학생이야, 이오리는."

솔직히 저 머리카락, 만져보고 싶었다.

뭔가 오늘따라 윤기가 흐르는 게, 만지면 기분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 피곤하지 않아?"

어라, 오늘 너무 끌고 다녔나.

오랜만에 쉬는 애한테 너무했나...?

"응? 나는 별로 그렇진 않은데. 이오리, 네 얘기 아냐?"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진짜 아냐. 꽤 지쳐 보이는데.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어깨를 주무러 준다라.

오랜만에 부탁해볼까.

"오, 정말? 부탁할게."

"응, 뒤로 돌아."

벤치의 반대쪽으로 앉아 등을 내보였다.

그런데, 이오리 손이 꽤 매운 걸로 아는데.

"아, 살살 ㅎ-"

그렇게 내 시야는 암전되었다.

어째서일까, 정신을 차리니 나는 묶여있었다.

잠깐, 내가 이렇게 된다는 건 이오리는...?

"이오리!"

"응, 여기 있어."

"어, 멀쩡하네?"

"당연하지, 선생님을 들고 옮기는 정도로 쓰러지는 몸은 아니니까."

"...어?"

"왜, 떠나려고 했어?"

"응???"

"그렇게, 지쳤다느니, 나보고는 대단하다느니. 갑자기 사라져버릴 것 같은 티를 너무 내잖아? 뭐, 그래서 선생님은 내가 받아가기로 했어."

"아니, 그게, 무슨..."

"일단, 음..."

스륵-

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스륵, 스르륵.

이윽고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을 때.

"어때, 선생님이 핥아보고 싶다던 내 몸을 본 감상은."

"잠깐만 뭔가 오해가"

"없어. 그런 거. 헛소리할 시간에-"

혀나 내밀어 봐.

그리 말하며 이오리는 나를 덮쳐왔다.






https://arca.live/b/yandere/103743169

소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