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그래서 수정 해서 써옮,,,
일주일 전에 올라온,,, 9화늖,,, 미안하지만,,, 
취급해다오,,,





  그 어떤 색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하얀색은 본디 생명이 가지고 태어나기엔 지나치게 눈에 띄는 색이다.

  

  험난한 자연에서 살아남기에, 그 하얀색은 너무나 눈에 띈다.

  

  그러니, 하얀색을 몸에 지닐 것을 허락받은 생명은 생태계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거나. 누군가 보호해 줄 존재가 있어야만 하는 몸이다.

  

  지금, 어떤 이름 없는 숲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새하얀 소녀가 그 조건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절에 가까웠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소녀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선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널려있는 거대한 나무와, 저 높이 걸려있는 새파란 하늘과 구름을 차례로 둘러보던 소녀도. 하얀 꽃이 피어있는 수풀 위에 익숙한 검이 꽂혀있는 것을 봤을 땐, 녹빛 눈동자를 일렁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정확히는 그 상황에서까지 당황하지 못했으므로, 당황해야만 했다는 말이 옳으리라.

  

  잔뜩 그슬리고 헤진 검은 리본이 달린 옷의 끝단을, 공허한 눈으로 부여잡은 소녀는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워냈다.

  

  자신이 찾기 전에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랐기에 입에서는 의문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을 믿겠다는, 어젯밤에 들었던 말에 머리는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나이대가 보일법한 행동이 아닌 극히 차분한 마음가짐은 소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반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린 마족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일절 관계없는 무표정을 힘겹게 유지했다.

  

  "잠깐은, 기다리자."

  

  결단을 내린 어린 마족은 자신이 버려졌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을 마치며 다시금 풀 위로 몸을 눕혔다.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감각을 자극했다.

  

  자신이 한 행동은 모두 그 사람을 위한 것이었거니와 어젯밤 한 인간을 죽인 것 외엔 별다른 일도 없었으므로 그 판단이 무척이나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여태껏 입에서 튀어나왔다가 바람이 일으킨 파도에 뒤섞여 사라지던 말소리는, 지금도 소녀의 마음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괴롭게 하는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

  

  어느덧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를 시간이 되어도 여전히 마음속을 파고드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어린 마족은 잠들어있던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꽂혀있던 검을 향해, 머뭇거리면서도 무거운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하얀 꽃이 피어있는 수풀 위에 표정 없이 선 어린 마족은, 피와 재를 품은 검이 우뚝 꽂혀있는 것을 보고 나서 조금 떨리는 손과 빛을 잃은 눈동자로 파묻힌 검을 뽑아 들었다.

  

  찰나, 풀 따위를 베면서 들려오는 스릉거리는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소녀의 숨 또한 잠시 멎어 들었다.

  

  "… 왜…?"

  

  술을 건네주는 과정에서 그 검에 잠깐이나마 손을 댔던 어린 마족이기에,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감촉으로 머지않아 그 검이 그 사람이 들고 있던 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 익숙한 무게를 거머쥔 소녀는 불현듯 피어오르는 미증유의 감정에, 그리고 놀람에 사무치듯 검을 내려놓았다가 소중한 것을 품에서 놓친 것처럼 허둥지둥 품에 안기를 반복했다.

  

  소녀의 새하얀 옷에 피와 재가 묻어났다.

  

  넋이 나간 듯 한참이나 그러고 있던 소녀는 문득 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곤, 무감정하고도 힘없는 파리한 눈빛으로 검을 꼭 끌어안고서 조금 전까지 누워 잠을 청했던 곳으로 터덜거리며 도로 돌아갔다.

  

  억지로 걸음을 이어나가는 어린 마족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은 들고 다닐 검 자체가 없어 지니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항상 검을 곁에 두고 다녔다.

  

  검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면 허리춤에, 허리에 매달 것이 없다면 외팔인 오른팔에, 그마저 여의찮다면 입으로라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 그저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고 반쯤 누운 소녀는 검을 품에 감싸안고, 떨리는 눈으로 혼잣말을 흘려보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무슨,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말도 없이 떠나진 않았을 것이란 것쯤은 이미 소녀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발버둥이라도 치지 않고선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소녀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고 검을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납치라도 당한 걸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검까지 수풀에 꽂아두고선. 잠에서 깨어난 이래 줄곧 무표정했던 소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상념이 길어지자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불길한 상상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소녀가 필사적으로 하는 어떠한 생각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가설보다 실리적인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애초에 그 사람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버려진 이유를 몰랐기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은 오로지 그날,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같은 끔찍한 악몽의 날들같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나날들이 파도처럼.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 기다리면 될 테니까."

  

  소녀의 입에서 가쁜 중얼거림이 의식할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중얼거림마저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소리에 의해 숲에서 사라지자, 소녀는 숲이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있어 주었던 기분 좋게 울려 퍼지던 발소리도, 무신경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도, 지금의 소녀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홀로 남았다.

  

  버려지고 배신당하는 것쯤은 이미 옛적에 부모에게 버려진 이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버려지는 것만큼은. 그 사람에게마저 버려지는 것은.

  

  "아니야."

  

  어린 마족은 피어나는 생각을 부정하며, 버려졌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검을 꽉 껴안은 채 일어섰다. 그사이에도 단호한 목소리로 숲을 향해 발악하듯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버려진 게 아니야. 하지만 그럼, 어째서…?"

  

  기껏 발버둥 치며 내뱉은 한마디였으나, 그 대목에서 소녀의 마음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금 의문을 낳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소녀의 머릿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어째서 버려졌는지부터 시작하여 어쩌다 그 사람의 생각밖에 못 하게 돼버렸는지, 마침내 왜 그 사람을 찾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는지에까지 이르게 된 의문들.

  

  의문에 직면한 새하얀 소녀는 필사적으로 품에 끌어안은 검에게서 온기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온기를 찾던 중, 갑작스레 햇빛이 내리비쳤다. 빛을 잔뜩 머금은 창백한 검면에 소녀의 잔뜩 그슬린 옷이 비쳤다. 

  

  그 사람이 사준 옷. 그토록 찾던 온기가 검면 너머에 있었다.

  

  자신이 안고 있는 검을 가만히 바라다본 소녀는 지금 안고 있는 것이 검이 아닌 것처럼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나뭇잎을 부수고 찾아 들은 햇빛을 새하얀 머리카락, 이어 온몸으로 맞으며, 검을 안아 들고 무릎꿇은 소녀는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의문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생각을 말의 형태로 바꿈으로써, 그 일련에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어째서 버려졌는가.

 

  "모르겠어. 그래도, 그냥…"

  

  스스로도 놀랄 만큼 떨림이 잦아든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그에 놀라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납득했다. 놀라야 할 이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유일하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그 사람이 그냥 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배웠으니.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설령 정말로 버려졌다고 한들, 상관없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그 사람을 향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마음먹어도 괜찮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냥 그렇게 마음에 그리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서로 편안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그 사람을 얼마나 원하는지 그 사람은 몰라도 된다. 그저 소중히 마음을 지니고 있자.

 

  소녀는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껴안고 있던 검을 근처에 살포시 놓아둔 뒤,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손끝을 뻗어 검은 연기를 차츰 피워냈다.

  

  속으로는 같이 지내온 짧은 시간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이 그 짧은 시간을 더는 방해하지 않길 바라며.

 

  "기다리면 될 거야. 다시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거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그냥 기다릴게."

  

  온통 초록만이 가득한 한 이름 없는 숲.

  

  새하얀 소녀는 그런 이름 없는 숲 위로, 손끝에서 피워낸 검은 연기로 하여금 근방의 숲을 둘러쌌다.

  

  잠시 후, 숲에 걸려있던 그림자는 한층 더 진해져, 마치 검은 정원과도 같은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정원을 만들어낸 소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검을 끌어안고 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자신과 자신에게 상냥했던 사람. 둘만을 위한 검은 정원.

  

  

  

  

  나는 차가운, 그리고 무거운 그 감각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어린 마족이 마법을 쓰며 피워낸 검은 일렁거림이 보였다.

  

  환각을 의심하여 눈을 비볐음에도, 여전히 빼곡하게 드리운 숲의 그림자 밑으로, 한층 더 검은 그림자를 나열하여 손끝에서부터 짙은 어둠을 피워내는 새하얀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의 밑동엔 내가 두고 온 검을 둔 채로.


  멀리서 보기에 시리도록 무감정하지만 일견 편안하게도 보이는, 마법의 주인 되는 마족다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일상적으로 비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그 모습처럼 아찔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눈가가 꿈틀거렸다. 역시 마족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가.

  

  어린 마족을 바라보며 든 생각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돌리고 술병을 기울여,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을 마저 목 너머로 털어냈다.

  

  더 이상 흐르지 못하는 술병을 말없이 내려보다가, 눈앞에 있는 나무의 땅 밑을 파묻어 주었다.

  

  이로써 그녀의 장례를 마쳤다. 지금도 눈앞에 있는듯한 그녀의 죽음에 이를 악물자 더 이상 비워내지 못하는 마음이 울렸다.

  

  여태껏 그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뒤집어써 죽어간 동료들의 넋을 달래는 삶을 살아왔다.

  

  동료들의 죽음의 원인이 나였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해 결국 그녀의 넋마저 기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것이 내 삶의 의미였었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은 거라곤 하나뿐이지.'

  

  뇌리를 스친 생각에 나는 자연스레, 마법을 마치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안한 모습으로 햇빛을 받으며, 휘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어린 마족을 바라봤다.

  

  정확한 위치를 아는 게 아닌 이상에야 유심히 살펴봐도 눈치챌 수 없는 거리였기에 시선이 들킬 염려는 없었다.

  

  당장 어린 마족과 내 사이에 있는 나무만 수십 그루이니, 이 정도면 아무리 중얼거려봤자 들릴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수준이다. 목청껏 소리 질러도 간신히 들리기나 하면 다행이겠지.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내가 맺은 소중한 인연은 전부 내 옆에서 죽지 않았던가.

  

  정녕 그들을 위한다면 그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가끔 소식을 듣거나 다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 이상 발걸음을 떨어트리지 못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술병을 묻은 땅 근처에 몸을 뉘이고, 움직이지 않는 몸에 회한을 섞어 거리낌 없이 중얼거렸다.

  

  "…왜 안 가는 거냐. 응? 어린 마족아. 왜."

  

  내 곁에 있는 것은 전부 나로부터 떠나가므로, 어린 마족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단걸 알아채자마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빌려온 검을 남기고 곧장 도망쳤다.

  

  어린 마족을 죽이라 소리치는 환각을 억누르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챙긴 술을 황급히 머금은 뒤 어린 마족의 곁으로부터 더 멀리, 재빨리 도망쳤다. 

  

  몸에 남은 상처에선 일말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정신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를 죽인 것이 어린 마족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내 정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증오스런 마족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미련을 끝내 버려내지 못하고 일말의 아쉬움까지 느끼고 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각이 불러 일으킨 아쉬움이 어린 마족을 죽일까 두려워 도망친 것이다.

  

  상관없다. 결국 그녀를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환각에 시달리던 나였으며,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저 어린 것이라도 나로부터 지켜야 했기에.

  

  "목숨을 연명시켜 준다고 약속해 버렸으니."

  

  하지만 어린 마족을 두고 차마 홀로 숲을 빠져나갈 순 없었다. 그 편이 어린 마족에게도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린 마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나를 대신해서라도 먼저 떠나주길 원했건만."

  

  떠나야겠단 생각만 하고,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걸 보니 모르는 새 어린 마족에게 정이라도 차고 넘칠 만큼 들은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내 것도 아닌 빌려온 검을 주고 왔겠지.

  

  물론 그 검이 쓰일거라 예상했던 상황과는 달리 제 역할을 잃고 베개처럼 껴안아지고 있는 신세긴 하다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저 어린 것까지 내가 봐온 마족들처럼 피로 얼룩진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어릴 때부터 검을 휘두르는 삶이라니, 그딴 걸 누구에게 자랑하겠다고. 그딴 삶은 살아선 안 된다.

  

  "적어도 나보단 더 좋은 삶을 살거라 믿겠다."

  

  아예 이대로, 저 어린 마족이 인간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마족이 생명을 해치는 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리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어린 마족의 시선으로부터 혹시를 대비하기 위해 나무 위로 몸을 숨겼다.

  

  

  

  

  어린 마족은 내 믿음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내겐 다행일 따름이었고, 어린 마족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허나, 오히려 너무 배신하지 않아서 문제였다.

  

  "부디 먹을거리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다오."

  

  숲에서 표류한 지도 어느새 어언 이주쯤이 되어갈 무렵.

  

  어린 마족은 아직껏 마법을 사용한 그곳에 드러누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숲의 일부를 뒤덮는 대규모의 마법을 쓴 만큼 그 반동이 닥친 줄 알았건만, 그 또한 아니었다.

  

  저 어린 것은 의도적으로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햇빛과 바람결을 맞으며 흔들리는 풀들과 나뭇잎들 사이로 잠을 청했고.

  

  이따금 몸을 일으킬 때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검은 연기를 빨아들일 만한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려는 움직임 따위는 보일 기색도 없었다.

  

  그저 눈을 뜨고 감는 것만이 하루의 전부이니,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이틀 되는 날에 뿔이 달린 괴물의 사체를 어린 마족이 잠에 든 사이에 던져주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어린 마족의 표정은 어렵게나마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화색이 돌았다. 분명 같은 무표정이었을 텐데. 어째선지 그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어린 마족이 내 존재를 완벽히 눈치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이 확신이 되던 일주일, 그날부로 어린 마족은 껴안고 자던 검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차라리 만족하기로 한 나는 억지로나마 웃어 보였다. 그야 그렇겠지. 잠에서 자고 일어날 때면 먹을거리가 하나씩 생겨나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맨날 이대로 하루를 낭비하게 하는 것보단 어딘가에서 책이라도 가져다주는 게 낫겠군."

  

  나 또한 그날부로 더는 우연을 가장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족의 생존을 돕기 시작했다. 애초에 숨기려던 정체를 들킨 시점부터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 외엔 죄다 의미가 없는 짓거리니.

  

  그런 미련을 버리고 어린 마족으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어지럽히는 미증유의 감정 탓에 어린 마족의 곁을 떠나지 못해 모습 없이 숲속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짐승이 주위를 돌아다니면 함정과 조악하게 만든 화살로 부상을 입히거나 해치웠고, 추위가 매서운 밤이 올 때면 나뭇잎을 엮은 담요를 잠에 든 사이에 두고 오는 식으로 건네줬다.

  

  함정 수십 개를 주위에 깔아둘 때쯤이 되어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내 행동이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제정신은 아니군. 내가 앓는 광증이 그런 종류의 광증이었던가.

  

  하지만 그런 짓거리도 여기까지.

  

  "이왕 가져오는 것, 최대한 많이 가져오마. 어차피 오늘로 마지막이니."

  

  이젠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그 말로써 어린 마족에게 건네던, 들리지 않을 당부를 마치고 나무에서 내려와 술병을 파묻은 그 나무를 향해 간단한 목례를 보냈다.

  

  "…갈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좋은 징조다. 적어도 그날 이후, 환각이 내 마음을 파고들진 않는다는 증거이니. 

 

  최소한 숲을 떠날 때, 어린 마족이 그녀를 죽였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저 어린것에게 살을 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진 않으리라.

  

  나는 나뭇가지에 걸어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린 마족이 누워있을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예상의 한치도 빗나가지 않고, 어린 마족은 싱그러운 수풀 더미 위에 내가 두고 온 검과 함께 누워있었다.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도시에서 며칠, 숲에서 다시 이주. 그동안 어린 마족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지금의 어린 마족에겐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없을 뿐.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럴 능력은 그동안 충분히 가르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존재를 눈치챘음에도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점이 특히나 그러했다. 그새 많이 교활해졌군.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라."

  

  먼저 인간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 이상 자연에선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물론 그 결과는 내가 있든 없든 변치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내가 있다간 더 빨리, 그리고 덧없이 죽을 뿐이겠지. 그 죽음마저 버텨낼 이성은 내게 없다.

  

  그러니, 어린 마족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 내가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함께 보내지 않은 이 주간 그럴 위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내가 옆에 있는 한 어린 마족이 죽는 것은 확정이요, 내가 옆에 없다면 죽을지 살지는 어린 마족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딴 생각으로 또 마음이 흔들리다니, 그녀의 죽음을 떠나보낸 지도 이 주가 되었건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몸을 뒤척이지도 않고 잘도 누워있는 어린 마족을 마지막으로 흘깃 쳐다본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새 익숙해진 길을 따라 걸어가려 했다. 어린 마족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기 위해선 해야 할 게 많았으므로.

  

  덩굴을 엮어 만든, 지금도 손목에 감고 있는 줄에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리했을 것이다.

  

  나는 표정을 지우고 잠시 기억을 더듬어 진동의 방향을 파악했다.

  

  숲의 입구 쪽이다. 그중에서도 도시와 가까운 방향.

  

  나는 그 진동을 전혀 반가워하지 않으며 진동의 출처 될 곳을 향해 소리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나무에 인사를 하고, 풀을 즈려밟고, 햇빛을 만끽하며 바람의 초대를 받아들였을까. 목가적인 금속의 냄새와 오래된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감돌기 시작했다.

  

  주위에 널린 나뭇잎을 몸 위로 흩뿌린 나는 억센 나뭇가지 위에서 이질적인 모습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기억하기론, 이름이 없었을.

  

  그저 그런 흔해빠진 숲의 안쪽을 향해 다섯 정도 되는 사람들이, 단순한 산책이라기엔 과하게 경직된 태도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굳건한 대열과 뚜렷한 목적을 갖춘 듯한 걸음걸이에,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버릇이 되어버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로 간에 신뢰는 있으나 사적인 그것에 가까우며 무장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숲의 초입부터 긴장과 함께 발을 들였으나 당황하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용병이군. 괴물이라도 잡으러 오셨나."

  

  금속과 비릿한 냄새를 가진 여럿이 숲의 안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오탈자 지적,,, 언제나 환영,,, 그리고,,,

생일인데,,, 실례가 안된다면 개추 하나만 부탁해도 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