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씨...왜 이렇게 춥냐.”

 

슬슬 추워지는 가을.

 

남들과 다르게 애매한 시기에 군대를 간 탓에 2학기에 복학을 했다.

 

주머니에 손을 꼽고 거리를 거닐며 잠깐 과거에 잠겼다.

 

이제 막 군대를 전역한 23살.

 

나에게 군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그 이유가 누군가의 괴롭힘이나 군대 내의 부조리 같은 게 아니었다.

 

문제의 요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 즉, 나에게 있었다.

 

난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아주 가끔씩 머리 위에 숫자가 적혀 있는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이 숫자의 의미는 그 사람이 언제 죽는 지 남은 날짜를 의미한다.

 

이게 초등학생 때는 숫자가 뭘 의미하는 지 전혀 몰랐다.

 

점차 커가면서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고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한 건 군인 때 였다.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모자랐던, 아니 확실하게 못 났던 동기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 애의 머리위에 숫자 30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30일 뒤에 자살 소동으로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다른 동기들은 안타까워 하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난 달랐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죽음이었다는 생각이 군 생활 내내 맴돌았다.

 

내가 조금만 그 애를 챙겨줬어도, 하다못해 죽지 말라고, 자살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소리를 했다면 달랐을까.

 

“...아.”

 

-냐옹.

 

아직 군인 물이 덜 빠져서 옛 생각을 하며 거닐다가,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동시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검은 고양이의 머리위에 25란 숫자가 적힌 까닭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은 사람, 동물을 가리지 않는다.

 

쭈구려 앉아서 손을 내밀자 쪼르르 달려와 내 손에 자기 얼굴을 비빈다.

 

길고양이 치고 애교가 넘치는 녀석이다.

 

이런 놈이 어쩌다 25일 뒤에 죽는다고 선고를 내린걸까.

 

“에휴, 배가 많이 고픈 것 같네.”

 

고양이는 제대로 먹지 못 했는지 삐쩍 말랐다.

 

“기다려봐. 근처에서 뭐라도 사올게.”

 

주위 편의점에 들려서 참치캔을 하나 사왔다.

 

고양이에게 주자,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녀석 참 잘먹네. 근데 미안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 뿐이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생활하기 빡빡한 대학생이란 신분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는탓에 생활비가 정말 빠듯하다.

 

이미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 명목으로 주는 용돈.

 

더해서 대학 등록금까지 부모님이 내주시고 있다.

 

그러면서 귀한 자식이라고 대학 다니면서 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님이다.

 

나도 염치가 있지. 다음주 부터는 알바를 해서 내 생활비는 내가 벌 생각이다.

 

“잘 있어.”

 

고양이에게 작별인사를 건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분.

 

생각보다 고양이를 본 장소와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

 

가끔씩 고양이를 발견하면 뭐라도 사줘야겠다.

 

#

 

다음 주.

 

난 돈 벌기가 얼마나 빡센지 실시간으로 체험중이다.

 

“여기 고기 1인분 더 주세요!”

 

“네! 금방 갑니다!”

 

오전, 오후 빡빡히 채워진 수업을 끝내면 대학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한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서 대충 저녁을 떼우면 정시에 고깃집에 도착한다.

 

저녁 시간, 그것도 번화가에 위치한 고깃집은 알바생에게 정말 지옥이라 말해도 부족하다.

 

눈, 코 뜰 새없이 고기를 옮기고 굽고 주문을 받는다.

 

“유성아, 10번 테이블에 고기 5인분 가져다줘라.”

 

“알겠습니다.”

 

여기서 일한지도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서 얼타다가 한 소리들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군인 때 듣던 에이스 소리가 어디가겠나.

 

적응은 금방 끝났다.

 

쉴 새없이 움직이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약간의 숨 돌릴 시간이 생긴다.

 

불금이라 그런지 여자와 남자가 같이 있는 테이블이 많이 보인다.

 

다들 즐겁게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난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온 몸은 땀범벅에 고기냄새가 뼈 속까지 스며든 것 같다.

 

“일은 좀 할만하냐?”

 

“아, 사장님. 이제 적응 완전히 끝났습니다.”

 

사장님이 인상 좋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실제로도 좋은 사람이다.

 

겉모습은 곰 같아서 내면은 따뜻하다.

 

며 칠 일하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 일 끝나면 고기 한 덩이 들고 가. 내일 쉬는 날인데 든든하게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일은 힘들어도 사람이 좋다.

 

사장님 말고도 같이 일하는 알바생들도 하나 같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것 덕분에 몇 달은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이제 마감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네.”

 

자리에서 일어나 바쁜 일터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가게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져 있다.

 

술에 진탕 취한 남자 손님과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걸 알바생들이 말리고 있고.

 

“아, 씨발! 손 한 번 잡았다고 그러기냐?”

 

“하, 난 분명히 밥만 사준다고 해서 따라왔거든요? 근데 이건 말이 다르잖아!”

 

“저기, 일단 진정하세요...”

 

음, 가게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볼 수 있는 진상 손님이다.

 

술에 취해서 앞 뒤 분간 못하고 날뛰는 유형의 인간들.

 

“손님, 치정싸움이라면 밖으로 나가세요.”

 

“아, 씨. 넌 뭐...야...? 아니, 무슨 깡패야?”

 

“알아들으셨어요? 너네들은 자기 할 일들 하러가. 내가 알아서 할게.”

 

“네엡!”

 

진상손님들은 보통 사장님이 나서서 대처하는 편이다.

 

곰 같은 덩치에 두꺼운 팔뚝. 거기에 화룡정점으로 문신까지 보여주면 웬만해선 정리된다.

 

이럴때만 사장님은 일부러 팔뚝 문신을 드러낸다.

 

본인 말로는 젊었을적의 실수였다고 후회하고 있는데, 지금 보면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아, 진짜 씨발. 야, 다신 내 눈 앞에 띄지 마라. 진짜 뒤진다.”

 

“손님? 계산은 하고 가셔야죠?”

 

“아, 쳇! 내가 왜 돈을 내야하는데!”

 

“손님? 야, 이 씨발새끼야!”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상 남자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무시하고 잽싸게 가게에서 도망쳤다.

 

“하아...”

 

사장님은 골이 아픈지, 머리를 집고 천장을 보고 있다.

 

그러고는 슬쩍, 남은 여자쪽을 쳐다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산하고 가실거죠?”

 

“저, 돈 없는데요? 애초에 저 남자가 사준다고 해서 왔다고요. 아니였으면 여기 올 일도 없었어요.”

 

“그러면 잠시 이쪽으로 오세요. 도망갈 생각말고.”

 

사장님은 여자를 휴게실로 끌고 갔다.

 

이걸로 한 바탕 소동은 마무리 되고 평소와 같은 가게의 분위기로 조금씩 돌아갔다.

 

나도 그에 맞춰서 다시 바삐 움직였다.

 

밤 11시 30분.

 

가게에 손님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알바생들도 이젠 갈 시간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봐요!”

 

“고생하셨습니다.”

 

저 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하나, 둘 빠져나갔다.

 

오늘의 마감당번은 나다.

 

가게를 청소하고 있자니, 휴게실로 들어간 사장님이 궁금해졌다.

 

진상 소동이 있은 뒤로 휴게실은 굳게 잠겨져 있고 사장님은 한 번도 홀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설마...망가에서나 보던 그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 갈만하다.

 

여자애는 생긴 건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걸 넘어서 눈이 자꾸 갈정도로 예뻣다.

 

처음 남자와 싸우고 있을 때는 배알이 꼴렸었다.

 

겉보기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너무 났었기 때문이다.

 

근데 진짜로 안에서 둘이 뭘 하고 있는거지?

 

“...하아..진짜 이걸...”

 

“제가 몸으로...”

 

휴게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하지?

 

당장이라도 경찰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저 여자애는 우리 가게에서 10만원치나 먹고 배째라고 하는 상황이다.

 

저 여자애가 잘못이 있긴한데 그걸 몸으로 갚으라고 하는 건 좀...

 

홀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길 몇 분.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하아...진짜 골이 아프네. 왜 이런 사람들이 있는 지 모르겠어...”

 

사장님이 세상이 떠나가라 한숨을 쉬면서 여자와 같이 나왔다.

 

“이름이 이수아 라고 했었나? 이제 가라. 다음부턴 이런짓 하지 말고. 알았지?”

 

“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아, 너도 이제 그만 가라. 오늘 수고했다.”

 

“사장님...”

 

뭐라 말이라도 건내고 싶었지만, 사장님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피곤한지 어께가 축 쳐져서 터덜터덜 의자에 앉았다.

 

“가보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그래, 냉장고에 고기 한 덩이 꺼내서 들고가.”

 

“넵.”

 

휴게실로 들어가서 사물함에 유니폼을 걸어두고 원래 옷을 입었다.

 

문득 나오는 중에 사장님의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가족처럼 보이는 와이프와 귀여운 딸이 찍혀있는 가족사진이 걸려있ㄷ.

 

이 사진 말고도 어디 여행가서 찍은 사진과 자식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혀져 있다.

 

나한테는 여기가 고작 용돈벌이 정도의 일터지만, 사장님은 생업이다.

 

그래서인지 가게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다.

 

평소에 하는 말이 자기는 죽을 때까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한다.

 

가게를 나오니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친다.

 

“으앗! 여기서 뭐 하세요?”

 

피곤한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가자니, 웅크려 있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여자 쪽에선 대답이 없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네.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내 눈에 들어와선 안 되는 게 보였다.

 

웅크려 있는 여자의 머리에 서서히 숫자 30이 생겨났다.

 

이, 이게 무슨...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동기가 죽은 뒤로는 사람에게서 보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 평소의 나 였다면 자기일도 아니니까 무시하고 갔겠지.

 

그러니까 도망치려고 했다.

 

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고 오랫동안 얼굴을 알던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이 여자를 도와줄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대놓고 있으면 어쩌라고.

 

집 앞에서 굶주리고 있는 고양이도 신경쓰여서 매일같이 밥을 주는 요즘이다.

 

하나도 인연이 없는 동물한테도 신경이 쓰이는데 사람은 덜 신경쓰일까?

 

절대로 아니다.

 

“저기요, 거기서 뭐하세요? 오늘 날씨도 추운데 계속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