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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의 죽림 깊숙한곳에 숨겨져있는 영원정.


평범한 사람이라면 영원정에 도달하기는 커녕, 나가는 출구마저 잃어버린채 한참동안 길을 헤매는 장소였지만.


이미 과거에 수십, 수백번이나 들락날락거린 나에게 있어선, 그저 길이 조금 복잡한 뒷산 정도의 느낌이었다.


인간 마을에도 있는 병원을 납두고, 굳이 어렵사리 찾아오는데는 그만한 실력의 의원이 있다는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끔씩 있는 토끼들의 안내를 받아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이곳에 도착했음에도, 나는 문앞에서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장소에 두번다시 오고싶진 않았다.


마주치기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 라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볼일 없는 이유일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지만.


인간 마을에서 치료를 받으면 한달이 걸릴것을, 이곳의 의원에게 받으면 보름이면 나을 수 있었으니.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모두들 영원정에서 치료를 받고싶어할테고.


이곳에 오길 꺼려하는 나또한 오랫동안 일을 쉴수는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이곳을 찾아온것이었다.


그래, 이젠 진짜 들어가야지. 그런 몇번째일지도 모를 다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장지문에 손을 갖다대려던 그 순간.


드르륵- 소리를 내며 손을 대지도 않은 장지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을 연것은 다름아닌 영원정의 신의라 불리우는 백발의 의원.





과거의 기억과는 다르게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틀림없는 야고코로 에이린이었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채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재회하게 된것에 다소 놀랐지만.


그녀가 기시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척을 했다.


중요한것은 어째서 그녀가 문밖으로 나온것이냐, 였으니.


그저 볼일이 있어서 나온것이라면 상관이 없었지만, 나의 기척을 느끼고 수상한 사람으로 인식을 한것이라면 곤란했다.


치료는 커녕, 보다 큰 문제가 생길수도 있었기에.


부디 전자이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고 있었을때.


"환자인가요?"


야고코로 에이린이 답을 알려주었다.


비록, 언제나 밝은 미소로 따뜻하게 반겨주었던 기억속의 그녀와는 정반대의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오히려,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았다는것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것같은 그 모습에, 마음속으로 깊이 신께 감사드리며.


마치, 오늘 처음보는 사이인것처럼.


그저, 아픈 몸을 이끌고 치료를 받기 위해 위험천만한 미혹의 죽림을 헤매며 겨우 도달한 환자를 연기했다.


조금 차가워진 인상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녀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을 전생의 모습과는 키도 외모도, 많은곳에서 차이가 있었으니.


그녀가 아무리 달의 현자라고 불리우는 존재라 하더라도, 전생의 모습과 겹쳐보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훑어보는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칠때면. 어쩐지 모든것을 들킨것만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마음속 쓸데없는 불안감을 간신히 지우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태연한척 연기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아니면 그저 죽림에서 길을 잃은 미아인가요?"


"... 환자입니다. 어깨쪽 인대가 늘어난것같습니다."


"인대가 늘어난거라면 인간 마을에 있는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지 않나요?"


어쩐지 환자를 받기 싫어하는 그 모습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으니.


내가 죽은 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환자를 가려 받는 성격은 아니었을터.


조금 차가워진 모습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의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


...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달까지 의뢰를 마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빠르게 어깨를 치료해야만 했으니.


이곳에서는 그녀의 비위를 맞춰줘서라도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다음달까지 끝내야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빠르게 인간마을에서 진료를..."


"에이린님은 신의라 불리우는 의원이시잖습니까."


"신의... 인가요."


"에이린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걸까.


"... 알겠습니다. 들어오세요."


잠깐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원정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고민을 하고있던 그녀의 입가가, 조금이지만 웃고있었던것을.













*     *     *



다소 리스크는 있는 행동이었지만, 역시 그녀에게 진료를 받은것은 정답이었다.


고작 몇분밖에 걸리지 않은 진찰후 약을 주는 모습에, 나는 조금 의심을 했었지만.


마시자마자 금방 통증이 사라지고 움직이기 편해지는것을 느끼자, 그녀의 실력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약은 하루치 드릴테니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드시면됩니다."


"하루요?"


고작 하루치 밖에 되지 않는 약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의원이라고 하더라도, 고작 하루만에 부상을 치료할순 없을터였으니.


"이 약은 특별한 약재의 특성때문에 매일매일 새로 달이지 않으면 효능이 반감되기에, 보름간 매일 이곳에 오셔서 약을 받아가셔야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이라니..."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더라도, 인간마을에서 몆시간이나 걸리는 이곳에 매일마다 오는것은 아무리 그래도 부담이 있었다.


팔을 쓰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의뢰를, 영원정을 왕복하느라 못하게 된다면 본말전도였으니.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느라.


집중을하며, 긴장을 느슨히하던 사이에 날아온 질문에.


"여기까지 오시는 길을 헤매는것이 걱정이라면, 안내역을 붙여드릴순 있습니다만."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나는 아무런 의심도없이 즉답을 했다.


"흐응... 그런가요?"


아차, 하며 실수를 깨달을 틈도없이.


"다른 사람들은 십중 팔구 길을 잃어버리는 미혹의 죽림인데." 


약을 전부 봉투속에 집어 넣은 에이린은.


"당신은 그것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시는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신기하다는듯이, 자줏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뒤늦게 실수를 했다는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제가 원래 길을 찾는데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실제로 전생에도 토끼의 도움없이 영원정을 드나드는 몇몇의 인간들이 있었으니.


나도 그런 인간들중 한명인것으로 해두면 그녀도 더이상 캐묻지는 않을것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약을 매일 받으러 오는것도 문제는 없겠네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끝내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딴지를 걸려했지만.


"그리고, 이건 지불하셔야할 약값입니다."


그녀가 요구한 금액을 보자, 내가 방금전까지 했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걸 깨달았다.


한달치 수입을 훌쩍 넘어선 금액은, 안그래도 부상당한탓에 수입이 적은 지금의 나에게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으니.


더군다나 매일 영원정을 왕복하느라 드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다른 부업으로 돈을 마련하는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당히, 당황한걸로 보이네요."


여전히 차가운 자줏빛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던 에이린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인간마을에 있는 병원에 가라고 말했는데."


몇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것은 알고있었으나, 이정도로 가격이 올랐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정도면 정말로 인간마을에서 치료를 받는것이 나을정도였지만.


"설마 이제와서 사지않겠다, 라는 말씀은 안하시겠죠?"


싱긋 미소를, 그렇지만 전생에 보았던것과는 정반대의 차가운 미소를 지은 그녀에게.


나는 도저히 약을 사지않겠다는 말을 입에 담지못했다.


하지만, 약값을 지불하기에는 버겁고, 더군다나 영원정을 왕복하는 시간도 부담이 되었으니.


이곳에 온것을 후회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에,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지불하려던 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지불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녀는 내가 지불해야할 금액이 적힌 종이를 도로 가져갔다.


"관심있으신가요?"


"다른... 방법이요?"


"아랫사람의 장래를 너무나도 걱정하시는 분을, 어쩔 수 없이 속이는 일이에요."


그녀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달의 공주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의 성격이라면 에이린의 미래를 걱정할 오지랖 넓은 성격이긴 했지만...


그녀를 속일 정도의 일이 전생에도 있었던가?


궁금증도 잠시, 그녀는 서랍에서 새로운 계약서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계약서를 본 순간, 여태까지의 노력이 무색하게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으니.


계약서에 적혀있는것은 다름아닌.


[연인 계약]


가짜로 그녀의 연인 역할을 해내야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의심을 사게되더라도, 그녀를 도왔던 경험을 살려 조수를 하는것이 나았기에.


"저에겐 너무 과분한 일입니다. 차라리 허드렛일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했으나.


"제 연인 역할, 잘 하실거같은데."


돌연, 그녀답지 않게 말을 끊는 태도와.


"할거지?"


그녀의 의미심장한 끝말 때문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