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今日も セリアちゃんの 配信 見に来てきてくれてありがとう! じゃ、みんな またね!]

[ - 오늘도 세리아를 보러 와줘서 고마워! 그럼 다들 안녕! ]


매번 들어왔던 아웃트로와 함께 화면이 까맣게 바뀌고.

그 화면에는 내 얼굴이 비추었다.


"아... 끝이다."


빡빡 머리를 밀어버린 예비 굳건이가 말이다.


"씨이이바아알.... 2년을 어떻게 버텨...!"


난 모니터에 앉아, 내 방을 둘러봤다.


내 방은 나의 최애 버츄얼 아이돌, 세리아가 온통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벽에 걸린 다키마쿠라 커버부터, 진열장에는 아크릴 스탠드와 커플 키링이 놓여있고.

신의상이 나올 때마다 사둔 코스튬과 세리아의 손가락 하트 쿠션.

PC는 세리아의 커스텀 케이스이고, 장패드부터 키보드까지 전부 세리아의 상징색인 화이트 민트.

마시는 물이 담긴 컵도 세리아의 굿즈이고, 내가 잘 때마다 베개 옆에 놔두는 것도 세리아의 캐리커처 인형이다.


하지만, 이 방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벽 강화유리 액자에 아스테이지 세 겹으로 세심하게 마감해 걸어 놓은 세리아의 팬싸인.


아마 저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일 거다.


'세리아가 내 첫 팬아트를 받고 일본에서 한국까지 보내온 팬사인이니까...."


세리아는 단순히 내 최애를 넘어, 내 피 말리는 학창 시절과 입시부터 독립을 하고 20대 초반의 암흑기까지 함께해준 수호천사다.


나는 세리아가 니코니코 동화에서 평청자가 3명일 때부터 봤던 초창기 세리스너*(팬네임)였고, 단 하루도 그녀의 방송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취미를 넘어 커미션을 꽤 받는 그림쟁이인 덕분에, 세리아에게 팬아트를 잔뜩 그려주며 여러 커뮤니티에 홍보를 다니기도 했고, 그 덕분에 약간 세리아의 떡상에 기여를 했다는 근자감이 있기도 하다.


물론 세리아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방송을 했기 때문에 컸지만.

이제 세리아는 버츄얼스타라는 레이블의 구독자 십만 중형 버튜버가 됐다.


이제 정말 버튜버로서의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반면.... 나는 대한민국의 건아로 태어났기에 군대에 가야만 한다.

그것도 해군 기술병이다. 아버지가 해사 출신의 진해 사나이이셔서 해군 안 가고 육군이나 공군 가면 호적에서 파버릴 거라고 하셔서 그렇다.


그래서 난 앞으로 2년동안 세리아와 이별을 해야 한다.


고독하고 끔찍한 시간이겠지만, 언제나 마음 속에는 세리아만 기억할 테니까.

아- 물론 세리아 한정 휴대폰 케이스와 키링도 함께 말이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 뿐.


"제발 졸업만 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 있어줘 세리아...."


그런 욕심 아닌 욕심을 간절히 품으며, 나는 짜디 짠 소금바람을 맞으러 떠났다.




* * * * * *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그것도 2년 만에.

물론 중간 중간 정박할 때 집에 오긴 했지만, 아버지가 빽을 써서 날 계속 구축함에 태워버리는 바람에 이병 때 파병을 가고 1년에 2번씩 해상 훈련에 끌려가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육지 근무를 해본 기억이 없다.


아무튼 모든 게 끝났다.


"도비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옹~!"


침대에 누워 내 방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가 내 방이 많이 변한 느낌이다.

...내 굿즈들이 전부 어디로 갔지?


뭔가 이상해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자.


> 아들 오늘 엄마 계모임 가니까 저녁은 시켜 먹어~

< 엄마 내 방 치웠어?

> 응~ 잠시 짐방으로 쓴다고 창고에 놔뒀어~


......

전역 당일인데 좀 슬프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옛날이었으면 진열장을 살짝 건들기만 해도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쏟아냈던 내가, 지금은 굿즈가 창고에 처박혀 먼지를 방향제 대신 맡고 있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거다.


심지어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싸인마저 그냥 옷장 위에 방치되어 있는데도.


"치킨이... 아니라, 애정이 식었구나."


그렇다.

난 익스트림 세일링 시뮬레이션을 2년동안 하느라 정신이 마모된 것인지, 세리아에 대한 애정이 식어 있었다.

그야, 원앙 항해할 때는 휴대폰도 못 썼고. 상륙해서 휴가 나오면 지쳐서 디비 잠만 자거나, 맛이 가버려서 멍 때리기만 했으니까.


"설마 졸업은 안 했겠지?"


나는 아주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 유튜브를 켰다.

그리고 세리아의 채널을 봤는데.... 역시 많이 달라졌다.


아주 많이.


"...사, 사백만?"


구독자가 4백만이다. 뭔가 채널명을 착각해서 다시 봤지만, 세리아가 맞았고 배너도 세리아의 캐릭터 그대로였다.

약간 모델링이 리뉴얼되어 더 깔끔하고 세련되게 변하긴 했지만. 세리아는 세리아였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내 그림들을 썸네일로 써주고 있어...."


과거에 그린 수백 장의 팬아트. 그걸 한 장 한 장 라이브 썸네일로 써주고 있었다.


[ -언제나 예쁜 그림 그려주셨던 '세리마니아'님의 팬아트! ]

[ -오늘은 바이오하자드 2년만에 리트라이! 섬네일은 '세리마니아'님의 멋진 팬아트입니다! ]


트위터에는 항상 썸네일로 쓴 내 팬아트를 인용하면서 감사 인사를 적어두었다.


무언가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려고 하지만, 또 무언가가 엎질러져 차갑게 식어갔다.


세리아가 여전히 날 기억해주고 있지만, 난 세리아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으니까.


"너는 정말 착한 아이구나.... 보잘 것 없는 팬을 이렇게 기억해주고...."


고맙고, 또 미안하다.

오랜만에 세리아의 방송을 볼까 싶어 일정표 라이브를 키자.


"...세리아가 내한을 한다고?"


세리아가 속한 버츄얼스타가 브이온리라는 내한 행사에 참가한다.

오늘이 티켓 예매고, 행사 개최는 일주일 뒤.


새삼 세이라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실감이 된다.

...근데 내가 이렇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있나?


"머뭇거릴 틈이 없다!!!"


티켓 예매부터 해야 된다.

내 최애였던 세리아는 물론, 한국의 최대의 버튜버 행사가 될 이번 이벤트를 놓칠 수 없는 법.


오랜만에 오타쿠의 혼에 영혼에 깃드는 기분이다.




* * * * * *




"햐.... 일산 와보는 것도 4년 만이네."


오랜만에 맡아보는 일산의 공기는...


그냥 춥다. ...1월인데 뭘 바래.


브이온리는 버츄얼 유튜버 분야만을 유일하게 다루는 공식 동인 행사였다.

행사장은 전시관과 부스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데, 파오운이 안 생기는 게 놀라울 정도의 인원이다.


그들 중에는 오시*(최애)의 코스튬을 입은 코스어들도 보이고, 각종 굿즈로 완전무장한 버츄얼 전사도 보인다. 그래도 대부분은 나와 같이 평범한 차림의 오타쿠들이다.


4년 전인 2019년도만 해도 한국에서 알려진 버튜버는 키즈나 아이 뿐이었건만.

이제 버튜버는 하나의 서브 컬쳐 문화에서 거대한 축을 차지했다.


이 무수한 인파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뭐 얼리어답터의 특권 의식 같은 걸 느끼는 게 아니라, 동족이 늘어나서 행복한 정도다.


나는 다른 곳은 둘러보지 않고, 곧바로 세리아 부스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한국에 세리아 팬이 이렇게 많아졌어...."


세리아의 인삿말과 오리지널 곡이 재생되는 디스플레이. 여러 굿즈와 세리아의 코스프레를 한 코스어들.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등신대까지.


수많은 세리스너들이 세리아의 부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어째서 인지 감격스러워서 다가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한국의 세리스너 여러분! 버츄얼스타 1기생 세리아입니다! ]


"아......."


용기를 내어 다가가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세리아가 발음 하나 세지 않는 완벽한 한국어로 인사해주고 있다.


전시관의 모니터에는 내가 없던 2년 간의 방송에서 나온 레전드 클립들이 하나하나 재생되고 있고, 세리스너들이 보낸 응원 문구들이 화면 가득 띄워지고 있다.


난 그곳에서 아련한 미소만 지으면서 전시관을 계속 돌고 돌았다.

그러다가 문득, 전시관 옆의 별관처럼 나뉜 테이블이 보였다.


"팬레터도 보낼 수 있네?"


타블렛으로 버츄얼 팬레터를 써서 세리아에게 보낼 수 있는 테이블.

그곳에도 수십 명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 차례가 될 동안 30분을 쭉 기다려서 테이블에 앉았고.

타블렛이 놓인 그곳의 팬을 쥐었다.


그곳의 행사 도우미는 친절하게 가이드를 알려주었다.

나는 시간을 잡아 먹더라도, 특별한 팬레터를 보내기로 했다.


"오오? 그림 그리시는 건가요?"

"아, 네. 괜찮을까요?"

"네! 다른 분들도 팬레터에 팬아트를 같이 그리시거든요. 대신 다른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만 그려주세요."


나도 시간을 오래 잡아 먹으며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오랜만에 팬을 잡아서 그런지 약간은 어색했지만, 필압을 조절하다 보니 선화로 보이는 그림체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렇게 5분 남짓이 흘러 가벼운 스케치를 끝냈을 때.


"저... 혹시 세리마니아님 아니세요?"

"네?"


뒤에 서있던 대기자가 내 그림을 보고 묻는데, 나를 아는 눈치였다.


"이 그림체, 아무리 봐도 세리마니아님이신데요?"

"어......."

"오오-! 세리마니아님 맞으시네 이 분! 그 고대 세리스너!"

"진짜네? 그림이 딱 유튭 썸네일에서 보던 딱 그건데?"


솔직히 날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근처에 있던 세리스너들이 전부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팬아트를 많이 그리긴 했고, 초기에 대부분의 영업을 뛰긴 했지만.

내가 유명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세리마니아님 진짜 세리아 남편은 아니시죠?"

"으에? 예? 뭐요?"

"흐하핫! 그거 밈이에요! 밈! 하꼬 시절부터 혼자 세리아 팬덤을 키웠다고 이런 짤도 돌아다녔어요."


잔뜩 신난 세리스너가 휴대폰으로 짤을 보여주는데, 세리마니아라는 작은 기차가 세리아 팬덤이라는 큰 기차를 끄는 유머짤이다.


졸지에 유명인 취급을 받으니, 확 부끄러워진 마음에 팬이 잡히지 않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2년동안 못 해온 인사를 남기고 싶었는데.... 그냥 라이브 드로잉 쇼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세리마니아님 다음 썸네일도 기대하겠습니다!"

"아... 예에..."


결국 팬아트만을 남긴 채, 나는 세리아의 부스를 줄행랑 치듯 도망쳐 나왔다.

아싸 기질이 다분한 나였기에, 살갑게 구는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게 거북했던 탓이다.


"후우... 이제 얼굴도 다 팔렸으니 더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네."


약간 아쉽지만, 오랜만에 세리아를 보았으니 목표는 달성한 것과 같다.

그러니까....


"흠흠.... 다른 부스도 조금 돌아볼까?"


나는 살짝 외도를 해보기로 했다.

진짜 세리아의 남편도 아니고, 버츄얼스타의 후배 기수들도 안면을 터야 할 것 아닌가?


이 정도는 세리아도 이해해줄 거다.

아마도....




* * * * * *




"지갑아 미안해...."


결국 터-얼려 버렸다!

버츄얼스타가 역시 일본 최대의 버튜버MCN인만큼 내 취향을 저격하는 버튜버들도 많았다.


그 덕분에 지름신이 강림하여, 굿즈만으로 에코백 두 개를 꽉 채워버렸다.

지갑은 장렬히 사망해버렸으나. 커미션으로 메꿀 수 있는 타격이다.


즐거웠던 행사도 끝났으니, 이젠 슬슬 집으로 가야 할 타이밍이지만.

하루 종일 싸돌아 다닌 탓에 뱃가죽과 등가죽이 딥키스를 하고 있다.


"씁.... 이 근처에 순두부찌개 잘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안 망했겠지...."


그렇게 킨텍스 전시장에서 조금 멀어져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도중.

등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콕콕 찔렀다.


"あのー。。。"

(저기이...)

"응?"


뒤를 돌아보자, 마스크를 쓴 여성이 무언가 난처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다.


"地下鉄に行くにはどちらに行けばいいですか?。。。"

(지하철을 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아...."


일본에서 온 관광객 같았다. 지하철 역이 어딘지 모르고 헤매는 중인 것 같은데....

뭔가 묘하게 익숙한 분위기다?


"うええ。。。 私韓国語が下手なので。。。"

(으에에... 제가 한국어는 잘 못하는데...)

"大丈夫です, 日本語できますから。"

(아 괜찮아요, 일본어 할 줄 알거든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그녀를 안심 시켜 줬다.

오타쿠의 공용어이자 일본 외주의 필수 항목인 일본어를 내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녀는 내가 일본어를 할 줄 알자, 눈매마저 화사하게 풀릴 정도로 반색을 띄었다.


"다, 다행이네요! 한국어는 전혀 할 줄 몰라서 길을 묻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역은 저 건너편 길목 쪽에 있거든요. 먼 길을 돌아다니실 뻔했네요."

"저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괜히 민폐를 끼쳐버렸네요."

"전혀요. 근데 혹시 그쪽도 브이온리 참가하셨어요?"

"에...? 그걸 어떻게...."


나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챘다.

고대 세리스너이면서, 세리아 남편이라는 밈까지 보유한 골수팬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혹시 그쪽...."

"그... 그게... 수, 숨기려던 건...."

"그쪽도 세리스너이세요?"

"에-"


나는 핸드백에 달린 세리아 키링을 보고 그녀도 세리스너인 걸 알아챘다.

머나먼 타지까지 덕질을 하러 오다니, 그것도 현지 언어 실력도 백지인데 말이다.


"일본에서 한국까지 오시다니.... 팬심이 대단하시네요."

"그... 그렇죠? 네에...."

"오늘 부스 대단했죠~ 정말 세리아가 이렇게 한국에서도 유명해질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어어... 그으... 대단했어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제가 역까지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오세요."


같은 세리스너의 곤경을 지나칠 수 없기에,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자청했다.

게다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지 않겠는가?


이런 게 다 애국이다 애국.


그렇게 여성 세리스너와 함께 역으로 가는 걸어가는 동안에도 세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거리가 짧은 게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3호선 대화역에 도착하자, 세리스너는 고개를 푹 숙이며 일본인 특유의 감사의 제스쳐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안내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같은 세리스너인데요."

"아하하...."


그렇게 팬덤 사이의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던 도중, 세리스너는 내가 든 에코백을 흘깃 쳐다보더니 묻는다.


"그... 들고 계신 건 오늘 사신 굿즈인가요?"

"아, 이거요? 그냥 맘에 드는 걸 골라보니 이렇게 과소비하게 됐네요."

"그래요? 어떤 걸 사셨는지 봐도 될까요?"

"뭐, 안 될거 없죠?"


그렇게 에코백을 살짝 들춰 내가 알뜰하게 쇼핑한 굿즈들을 보여주었다.


"세리스너인데, 정작 굿즈는 후배들 것만 잔뜩 사버렸네요... 하하!"

"......."

"그쪽도 사신 게 있는.... 저 표정이 안 좋으신데, 괜찮으세요?"


방금까지 미소가 가득했던 여성 세리스너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녀는 내 에코백에 손을 넣어 들추고, 또 들추더니.


촤아아악-!


아예 에코백을 내 손에서 뺏아 들고 바닥에 쏟아버렸다.

나는 그 무서운 기세에 눌려 화조차 내지 못하고, 그녀가 쏟아진 굿즈들을 뒤적거리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굿즈들을 뒤지더니.


"하아아......."


한숨을 쏟아내며 일어나 시선을 마주쳤다.

매서운 눈빛이 나를 마치 죽일 듯이 노리고 있었다.


"나 당신을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


그녀가 낮은 음성으로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는 차가운 한기 서려, 듣고 있는 내 목줄을 조이는 갑갑한 느낌이다.


"더 재밌게 방송도 하고, 매일매일 전달도 빼 먹지 않고 꾸준히 하고, 새로운 모델이랑 신의상도 당신의 취향으로 맞추고, 보컬이랑 댄스 레슨도 피가 날 정도로 해서 라이브 무대도 열었는데....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이 부족했길래. 어떤 점이 만족스럽지 않았길래. 당신이 떠나버렸나 했더니...."

"......"

"제가 아닌 다른 아이들을 좋아하게 됐던 거네요. 그런 거였네요, セリマニアさん。(세리마니아 님.)"


그렇다.

2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고.

내 최애의 목소리마저 잊어버릴만큼 짧은 시간이다.


"팬레터 잘 받았어요. 다음 방송에서 답해드릴게요. 남편 씨."


내 눈 앞에 서 있는 저 여자는, 내가 화면 너머로 사랑하던 나의 최애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지하철 계단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최애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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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가기 전에 오시에게 꼭 입대를 알리는 스피챠를 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