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곳곳에서 방어사 이연길이 이끄는 5천의 군사가 오랑캐를 막아섰으나 모두 대패하였고 도리어 사로잡혀 중군 최진현과 함께 목이 베였사옵니다. 체찰사 신영만이 3백의 잔병을 데리고 겨우 퇴각하였고, 평안도의 나머지 군사들은 완전히 고립되어 문을 잠그고 각지 성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라 하옵니다.”

 

지난해보다 차갑고 습한 동짓날의 남한산성 별궁에 사람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울린다. 대륙과 가장 가까운 조선의 땅인 평안도에서 온, 피와 검댕으로 엉망이 된 갑옷 차림의 전령이 가쁜 숨을 추스르며 최선을 다해 비보를 전한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금군이 열어준 정전 문으로 또 한 명의 전령이 땀을 흘리며 달려오고 임금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번에는 허리에 황해도 지방군, 황해감영의 기가 매여 있다.

 

“황해감영에서 아뢰옵니다! 지난날 자정 즈음 인근 봉화가 기능을 멈추었고 후금의 ‘두르친 얀순’이 이끄는 최소 5천의 호적(오랑캐 적군)이 평양을 지나 한양을 향해 쾌속 진군하고 있다는 급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평안도의 군사들이야 급습에 패했더라도, 평양감사 임경업과 평양감영은 질주하는 적을 바라보기만 했다는 말인가? 방어사 이연길의 반격을 돕지 않고 성안에 틀어박혀 제 안위를 챙긴 것이로다.”


“평양감사 임경업은 4천의 군사를 온전히 보존하여 휘하에 거느림에도 불구하고 호적(오랑캐 적)을 방관하여 종묘사직과 조정을 욕되게 하였사옵니다. 전란이 강토를 휩쓰는 이 시기에 평양감사의 행적은 용납할 수 없는 불충이요, 무관으로서 적을 두려워하여 군신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렸으니 그는 역적이옵니다! 평양감사 임경업의 목을 베어 어명의 근엄을 세우소서!”


“평양과 함경도에 금부도사를 보내 이들의 불충을 엄히 다스려야 하옵니다!”

 

어김없는 삼사의 반응. 조정은 임진년의 전쟁에서 그러했듯 도성 안팎의 모든 존재를 두고 몸을 피했다. 임진년에는 남방의 왜적을 피해 여름에 북쪽으로, 이번에는 북방의 여진을 피해 겨울에 남쪽으로 향했다는 점. 그리고 이번의 피난에는 한양의 온 백성들이 임금의 초라한 도주를 목격했다는 차이 뿐. 큰 전란이 끝난 지 이십 해가 더 되었지만 이 나라의 조정은 궁성의 기왓장 하나조차 변하지 않았다.

 

사헌부와 비변사의 관리들은 정작 백성들과 강토를 유린하는 오랑캐가 아닌, 적을 막지 못했거나 적에게 패해 쓰러지고 버티다 못해 퇴각한 아군에게 분노를 돌린다. 지난달 국경이 허망하게 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혔다는 전갈이 한양에 닿자마자 이들은 집안의 재물과 노비들을 강화도로, 남쪽의 전라도와 경상도로 내려보냈다. 

 

이들의 한심한 자태에 누군가 뿌드득, 하며 이를 갈고는 목을 들어 외친다.

 

“사헌부는 말을 삼가시오! 평양감사가 성 밖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적들이 원하는 바임을 모르시오? 4천 군사는 평양성을 수비하기에도 모자란 숫자요! 고립된 우리 군사에게 식량이고 화약이며 작은 손조차 보태지 못하면서 아군의 장수에게는 어찌도 그리 가혹하신가! 그들은 동짓날 엄동설한에 모닥불조차 피지 못하고 성벽에 기대 있네만!”

 

참다 못해 임금의 앞에서 소리를 내어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은 정2품 병조판서, 김얀붕이었다.

 

“경들은 부디 그만하시오! 임경업에 대한 처사는 전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소.”

“도성에 잔류한 장졸들과 백성들의 상황은 어찌하며, 궁에 대한 소식은 있는가? 과인은 이곳에 닿은 이래 한양에 대한 소식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하였다. 또한 호적이 국경을 넘었다며 보고가 전해진 지 약 한 달이 되었거늘, 어찌 승전보를 전하는 장수가 아무도 없는가? 승전보는 고사하고 적의 본대에 척후는 들어오지 않으니, 과인은 그저 북방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가여울 뿐이다.”

 

임금은 별궁의 초라한 용전에 앉아, 힘이 없는 손짓으로 대관들을 침묵시키고 병조판서를 바라본다. 그는 이 개탄스러운 상황에서 이성적인 충언을 주저 않는 유일하면서도 삼정승 육판서 중 가장 젊은, 그런 고관이다.

 

“병판의 생각은 어떤가? 과인은 경의 솔직한 내심을 가감없이 듣고 싶소.”

 

“이는 필시 후금의 선봉대가 우리의 군사를 무시하고 질주하여 공포를 전이하려는 얄팍한 혼전계이옵니다. 북방의 남은 군사들이 반드시 저들의 허리를 칠 것이니, 중앙과 지방의 군사들을 모아 오랑캐에게 천하의 질서를 보여주소서. 충청도와 경상도의 군사들이 출전 준비를 마쳤사오니, 원군이 이곳에 곧 당도할 것입니다.”

“또한 후금은 우리 조선과 명나라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므로 어느 한곳에 힘을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명국의 천자께서 기거장군 송얀진을 새로이 대원수로 삼으시어 천하의 성흥을 도모하시니, 한 차례의 고비를 넘기면 임진년의 지난 은혜를 갚을 기회가 들어옴은 분명한 일이옵니다.”

 

병조판서 김얀붕은 한 발짝 조심스레 나온 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고한다. 어딘가에서 츳,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사헌부 관리들의 방향에서 들려오지만 임금은 그런 무례를 지적하고 자신의 체통을 세우기에 일국의 군주로서도,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이미 지쳐 버렸다. 김얀붕은 눈을 부릅뜨고 삼사의 한심함에 치를 떨지만, 신하된 자로서 주제넘게 이 이상으로 소리를 키울 수는 없는 노릇.

 

임금은 한숨을 내쉰 뒤, 잠깐의 고민 끝에 새로운 어명을 내린다.

“병조판서 김얀붕은 들으라. 그대는 도원수 김자점과 함께 훈련도감, 수어청, 총융청 등 경군 2만을 이끌고 성을 떠나 출병하라. 원수부를 갖추고 절도사를 내려보내어 남부 지방의 군사를 모아 반격을 준비하라.”

 

김얀붕은 하루 아침에 남한산성을 떠나 전장으로 향하게 되었지만 도리어 열정에 찬 모양으로 무릎을 꿇고 대들보가 떨어져라 외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도원수와 함께 기필코 얀순과 후금을 쳐부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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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직전 리포트 쓰다가 한 번 끄적여 봤는데... 어때?

작편에는 경험이 없어서 자신이 별로 없다. 글이 좀 이상하거나 용어가 구어라 어려운가? 니들의 솔직한 의견은 개선에 도움이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