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A4용지가 회사의 영공을 지킨다는 듯이 하늘을 날고 있다.

 

 

“ 아니 보고서가 이게 뭐야! 당장 다시 해와! 이거 통과할 때까지 오늘은 퇴근 못할 줄 알아! ”

 

 

수많은 A4용지를 이륙시킨 파일럿은 오늘도 부하직원을 갈구는 서 팀장이었다.

 

 

“ 서 팀장님 오늘도 활활 태우시네... ”

 

 

“ 그러게요. 저렇게 화만 내시면 화병 같은 거 안 생기시나? ”

 

 

“ 야 근데 저 둘이 입사 동기 아니야? 맨날 저렇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갈구는데, 송 주임 마음 좀 썩히겠는걸? ”

 

 

“ 뭐 어쩌겠어요. 동기라도 직급이 다른데. 근데 선배님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경영지원팀 김 주임이랑 기술지원팀 박 주임이 사내 연애하는 거 같다는데요? ”

 

 

“ 오? 처음 들어보는데?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

 

 

“ 제 동기가 출장 갔다가 회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는데요. 거기 식당에서 김 주임이랑 박 주임이 같이 밥 먹는 걸 봤데요! 그날 그 둘은 출장 같은 것도 없었다는데요? ”

 

 

“ 흠. 둘이 다른 팀이라 서로 겹칠 일도 없고. 보통 따로 밥 먹을 텐데. 그리고 굳이 회사 멀리 있는 식당까지 가서 같이 밥 먹은 건 이상하긴 하네. ”

 

 

“ 그쵸? 사내 연애 안 들키려고 일부러 회사 멀리 있는 식당에서 합류한 다음에 같이 밥 먹은 거 같죠? ”

 

 

“ 옛날 생각나네. 나도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내 연애하는 걸 안 들키려고 일부러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갈구고 그랬는데. 커피 같은 거 타오라고 시킨 다음에 한입 마시고 맛이 왜 이러냐고 얼굴에 뿌리고 그랬지. ”

 

 

“ 오.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사모님인가요? ”

 

 

“ 아니. 사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곧바로 경찰서로 끌려갔지. 다행히 합의를 해주더라고. 그날 이후로 그 회사에서 잘리고 지금 여기 회사로 오게 된 거야. 이 이야기는 지금 내 마누라는 모르니까 비밀이다? ”

 

 

( 이딴 새끼도 결혼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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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고. 길거리에서는 가로등 불빛에 따라 나방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사무실 안은 여전히 한낮이었다.

 

 

“ 송 주임. 보고서는 아직 멀었나? ”

 

 

“ 다했어요! 지금 바로 드릴게요! ”

 

 

“ 음 이번꺼는 마음에 드네 잘했어. 내 결제용 도장이 어디 갔더라? ”

 

 

“ 여기 있네요. 제가 찍을게요. ”

 

 

송 주임은 파티션 구석에 굴러다니던 도장을 집고, 보고서를 들고 있는 서팀장에게 거리를 매우 좁히며 가까이 다가가더니. 


찍으라는 도장은 안 찍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 아니 보고서에 도장 찍으라니까, 왜 내 입술에 도장을 찍는 거야? ”

 

 

“ 그치만... 오늘 종일 참았는걸! 더는 못 참겠어! ”

 

 

송 주임은 서 팀장에게 어린아이처럼 안겨 왔고.

 

 

“ 헤헤...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러고 싶었어... ”

 

 

서 팀장은 익숙하다는 듯이 자신에게 안겨 온 어린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 그래... 오늘도 참느라 수고했어... ”

 

 

“ 있잖아. 우리 사귀는 거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해? ”

 

 

“ 아마 결혼할 거 아니면 끝까지 비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사내 연애하는 걸 들키면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이 생길걸? ”

 

 

“ 결혼? 그럼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내가 싫은 거야? ”

 

 

“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직 아무런 준비도 안 됐잖아?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그리고 결혼 같은 거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

 

 

그때. 사무실 출입구에서 보안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야! 야! 누구 왔다! 떨어져! 떨어져! ”

 

 

서 팀장은 급하게 송 주임을 떨쳐냈다. 

 

 

“ 어 뭐야. 자기 아직도 퇴근 안 했네? 불이 켜져 있길래 들어와 봤어. 근데 얘는 왜 바닥에서 뒹굴고 있어? ”

 

 

둘만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불청객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 어느 중년의 여성이었다.

 

 

“ 안녕하세요 박 실장님. 직원교육 중이었습니다. ”

 

 

“ 어머~ 자기 너무 무섭다! 요즘 직원 이렇게 험하게 가르치면 큰일 나!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럴까? ”

 

 

“ 이놈이 워낙 일을 못 해서 말이죠. 저도 골치 아픕니다. 하하. ”

 

 

“ 죄송합니다. 저도 잘해보려고 최선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

 

 

바닥에서 방금 막 일어난 어린아이가 말을 꺼내자.

희미한 줄만 알았던 중년 여성은 색채가 진해지며 짙어지더니.

 

 

“ 높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거 아니다? 어디서 배운 사회생활이야? ”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펼쳤다.

 

 

“ 죄송합니다. 박 실장님. 제가 다시 교육 시키겠습니다. ”

 

 

“ 자기가 왜 죄송해~ 요즘 애들이 싸가지가 없는 거지. 근데 자기 요즘도 열심히 운동하나 봐? ”

 

 

박 실장은 자세를 바꾸며 팔을 위로 들더니, 서 팀장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 와~ 탄탄한 거 봐. 근데 운동 너무 많이 하지 마. 여자들은 너무 우락부락한 몸매는 싫어해. ”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주무르던 손이 점점 쓰다듬는 손으로 바뀌는 박 실장이었다.

 

 

“ 그냥 운동하는 게 좋아서 하는 거예요. 오신 김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

 

 

서팀장이 커피를 주겠다는 구실로 자리를 회피하자, 다시 주변의 색채가 옅어졌다.

 

 

“ 아니야. 나이 먹어서 그런가 요즘 커피만 마시면 머리도 어지럽고 밤에도 잠이 잘 안 오더라고. 자기도 지금부터 관리 열심히 해. 나처럼 되지 말고. 그럼 난 퇴근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 예 들어가십쇼. ”

 

 

기운도 없이 흐리멍덩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들어온 여성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사무실에서 나갈 때에는 마치 충전이라도 한 듯이 기운찬 모습으로 낭랑하게 사무실 밖을 나갔다. 

 

 

“ 저분은 누구야? 처음 보는 분인데. ”

 

 

“ 박얀진 실장이라고 내가 전에 있던 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인데, 얼마 전에 여기로 왔더라. ”

 

 

“ 근데 이런 말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나쁘게 듣지는 말고 저분... ”

 

 

“ 계속 나 툭툭 건들지? 전에 있던 부서에서도 그랬어. ”

 

 

“ 너도 눈치를 챘구나? ”

 

 

“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몸을 계속 곁눈질로 스캔하더라고. 내가 모를 줄 아나 봐. ”

 

 

“ 그냥 적당히 선 긋고 하지 말라고 말하지 그랬어. ”

 

 

“ 안 해봤겠어? 예전에 최대한 돌려서 말해본 적 있는데, 남동생 같아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친누나같이 행동하는 게 마음에 안 드냐고 그러던데. 근데 저 사람 남동생 없는 거로 아는데. ”

 

 

“ 그때 좀 더 세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그랬어? ”

 

 

“ 뭔가 크게 집적거리는 것도 아니라서 세게 나가기도 좀 그래. 괜히 세게 나갔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 수도 있잖아? ”

 

 

“ 그렇다고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은데... 박얀진 실장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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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던 꿀벌 한 마리가 여태까지 모은 모든 꿀을 들고 책상 앞에 섰다.

 

 

“ 서 팀장님. 오늘 드솔컴퍼니 갖다 줄 산출물이랑 자료들 준비 다 됐습니다. ”

 

 

“ 수고했어. 난 이제 나가봐야겠네. ”

 

 

“ 앱! 조심히 갔다 오십쇼! ”

 

 

“ 아. 그래도 거래처 방문하는 건데, 팀장인 나 혼자만 가면 가오가 사나? 부하직원은 한명 데려가야지. 나랑 같이 드솔컴퍼니 갈 사람? ”

 

 

“ 어... 저는 지금 옆 부서 지원 나가봐야 합니다. 선배님 시간 되시나요? ”

 

 

입에 초코바를 우물거리며 분주하게 키보드 타자를 치던 일벌 한 마리가 더 빠르게 타자를 치며 하며 말했다.

 

 

“ 나 지금 해야 할 일 있는데. 오전까지 빨리 끝내야 해. ”

 

 

“ 뭐야. 그럼 나랑 같이 갈 사람 없어? ”

 

 

“ 송 주임님은 지금 할 일 있으시나요? 없으시면 송주임님이 가실래요? 아니면 옆 부서 지원 취소하고 그냥 제가 갈까요? ”

 

 

“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갈게요. 저 지금 급하게 할 일 없어요. ”

 

 

“ 좋아 송 주임, 운전할 줄 알지? ”

 

 

“ 저 면허 없는데요. ”

 

 

“ 아니! 지금까지 면허도 안 따고 뭐 했어! 회사생활의 기본이 안되어있네! 기본이! 나 보고 지금 운전이나 하라는 거야! 뭐야! ”

 

 

늘 그랬듯이 완장을 차고 있는 일벌 한 마리가 꿀벌 한 마리를 갈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

 

 

( 또 시작이시네... 진짜 이 회사 때려치울까? )

 

 

오늘도 마음속 한켠에 쌓아두는 사직서 한 장이 늘어나는 김얀돌 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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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아스팔트 주차장 위를 걸어가는 두 사람. 

 

 

“ 드라이브 오랜만이다! 그치? ”

 

 

“ 무슨 드라이브야. 그냥 거래처 가는 건데. ”

 

 

“ 그래도 같이 차 타고 어디 가는 건 저번에 바다에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잖아? ”

 

 

“ 그게 벌써 두 달 전인가...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도 진짜 오랜만인 거 같네. ”

 

 

“ 진짜 지금 단둘이서만 있네...? ”

 

 

송 주임은 거리감을 좁혀가며 점점 서 팀장에게 기대어 가는데.

 

 

“ 자기~! 어디가? 출장 가는 거야? ”

 

 

“ 얌마! 어디 감히 건방지게 뒷좌석에 타려고 그래! ”

 

 

또 다시 나타난 불청객에 서 팀장은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어린아이를 그대로 넘어트렸다. 

 

 

“ 얘는 또 바닥에서 뒹굴고 있네... 웃긴다 얘. ”

 

 

“ 건방지게 뒷좌석에 앉으려고 해서 매너 교육 좀 시켰습니다. 지금 드솔컴퍼니로 출장 가는 중입니다. ”

 

 

“ 드솔컴퍼니? 잘됐네! 나 거기 근처에 볼일 있는데 좀 태워주면 안 될까~? ”

 

 

“ 당연히 되죠. 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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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 운전석에는 서 팀장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박 실장, 뒷좌석에는 송 주임이 앉아 있다.

 

 

“ 면허도 없는 거는 좀 심하네. 이 나이 먹도록 면허도 안 따고 뭐 한 거야? 상사한테 운전시키는 게 맞는 거야? ”

 

 

“ 죄송합니다. 이른 시일 내에 취득하겠습니다. ”

 

 

“ 나 때는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근데 자기. 여기 휴대폰 충전기 있어? ”

 

 

“ 예 저기 기어봉 옆에 있습니다. ”

 

 

“ 휴대폰 충전 좀 시켜볼까나~ ”

 

 

라고 말하며 한참을 가만히 있던 박 실장은 자동차가 커브 길에 들어서는 순간, 몸을 기울여 기어봉 옆에 있는 충전용 선을 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었는데.

 

 

“ 아이고~ ”

 

 

코너링을 천천히 돌렸지만, 박실장은 전정 기능에 문제라도 있는지 몸을 주체하지 못했고, 서 팀장의 허벅지에 손을 짚어 쓰러질라 하는 몸을 지탱했다.

 

 

“ 아이고 커브 길이었네. 큰일 날뻔했어. 이거 미안해서 어째? ”

 

 

“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요 뭐. ”

 

 

“ 이야 근데 자기 하체도 열심히 운동 하나 봐? 저번보다 더 굵직하고 탄탄해졌네? ”

 

 

박 실장은 이제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허벅지를 조몰락거렸다.

 

 

“ 와... 히야... 오... ”

 

 

“ 저어... 운전에 방해됩니다. ”

 

 

“ 아~! 미안! 내 정신 좀 봐. 허벅지에 정신 다 팔렸네. 그럼 안전 운전 부탁해요~ ”

 

 

능구렁이 같은 중년여성의 플러팅.

당연히 상대방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뒤에 지켜보고 있던 한 여자는 

더더욱 좋아할 리가 없었다.

 

 

“ 근데 자기 목마르지 않아? 커피 한 잔 어때? ”

 

 

“ 저번에 커피 안 드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 그래도 아침에 일하기 전에는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집중이 잘되더라고. 한잔 안해? ”

 

 

“ 그러면 저기 카페 있으니까 차대고 송 주임 시키겠습니다. ”

 

 

“ 난 남자가 가져다주는 커피가 그렇게 맛나더라~ 부하직원 시키는 게 맞긴 하는데. 한번 갔다 와주면 안 될까? ” 

 

 

“ 아 그럼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

 

 

“ 여기 내 카드 줄게. 내가 사는 거다?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 난 아바라로 부탁해~ ”

 

 

“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

 

 

차를 카페 주차장에 대고 카드를 챙겨서 분주히 자동차 밖으로 나가는 한 남성

그 남성의 뒷모습을 박 실장이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 진짜 딱 5년만 젊었어도 한번 따먹는 건데 아쉽네. 진짜 맛있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한입이라도 못 먹나. ”

 

 

“ ..... ”

 

 

“ 아 맞다. 뒤에 너 있었지. 내가 한 말은 이미 다 들었지? ”

 

 

“ 예 그렇습니다. ”

 

 

“ 솔직해서 좋네. 너무 깊게 새겨듣지 마. 그냥 우리끼리 있을 때 한 이야기니까. 너도 여자니까 이런 대화 한 번쯤은 해봤은 거 아니야. 맞지? 괜히 머릿속에 담아뒀다가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이상한 상황 만들지 말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

 

 

“ 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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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꿀벌 한 마리가 주변에 말벌이라도 나타난 듯이 급하게 날라왔다.

 

 

“ 팀장님! 팀장님! ”

 

 

“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또 무슨 사고 쳤어? 아니면 드디어 우리 회장님이 인스타를 끊으셨데? ”

 

 

“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요. 이번에 인사 이동 뜬 거 봤어요? ”

 

 

“ 인사 이동? 지금 인사 이동 시즌 아니잖아. 갑자기 왜? ”

 

 

“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팀장님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던데요? ”

 

 

“ 뭐? ”

 

 

서 팀장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내망으로 올라온 공지를 확인해봤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기를 바라는 것인지 파일을 열어보면서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인사 이동 안내

 

서얀붕 팀장 ( 영업 관리 2팀 -> 사내복지관리부 )

 

박얀진 실장 ( 경영전략실 -> 기재물품관리부 )

 

 

위와 같음 

 

- 인사 행정실 -

 

 

 

*****

 

 

 

 

“ 사내복지관리부...? 여기가 대체 어디야? ”

 

 

“ 그러게요. 저도 처음 들어보는 부서인데. 근데 박 실장님은 갑자기 왜 기재 창고로 밀려나신 거죠? 그분이 벌써 팽 당하실 분은 아닌데... ”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공지를 읽어보는 그때

사무실로 저승사자같이 검은 정장을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 서얀붕 팀장님 자리가 어디인가요? ”

 

 

“ 여기인데요...? 제가 서얀붕 팀장인데 무슨 일이시죠? ”

 

 

“ 인사 행정실에서 나왔습니다. 공지는 보셨죠? 책상 옮기려고 나왔습니다. 지금 바로 사내복지관리부로 가셔야 합니다. ”

 

 

“ 지금 당장요? ”

 

 

검은 양복쟁이들은 책상에 달라붙어 책상을 들어냈고, 그냥 새로운 책상쓰면 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책상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양복쟁이들 중 한명은 서얀붕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서얀붕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다.

그에게 사내복지관리부는 처음 들어보는 부서였다. 애초에 이 회사에 복지라는 게 있었던가? 

 

 

서얀붕은 순순히 양복쟁이들을 따라 걸어갔는데, 희한하게 층수를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다가 계단으로 이동하던중. 14층과 15층 사이 계단에서 양복쟁이들이 일제히 멈추더니.

 

 

“ 여기가 사내복지관리부입니다. ”

 

 

“ 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

 

 

“ 그렇게 보이시겠죠. ”

 

 

양복쟁이 중 한명이 계단 벽 쪽에 있던 소화전을 두드리더니, 소화전에 있던 빨간색 비상벨을 살포시 눌렀다.

 

 

그러자 소화전의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열린 소화전의 내부는 호스랑 펌프는 온데간데없고 흰색의 빈 넓은 공간만이 있었다. 원래 쓰던 사무실보다 2배 정도는 커 보였다.

 

 

“ 이제 여기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책상은 여기다가 놥두죠. ”

 

 

새하얀 공간 한쪽에 책상을 내려놓은 검은 양복쟁이들은

이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 없이. 모두 일제히 빈 공간 외부로 나가버렸다.

 

 

서얀붕은 현재 상황이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 한명 없고, 오랜 회사 생활 동안 들어보지도 못한 부서에 발령받았으며, 처음 와보는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만 남았는데.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했다.

 

 

“ 대체 이게 무슨... 나 혼자서 여기서 뭘 하라고? 내가 왜 이런 곳으로 발령받은 거지? 내가 벌써 팽 당할 나이인가? ”

 

 

“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네? ”

 

 

어디에 숨어있던 건지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사람 한명이 서얀붕 옆으로 툭 튀어나왔다.

 

 

“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

 

 

“ 송주임? 아니 얀순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 상황이 지금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사내복지관리부?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인데? ”

 

 

“ 말 그대로야. 사내의 복지를 관리해주면 돼. 만족도를 높여주라고. ”

 

 

“ 나 복지 관련해서는 일해본 적이 없는데. 근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는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고? ”

 

 

“ 오늘부터 부장님의 전속 비서로 일하게 됐습니다~! ”

 

 

“ 비서? 부장? 그럼 나 승진한 거야?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어? ”

 

 

“ 있잖아 여기 부서는 오늘 새로 만들어진 부서다? 너는 여기 일에 대해서 잘 모를 테니까, 그냥 내가 시키는 일만 잘해주면 돼. ”

 

 

“ 여기서 뭘 하면 되는데? ”

 

 

“ 음 보자. 오늘 오전 일정은... 비서를 오전 내내 안아주기라고 되어있네! 그럼 오전 일과 시작할까? ”

 

 

“ 뭐라고? 그런걸 하라고? 그게 일이야? ”

 

 

“ 말했잖아. 복지의 질을 높이고 책임지는 부서라고. 안 할 거야? ”

 

 

“ 그럼 오후 일과는 뭔데? ”

 

 

“ 오후 일과는... 이거는 좀 힘든 일인 거 같은데? 오전 일과는 건너뛰고 바로 오후 일과로 넘어갈까? ”

 

 

“ 뭔데? 그럼 바로 시작하자. 나 지금 일하고 싶어. ”

 

 

“ 오후 일과는 출산 관련 복지제도 편성이네. ”

 

 

“ 복지 편성? 뭐하면 되는데? 대충 출산장려금 같은 거 금액 편성하면 되나? ”

 

 

“ 뭘 하긴 아기 만들어야지. ”

 

 

“ 어? ”

 

 

“ 설마 겪어보지도 않고 출산 관련 복지제도를 편성하려고 한 거야? 자격 미달이라고! 자! 그럼 일과 시작하자!!! ”

 

 

평생 자라지 않을 거 같았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눈 깜짝할 새에 다 자라버렸고. 이제 효?도를 실천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진심을 담아 보호자에게 돌려주려 하고 있다.

 

 

“ 아니 회사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 회사에서 이런 짓 하면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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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회사는 압도적인 복지제도와 육아수당 제공으로 취준생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기업 1순위로 뽑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