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

그녀는 분명히 전지전능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은 점도 존재한다.

완벽이란 모순적이게도 언제나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너무나도 고등한 존재기에.

미물들로 하여금 상상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존재기에.

그들이 가지고있는 '사회' 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구현해내지 않았다.


인간은 개미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위대한 존재도 인간의 생각을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얀순이가 구현해낸 세상은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할 뿐, 모든 것이 반복되거나 모순된다.


코트를 입은 남자는 매일 아침 7시 34분 57초에 전화를 받는다.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8시 4분 32초에 굽이 걸려 넘어진다.

어미를 잃어 눈물을 흘리는 꼬마는 9시 7분 24초에 부모를 찾는다.

그 모든 장면은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존재는 동시에 알고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이런 미물들의 사회는 학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보다 이 극장은 자연스러워질터였다.

아니, 자신의 무의식에 맡긴다면 완전히 그녀의 강림 이전의 모습로도 돌릴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따위는 무의미했다.

학습의 시간을 그저 조금 더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통제 아래 있어야만 했다.


이 미물들의 사회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 많았다.

소년은 아주 간단한 위협에도 바스라질 수 있었다.

수백년, 수천년, 어쩌면 수백만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 장면들.

그 모든 장면에서 학습한 위험들.

그 위험들을 모두 차단한 것이 지금의 반복되는 하루였다.


소년을 불사의 몸으로 개조하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소년 그 자체로서 있어야만 했다.

혼탁한 무언가가 섞여들어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소년의 무언가를 바꿔버릴 수는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변수도 용납할 수 없다.

그 어떤 혼돈도 용납할 수 없다.

그저 병속의 꽃처럼 서있기를 바란다.

영원히 변치않고 그대로 빛나주기를 바란다.

그저 영원히 함께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얀순이의 하나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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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골목을 지나가던 중,

어느새 얀진이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다행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자 얀진이는 바로 내 머리를 한대 치며 말했다.


"야! 뭐하다 이렇게 늦었어!"


"아니... 기껏해야 3분 늦었는데?"


"대체 세상 어느 누가 약속시간 딱 맞춰서 나오냐?

으유... 일단 어서 들어가자. 춥다."


"응."


그렇게 따라 들어간 카페는 역시나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도 나와 얀진이 말고는 아무도 없는 상황.

하다못해 점장마저 없는 상황.

왜 굳이 이런 곳을 골랐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장님이 안 계시나보네.

어디 잠깐 나가신 거 같으니까 기다리자."


"응."


일단은 얀진이의 손에 이끌려 앉은 창가.

그러나 얀진이는 나를 그렇게 앉혀두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사장을 찾으러 가는 걸까나.

만난다고 해도 뭘 하려는지는 잘 모르겠다.


"얀진이는 유능하니까 어떻게든 하겠지, 응."


그렇게 대충 넘기기로 생각하며 창 밖을 보자,

역시나 아침과 같이 맑기만 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점 없이 푸르른 하늘에 화창한 날씨.

늘 똑같이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


그런데 그때 창 밖에서 무언가 익숙한 옷자락이 스쳐지나갔다.

아주 잠깐 나타났다 건물에 가려진 하늘거리는 무언가.

그 모습에 순간 나는 모든 신경을 빼앗겨버렸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는데, 얀진이가 내 등을 두드렸다.


"야! 김얀붕! 너 뭐해?

창 밖에 뭐 꿀발라놨냐?"


"아냐. 그냥 뭔가 지나간 거 같아서..."


"간만에 단 둘인데 집중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자꾸 그러면 나 그냥 가버린다?"


"아, 미안해..."


뜻밖에도 제대로 화가 난 듯한 얀진이의 모습.

나는 갑자기 그렇게 변한 얀진이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가끔 이렇게 화내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내 잘못이 명확한 경우였다.

지금처럼 뜬금없는 경우가 아니라.


"미안하면 다야?

너 내가 챙겨준게 얼마인데...

그런 거 다 잊고 또 그 얀순이라는 애 생각한 거 아냐?"


"아... 아냐! 얀순이를 왜?"


"...흥."


그렇게 대답하고는 나는 침을 삼켰다.

얀진이가 원래 이런 아이였던가?

지금 모습은 얀순이를 질투라도 하는 모습.

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지 나와 얀진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여러모로 안 좋은 쪽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내 생각 안 했어?

이거 조금 서운할지도?"


"...어?"


"...하?"


카페의 문 바로 앞.

그곳에서 얀순이가 나에게 말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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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가 여긴 무슨 일로 온거야?

여기 사람도 별로 안 오는 곳인데."


"동네 길도 알아볼 겸 해서 돌아다니는 중이었어.
그러는 너는 무슨 일로 얀붕이랑 같이 있는데?"


"하, 친구끼리 단 둘이 놀러나가는 건 흔한 일 아냐?"


"그럼 잘 됐네~ 나도 얀붕이 친구니까 같이 있어도 괜찮지?"


"뭐?"


얀순이를 사납게 대하는 얀진이.

그러나 얀순이는 그런 얀진이를 당당하게 무시하고는 나의 옆에 앉았다.

그것도 바로 옆 자리에.

창밖으로 딱 맞게 비춰오는 햇살은 얀순이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얀붕아, 그래서 지난번에는 잘 들어갔어?

어디 아파보여서 걱정했단 말야."


"아냐, 별일 없었어.

그것보다도 지금 얀진이랑 같이 있는데..."


"말했잖아? 친구사이인데 뭐 어때~."


"그으게..."


그렇게 말하면서 얀순이는 뒤를 돌아 얀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얀진이의 표정은 분노에 차 있었다.

확실히 얀순이를 질투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었다.

일단 어떻게든 말ㄹ...


'퍼억!'


"...어머?"


"...얀..진아?"


"야이 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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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를 한 소녀의 분노에 찬 주먹.

그 주먹은 그대로 검은 머리의 소녀에게 꽃혔다.

그리고 동시에 공포에 질려 벽에 붙는 소년.

평화롭게 꾸며진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SAN치 붕괴 파트 진도 나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