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줘, 나를 말이야


그날 밤 난 꿈을 꾸었다. 세계의 끝 바로 위에 서있던 그 항구에서, 그 항구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던 따개비같은 그 집들에서 난 꿈을 꾸었다.


"너였구나."


꿈에서 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있었다. 변한 건 나뿐만이 아니고 또 내 방도 그랬다. 방은 물에 잠겨 있었다. 마치 아주 거대한 어항에 지구가 가라앉은 것처럼 방은 그러했다. 나는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흔들며 물속을 나아갔다. 목덜미라고 생각되는부분에서 아가미가 뻐끔거렸다. 거품이 내 아가미에서 물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이 모든 것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내가 작아진 것인지 방이 커진 것인지는 몰라도 방은 아주 거대했고 또 그만큼 많은 물로 가득차 있었다. 저기 먼 발치에서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 손잡이란 놈은 이 꿈 속에서도 언제나 나를 괴롭히려는 심산인듯, 언제나 잡아당겨 보고 싶도록 얄밉게 빛나고 있었다.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였구나."


또 그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또렷해져갔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아득함이란! 마치 어둑한 밤에 배에서 내려서 항구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무심코 뒤돌아 바다를 보며 저 멀리서 헤엄치고 있을 물고기들, 그러니까 다음날, 그리고 또 그 다음날에도 내가 잡을 고기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익숙하고 가까운데도 그것은 멀리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뻐끔거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하물며 당신이 지느러미가 있고, 아가미가 있으며 옷대신 비늘과 우둔함을 입는 그런 조그맣고 딱한 동물에 불과하다고 한대도 당신은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


그 목소리는 나를 찾는 듯 방 밖의 주위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너였구나."


라는 말만 반복했다. 목소리가 멀어지다가 갑자기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무력하게 뻐끔거리는 물고기를 누가 찾는 것일까. 누구든 좋으니 저 문을 열어젖혀 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그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이 인스머스에 물을 부었다. 파도가 저 아래 끔찍이 깊은 곳에서 기어올라왔다. 차가운 비는 파도를 반기며 걷는 이 없는 적막한 거리에 얼굴을 묻는다. 인스머스는 그런 물들의 애정 속에서 고요하게 흔들린다. 나와 함께 꿈을 꾸는 모두가 오늘은 이 흔들림 속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문이 열리자 나를 둘러싼 물들이 모두 그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복도는 물로, 층 전체가 물로, 그리고 그 보잘 것 없는 여관이 물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여관의 입구에서 그 목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까지 가려면 몇 번의 문을, 또 몇 번의 계단을 거쳐야 했지만 그런건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마치 원래도 물고기였던 것마냥 능숙하게 헤엄쳐 방을 나섰다. 문이란 문은 내가 다가가자 자리를 비켜주었고, 물은 애정있는 손길로 작은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나는 아무 걱정 없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관의 입구에서 그것을 만났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이 여관은 들어오자마자 로비의 카운터를 볼 수 있다. 카운터에선 괴팍한 영감이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동전 한 개에 웃고, 동전 한 무더기에 화를 내는(술 한 잔은 동전 하나로 충분하지만, 술 한 병은 동전 한 무더기로 충분치 않다!) 그런 영감이 지키고 있는 카운터의 옆에는 바다냄새가 진동하는 선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모여 술을 마신다. 그곳에서 모든 남자들은 술잔에 눈금을 그어놓고 술의 양을 까다롭게 측정하며,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호통을 치고 조금이라도 넘치면 은밀하게 미소짓는 영악함을 지녔더라도 술 한모금에 털어넘긴다. 만일 당신이 돈이 필요하다면 이 식당에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의 사내들은 자신들이 뭘 뿌리고 다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러나 꿈 속의 여관은 단지 물이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영감이 쓰던 명부, 눈금이 그려진 때탄 컵, 떨어진 동전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집어보았다. 잠깐, 집는다고? 언제부터 손가락이 있었던 것일까? 지느러미가 그리운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이 반갑지도 않은데. 사실 모든게 자연스럽고 포근한 이꿈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짜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그래, 이 말은 이미 하지 않았나? 그것을 만났다. 그것은 내가 식당의 낮은 의자에 앉아 떠오르는 컵을 붙잡고 들여다보고 있을때 갑자기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드디어 널 찾아낸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눈 앞에서 마치 해파리의 시체 같은 것이 기어왔다.

해파리의 시체를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어떤 것이든 동물의 사체는 그 자체만으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거실에 까는 카페트만한 크기라고 상상해보라! 꼭 구역질을 한 나만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리라. 그래, 나는 정말로 구역질을 하고 그 역겨운 것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컵을 던졌다. 던지고 나서야 그것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조리 역겨운 꼴이었고, 따라서 느긋하게 생각을 하고 난 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아파, 날 기억하지 못하는거야? 기억해줘."


기억해줘. 내가 그것을 내치지 못했던 이유다. 단지 그 한 마디가, 그 말에 대한 당혹감과 가물거리는 기억이 짜내는 답답함을 불러일으켜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혐오감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기억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기억해줘, 이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어렸을 적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직접 본다면 기억이 날까? 꿈에서 깨면 항구의 배무덤으로 찾아와. 그곳엔 어째선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멀쩡한 배가 하나 있었지. 난 그곳에 있어."


내 생각을 읽은듯 그것은 매끄럽게 내 생각의 단면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느껴졌다. 목소리가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배수구를 막던 뚜껑을 연 것처럼, 어떤 구멍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물이 빠져나가자 원래의 엄격한 모습으로 변한다.

나는 다시 물고기가 되어 빠져나가는 물에 떠있었다. 그 순간 마찬가지로 물 위에 떠있던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있다면, 그러나 분명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하겠지만 그것의 눈은 우주, 마치 그 목소리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담고 있었다. 


꿈에서 깼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인스머스는 간밤에 물과 함께 한바탕 춤을 추었다.


이제 날 에이런이라 불러다오.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인스머스의 사나이들


식당 이야기를 했었던가? 아침의 식당은 용감한 선원들 말고도 선장들(유치한 말장난인걸 인정한다), 

고기를 손질하는 사람, 목사, 그물을 짜는 사람..아무튼 온갖 인간들이 모여 시장과 같은 혼란함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럴때 인스머스의 노련한 사나이들은 어떻게든 틈을 타고 들어가 조촐한 식사를 즐기기 마련이다. 여행객 혹은 초짜들은 식사를 포기하곤 여관 혹은 호텔이라는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를 벗어나 짜디짠 인스머스로 발을 내딛곤 하지만, 십중팔구 곧 후회하게 된다. 어업이란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배를 잔뜩 곯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스머스에서 있을 수 있는 다른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다. 뭐든 결국은 허기가 그것들을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식사는 그날 그 사람들의 생명줄이다. 나는 익숙하게 조금 호쾌하게 생긴 선원의 옆을 비집고 들어가 아침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내가 말하자마자, 그 사내는 이렇게 소리쳤다. "이런, 에이런 블라인드 아니신가! 마지막으로 바다 위에서 본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군. 내 머리에 바닷물이 들어간건가, 아님 자네가 신발에 바닷물이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하는 얼간이가 된건가? 설마, 이 피니를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아, 이런. 내가 나스스로 노련한 인스머스의 사나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난 늙은 선원 피니 A.의 옆에 앉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배 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자부했고, 주변 사람들도 적당히 그것을 묵인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런 그에게 있는 최악의 단점은 바로..빌어먹을 수다쟁이라는 것이다. 그는 온갖 주제로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대화를 오래 이끌어나가려 하고, 그와 대화하는 사람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피로해진다. 


"여보게, 내가 자네가 젖먹는 꼬맹이일때부터 봤었지. 인스머스에서 그날의 자네만큼 어린 소년은 찾기 힘들거야. 이곳은 다큰 어른들만 사는 울적한 항구니까. 그러고보니 자네의 부모님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물어보고 싶군. 블라인드 씨는 아직도 작살을 만드는가?" 

그는 머릿속에 바닷물이 들어간게 분명했다. 짜고 맑은 색의 바닷물은(물론 항구에서 보는 바닷물은 아닐것이다. 이 인스머스에서 볼 수 있는 바닷물은 모두 이끼라도 낀 것처럼 기분나쁜 녹색이니까. 아마 그는 멀리까지 항해를 나갔던 어느날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다) 사람의 머리까지 희게 만든다. 그는 나의 부모님이 오래전 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피니 씨, 바닷물이 늙은 선원의 머리를 조금 적신 것 같군요.저희 부모님은 깊은 곳에서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니 피니 씨도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아침으로 나온 철수세미 같은 빵을 우물거리자, 피니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일들은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게."라고 덧붙였다. 나는 인스머스의 백과사전이라 자부하는 이 늙은 선원에게 어제 꾸었던 기묘한 꿈에 대해 털어 놓았다. 어쩌면 그는 해파리의 시체가 뜻하는 것이나, 배무덤에 자리잡은 멀쩡한 난파선에 얽힌 으스스한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턱을 만지며 말했다.

"해파리라? 그건 모르겠지만, 배무덤에 있는 배는 알겠네. 자네도 바닷물을 좀 조심하는게 좋겠군. 그 배는 유령선이네. 이 항구에선 유명하지. 그 배의 어딘가에 괴물이 산다고 해서 아무도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그 배 아닌가." 피니가 그 잔(눈금이 그어진 잔)을 들어 슬쩍 입으로 갖다 대며 한 모금을 삼키곤, 이렇게 물었다.

"그 유령선을 건드리려고 했던 어리석은 자들 모두가 끔찍한 최후를 맞았네. 모두 그 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거나, 부숴서 잔해라도 챙겨보려고 했던 것이지. 윌리엄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 그는 그 곳의 괴물을 찾고자 했던 무모한 자였지. 그는 폭풍우가 치는 밤, 기어코 괴물을 찾겠다며 그 소름끼치는 배가 있던 배무덤으로 홀로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어." 나는 어느샌가 모두들 아닌척 피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짠내 나고 의문스러운 구성만 있으면 된다. 종교와 미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세상, 선상에서 살아온 인스머스의 사나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란 마시지 않으려 할 수 없는 매혹적인 럼과 같다. 난 이런 주목을 받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삽시간에 불쾌감이 번졌다. 피니, 그 늙은 선원과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떠나야 했다. 그를 그대로 놔둔다면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일어서서 떠날때까지 이야기를 할 것이 뻔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피니 씨. 그런데 말이죠, 피쿼드 호였나? 당신이 승선하기로 했던 장기 포경선이 오늘 아침 8시에 출항하죠. 저도 승선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몇 년은 같이 지내게 될텐데, 애송이 같은 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가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주제를 꺼냈다. 피니는 예상대로 신나게 그 배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관심을 끄고 저들 할 것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난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모조리 무시함으로써 아침을 편하게 넘길 수 있었다. 사실 오늘 승선한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이것이 바로 노련한 인스머스의 사나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유령선을 향해서


잠시 후,  오전 10시경 나는 홀로 항구를 거닐고 있었다. 간단한 방식으로 피니를 따돌릴 수 있었다. 이 여관은 지붕이 꽤 넓고 낮은 위치로 경사가 쳐져 있어, 가끔 그 위로 올라가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지붕은 도둑들에겐 효과적인 피난처로 통하는 법이다. 뭐, 도둑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피난처에 한해선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피니는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는 듯 했지만, 바닷물이 머리에 찬 늙은 선원은 이 곳을 찾아낼 수 없었다. 피니는 짐을 가지고 체크아웃을 하러 카운터에 나온 내게 내가 보이지 않아 홀로 피쿼드호로 떠난다는 메모를 남겨 두었지만, 크흠. 글쎄....아마 그는 지금쯤 내게 속은 것을 깨닫고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9시쯤 나는 여관에서 짐을 꺼내 나왔고, 10시, 지금까지 항구를 돌아다니고 있다. 인스머스의 항구에 대해 내가 말했었던가? 아쉽게도 인스머스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못된다. 산더미같이 쌓인 비린내 나는 물고기들은 인스머스의 항구가 항상 붐비는 원인이자 결과이지만, 항상 풍족한 그물과 항구의 아름다운 전경을 맞바꾸기라도 한 것인지 바닷물은 녹색 더러운 빛깔로 흘러가고 날은 항상 흐려 해가 보이지도 않으며, 여러 가지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물고기의 사체 또는 녹조류가 흘러들어와 항구에는 온통 기분 나쁜 냄새와 마찬가지로 기분 나쁜, 그런 것들을 쪼아대러 온 더러운 갈매기들이 잔뜩 있는 음습한 꼴이 거의 매일 유지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항구 근처에 사는 인간들이리라. 그들은 특정한 거처 없이 그저 항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분 나쁜 딸꾹질, 아니면 기침을 하곤 한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사람들은 틀림 없이 놀라게 되는데, 바로 그들의 흉한 외형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물고기처럼, 두 눈이 양쪽으로 튀어나온 상태로 미간이 벌어져 있었으며 코가 이따끔씩 벌렁거렸다. 이런 꼴을 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놀라게 된다. 혹자는 '물고기를 너무 잡은 탐욕스러운 자들이 바다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 모두다. 인스머스에 사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무서운 존재가 이 인스머스 아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으니까. 이런 항구에 대해 더이상 무엇을 말하고 표현하랴? 따라서 나는 항구를 지나쳐 배무덤으로 가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며 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공들여 표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길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항구의 바닥에 떨어져 있던 미역 줄기를 밟고 넘어질 뻔 했을 때, 어느샌가 내 앞엔 그 뱃무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곳은 인스머스의 시내에서 온 선원들도, 항구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닮은 사람들도 가길 꺼려하는 곳이다. 이 곳에는 피니가 말했던대로 그 꺼림직한 유령선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에 방문하길 싫어하는 이유도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문득 그 죽은 해파리를 닮은 것이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기억해줘".... 어쩌면 나는 무엇인가를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이 바로 그것과 관련된 것일 것이다. 나는 유령선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괴물과 조우하다


유령선의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누군가 관리를 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는 정도라는 정리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 유령선이 사악한 노상강도들의 은신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며 조금 오싹해졌다. 나같이 인스머스의 사나이를 자처하는 사내도 노상강도 여럿을 한꺼번에 맞닥뜨린다면 손쓸새도 없이 칼에 베이고 말 것이다. 혹시 나는 개꿈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작은 배의 선실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들었다. 이 배는 상당히 작았다. 선상으로 나가기 전 그냥 뒤돌아 조금 걷기만 한다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잠깐 갈등하던 나는 결국 돌아가자는 생각에 힘이 실어졌고, 어쩔 수 없이 뒤돌아 서서 발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가?"


갑판 위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선실? 어쩌면.. 배 아래? 그 모든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레 달콤한 목소리가 들린다니, 유령선의 흉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빠르게 달린다면.. 저것이 나를 잡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생각보다 겁이 많았지만 결단력은 좋았다. 좋아, 달리도록 하자.


타다다닥- 헉헉헉.


"어디 가냐니까..? 넌 꽤 못된 아이구나. 겁도 많은 것 같고. 그럼 일단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것이 조금 볼멘소리로 웅얼거리는 것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다. '만난다'니, 소름끼치는 생각이 오만 가지도 넘게 내 뇌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빛이 새어나오는 선원용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발 조심해. 다치면 너와 나 둘 다 아주 슬플거야."


마지막으로 그것이 한 말과 함께,


우지끈.


배의 바닥이 무너졌다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상태로 배 아래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겁먹고 패닉에 빠진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완전히 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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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초자연적 존재가 집착하는 것, 꼴리잖아.

피폐한 내용이 많을 예정이라 다른 챈에 올리려다 근본적인 요소는 얀데레가 맞는 거 같아서 여기 올려봄. 첫글인데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