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아내한테 받은 시계


대공은 항상 양보하는 쪽이였어


대공의 사촌이 황태녀였기에 그녀는 항상 일부러 황태녀의 아래의 자리에 머물어야만 했지


한때나마 그녀 자신조차 그것을 당연시 여겼어


얀붕이를 처음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황태녀가 얀붕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만 바라본 대공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이유없이 두근거리고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였어


말한마디조차 나누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하지만 대공은 얀붕이조차 황태녀에게 내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고민했지


항상 양보만 했던 대공은 얀붕이를 본 이후로 바뀌었어


처음으로 그녀는 욕심이라는 것을 가졌지, 반드시 손에 넣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그녀를 계몽시켰어


그녀에게 있어 이제 얀붕이는 세계 그 자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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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딴 구구절절한 사연따위 얀붕이 입장에선 알게뭐람,


지금 얀붕이는 매우 어려운 선택에 기로에 놓여있었어


일단 생각보다 위험해보이는 대공의 행동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어쨌튼 딴 걸 다 떠나서 계산해보면 대공은 분명 좋은 아내감이였어


돈많아, 권력있어, 예뻐, 거기다가 순애보까지


겉으로만 들어난 스펙은 완벽했지


문제는 저놈의 집착과 아까 살짝 보인 사디스트끼


자칫했다간 다리만이 아니라 팔까지 잘라서 자신을 닉 부이치치로 만들어버릴지도 몰랐지


게다가 남자에 대한 배려따위는 없다는듯,


이미 자신을 더듬으며, 제 욕망을 숨김없이 발산하려 하고 있었지


"어딜만져, 어딜만지냐고!!"


스윗양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예비성범죄자 한녀충였다니, 실망감을 금치 못하는 얀붕이 


결국 이렇게 된 이상 탈출뿐,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지


그렇다면 남은건 창문뿐!


두부외상으로 죽나 과도출혈로 죽나 어차피 개죽음이라면 차라리!


얀붕이는 대공이 반응할 틈조차 주지않고 단숨에 창문을 수갑으로 깨버리고 밖으로 몸을 던졌어


4층짜리 호텔에서 머리부터 투신한 얀붕이


중력에 흐름을 맞기며 진정한 아티스트로 대뷔하려는 순간,


느껴지는 것은 충격대신 따뜻한 팔의 온기뿐이였지


정신을 차려 자신을 구한 은인의 얼굴을 처다본 얀붕이


형, 아니 누나가 거기서 왜나와?


얀붕이를 구한것은 다름아닌 황태녀였지!


두 사람간에 흐르는 것은 기묘한 적막감,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놀란 얀붕이가 다급히  머리 굴리는 소리뿐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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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녀는 우울함에 젖어 하루종일 술로 슬픔을 달래고 있었어


보다못한 가신들이 밖으로 산책이라도 하라고 등을 떠밀어 나가게 되었지


그러다 우연히 주변에 사람들이 잡담하는 것을 들었어


"아니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 죽었다는 공자가 저쪽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허허, 이사람 또 허풍은, 어떻게 죽었다는 사람이 살아 돌아와서 노래를 불러?


지옥에서 가수로 데뷔하기라도 했냐?"


황태녀의 귀에 들린것은 감히 자신의 얀붕이를 가지고 함부로 떠드는 것이였지


귀족모독죄로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한 찰나,


믿지못할 얘기가 또하나 들려왔지


"아니 그래도 그런 미인은 처음봤다니까? 


게다가 머리가 은발인데 햇빛을 받으니 살짝 금빛으로 빛나더라고,


귀족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처음봤다니까!"


"쩝, 자네가 본게 죽은 공자는 아니여도 대단한 미인인건 사실인가 보구만"


그말에 황태녀는 순간 찬물을 맞은듯 술이 확 깨는 기분이였어


얀붕이의 머리특징를 아는 사람은 몇 없었을텐데, 어째서 그들이?


설마 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황태녀는 곧바로 그 행인을 붙잡고는 씹어삼킬듯이 노려보며 다그쳤어


그 소년을 본 곳이 어디냐고 말이야


그렇게 얀붕이의 행방을 미친듯이 찾아다니던 중,


마침 운좋게 추락하던 얀붕이와 딱 발견한거지


억지스럽지만 원래 로판이란게 다 이런 법!


황태녀의 품안에 공주님 안기로 폭 안긴 얀붕이,


지금 얀붕이는 멘붕, 그자체였어


여우를 피했더니 호랑이랑 마주한 상황,


이대로 황족 기만죄로 끌려갈 순 없는 상황,


어떻게든 운지한 자신이 여기에 멀쩡히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보통 이럴때 여주인공들은.....아 맞다!


그래, 그거라면!!


"감사합니다, 이름 모를 기사님,


생명의 은혜를 입어버렸네요"


자연스러운 인사, 전혀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표정,


마치 처음보는 사람을 대하는 듯 했지


두부외상으로 인한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이 있다는 설정!!


로판에서도 두고두고 써먹는 단골 설정이였지


여전히 얼떨떨해 보이는 얼굴의 황태녀, 지금이 기회였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때 쥐고 흔들어야 컨셉도 확실히 잡고 주도권도 유지할 수 있는법


일단 그래도 저기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대공에 대한 처우가 먼저였어


"저기, 저 건물에 있던 여자가 저를 겁탈하려 했어요! 도와주세요!"


든든한 약혼녀 응딩이 덕좀 볼 시간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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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대공은 재빨리 도망친듯 했어, 


미투의 쓴맛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CCTV가 없는게 너무 아쉬울 지경이였지


하루빨리 예비성범죄자들을 번식경쟁에서 도태시키기 위해서라도


남성가족부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얀붕이


그렇게 급진적 남성인권운동가로서의 길을 생각하고 있는 얀붕이에게, 


황태녀는 갈곳이 없다면 자신을 따라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어


당연히 미치지 않고서야 거절하고 싶었지만, 황태녀의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어


음울해 보이는 눈동자안에 든 것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심연, 


일단 비위 맞춰주는 척이라도 하는게 신상에 이로워 보였어 


어차피 저 여자가 진심으로 마음먹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니, 


차라리 말을 잘 듣는 척 하면서 기회를 노리 편을 선택하는게 현명했지


그렇게 황태녀를 따라 황궁으로 쫄래 쫄래 따라온 얀붕이, 


자연스러운 기억상실 연기를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는듯 하면서도 호기심 많은 모습을 보여야했어


자연스럽게 평소 습관대로 응접실로 앞장서다가 황태녀가 눈치까면 모가지!


황태녀는 얀붕이를 자기 방으로 반쯤 끌고가다 싶이 데려갔어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궈버리고 얀붕이를 와락 껴안은채 가만히 서있는 황태녀,


놀랍게도 그녀는 서럽게 흐느끼며 울고 있었어 


기쁨, 안도감, 미안함,


얀붕이에게도 따뜻한 체온을 통해 그것들이 전해져왔지  


하지만 정작 아까부터 얀붕이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어


얀붕이에 눈에 든 것은 황태녀의 손목에 채워진 명품 손목시계,


헬베티아 연방에서 직수입한 초고가의 한정판!


값을 매기기조차 귀한 것이지만 경매가를 따져보았을때 최소 1억 5천만 골드는 하는 것이였지


왕족들이나 대귀족이나 몇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여기에 있을줄이야!   


시계를 본 얀붕이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지


어느정도 감정을 추스린 황태녀는 얀붕이의 시선이 계속 시계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혹시 갖고 싶으면 가져도 된다며 시계를 풀어 얀붕이이게 건내주었지


이까짓 시계따위 얀붕이에게 조금이나마 사죄와 위로가 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어


그러자 황태녀가 본 것은, 자신에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인적 없는 환한 얀붕이의 미소


그 한점 가식없는 해맑은 웃음에 황태녀는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찌릿하게 저려왔어


'어째서 내가 아닌 그런 한낱 물건 따위 때문에 그런 웃음을 짓는 거야?


나에게 그런 미소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잖아'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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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녀에게 성능좋은 헬베티아 시계를 받아 싱글벙글해진 얀붕이,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물론이요, 시계덕후들이 쿠퍼액을 흘릴만한 온갖 기능들이 내장되어 있었지


그간의 냉대로 생긴 앙금따위 이미 머릿속에서 싹 날아간 얀붕이! 


마음만 같아서는 황태녀한테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일단 지금 자신은 기억상실인 설정, 너무 전과 다르게 행동하면 의심을 살 수 있었지


한편, 황태녀는 얀붕이에게 혹시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냐고 물었어


너가 만약 기억을 찾는다면 나를 분명 원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또한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속죄는 모두 하겠다고


잠시 고민됬지만, 얀붕이는 받아드리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평생 기억상실증 연기를 하는 것도 위험했고, 지치는 일이였지


그렇게 황태녀의 제안을 수락한 얀붕이,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우선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을 만한 장소에 가보기로 했지,  


"저기 올빼미대교쪽으로 가자"


다시 돌아온 그리운 장소, 


다리 밑에 올빼미들이 둥지를 짓고 자주 나타나다보니 정식 명칭보다도 이 별명이 더 유명해 진 곳이였지


또한 올빼미대교는 제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자살명소중 하나였지

 

강바닥 아래에서 주식 동호회 회원들이 정기모임을 가진다는 그곳,


다리 난간에 기대어 강물 아래를 처다보니 고소공포증에 온몸이 사시나무떨듯 와들와들 떨렸지


하지만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중력의 유혹,


얀붕이는 홀린듯이 몸을 조금씩 기울어지며 중심을 잃고 있었어


그것을 본 황태녀가 급히 얀붕이를 잡아 난간에서 떨어트려놨기에 다행히 빠지는 일은 없었지만


황태녀는 얀붕이의 위험한 행동에 화를 내며 다그치다가, 


어째서 얀붕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깨닫았다는 듯이 슬픔과 죄책감에 잠겼지


그녀는 진심으로 두려워졌어, 얀붕이가 과연 기억을 찾으면 자신의 곁에 남아줄까?


이미 한번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 세상에 미련이란게 더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두고 손발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놔버리면,


나를 떠나지 않고 옆에 남아있어주지 않을까?


죄책감과 욕망사이에서 갈등하는 황태녀, 그런 그녀에게 얀붕이가 말했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고


황태녀는 더 이상 이곳에 얀붕이를 놔두면 위험하다고 판단했어


오늘은 이만하고 황궁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지


별다른 반발없이 따르는 얀붕이


다리 입구쪽에 세워 놓은 마차로 함께 걸어 돌아가고 있는데 


그런 둘을 붙잡는 제법 익숙한 목소리


"얀붕아..............? 맞지........? 정말 얀붕이가 맞는 거지......?!!"


흰 국화다발을 품안에 안고 있는 여성, 그녀는 다름아닌 얀붕이의 큰누나,


매일 이곳, 올빼미대교로 찾아와 헌화를 하고 얀붕이를 그리워하던 장녀


장녀는 국화다발을 내팽겨치고 단숨에 얀붕이에게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지


눈앞에 얀붕이가 환영이건 실물이건 이젠 아무래도 좋았어


그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주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뿐이였지


쌓아놨던 눈물을 터트리며 세상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맛보는 장녀,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얀붕이가 내뱉은 말은 그녀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였어 


분노도 증오도 원망도 그 무엇도 아니였지


"누구세요..........? 혹시........ 저의 과거를 아시는 분인가요??"


돌아온 것은 그저 모든 과거에 대한 단절, 


그리고 그중엔 그녀 또한 포함되어 있었지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혀가 굳은듯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이것이 그녀의 과오에 대한 대가,


더 이상 얀붕이의 마음속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지


한편 그것을 보며 눈빛이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황태녀, 


움켜쥔 주먹때문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가다 못해 


핏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전혀 고통따위 느껴지지 않았어


그동안 고민했던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을 지경이였지 


'그래, 역시 가둬놓자, 밖은 너에게 너무 위험해'  


너에게 나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는 거야, 


후회도, 속죄도, 오직 나만의 것이야 


나만의 권리란 말이야


아아,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소설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