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그가 팔라딘의 위를 받았음을 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성녀의 선언이 끝나자 신전은 새로운 팔라딘의 탄생을 알리는 종과 사람들의 환호소리로 가득 찼다.

 

최소의 남성 팔라딘이자 성녀의 호위기사이것만으로 이미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 제국에 퍼지기는 충분했다.

 

아무것도 없던 고아 남자아이가 제국인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성기사가 된 것도 모자라 얼마 전 새롭게 즉위한 성녀를 모시는 팔라딘이 된다

 

그것도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연소 팔라딘이자 최초의 남성 팔라딘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한동안 신분을 막론하지 않고 모든 백성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입에 올릴 것은 이미 뻔한 바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성녀의 말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그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당신은 제 주군제 모든 걸 바쳐 성녀님을 지키겠습니다.”

 

성녀 또한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임명식이 끝난 후 몇 달 뒤그동안 단 한 명뿐인 성녀의 호위기사이자 팔라딘의 자리에 남성을 앉혔다는 것에 대한 반발과 불만이 귀족들로부터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자신이 그를 직접 임명했다는 공표와 다른 성기사들이 그를 존경한다는 소식또한 마수토벌 등으로 그의 실력이 전국에 들어나며 어느새 그의 성별과 출신을 문제 삼는 말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 정말 대단하지 말입니다?”

 

성벽 외부얼마 전 성기사단에 입단해 처음으로 정식 임무에 참가하게 된 여성이 감탄을 내뱉었다.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마수들을 가장 앞에서 거침없이 배어나가는 남성의 모습은 마치 전설 속 용사를 보는 듯했다.

 

아 너는 팔라딘님 전투 처음 보나?”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온 다른 성기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말입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괜히 팔라딘이시겠냐저런 체구에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건 확실히 언제 봐도 놀랍지.”

 

아무리 그래도 18살 소년 혼자서 저 상급 마수들을 학살하는 건 정말 보고도 못 믿겠지 말입니다.”

 

성녀님께서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하셨지누가 남자를 성기사단에 그것도 팔라딘에 앉히시겠냐성녀님이시니까 가능했던 거지아 너도 나중에 조심해라예전에 팔라딘님이 남자라고 기사단 애들 몇몇이 무시하면서 껄떡대다 다 손모가지 날아갔다.”

 

근데... 저 정도면 진짜 기사단장님이랑 싸워도 안 밀리실 거 같지 말입니다?”

 

성기사단장님둘이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어느새 수많은 마수를 모두 쓰러트리고 검을 집어넣는 그를 보며 이야기 하던 둘은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쌔 한 기분에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기사단장님!”

 

충성!”

 

당장이라도 둘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

 

둘 다 여기 지금 놀러왔나당장 가서 일 안해!”

 

!”

 

호통 한 번에 부리나케 자리를 뜨는 두 명을 쳐다보던 여성은 곧 고개를 돌려 마수의 피를 닦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으득... 그녀는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감히 저런 사내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다니.

 

그녀는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멀리서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두 성기사들을 노려봤다

 

 

 

 

 

 

 

 

 

 

 

수고했어요.”

 

성녀는 마수토벌을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며 말했다.

 

지금 막 복귀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대비되는 강인한 성품.

 

성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그녀에게 그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처음에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팔라딘의 칭호를 내린 것이었지만 곧 그를 존경하는 성기사단과 민심까지 자신에게 향하자 성녀의 정치적 세력은 어느새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커져있었다.

 

저 성녀님.”

 

생각에 빠져있던 그녀를 깨운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뭔가요?”

 

이번 주말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까요?”

 

팔라딘이라는 성기사단의 수장 급 위치에 올랐음에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신전의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며 항상 자리를 비우지 않는 그였지만 한 달에 한번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냐는 제안을 할 때가 있었다.

 

평소에는 휴가를 주어도 쓰지 않는 그였기에 처음에는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건가하며 상당히 궁금했지만 정작 그 이유는 그녀가 생각하던 어떤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동생들을 만나러 가는 건가요?”

 

평소에 보이는 품위 있고 깔끔한 행동에 자신마저도 자주 까먹지만 그는 신전 고아원 출신이었다항상 이 맘 때쯤 그는 자신이 자랐던 고아원을 방문하고는 하였다.

 

.”

 

그는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곳에서 지내며 생긴 동생들과 원장님은 그에게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항상 그곳에 갈 때마다 그는 평소에는 절대 짓지 않는 따뜻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조심히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기뻐하는 그를 보며 성녀는 피식 웃음 지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남자인데 말이죠?”

 

?”

 

아무것도 아니에요.”

 

평소에는 결코 표정을 바꾸지 않으며 냉철한 그였지만 저렇게 웃을 때의 그는 평범하게 귀여운 소년이었다.

 

토벌 다녀온 지 얼마 안돼서 피곤하실 탠데 어서 들어가 보시길.”

 

!”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인사는 그의 모습에 성녀는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여자보다도 더 여자 같이 구는 그였지만 이럴 때 만큼은 청순한 소년 그 자체였다.

 

...”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숨 쉬며 서랍에 들어있던 한 편지봉투를 꺼내들었다.

 

편지 봉투에는 붉은색 그리핀의 모습을 본 딴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거대한 교도국을 유지하는 12개의 지파. 12개의 지파를 대표하는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권세와 명성을 지니고 있는 대공가에서 온 편지였다.

 

대체 대공가에서 무슨 일로...”

 

성녀인 자신에게 오는 것은 대부분 업무에 관련된 서류특히 대공가 같은 대귀족가에서 서류가 아닌 아닌 편지가 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성녀는 편지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

 

화려하고 복잡한 미사어구로 시작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성녀의 얼굴이 순간 어둡게 바뀌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화려한 미사어구로 장식된 편지였지만 이것의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그녀가 총애하는 호위기사인 그와 대공가의 혼담.

 

평민인 그였지만 그의 무와 명예를 높게 산 대공가가 그에게 보낸 혼담이었다.

 

처음에 그를 팔라딘에 임명할 때부터 어느 정도 생각했던 일이었다귀족가가 그와 혼인한다면 자신의 세력은 더욱 확고해질 태니.

 

그리고 그에게도 출신이라는 약점을 덮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분명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었는데...

 

...”

 

왠지 모르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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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겜붕괴3rd님의 단편소설 리메이크 해봄 이거 뒤로도 계속 이어서 쓰고는 있는데 1화 분량 급나게 많네. 일단 완성하는대로 계속 올리겠음)


https://arca.live/b/yandere/20228266 <-원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