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하는 거지?”

 

그와의 약혼이 성사되고 몇 달 후약혼 후부터 대공가에서 지내게 된 그가 휴일인 주말에 외출했다는 소식에 그녀는 그를 찾아 나섰다.

 

그에게는 항상 차갑고 거칠게 굴었지만 또 안보이면 괜히 신경 쓰였다.

 

어디로 갔다는 질문에 집안에서 일하던 시종은 그가 고아원에 갔다고 했다.

 

고아원거길 왜?

 

그녀는 분명 그가 거짓말을 하고 나갔다고 생각했다예배가 끝난 주일 후에 바로 고아원을 간다고그것도 거의 고위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팔라딘이뭐 본인이 성인이야?

 

그녀는 분명 그가 이런 식으로 성녀 또한 속여 팔라딘 위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거기다가 알아보니 그는 꽤나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치고 모아둔 자산이 거의 없었다분명 보석이나 장신구를 사느라 흥청망청 써버리거나 도박에 빠져있음이 분명했다내 오늘 이 사내를 찾아서 그 실체를 밝히고야 말겠다!

 

...라는 생각으로 모든 시내를 돌아다닌 지 꼬박하루시내를 모두 뒤진 그녀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유일하게 가보지 않은 곳신전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그리고

 

공녀님...?”

 

땀투성이가 된 상태로 고아원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그와 마주쳤다.

 

 

 

 

 

 

 

오늘도 고마웠네남자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것을 들게 한 게 아닌지 미안하구먼.”

 

아니에요이래 뵈도 저 튼튼하다고요?”

 

그는 환한 미소로 자기 앞에 있는 노인에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자네가 매달 기부하는 금액 만해도 액수가 상당한데 이렇게 항상 찾아오다니이거 너무 미안하군.”

 

미안하다니요사제님 덕분에 이렇게 건강히 클 수 있었던 걸요사제님은 저희들에게는 아버지 그 이상이에요.”

 

노인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고맙구나... 그런데 저 분은 누구시니?”

 

노인은 그의 뒤에 서있는 그녀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분은 대공녀님이세요... 제 약혼자이세요.”

 

정말이니?!”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노인의 얼굴에 더 환한 빛이 돌았다.

 

...”

 

노인이 조심스레 그녀를 부르려던 순간

 

오빠!” 

 

높은 하이 톤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뛰어나왔다.

 

밀지 마오빠는 내가 먼저 불렀거든!”

 

형은 너보다 나 더 좋아해!”

 

얘들아 다들 진정해.”

 

난처한 듯 애들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웃어준 그는 곧 아이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오랜만에 오빠형이랑 같이 술래잡기할까?”

 

!”

 

노인에게 미소지어준 그는 곧 아이들을 데리고 뒤뜰로 사라졌다.

 

저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뒤뜰로 향하는 그를 보던 그녀에게 어느새 노인이 다가왔다.

 

이 늙은 몸이 대공녀님을 뵈옵니다.”

 

신의 뜻을 따라 사시는 고귀한 분께서 제게 허리 숙이시다니요사제님 어서 일어나시지요.”

 

허리를 숙이려는 노인을 잡고 일으킨 그녀를 바라보며 노인은 인자하게 웃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그는 바라보며 말했다.

 

제게는 정말로 고마운 아이입니다.”

 

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습니다신앙심도 깊어 항상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려 하며 뭐든지 열심히 였죠.”

 

그 가요?”

 

...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아이입니다아무것도 해주지 못 했는데도 잘 자라서 팔라딘의 자리까지 올랐으니까요그런데도 매달 이 곳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정말로 제게는 분에 넘치는 아이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던 것도 그가 매달 큰 후원금을 보내주며 해결되었습니다듣기로는 다른 곳에도 모두 후원하고 있다던데 정말로 착한 아이가 아닐 수가 없죠.”

 

그럼 그 돈들이 다...”

 

보석이나 장신구로 쓰는 게 아니다고...?

 

저 아이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그가 성기사단 견습생으로 이곳을 떠나기 가기 전까지 그를 친 형제자매처럼 따르던 아이들이니까요.”

 

그렇군요...”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품은 채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약혼자라고 하셨지요?”

 

아 네...”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에 솔직히 많이 찔렸다.

 

부디... 저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보기에는 강인한 아이지만... 속은 여리디 여린 아이입니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 숙이며 말했다.

 

많이 부족한 아이지만 이 늙은이의 친아들 같은 아이입니다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오히려 제가 더...!”

 

어느새 인자하게 웃고 있는 노인의 표정에 그녀는 말이 막혔다.

 

노인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괜찮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모두 전열을 유지하라!”

 

그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성녀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던 마수의 침공그중에서도 이번 것은 규모가 상당했다.

 

성녀까지 직접 나설 정도로 상당한 마수 때의 습격그는 팔라딘이라는 지위에 맞게 전장의 최전방에서서 성기사들을 격려하며 달려드는 마수를 배어내었다.

 

‘...’

 

얼마 전 고아원에 다녀온 뒤그를 보기가 조금 껄끄러워졌다혹시 미안한 마음일까 했지만 저택에서 그를 맞추질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피했기에 예전보다 더 어색한 기류는 몇 주간 둘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

 

후열을 정비하며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중 그가 보지 못하는 뒤편에서 거대한 곰 형태의 마수가 그를 향해 앞발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위험해!”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들며 달려들었다.

 

제발하지만 그는 최전방이었고 자신은 후열제 아무리 그녀가 교도국 최고의 무력을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고 이 거리를 단시간에 주파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공녀님?”

 

초인적인 힘으로 거의 반까지 왔을 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 쪽을 돌아봤다.

 

“!!!”

 

늦었다아무리 팔라딘이라도 아직 18살 소년에 불과한 그가 자신보다 몇 배는 큰 마수의 손에 맞고 무사할리 없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마수의 발이 떨어지기 직전몸을 튼 그는 검을 휘둘러 단번에 자신을 노리던 마수의 몸을 두 동강내었다.

 

...”

 

그가 살았다는 생각에 순간 긴장이 풀리며 몸에서 힘이 빠졌다그리고 그 순간 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험합니다!”

 

?”

 

그 순간 느껴지는 살기고개를 돌린 순간 보이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 꽂히는 마수의 아가리였다.

 

늑대의 머리에 독수리의 날개를 한 마수.

 

그녀는 늦게나마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이건 죽거나 분명 중상이다.

 

바로 코앞에 다가오는 마수의 이빨이 목에 닫기 직전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마수의 목을 명중했다.

 

흐아!”

 

마수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사이 어느새 달려온 그가 뛰어올라 마수의 목에 박힌 검을 잡고 그대로 휘둘렀다.

 

괜찮으세요?!”

 

... 괜찮다.”

 

 그리고 바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성녀님의 신성력이다!”

 

그때 들리는 한 기사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빛줄기가 떨어지며 마수들을 불태웠다.

 

성녀님이 모든 준비를 끝내셨다모두 진격하라!”

 

이 기회를 놓이지 않고 소리치는 그에 성기사들은 모두 높아진 사기로 소리치며 마수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럼 나중에.”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그 또한 다시 빠르게 달려 나가 어느새 전열의 앞쪽에 선 성녀의 옆에 서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마수들을 배어냈다.

 

그의 성력으로 빛나며 휘두를 때마다 마수들이 쓸려나갔다

 

“...”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기사단 후열 모두 진격하라!”

 

자신은 성기사단장일단 뭐가 되었든 책무를 끝내야만 했다.

 

 

 

 

전투 후 성녀의 막사를 지키던 그에게 자신에게 다가와 그녀는 한참을 우물거리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아까는 고마웠다.”

 

...?”

 

지금 이 여자가 자신에게 고맙다고 한 건가...?

 

실로 자신의 청력을 의심할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