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 오늘은 돈이 별로 없네?"

"으응.. 미안해.. 이제 더는 돈을 구하기.."

"야 씨발아. 니 사정이 뭐가 중요하냐? 없으면 만들어와야할거 아니야?"

"미안해, 진짜 제발 한번만 봐줘"

"하- 이거 안되겠네. 야, 애들 불러라."

"제발 진짜.. 훔쳐서라도 마련할게..용서해줘"


나는 왕따다. 여자같이 생긴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로 소위말하는 일진들의 타겟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괴롭힘이였지만, 강도는 점점 심해져 이제는 구타와 함께 돈을 빼앗아갔다.

너무나도 힘든 인생에 슬슬 지쳐간다.

아마 이대로가면 나, 망가지겠지...


"야, 내 전속 찐따를 왜 니네가 건드냐?"

"얀순이? 뭔말이야 얘가 니 전속이라니?"

비참한 생각을 하던 도중,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갈색 단발에 붉은 눈. 

무표정한 표정과 달리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여자.

얀순이. 아버지가 어디 고위직이라는지 돈과 권력으로 주변일대 양아치들을 움직인다는, 소문만 들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고한다. 그녀에게까지 찍히다니...


"얘, 오늘부터 나 전속. 이제 건들지마."


"야, 왜 니 멋대로.."

"그만해, 쟤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여자한테 쫄아서는"

"그럼 어쩌냐? 저 년 아빠 누군지 알잖아"

"얀붕이 새끼는 이제 진짜 나락으로 가겠네"

"이제 우리 알바 아니다. 가자"


너무나도 손쉽게 나의 트라우마를 물린 얀순이는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있을거야?"

"미..미안.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

"됐어, 나 좀 도와주라."


그녀의 말에 겁이 왈칵 올라왔다.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마약을 운반하는 건가?

아니면 수금한 돈 세탁? 나같은 아이를 협박하기?

온갖 나쁜 생각이 따라오는 와중에도 비굴한 나는 그녀를 거절할 수 없어 터벅 터벅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여기 애들, 고아원에도 못가는 불쌍한 애들인데. 불쌍해서 인력서 알아보는 중이야. 너도 알아봐"

"아..."


생각치도 못한일.

눈 앞에는 꼬질꼬질한 모습의 소년 소녀들이 서 있었다.

설마 이런일을 하고 있었을줄이야..


"대답."

"미안, 바로 찾을게"

"나한테 말할땐 사과하지마. 없어보이니깐. 너는 내 전속 꼬봉. 다른 사람 앞에선 비굴해지지마."

"으,응..."

"말도 더듬지 말고 또박 또박 큰 소리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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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계속해서 선행을 하고 다녔다.

소문과 다르게 그녀는 퉁명스럽고 양아치처럼 생겼지만 남을 도와주는걸 즐겼고, 자신의 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사회복지관가서 책 정리랑 어르신들이랑 시간보내기를 하자."

"응!"

"이제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네."

"사회복지관에 자원봉사 신청한거야?"

"응, 잠시만.. 접수하고 올게"


그랬던 그녀가 돌아오질 않자,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녀를 찾았을땐, 안내접수원과 말다툼을 하는 그녀가 있었다.


"아니, 예약을 했잖아요"

"그치만.. 그쪽은 이 구역에서 나쁜쪽으로 유명해서.."

"아니, 내가 하겠다는데!!"

"꺄악!"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얀순이를 마치 나쁜 사람인듯 손가락질했다.


"에잉~ 어디서 담배냄새나는 여자가 와가지고 난리여?"

"또 또 봉사 시간이나 대~에충 때우러 왔겠지"

"문제야 요즘 젊은것들은.. 나때만 해도~"


얀순이는 변명도 하지 않은채, 고개를 숙이고 가운데에 사 있었다.

나에게 있어 한없이 컸던 그녀는 점차 작아져만 갔다.

그런 그녀를 볼 수가 없어, 떨리는 몸을 붙잡고 인파사이로 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얀붕아..?"

"잘못한게 없는데 왜 그렇게 시무룩해있어?"

"하지만.."

"말하자, 본심을. 너는 잘못한게 없어. 그저 봉사를 하러 온거잖아."


얀순이는 멍하니 진지하게 말하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풋 하고 웃었다.


"가자"

"어딜? 변명은?"

"필요없어"


사람들의 야유를 뒤로하고, 아직도 이어져있던 손을 얀순이가 끌어당기며 우리는 나가서 뛰었다.


무지개빛 분수가 쏟아지는 반포대교를 보며 그녀가 깔깔거렸다.

"뭐가 그리 우스워?"

"찐따인 너가 날 위해 나온거"

"그건.."

"고맙다."

"응?"

"고마워. 날 위해 나서줘서. 그런건 처음이라 조금 쑥쓰럽네"

"나는 너의 소문을 고치고 싶어."

"상관없어"

"하지만.."

"너가 알아주잖아?"

"..."

"그럼 됐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홀가분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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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오늘은~'이라며 시작하는 대화가 즐거워졌다.

"오늘은 한강 강변 낚시 쓰레기 줍기. 불법 낚시하는 주제에 쓰레기만 잔쯕 버리고 다니는 것들 싹 다 죽여버려야하는데."

"얀순아, 저기.."

"야, 내가 말 길게 늘이지 말랬지? 나랑 다닌지 몇개월인데 아직도 찐따티 못 벗었냐?"

"이거 선물.."

"뭐?"

"오늘 얀순이 생일이잖아. 나 사실 너가 없었으면 자살까지 생각했었어. 돈도 별로 없는 나지만 고마운 마음에 사봤어."


싸구려 금색 귀걸이.

아디서나 볼 수 있는 디자인에 값도 싸 한쪽 밖에 없다.

이런걸 명품 귀걸이를 차고 다니는 그녀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쪽팔렸지만, 그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흐음.. 얀붕이. 꽤 쓸만해졌잖아?"

그녀가 차고 있던 귀걸이를 때고는 내가 준 싸구려를 낀다.

"왜..."

"내 꼬봉이 준다는데, 보스로서 해줘야지. 고맙다!"

"나도.. 흑.. 고마워.."

"사내새끼가 울지마라. 훌쩍거릴 시간에 청소나 해."

"훌쩍.. 응.. 흐흑.. 고마워.."

".. 빨리 가"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나를 보내는 얀순이의 해질녘 노을에 반사되는 외모가 그날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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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처럼 왕따나 당하는 애들 구하고 다닐거다."

"응, 노력할게."

"아니, 오늘은 위험하니 넌 빠져."

"하지만..."

"언제부터 꼬봉이 말대꾸했냐? 오늘은 쉬어라."

"응..."


집으로 혼자 걸어가던길, 은근히 나를 보던 얀순이가 생각난다. 항상 혼자있는 얀순이는 내가 나를 왜 구해줬냐 물었을때 말동무가 필요해서라고 했었다.

그녀에게 난, 도움이 되는 존재인걸까? 

방향을 돌려 그녀에게 달린다. 나는 그녀 곁에 있고 싶다.


"야아아안수우우운아아아아아!!!!!"

"누가 내 이름을 함부로 불러!"

일진들한테 둘러쌓인 얀순이가 보인다.

힘은 없지만, 용기를 내어 얀순이를 둘러싼 한명을 때린다.

하지만 주먹을 맞은 일진은 미동도 없었다.


"하... 이제는 전 찐따마저 날 개무시하네?"

저 눈빛. 무섭다. 오들오들 다리가 떨리는걸 느낀다.

"크큭.. 그렇게 쫄꺼면서 왜 덤비고 그러냐."

"야야야야수수순이를 괴괴롭히히지 마아아.."

"크하하하, 아아아아 게에에에 스으으으 니이이 다아아 라고 할 줄 알았냐?"

묵직한 타격이 복부에서 느껴진다.

평소라면 맡고도 엎어져 몸을 웅크린, 그런 충격.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붙잡고 얀순이 앞에 선다.

"얀순이를, 괴롭히지마"

"하, 왕자님 납시셨네."


- 왕자님 맞으니깐 이제 비켜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얀붕아. 너 나 알면서 이게 뭔 꼴이냐? 푹 쉬고 있어. 아저씨들 불렀으니깐. 너가 당했던 그거 몇배로 돌려줄게."

일진들이 검은 양복을 입은 험상궂은 아저씨들에게 잡히는 광경을 보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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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여긴?"

"일어났어? 여긴 내가 사는 오피스텔"

"나는 왜 여기.."

"머리 맞지는 않았는데 왜 기억을 못할까? 너 쓰러졌잖아."


아 이제야 기억난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거야?"

"너가, 너무나도 외로워보였으니깐."

"얀붕이 다 컸네. 이제 그런말도 하고"

"혼자는 재미없으니깐"

"...."

"마음속으로 계속 함께하길 원한다고 너가 그랬으니깐."

"...오늘은 해산하자. 다음 모임은 내가 먼저.."


"얀순아, 너가 좋다. 너무나도 좋다."

"..나는, 나.."

"지금 당장 대답을 안해도 좋아. 나는 네게 사랑에 빠졌다."

"나 알고보면 굉장히 나쁜 여자인데?"

"너라면 다 좋아."

"나 질투심도 굉장히 심한데?"

"다 견뎌낼게"

"사실 내가 너를 매일 불러낸건 다 이유가 있었어."

"눈치챘었어."

"나랑 사귀면 이것저것 귀찮아질거야."

"너라면 뭐든 좋아."

"고마워. 고백해줘서."

"응"

"나도 사랑해 얀붕아..."


그녀와 마주앉아 껴안는다.

그녀의 온기가 내 몸에 파고드는걸 느낀다.

쿵쿵 뛰는 그녀의 심장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그럼.. 이제.."

"응.."

긴장한채로 다음 말을 기다린다. 다음 단계는 아직 이른데..


"너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친해진 그 점원이랑 이제 이야기하지마. 연락처도 지워."

"응...?"

"직업 알선해준 그 조그만 트윈테일 아이. 걔도 마음에 안들었어. 차단하고 연락처도 마찬가지로 지워."

"야,얀순아..?"

"저번에 구해준 그 왕따 여학생도 눈빛이 수상해. 더 이상 답장하지마."

"나도 인간관계는.."

"찐따인 얀붕이에게 인간관계는 나만이면 충분해."


"얀순아, 너무 막 나가는거 같아."

"너가 다 용납해준다 했잖아."

"이런것까지는 생각못했어."

"걱정마,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니깐. 얀붕이가 내게 고백을 했으니깐 이제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되주는거잖아."

"그치만.."

"항상 말이 길어 얀붕이는. 이제 다른 여자랑 대화하면 아저씨들 부를거니깐 그렇게 알아.

그 낡은 집도 정리하고 이제 짐 싸서 여기로 옮겨. 나랑 둘이 살자.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하잖아?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나 이제 죽을지도 몰라.

참고있었는데, 먼저 시작한건 얀붕이야.

이제 참지 않을거야, 죽을때까지 함께해줘야해?"


싱긋웃는 그녀가 아름다워 보였고, 저 정도의 집착이 애교로 보이는건 내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까?


"좋아, 얀순이가 원하는대로 해."

"응! 얀붕이는 이제 내꺼야. 대신 나도 너에게 전부 줄게."


그녀를 안으며 행복한 감정에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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