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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는 그녀.

 

새근새근 자고 있다.

 

그녀의 얼굴 위에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기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잠든 그녀를 두고 방에서 나온다.

 

거실을 지나서 테라스로 나온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분다.

 

담배 하나를 꺼내 핀다.

 

지나쳐온 그녀와의 삶에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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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게 언제였을까?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몇 살이었을까?

 

7살?

 

6살?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각이 난다.

 

6살이었을 것이다.

 

여튼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것은 확실하다.

 

난 영어 유치원을 다녔었다.

 

그 유치원에서 매년 말마다 원생들이 공연을 했다.

 

난 그때 연극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발명품을 만드는 박사였나?

 

그날 내게는 그 연극보다 더욱 강렬한 기억이 남았었다.

 

연극을 끝내고 다른 원생들의 공연을 관람하다가 처음 마주한 얀순이.

 

거기서 춤을 추던 얀순이를 본 게 아마 내가 처음 얀순이를 보았을 때일 것이다.

 

난 그때부터 얀순이를 좋아했다.

 

어린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마음이 맞다.

 

취미가 비슷하다.

 

이런 게 아니었다.

 

어린 애답게 외모만을 보고 빠졌다.

 

생각해보면 얀순이가 나의 어머니를 닮아서 첫눈에 반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긴, 그때까지의 내게 인생에서 여자라고는 어머니뿐이었으니까.

 

얀순이는 나의 어머니와 닮았었다.

 

내가 남들에게 키가 큰 편이었는데, 얀순이는 그런 나보다도 컸다.

 

그런 큰 키에 어머니와 닮은 검은 생머리.

 

아이들의 얼굴답지 않은 뚜렷한 이목구비.

 

그래서 유치원생치고도 성숙해 보이는 외모.

 

그런 얼굴을 가진 체 마른 체형.

 

유치원생임이 의심되는 우아한 춤사위.

 

그녀의 그런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과거를 생각하며 미화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얀순이에게 난 너무나 깊이 빠져버렸다.

 

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나와 얀순이는 같은 반이 아니었다.

 

나이는 같았지만, 반이 달라서 마주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난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만 되면 유치원을 싸돌아다니며 얀순이를 찾아 다녔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유치원에 있던 도서관이었다.

 

처음에는 도서관 밖에서 먼발치에서 지켜보았었다.

 

얀순이를 한 5m 정도에서 떨어져 앉아서 지켜봤던 거 같다.

 

어린 내가 나름대로 들키지 않을려고 한다 했지만...

 

유치원생이 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겠나?

 

들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얀순이는 똑똑한 아이였으니까.

 

점심을 먹고, 얀순이가 항상 가는 도서관에 갔다.

 

항상 있던 얀순이가 자리에 없길래, 난 주변을 두리번대며 찾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게 속삭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난 화들짝 놀라 뒤돌아봤다.

 

당연히 거기에 서 있던 사람은 얀순이였다.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 나였음에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었을까?

 

“깜짝아!”

 

짧은 외침과 함께 난 부리나케 뛰었다.

 

얼굴이 시뻘게져 도망쳤다.

 

그다음 날이었다.

 

그래도 용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난 또 도서관을 갔다.

 

“어제는 왜 도망갔어?”

 

이번에도 뒤에서 얀순이가 속삭였다.

 

이번에도 화들짝 놀랐었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도... 도망친 거 아니거든. 일이 있었거든.”

 

유치원생의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그게 우스웠는지 몇 번 조용히 웃고는 얀순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야?”

 

“김얀붕.”

 

“귀엽네.”

 

“시끄러.”

 

“후후, 도서관 자주 오네?”

 

“으... 그... 그게 책을 좋아하거든.”

 

“정말? 너도 책 좋아해?”

 

다행스럽게도 난 책벌레였다.

 

그래서 쉽게 이리저리 책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얀순이가 읽던 책들은 유치원생에게 어려운 책들이었다.

 

초등학생용으로 만들어진 고전의 편집본 같은 그 나이의 아이들이 읽지 않을 것들이었다.

 

난 어린 남자들의 로망인 공룡에 빠져서 공룡이나 다른 거대한 동물에 관한 책들만 읽고 다녔는데, 얀순이가 알려준 소설은 내게 무척이나 새로운 이야기였다.

 

소설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책을 마주해 신기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얀순이는 내게 소설을 하나 추천해주었다.

 

내 인생 첫 소설.

 

‘해저 2만리’.

 

공룡이나 고래 같은 것들을 좋아하던 내게 딱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추천받고 나니 종이 울렸다.

 

난 소설을 빌리고 둘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얀순이와의 첫 대화와 첫 소설이라는 전리품을 얻고, 얀순이와의 첫 만남은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얀순이와의 만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만났다.

 

그다음 날에도 만났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도서관에서 만나서 해저 2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얀순이와 더 이야기하기 위해, 또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소설을 읽었다.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호의 모험은 어린 나에게 엄청난 꿈을 안겨주었다.

 

그 소설을 다 읽어가니, 얀순이는 또 다른 소설을 추천해주었다.

 

난 또 얀순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소설을 읽었다.

 

나와 얀순이는 얇은 소설들을 읽어나갔으며,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얀순이와 나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꾼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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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7살이었다.

 

소풍을 갔던 날이었다.

 

내가 살던 도시에는 유적지가 몇 개 있었는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질리도록 가는 소풍 장소였다.

 

이미 부모님과도 몇 번이나 갔던 곳이었다.

 

하지만 유치원생인 나는 그냥 소풍에 신나며 갔을 뿐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키 순으로 줄을 세우셨다.

 

자연스럽게 키가 제일 큰 나와 얀순이가 맨 뒤에 같이 섰다.

 

위험하니 짝과 손 잡고 조심히 따라오라던 선생님.

 

나와 얀순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얀순이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은은한 웃음을 지었다.

 

난 부끄러워하며 손을 뻗었다.

 

차마 얀순이의 손을 덥석 잡는 게 부끄러웠을까.

 

하지만 얀순이는 좀 더 고단수였다.

 

“손 잡아야지, 얀붕아?”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선생님의 말씀은 항상 들어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다.

 

내가 그런 범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얀순이.

 

난 부끄러워하며 얀순이의 손을 잡았다.

 

“손 따뜻하네, 얀붕아?”

 

“니 손은 왜 이렇게 차가워?”

 

얀순이의 손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말랑말랑한 피부.

 

아지자기한 손.

 

차가운 감각.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말로는 왜 이렇게 차갑냐고 투정부리는 듯 했지만, 이미 나의 손은 나의 말과 따로 놀았다.

 

기분 좋은 그 손을 놓기 싫은 듯 더욱 꽉 잡았다.

 

“너의 따뜻한 손으로 잘 녹여줘.”

 

얀순이는 눈치채고 놀리는 듯이 자신의 손을 살며시 움직이며 나의 손에 비볐다.

 

난 얼굴이 빨개지고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다.

 

난 얀순이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유적지로 이동하고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구경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몇번이나 와보았지만...

 

얀순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두근대고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유적지 근처에는 공원이 있었기에 그곳이 다음 행선지였다.

 

거기서 아이들은 돗자리를 깔았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먹고 뛰어다니며 노는 자유 시간.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나를 부르던 친구들은 많았지만...

 

“얀붕아? 여기 와.”

 

당연히 내가 그녀의 옆에 갈 것이라는 듯이 말하는 얀순이.

 

인자한 표정과 함께 날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면 난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얀순이와 둘이서 펼친 돗자리.

 

두 명은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서 먹었다.

 

서로의 반찬을 구경하며 나눠 먹으며 다시 시작하는 책 이야기.

 

주변에서는 조금씩 수군대었지만, 얀순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괜히 누가 놀리나 돌아보면 오히려 나의 얼굴을 잡아 자신에게 돌렸다.

 

“얀붕아, 나에게 집중!”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말을 할 때는...

 

아마 내 얼굴은 엄청나게 빨개졌을 것이다.

 

도시락을 다 먹고 정리했다.

 

아까부터 한창 새롭게 읽기 시작한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돗자리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할 줄 알았지만, 얀순이는 같이 주변을 걷자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은 익숙해졌었는지 이번에는 나도 손을 잘 잡고 같이 걸었다.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는 큰 나무를 발견했다.

 

100년은 된 것 같은 큰 나무였다.

 

얀순이는 나의 손을 이끌어 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천천히 바람이 불며 낙엽이 휘날렸다.

 

그런 풍경을 배경으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얀순이.

 

나의 손을 잡은 채 뒤돌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그림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멀리 가지 말라는 선생님의 경고 따위는 잊은 지 오래.

 

난 은은한 얀순이의 미소와 나를 바라보는 매혹적인 두 눈에 홀려 따라갔다.

 

얀순이는 나무에 기댄 채 섰다.

 

난 천천히 얀순이에게 다가갔다.

 

얀순이 옆에 설려던 순간,

 

“얀붕아, 잠시 멈춰봐.”

 

“왜?”

 

얀순이 앞에 멈춰선 나.

 

얀순이는 팔을 뻗어 나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고는...

 

살며시 당겼다.

 

전해지는 온기.

 

느껴지는 부드러움.

 

향기로운 복숭아 맛.

 

놀라서 난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얀순이는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은 이내 이동하여 내 몸을 둘러싸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머니와 하던 뽀뽀와는 다른.

 

영화에서 나오면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린 그런 류의.

 

첫 키스.

 

“츄릅... 츄르릅...”

 

얀순이는 나의 타액을 끊임없이 탐할 뿐이었다.

 

나의 혀에 자신의 혀를 비비며.

 

얀순이는 드라마에서 보듯이 두 눈을 감지 않았다.

 

나의 눈을 응시하며 더욱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입속에서는 혀가 바쁘게 움직였다.

 

“우으읍...읍...으읍...”

 

반면 나는 놀람뿐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얀순이의 포옹이 강해지자 이내 다시 눈을 뜬다.

 

얀순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얼이 빠진 채 바라만 본다.

 

나의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허둥대고 있었다.

 

혀는 얀순이의 혀를 피해 도망 다닐 뿐이었다.

 

“우으읍... 읍...파하.”

 

“이거... 기분이 좋은 것 같아, 얀붕아.”

 

얀순이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단어가 떠오른다.

 

황홀감.

 

얀순이는 황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당황하고 무서웠다.

 

살짝 울먹이며 말했던 것 같다.

 

“히끅... 이... 이런 거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얀붕아. 울지마. 내가 슬프잖아? 해도 되는 거야.”

 

얀순이는 어린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고 있었다.

 

“흐끕... 정말로? 괜찮은거야?”

 

“응? 한 번 더 하지 않을래?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어.”

“으... 조... 좋아.”

 

무서웠지만 사랑과 호기심이 앞섰다.

 

‘츄르릅... 츄릅... 츄르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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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하나 다 폈다.

 

불안한 것도 아니었다.

 

걱정이...

 

다시 생각해보니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 맞다.

 

아...

 

이것도 끊어야 하는데.

 

늦은 새벽.

 

거리는 어둡다.

 

고요한 도시.

 

요즘 잠이 잘 오지를 않는다.

 

내게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만을 반복한다.

 

이런 기분은 느낀 적이...

 

초등학교 입학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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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아... 나 이제 부모님께 가봐야 하는데.”

 

“한 번만 더 해줘라? 응?”

 

“으윽. 알겠어.”

 

얀순이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의 입술을 탐했다.

 

조금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난 초등학교의 입학식을 했다.

 

무척이나 기대했던 초등학교였다.

 

반면 걱정과 불안도 따라왔다.

 

요즘 초딩들은 시험을 안 친다고 한다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초등학교들은 모두 시험을 쳤다.

 

부모님 말씀 잘 들어오던 나는 시험도 잘 치는 착한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학식은 호기심과 불안감의 섞임이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각자의 반에서 설명을 들었다.

 

반을 쭉 둘러보았다.

 

그때 마주친 두 눈.

 

얀순이.

 

얀순이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얀순이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얀순이는 기뻤는지 날 보며 씩 웃었다.

 

난 손을 살며시 들어 흔들고는 이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담임 선생님께서 한참을 설명하고는 이제 집에 가고 내일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뒤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받은 안내문을 챙기고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중 그림자가 안내문을 덮었다.

 

얀순이였다.

 

“바빠?”

 

난 뒤에 계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얀순이는 금방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얀붕이 친구, 얀순이에요.”

 

“어머, 네가 얀순이니? 우리 아들이 너의 이야기를 많이 한단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얀순이는 나의 손을 잡고 학교의 계단을 타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얀순아, 왜 여기로....”

 

“츄릅... 츄르릅... 츄릅...”

 

그렇게 맹렬히 키스가 이어지고 방금의 얀순이의 부탁으로 이어진다.

 

내가 허락한 마지막 키스를 끝내고는 얀순이는 입을 연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널 보고 싶어 하셔. 인사드리러 갈래?”

 

“뭐?”

그렇게 시작된....

 

몇 명이지?

 

6자 대면.

 

점심 식사라는 명목으로 6명은 자리를 잡았다.

 

원형 탁자에 한쪽에 나와 얀순이.

 

나머지 두 방향에 각자의 부모님들께서 자리를 잡으셨다.

 

얀순이는 내 손을 만지작대며 계속 장난을 치고 있었다.

 

서로의 부모님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러고는 시작되는 이야기.

 

당연히 학부모끼리 만나면 화제는 얘들이다.

 

얀붕이가 어쩌고.

 

얀순이가 어쩌고.

 

나와 얀순이의 관계가 무척이나 가까웠기에 부모님들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부모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얀순이와의 대화에 신나서 였을까?

 

아니면 얀순이와 같은 반이 되서 기뻐여서 일까?

 

얀순이가 옆에만 있으면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얀붕아. 학교 생활 재밌지 않을까?”

 

“얀순아. 으음. 무척이나 기대되.”

 

“그래? 근데, 표정이 어두운걸?”

 

“아니거든.”

 

“난 얀붕이랑 같은 반이 되서 좋기만 한데, 우리 얀붕이는 뭐가 그리 걱정일까?”

 

얀순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삭였다.

 

뾰루퉁한 나의 얼굴에 손을 뻗어 볼을 찌르며 계속 속삭였다.

 

“왜? 얀붕이가 슬프면 나도 슬퍼? 무슨 일이야?”

 

애타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얀순이.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시험도 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그러셨어.”

 

“그럼 같이 열심히 하자, 얀붕아.”

 

“응?”

 

“우리 둘이서 같이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때 얀순이는 내게는...

 

데미안 같은 존재였다.

 

나를 이끌어주던 존재.

 

성숙안 얀순이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얀순이가 그런 말을 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고마워...”

 

얀순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안도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인상이 완전히 펴지지 않았나 보다.

 

얀순이는 성에 안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기분 좋게 해줄게, 얀붕아.”

 

“뭐?”

 

입학식이 끝난 초등학교 근처의 어느 한식집.

 

그 안의 방.

 

밖은 손님들의 말소리와 바쁜 점원들이 서로를 부르느라 시끄럽다.

 

방 안에는 4명의 학부모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느라 바쁘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곳에 있는 2명의 초등학생.

 

얀순이는 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움직인다.

 

내 허벅지 위에 느껴지는 이물감.

 

그러고는 떠올린 첫 키스의 기억.

 

이번에는 그리 당황했던 것 같지 않았다.

 

얀순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살며시 손을 올려두었다.

 

이내 손을 살며시 무릎 쪽으로 쓸었다.

 

다시 손을 살며시 쓸어올렸다.

 

얀순이는 날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나는 조용히 움찔대고만 있었다.

 

물론 부모님 눈치를 엄청 보았다.

 

어리고 어린 시절에 무언가 하면 안 될 짓을 부모님 앞에서 하고 있다니...

 

배덕감과 얀순이가 쓰다듬는 손길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때 이해했을 것이다.

 

어째서 얀순이가 키스를 할 때마다 얀순이가 그런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얀순이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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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얀순이는 내 몸을 계속 만졌다.

 

특히 짝지가 되면 수업 시간에도 내 몸을 즐겨 만졌다.

 

담임 선생님이 키순으로 자주 앉혔기에 짝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뒤에 앉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얀순이는 나의 몸을 거리낌 없이 잘 손대었지만 난 부담스러웠다.

 

어머니께서 항상 손대면 안 되는 게 3가지 있다고 했다.

 

‘여자.’

 

‘어린 애.’

 

‘나보다 작은 애.’

 

얀순이는 달랐지만 난 항상 얀순이의 몸을 만지기가 두려웠었다.

 

얀순이가 안기면 안 거나, 손을 잡으면 잡는 수준이었다.

 

내가 얀순이를 제지하거나 어쩌지 못하자 얀순이는 항상 나의 다리나 팔이나 등에 손을 대었다.

 

쉬는 시간에는 나를 계단 뒤로 끌고 가서 키스를 하며 등을 쓰다듬었다.

 

수업 시간에는 몰래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

 

점심 시간에 친구들이 급식을 먹으러 가면 우리는 교실에 남아서 키스를 했다.

 

그렇지만 안 만져주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공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얀순이는 시험 기간에는 날 만져주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쉬는 시간에도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같이 공부를 했다.

 

그 덕에 1학년은 좋은 성적과 함께 마칠 수 있었다.

 

1학년 동안 나와 얀순이는 항상 붙어 다녔기에 우리 반에서 공식 커플이었다.

 

서로 고백한 적은 없지만... 커플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따로 물어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당연히 얀순이와 커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어보려고 해도 난 얀순이 앞에서만 순했지, 다른 애들 앞에서는 덩치 큰 남자애였다.

 

얀순이는 그 어른스러움에 누가 쉽사리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 얀순이의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는 순간은 금방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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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고서는 얀순이와 나의 반이 바뀌었다.

 

개학날.

 

난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얀순이를 찾으러 갔다.

 

내 반대편 끝의 반.

 

얀순이는 여자애들과 수다를 떨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걸어나왔다.

 

“우리 얀붕이 왔어?”

 

“딱... 딱히 너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거든?”

 

맞다.

 

난 아직도 애였다.

 

“난 얀붕이 보고 싶었는데? 우리 얀붕이는 아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의 얼굴을 새빨개졌다.

 

“으으... 사실 나도야.”

 

그 말을 듣자마자 싱긋 웃은 얀순이.

 

날 보고 바로 나와준 얀순이.

 

날 보고 웃고 있는 얀순이.

 

난 안도했다.

 

얀순이는 아직 내 곁에 있구나.

 

“가...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 얀순아.”

 

“점심만?”

 

“으... 말 못 하겠어.”

 

“사람이 적은 데로 가자, 얀붕아.”

 

난 이미 얀순이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얀순이의 손길.

 

얀순이의 키스.

 

얀순이의 숨결.

 

얀순이의 포옹.

 

이 모든 것들이 날 살아가게 해주고, 날 공부하게 해주고, 날 웃게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 뒷 골목에서 키스를 나누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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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고 새로운 반에 들어가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그 중 여자애들도 몇몇 친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얀순이가 질투해서 1학년때 내가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얀순이가 운동도 잘 했기 때문에, 점심 시간이 되면 나와 다른 남자애들과 함께 술래잡기나 온갖 놀이들을 하며 놀았기 때문에 난 얀순이가 다른 남자애들과 있는 걸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있으면 항상 내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어린 시절에도 여자애들과 대화하다가 얀순이가 부르면 바로 갔으리라 생각했지만...

 

얀순이는 질투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어 감시는 약해졌다.

 

나도 반에서 생활해야 했으니 일부 여자애들과 친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중 특히 친해진 아이가 얀진이였다.

 

바이올린을 하는 얀진이는 나의 첫 짝이었다.

 

개학하고 한 달을 같이 앉아있었으니 안 친해질 리가 없다.

 

특히 내 입담이 재밌었는지 얀진이는 나랑 대화할 때는 꺄르륵 웃고 그랬다.

 

하지만...

 

그것이 고백으로 이어질지는 몰랐다.

 

한 달을 친하게 지내서 그럴까.

 

얀진이와 지낸 한 달을 돌아보니 얀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나를 향해 장난치고.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한 달을 돌아보다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이 얀순이였다.

 

사랑을 조금 깨우친 나.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얀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하고 난 바로 뛰쳐나갔다.

 

복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얀순이의 반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얀순이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얀붕아, 늦었네?”

 

난 대답하지 않고 바로 얀순이를 부둥켜 안았다.

 

“사랑해, 얀순아.”

 

고민없이 바로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행각은 영락없는 연인이었지만, 한 번도 서로에게 한 적 없는 이야기.

 

사랑.

 

내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눈치챈 얀순이는 그저 나를 다독이며 속삭일 뿐이었다.

 

“나도.”

 

얀순이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내게 오늘 자신의 집에 놀라오라는 이야기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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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얀순아?”

 

“얀붕아, 가만히 있어.”

 

얀순이는 나를 벗기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도착한 얀순이네 집.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얀순이는 나를 바로 붙잡고 자신의 방에 끌고 들어왔다.

 

이내 방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나를 밀쳐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나의 옷을 한꺼풀 한꺼풀 벗겼다.

 

그렇게 난 팬티 한장만 달랑 입게 되었다.

 

그때는 당황했다.

 

아무리 얀순이라고 하지만...

 

내 알몸을 보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얀순아... 부끄러워...”

 

“얀붕아, 수영장에서도 똑같이 입잖아? 전혀 부끄러워 할게 아니야.”

누워있는 내 위에 올라탄 체 웃으며 나를 쓰다듬어주는 얀순이.

 

뭐랄까...

 

왠지 사람을 죽여도 얀순이가 옆에서 토닥여 주면서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얀순이는 누워있는 내게 허리를 숙였다.

 

‘츄릅...츄릅...츕...’

 

얀순이는 키스를 했다.

 

근데 그때까지와의 차이점이 있었다.

 

얀순이는 나의 입술에 키스를 한 것이 아니다.

 

나의 볼.

 

나의 코.

 

나의 목.

 

나의 팔.

 

나의 배.

 

나의 가슴.

 

나의 쇄골.

 

나의 배꼽.

 

나의 유두.

 

나의 손가락.

 

나의 허벅지.

 

나의 종아리.

 

나는 그저 얀순이의 입술과 혀의 감촉이 너무나 좋아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얀순이는 계속 내게 읖조렸다.

 

“그 년의 흔적은 모두 지워줄게.”

 

“두려워하지마, 얀붕아. 넌 내 것이고, 난 너의 것이야.”

 

“너의 모든 곳에 날 채워줄게.”

 

얀순이의 달콤한 속삭임과 부드러운 감촉에 난 황홀감에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정신은 혼미해져만 갔다.

 

‘츄르릅. 츄릅.’

 

얀순이는 필사적으로 나의 몸을 탐했고, 나의 몸에는 키스마크들이 가득해져 갔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내 몸 구석구석에는 얀순이로 가득 찼다.

 

난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고 얀순이는 행복감에 젖은 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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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얀순이가 내게 온몸에 흔적을 남긴 적은 없다.

 

한참 지나서야 있었다.

 

그 날 이후로는 난 당당히 얀순이를 ‘여친’이라고 호칭하고 다녔다.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아마 사실을 반 정도만 말씀드렸던 것 같다.

 

내가 말씀드린 얀순이에게 내가 먼저 고백하고 사귀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키스와 스킨쉽 이야기는 없었다.

 

얀순이와 나는 모범생였기에 양측의 부모는 만족했으며, 진작 사귈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얀순이의 아버지는 우리를 놀리기도 하셨다.

 

그리고 3학년, 난 얀순이의 옆집으로 이사를 갔다.

 

“우웅... 여보 뭐해?”

 

한참을 지난날들을 생각하던 중 얀순이가 깼다.

 

“아...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어.”

 

“자자...여보 내일 또 출근하잖아.”

 

“알겠어, 얀순아.”

 

비몽사몽한 얀순이를 부축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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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원래 긴 단편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좀 끊었다.


 다른 소설에서 영감받아 쭉 적었다.


이 글 도입부분은(키스하는 부분)이 원본과 겹치는 부분인데 원본이 보이지를 않아서 허락을 못 받았다.


혹시 그 글 쓴 얀붕이 있으면 괜찮다고 말 남겨줘. 불편해도 말 해주고. 그러면 글삭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