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격동의 1933년, 볼티모어 근교 빈민촌


뒷골목에 엎어져 자고있던 가난한 흑인 톰 얀붕은 덮고 자던 천막 천 위로 누가 꽤 커다란 돌덩이를 던져서 깸

가뜩이나 무료급식소도 닫혀서 사흘이나 굶었던 얀붕이는 극도로 열받아서 일어났는데


거기엔 싸구려 현수막에 싸여있는 여자아이가 들어있는거임

보통 젖먹이 애나 그렇게 버리는데, 대충 봐도 한 다섯살은 되어보이는거야


그 때 마침 지나가던 두 경관 중 하나가 잠깐 서보라고 하는거지

흑인이 무서운 표정으로 쓰러진 백인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광경이 얼마나 수상했겠어

당시 기준으로 보면 진짜 총 안 쏜게 기적인거야


다행히도 평판이 좋던 얀붕이는 도넛을 나눠먹고 친해진 다른 경관의 도움으로 연행되는 일은 피했는데

누군지 둘러대려다가 딸이라고 해버린거야

힘내고 나중에 도넛집에서 보자는 경관에게 의심받지 않으려면 일단 키우긴 해야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처음보는 아이를 키우게 된 얀붕이

현수막에 써있던 "jans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는데

대신 글자를 제대로 못 읽어서, "얀순"이가 되었지


얀붕이는 각종 막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

일하는 동안 얀순이를 혼자 두는게 너무 걱정스럽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지

그래도 그나마 나이가 있었기에 옆에 있던 공터에서 놀게 했는데

이상하게 자신한테만 매달리고 계속 어디에 숨어있는거임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좀 나아져서 안심하고 있던 때


얀순이가 11살일 때 결국 유괴를 당한거야

치안이 안 좋은 동네였기에 어느정도 예고된 일이었지만 여태껏 괜찮았기에 방심한거야

그치만 밤낮으로 찾아다닌 얀붕이가 결국 찾아낸거임

다행히 얀순이는 멀쩡했음, 다만 같이 공터에서 놀다 잡혀간 언니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아서 다시 대인기피 성향이 강해지게 돼


얀붕이는 얀순이가 참 안타까워서, 엄마를 만들어주기 위해 결혼 시도도 여러번 해봤지만

애 딸린 프리터가, 그것도 도망 노예 부모를 둔 흑인이 좋다는 여자는 없었어


7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드디어 멀쩡한 집을 살 수 있게 된 얀붕이

얀순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오히려 얀순이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려고 하지 않게 되었어


성실함을 인정받아 줄곧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매니저 자리를 따낸 얀붕이는 그럭저럭 양호하게 벌게 되었어

그러자 선이 들어왔는데, 맞선으로 만난 여자들은 잘 되다가도 갑자기 마약에 중독되거나, 다른 남자랑 다니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기 일쑤였지


그러던 1943년, 얀순이를 키운 지 10년째 되던 날

큰맘먹고 전쟁 도중이라 은근히 귀한 취급을 받던 치즈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가던 얀붕이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았어

얀순이가 부자들이나 탈 법한, 쫙 빠진 검은 롤스로이스 차에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야


집엔 쪽지와 함께 큰 돈이 들어있었지

친부모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며, 고마움에 대한 답례랍시고 놓고간건데

얀붕이는 차마 그걸 쓸 수가 없었지


20대를 다 바쳐 키운 딸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얀붕이는 결국 군인으로 자원했어

원래 흑인 남성은 뽑아주지도 않았지만 병력이 부족해져서 어쩔 수 없었지


태평양 전선으로 가게 된 얀붕이는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어

원래부터 마음이 여렸던 얀붕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감각이 무뎌졌지만, 천성이 쉽게 변하지는 않았어

항복의 표시로 백기를 흔들던 일본군 병사를 살려주기 위해 다가갔다가 허벅지를 찔린 얀붕이는 결국 다리를 절단하게 돼


퇴역군인이 된 얀붕이

다리를 잃은 탓에 원래 하던 서빙 일도 하지 못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금으로 연명하다, 종전 후 만난 전우에게 사기까지 당해 다시 거리에 나앉게 되었어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군대에서 배운 담배 때문에 폐병마저 걸린 얀붕이는 "죽기 전에 얀순이 얼굴 한 번 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얀순이를 처음 만났던 그 골목으로 갔어


그 자리엔 웬 꼬마가 있었는데, 얀붕이를 보더니 마구 소리를 질러댔어

몰려드는 깡패들

결국 도망치려다 마취약을 맞고 기절한 얀붕이...



깨어나보니 그곳엔 얀순이가 있던거야

얀붕이를 안고 울다 잠든 모양이었지

너무 놀란 그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은 없고 그냥 고급 호텔 스위트룸이었지


때마침 일어난 얀순이에게 사정을 물어보려 했지만

얀순이는 대답하지 않고 바지춤을 내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