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24568511

2편 https://arca.live/b/yandere/24631987





밤이 지나고, 내일이 왔음을 알리듯 창가 너머로 햇살이 비친다.

아침.

침대에 누운채, 눈을 감고 있는 나는 이미 완전히 깼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아프거나, 천성이 게을러서는 절대 아니었다.

바삐 나서야 먹고 살수 있는 사냥꾼에 있어서, 부지런함은 필수 덕목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바삐 움직여야 할 내가 침대에 누워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총총총총...


지금 들리는 발소리.

혹시라도 내가 깰까 싶어 발톱이 바닥에 쓸리지 않도록 사뿐거리는 발소리다.

나는, 지금 이 발소리의 주인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총총총...


소리가 가까워진다.

오랫동안 들어온 탓일까, 바닥을 짚는 소리만 들어도, 이 녀석의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걸까?

평소보다 배는 빠른 발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거렸다.

참자, 참아.

마치 스텝을 밟듯 경쾌하게 내 침대로 오고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가 씰룩거린다.


우뚝.


발걸음이 멈췄다.

도착했군.

도약을 준비하듯이 꼬리가 바닥에 이리저리 쓸리는 소리가 들린다.

좌우로 흔들리고 있을 꼬리.

머지 않았다.


캥!


짧은 외침과 함께, 녀석이 침대에 뛰어오른다.

누워있던 침대가 한차례 철썩거리고, 녀석은 그 기세를 몰아, 곧장 내 뺨을 혀로 정신없이 핥기 시작했다.


"으아...셋카! 그만 그만! 일어났어! 일어났다니까!"


콩콩! 콩!


나의 항복선언에도, 셋카는 멈출 기세도 없이 내 뺨에 얼굴을 부빈다.

일어나! 라고 말하듯이, 콩콩거리며 날 괴롭힌다.

그렇게, 한참동안 셋카의 격렬한 아침인사를 받으며 이불을 치우자, 셋카는 그제서야 만족한듯 침대에서 내려온 뒤, 예의 그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식탁으로 앞장섰다.


총총총...


"푸흡!..."


셋카가 너무 기분이 좋으면 저랬던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욱 이상한 셋카의 스텝이 눈에 들어오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터져나온다.


캥?


"끕 끅...아니다, 아니야. 어서 가."


내가 웃음을 못참고 배를 잡고 있자, 셋카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는 사이, 셋카는 이상하다는듯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그 방방 뛰는 스텝으로 식탁으로 걸어갔다.

아...못 참겠다.


"푸흐읍...끅끅끅끅!"


거의 반쯤은 우는 목소리로 정신없이 웃던 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할 만큼 진정되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아...역시 언제나 하루의 시작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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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갈 일이 생겼다.

내일 아침까지만 버틸 수 있을만큼의 양만 남은 향신료를 사기 위해서였다.

기왕 내려가는 겸, 그간 사냥하며 쌓여왔던 가죽들도 팔기 위해,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캥! 캥!


사냥을 위해 챙기던 짐과는 다른 걸 눈치챈건지, 셋카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달려와 짖었다.

저번처럼 마을로 내려갔던 것을 기억하는지, 뒷발을 들어선 채 안아달라는 듯이 내게 앞발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셋카를 품 속에 숨긴채 마을에 같이 갔었지.

반 년 전이다 보니, 아직 어렸던 셋카를 집에 혼자 둘수 없었기에 그리 했었지만...


"미안, 셋카 저번처럼 숨겨서 가기에는 네가 너무 커졌어."


캥?!


청천벽력같은 소리라도 들은 것 마냥, 셋카가 딱딱히 굳었다.

하지만, 셋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직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여우는 불길한 존재.

게다가, 꼬리마저 두개가 된 셋카를 봤다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셋카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대신 최대한 빨리 갔다 올게, 그동안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캥캥캥캥! 캉 캉!


셋카가 가지 말라는 듯이 내 주변을 정신없이 돌기 시작했다.

불안할때면 언제나 보이는 행동.

셋카는 설마 자신을 놓고 가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불안한 걸음으로 내 앞을 맴돌고 있었다.


"미안 셋카. 갔다 올게."


끄응, 끄응...


셋카가 우는 시늉을 한다.

아이고 셋카야.

괜히 발걸음을 떼기 힘들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안심하라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줬지만, 셋카는 불안한듯 귀를 잘게 떨었다.

빨리, 진짜 빨리 갔다올게.

겨울에 향신료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가지 않았다간, 전부 팔리고 없을지도 모르는 일.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떼어 집 밖을 나섰다.


캥캥! 캉캉캉캉캉!


문 너머로 셋카의 구슬픈 울음이 들린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함께였었지.

사냥을 할 때도, 밥을 먹을때도, 씻을때도 언제나 함께였었던 우리였다.

그렇기에 셋카로서는 처음 겪는 이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운 일일지, 충분히 알았다.

빨리 가자.

셋카를 오랫동안 혼자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박 사박.


밤 사이 다시 쌓인 눈을 헤치며, 나는 최대한 빨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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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혼자 갔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어서, 나는 그저 멍하니 아빠가 나선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왜...

나 버리지마....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아빠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아빠가 곤란해 할 것 같아서, 억지로....겨우 참았다.

떠난 아빠를 기다린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를때마다, 불안함과 후회가 타오르는 불처럼 커져만 갔다.

막무가내로 따라갈 걸 그랬나?

아빠는 언제 오는 걸까.

오고 있는 걸까?

..

.

.

.

.

아니면, 설마 그 때처럼....


아니야!


고개를 억지로 흔들며, 불길한 상상을 지워낸다.


아니야....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빠가 멧돼지에 치이던 순간이 떠오른다.

혹시나. 만약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뜸하다고는 해도, 아빠와 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제법 산짐승들의 자취가 있는 편이었다.

아빠, 제발 돌아와 줘...

날 떠나지 말아줘.

중천에 떠오른 해가, 점차 기운다.

날이 저물고 있다.

아빠가 늦는다.

아빠 말을 듣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꾹 참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이제는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문으로 달려가 억지로 열어보려했다.

하지만, 아빠는 문을 잠궜는지, 꿈쩍도 안한다.

아빠, 아빠, 아빠!

문을 긁으며, 아빠를 불렀다.

찾아야 한다.

아빠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더이상 이것저것 잴 필요없이 저번의 멧돼지를 불태웠던 것 처럼 꼬리에서 푸른 불을 만들어냈다.

문만, 문만 태우는 거야.

까닥했다간, 집이 전부 불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힘을 최대한 억누른 나는, 이내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문만, 문만 태우자.

되뇌었다.

이제, 천천히 갖다 대면...

...........

........

.

.

.

.

.

.

.

.

.

"셋카!"


아.

들린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을 뒤덮던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너무나도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렸다.


"셋카야~!"


나를 부르는 소리.

아빠가 저 문 너머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캉!)'


"셋카야~ 집에 있니!"


'집에 있어요! 아빠! 아빠 빨리 와!(캉!캉! 캉캉캉!)'


"그래 금방 갈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아빠...

문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천천히 열린다.

내 두 눈에 들어오는 검은 머리.

관리를 안 하는건지, 지저분한 수염이 가득한 얼굴.

그러면서도 상반되는 것처럼 맑고 투명한 눈.

분명, 아빠다.

아빠가 왔다!


"아이고 셋카야! 많이 기다렸지! 미안하다아아!!!!"


아빠가 곧장 나를 껴안고 얼굴을 부빈다.

나도 너무나 기뻐, 정신없이 아빠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아빠는 날 버릴리가 없다.

아빠, 너무 좋아!


"우어우억! 셋카! 근데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으벱벱! 야 입까지 핥지는 마!"


몰라! 몰라! 빨리 얼굴이나 대!


"숨막혀 셋카야, 우법버법....아빠 죽는다~"


'그런 말 하지마!(캉캉!)'


그렇게, 다시금 잃었던 절반이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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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더 써온다.

딱 기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