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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사냥을 위해, 짐을 꾸리던 참이었다.


캉캉!


"아, 셋카. 조금만 기다려, 다 꾸렸으니까..."


언제 왔는지 등 뒤에서 셋카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부터 보채기는.

좋아. 다 챙겼다.

남은 장비를 마저 챙긴 뒤, 셋카의 확인도장을 위해 뒤로 고개를 돌린다.


"오래 기다렸니? 셋...."


......

...

.



"셋카?"


셋카가 없다.

하지만, 분명 셋카의 소리를 들었는데...?

때 늦은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또 나 몰래 무슨 장난이라도 치고 있나, 싶어 집을 둘러보지만, 그 어디에도 셋카가 보이지 않는다.


"셋카! 슬슬 가자!"


집 어디에 있어도 충분히 들릴만큼 제법 큰 소리로 셋카를 불렀다.

이제 정말 가야 되는데...

하지만, 어쩐지 을씨년 스럽게만 느껴지는 집에서는 내 목소리만이 공허이 맴돌 뿐 예의 그 명랑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셋카가 없어졌다.


"셋카? 이제 장난 그만하고 나와. 이제 슬슬 가야 돼!"


점차 조급해졌다.

어디 갔지?

어디에 숨은 거야.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밖으로 나갔나?

아니야, 그럴리 없어.

문은 자물쇠로 걸어 잠갔다.

셋카는 분명 여기에 있다.


"셋카!"


침이 마른다.

혹시 어디에 갇혀있는 걸까?

찬장, 서랍 전부 뒤져 셋카의 흔적을 찾는다.


콰르륵, 콰륵!


쨍강! 쨍그랑!


식기가 깨지고, 옷이 어지러히 바닥에 나뒹군다.

조급해진 손놀림에 금새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집이었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셋카!!!!"


부르짖었다.

셋카 어서 대답해!

아빠가 잘못했어! 빨리 나와!


캉캉!


그 간절한 외침을 겨우 들은걸까.

희미하지만 분명 셋카의 소리였다.


"셋카? 셋카!"


캉캉!


한번 더 부르자, 이번에는 선명한 소리로, 내 뒤에서 대답했다.

걱정으로 검게 썩어가던 마음이 한결 놓이는 기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이다.


"셋카! 아빠 놀랬잖아! 한번 더 그러면 아빠 화 낼..."


도 넘은 장난을 혼낼 겸, 짐짓 화난 듯한 얼굴을 하며 뒤를 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셋카, 이번엔 아빠도....


화르륵.


...어?

불.

푸른 불이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면서도 포악하게 이글거리는, 푸른 불이 내 앞에 있었다.

이게 뭐야?

....셋카는?


"...무, 뭐야."


여태껏 살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상황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불에 너무 가까운 탓에 눈의 수분이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아프다.

너무 뜨겁다.

당장이라도 셋카와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마치 돌이라도 되버린 듯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위험해.

셋카는 지금 어디에 있지?!


타다닥! 타닥!


집이 타고 있다.

귀신처럼 포악한 푸른 불이 어느새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안 돼.

그만 둬!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불이 지나갈때마다 녹아 내리고 있다.

제발!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불길은 자비 없이, 남김 없이 삼켜낸다.

그 안에 쌓여있던 추억들이, 그 안에 있던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해.

그만해!

그만해!


"그만 해!!!!!!"


마지막 순간에 겨우 꺼낸 그 외침을 끝으로, 푸른 불은 그 거대한 입으로 나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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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눈이 떠졌다.

얼굴에 맺힌 수많은 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허억....후우..."


또 그 꿈...인가.

비오듯 흐른 땀을 옷으로 훔쳐내며, 천천히 윗몸을 일으키자, 창가 너머로 서늘한 기운이 몸을 쓸고 지나간다.

...아직 새벽이구나.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창을 보니 새벽 특유의 짙푸른 색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제는 일주일이냐고."


최근들어 악몽을 꾸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언제부터 였을까.

똑같은 내용. 똑같은 전개.

이 악몽이 날 괴롭히기 시작한지 어느새 삼 년이 다 되간다.

왜?

어째서인지는 짐작도 채 가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악몽은 점차 나를 안쪽부터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크흡...쿨럭, 쿨럭. 크흠....흠....크훕! 크흡! 쿨럭!"


얕게 시작하는 잔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제기랄...

목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속에서 토해내듯 쏟아지는 기침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미리 떠놓았던 물을 들이켰다.

나빠지고 있다.

아무리 굴러도 몸살 하나 나지 않던 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눈 깜빡할 사이에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일어설 수 있지만....만약에라도 쓰러진다면, 셋카는?

나는 조급해졌다.

어째서 지금이야.

어째서 지금이냐고!

갑작스런 몸의 이상에, 다급히 찾아간 마을 의사도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병이라고?

원인을 모르겠다고?

뭐냐고....뭐냐고!

언제나 둘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은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게만 다가온다.

아아....셋카.

셋카가 보고 싶어졌다.


"셋카야..."


듣기 싫은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혹시라도 들렸을까 싶어, 황급히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괜히 셋카의 걱정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셋카야, 잠깐 이리로 와볼래?"


내가 악몽으로 힘들어하는 날이면, 항상 달려오던 셋카가 이번엔 깊게 잠들었는지 침대에 없었다.

셋카....셋카?

아무리 자더라도 분명 목소리를 들었을텐데도, 몇번을 불렀지만 침실로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유독 집 안이 조용한 느낌이다.

순간 서늘한 감각이 뒷목을 스치듯 지나갔다.

어째서일까.

왜, 이 순간, 나는 악몽에서 봤던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걸까?

서, 설마... 설마?


"셋카야!"


정신이 아득해졌다.

셋카가, 없다.

셋카!

온 방을 뒤졌지만, 셋카가 보이지 않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셋카, 제발 나와줘...제발 여기 있다고 말해!


파악!


"으윽!"


발에 무언가가 채이며 묵직한 고통이 뒷따른다.

그 고통에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보자, 문을 잠구는 자물쇠가 땅에 떨어진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셋카가 나갔어?


"아아....아아아아!!!"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모든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어딨어. 셋카!


"셋카아아아아!!!!"


미친 놈 마냥 밖으로 튀어나갔다.

아무리 새벽이라 할 지라도 위험하게 혼자 밖으로 나가다니, 셋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밤 늦게 쌓인 눈을 헤치며, 셋카를 불렀다.

셋카야, 제발 아빠한테 와!

하지만, 산에 퍼지는 내 메아리에 화답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아.....

설마 늦은 걸까.

억지로 고개를 흔들지만,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럴리가 없어.


"....셋카."


어디에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낼게.

설마, 내가 질려서 나갔더래도...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정말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말은 하고 나가야 될거 아니야, 이 모지리야..."


이런 건 아직 준비가 안됬다.

이런 이별은 생각조차 안했다.

그렇기에,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셋카가 제 발로 나간거라면.

적어도 그 면전에 선채, 그 말을 들어야 겠다.

그러니, 셋카.

기다려....ㅈ


캉캉!



..................



뒤에서 들리는 소리.

정말로 듣고 싶었던 그 소리가 들렸다.

정말 셋카일까?

나도 모르게 뒤돌려는 고개가, 순간 멈춘다.

...악몽에서도 똑같았다.

사실, 이것 또한 꿈이라는 걸까?

그 생각이 들자, 두렵기 시작했다.

뒤를 돌았을 때, 셋카가 없을까 봐.

그 무시무시한 푸른 불이 있을까 봐, 뒤를 돌 용기가 채 나지 않았다.


"셋카야."


캉캉!


"나 뒤 돌아도 돼?"


캉!


"내 뒤에 있을거지? 안 사라질거지?"


끄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진다.

제발, 그 자리에 있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눈을 꾹 감은채로, 뒤를 돌아섰다.


캥캥?! 캉캉캉캉!


내 우는 모습을 본걸까, 당황한 듯한 셋카의 울음이 들린다.

하지만, 겁이 나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뜨자, 뜨는 거야.

억지로 되뇌이며 천천히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눈물 때문에 부연 시야가 중앙에서부터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푸른 불은 없었다.

그렇다면 셋카...는...


캉캉캉캉!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쩔 줄 몰라하는 하얀 여우가 옆으로 누운 팔(∞)자를 그리며, 정신없이 돌고 있었다.

어느새 네 개가 된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면서 나를 걱정하고 있다.

셋카....

셋카다.


"셋카."


캉캉!


"이 모지리야!"


캥?!


억지로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다만 그만큼 화가나서, 무언가 고장난 것 처럼 입이 멈추지가 않았다.


"한 번 만 더 아빠 허락 없이 막 나가면, 엉덩이 불 날 정도로 맞을줄 알아!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어!"


끼에에....


내 화난 말에, 화들짝 놀라 꼬리와 귀까지 축 늘어뜨린 셋카의 발치에는 토끼 한 마리가 주욱 늘어져 있었다.

이 못난 놈. 이 못난 놈!

고작 그 토끼 한 마리 때문에, 아비 속을 이렇게나 시커멓게 태워?!


"제멋대로 나가서, 사냥해오면 아빠가 잘했다고 칭찬할 줄 알았어! 어! 아빠는!.....아빠는..."


.......


다음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막혀버린 말문을, 억지로 떼어보지만 이미 충분히 반성했는지, 셋카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럼 됬다.

오늘만은 더이상 혼내지 말자. 이 아이한테는 가장 특별한 날이니까.

나는 결국 눈녹듯이 사라지는 화를 뒤로한채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걱정했잖아."


캥...캥...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하는 셋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주자, 셋카는 혼났으면서도 내심 좋은지, 꼬리가 미묘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일단 집에 가자, 줄게 있으니까."


캉캉!


내 말에 씩씩하게 대답하는 셋카가 사냥했던 토끼를 문채, 호위하듯 내 앞에 와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봐도 어엿하고 훌륭한 여우가 된, 셋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야 겨우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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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캉캉캉!


셋카가 날 듯이 온 집안을 누비고 있었다.

무척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었다.


딸랑, 딸랑.


달릴 때마다, 셋카의 목에 매달린 작은 방울이 흔들리며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게 그렇게나 좋나.

아니, 그보다 쟤 방금까지 그렇게 풀 죽어있던 그 셋카 맞아?


"선물은 마음에 들어?"


캉캉!


최고라는 듯, 내 말에 질주를 멈추고 앞발을 들어올리는 셋카에게 마주 엄지를 치켜주자, 다시금 셋카가 온 방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래, 다섯번 째 생일 축하한다, 셋카야."


캉캉캉!


내 말에, 화답하는 셋카를 뒤로 하며, 나는 한동안 셋카의 기쁨의 질주를 쳐다보았다.

이제 곧 다섯번째 꼬리가 생기겠구나.



셋카의 꼬리는 일 년 주기로 하나씩 생기고 있었다.

내가 멧돼지에 치인 날이, 공교롭게도 셋카의 생일이었고, 우연이 아니라는 듯, 세번째 생일이 되자 꼬리는 세 개가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더 흐르고 꼬리는 네 개가 되었고, 이제 오늘로써 다섯번째 꼬리가 생길 때였다.

.....

도대체 언제 그렇게 불쑥 생기는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눈을 뜨고 나면, 어느새 생겨있는 새로운 꼬리들을 볼때마다, 조금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요호.

요력을 쓸 수 있다는 요괴, 혹은 영물.

이미 평범과는 거리가 먼 셋카가 내 앞에서 그 힘을 보여준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분명 대단한 힘일 것이다.

그 힘을....그 평범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 신비를 보면,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 때가 떠오른다.

어쩌면 죽었을 그 순간.

멧돼지에게 죽었어야 할 내 몸을 되살린건 아마 셋카일 것이다.

그 요력으로, 그 신비의 힘으로.

죽을 사람마저도 살려버리는 그 막대한 힘을, 혹시라도 셋카가 나쁜 짓에 쓸까 나는 내심 무서워졌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나를 빼고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조차 겪지 못한 이 아이가.

사람마다 내재된 그 악함을 모르는 저 가여운 아이가, 언젠가 내 품을 벗어나 지독하고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 쳐질것만 생각하면...

그 것에 상처를 입어, 지금도 공포의 대상이 된, 대요호 요우카와 같은 길을 걸을수도 있다는 생각만 들어도, 무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다못해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아직 셋카는 모르고 있었다.

점차 쇠약해지는 나를 모르고 있다.


캉캉캉!


무슨 생각해? 라며 묻는 셋카를 바라보았다.

아, 나도 모르게.


"아, 미안 셋카. 부르고 있었어?"


캉캉!


"알았대도, 아빠 이제 괜찮아."


요즘 들어, 자주 멍해지는 일이 많아서일까.

셋카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조금은 미묘하다.

눈치채지 않았으면 하는데.


내가 멧돼지에게 치였던 그 날 이후.

셋카는 병적으로 내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그 끔찍했던 일이 있기 전, 평소의 우리 모습과 거의 비슷하긴 했지만....지금은 조금 다르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어디를 갈 때도, 곁에 붙어 다녔으며,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갈 때 조차도 문을 닫았다간 대성통곡을 하며, 문을 긁어댔다.


또한 셋카는 점차 내가 집 밖을 나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했다.

밖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바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꼭 나갈 일이 있는 날에는, 아픈 척을 하며, 온 관심을 자신에게 쏟게 만들고는 하였다.

아마, 새벽에 토끼를 잡아온 것도...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밖은 위험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셋카는 그런 위험한 밖으로부터 날 지키기 위해, 그렇게 변해버렸다.

.........




어째서 일까, 천천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너무 신경을 쏟은 탓일까.

몸은 점차 나른해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 졸려...

조금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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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야지.

담 편에 셋카 사람 됨.

빌드 업에 너무 지칠까봐 좀 걱정되긴 하는데, 착한 얀붕이들은 잘 참아 줄거라 믿음.

굿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