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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


아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손이 떠났던 의식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당기는 기분과 함께, 내 몸이 부유하던 공간에서 점차 벗어난다.



...아, 잠깐 잠들었나.

눈을 뜨자, 의자에 앉아있는 내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졸려.

너무 졸리다.

분명, 오랫만의 낮잠임에도 불구하고 의식 한켠에서는 '더 자고 싶다.'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어젯밤 악몽의 여파 때문인걸까. 

수면부족이라고 외치는 몸의 비명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 몽롱하고 나른한 느낌. 그것이 온몸을 타고 늘어지고 있었다.


"저녁 시간 다 됬어! 아빠!"


"어, 응 그래, 밥 해야...지."


엄히 다그치는 목소리에 억지로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벌써 저녁 시간일 줄이야.

뻐근한 목을 부여잡고, 부엌에 서니 창가 너머로 저녁놀이 지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나 많이 잤다고?

아무래도 점심도 안 먹은채 잠만 잔 모양이다.

셋카가 많이 배고프겠는걸.



밥...밥...

사실 요리라고 해봐야,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먹을 약간의 음식과, 셋카에게 줄 고기정도면 충분하다.

멍하니 어제 삶아놨던 감자의 냄새를 맡는다.

아직 안 상했네, 먹어도 되겠어.

이내 손질해놨던 토끼 의 다릿살을 구워내 으깬 감자와 함께 접시에 담아내니, 어느새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다.


"하으아암...셋카야 여기."


마저 남은 뒷다리를 셋카가 먹기좋게 토막내놓은 뒤, 접시에 담아준다.


"고마워! 아빠!"


"그래."


셋카의 감사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내며, 식탁에 앉은 내가, 점차 깨어가는 정신으로 막 식사를 하려는데...


"......................................................"


멍했다.

다만, 수면부족에 의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진득하게 잔류하던, 나른함은 작금의 상황에 순식간에 달아나고, 정신은 또렷하게 돌아온지 오래다.

.......

나, 지금 누구랑 대화한 거지?

문득,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뜸 그 말만 듣고는 저녁을 차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벌거벗은채 생고기를 맛있게 뜯고있는 이 소녀를 보며, 나는 지금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


"움? 압빠 왜 구애?"


입안 가득 고기를 문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를 마주 본다.

아무리 신선하다지만은, 전혀 조리가 안된 생고기를 먹는 그 뱃속이 걱정되면서도, 볼이 터질것 같이 빵빵해서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는 이 초면의 소녀를 보며, 정신은 더욱 혼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은 아마도 이거겠지.

정신을 가다듬는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왔는지는, 이 말 이후에 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그래...그러니까...


"넌, 누구니?"


"에?"


놀란 소녀의 벙찐 소리와 함께, 잘 발라낸 뼈가 그녀의 입에서 떨어진다.


땡그랑!


둘의 침묵은 조금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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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카라고?"


"응!"


"네가?"


"그렇다니까! 아빠는 하나뿐인 딸 얼굴도 몰라?"


"그야, 셋카는 여우고, 넌 사람이니까."


"이익, 아빠 심술쟁이!"


자신을 셋카라고 주장하는 소녀가, 뒤로 돌며 자신의 등을 보여주었다.


"자! 이 꼬리 보여? 이제 됐지?"


"어....."


등, 정확히 말하면 등이 끝나는 지점, 사람으로 따지면 엉덩이의 바로 위쪽 부분에 여우처럼 복실거리는 하얀 꼬리가 달려있다.

그것은, 정확히 다섯 개.

내가 아는 셋카는 아직 네 개의 꼬리였지만, 오늘은 딱 셋카의 꼬리가 다섯 개가 되는 날이니, 소녀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이 아이가 셋카인 모양이었다.

다만, 믿어야 할 상황임에도 잘 믿기지 않는다.

그야, 이렇게나 상식을 초월하는 상황에 겪게 되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 꼬리, 한 번 만져봐도 돼?"


"아직도 못 믿어?!"


"그게, 말이지...."


사실, 셋카가 요호라는 사실은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요호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일단 만져보자.

그 누구보다 셋카의 감촉을 잘 알고 있는 나다.

꼬리의 털만 만져도 확신할 수 있다고 나는 분명 자신하고 있었다.


"난, 아빠가 만져주면 다 좋지만, 왠지 지금만큼은 기분 나빠!"


소녀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기분 나쁜 상황이긴 할 것이다.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외모가 바뀌었다고 못 알아보고, 의심하는 상황이니 충분히 그럴만 하지.

하지만, 나는 지금 저 꼬리를 만져봐야만 겠다.

아니, 만져아만 한다!


"금방 끝나니까...일단은 이리로 와볼래?"


"아빠, 징그러..."


계속 벌거벗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빌려준 모포를 두손 가득 모은채 소녀가 진심으로 싫은 표정을 짓는다.

우와, 방금 좀 상처 받은거 아닐까.

소녀가 살짝 떨자, 목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며 소리를 낸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었다.

이미, 반쯤은 이성이 날아가버린 채로 나는 천천히 셋카에게 걸음을 옮겼다.


"후후, 미안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다. 그러니 얌전히 그 꼬리를 내놔라~."


"으힉?!"


약간은 새된 소리를 낸 소녀가, 내가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아...아빠?"


"꼬리면 돼! 꼬리만 만져보면 되니까!"


사실, 이미 그녀가 셋카라는 것은 그 방울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목에 달려있는 그 방울은 분명 내가 셋카의 생일 선물로 준 것.

거기에 셋카를 빼다 박은 듯한 빨갛고 맑은 눈과, 풍성하게 부풀어있는 꼬리는, 내가 언제나 보아왔던 셋카와 똑 닮은 것이었다.

다만, 여우였을때도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셋카의 모습이, 내 상상을 초월해버릴 정도로 귀엽게 사람으로 변한 것은 내 이성을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만져도 되지? 그치? 그래도 된다고 말해!"


"으아! 아빠 저리가!"


"으하하! 거기서라!"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서의 짧은 추격전이 서막을 알린다.

아직은 사람처럼 뛰는게 어색한지 뻣뻣하게 뛰고 있는 셋카. 그리고 그 뒤를 잔뜩 과장된 몸짓으로 천천히 따라가는 나.

참으로 우스꽝 스러운 상황이다.




...문득, 셋카같은 딸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떠올랐다.

그런 나의 푸념을 신이 들어준 걸까.

분명 셋카의 생일임에도, 오히려 엄청난 선물을 받은 듯한 느낌에 괜시리 가슴이 울컥 거리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잘 키울게요.


"흐엑! 헤엑! 두, 두 발로 뛰는건....힘들어어어..."


"오호~? 그렇다면, 이대로 내 손에 잡혀주겠다는 말이겠지?"


"히이이이! 싫어!"


내 말에, 점차 떨어져가던 속력에 박차를 가하는 셋카.

하지만.

사람처럼 뛰기를 포기한 채, 두 손 두 발을 전부 다 써가며 발악하던, 셋카의 결말은, 결국 내 손에 잡힌채 만족할 만큼 머리와 꼬리를 잔뜩 쓰다듬어지며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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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 반이라, 지금도 사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써봤다.

항상 분량 짧아서 미안.

내일은 좀 일찍 써올게.

자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