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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두울~ 세엣~"


천천히 숫자를 다시 센다.

오 분.

아빠가 말했던 오 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아서, 벌써 두 번이나 다시 세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 조금 늦네.


언제쯤 저 문이 열리는 걸까.

시간이 지날때마다, 괜한 궁금증에 슬쩍 문고리를 잡았다 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자.

착한 딸이니까.

그렇게 하릴 없이, 바닥에 있던 돌이나 의미없이 발로 채던 때였다.


"아빠 최고!"


"하하, 그 옷이 그렇게 좋니?"


"응응!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와 엇비슷한 나이일까?

이쁜 옷을 입고 있는 어린 소녀가 그 아빠의 손을 잡은채 환히 웃고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딸, 그럼 아빠한테 뭐 줄거 없어?"


"당연히 있지! 아빠 일로와!"


소녀의 손짓에, 무릎을 굽혀 얼굴을 마주하는 아빠의 볼에 소녀의 입이 닿았다.


쪽.


입맞춤을 받은 소녀의 아빠의 입이 귀에 걸린다.


"하하하, 최고의 선물인데?"


"히히, 아빠! 배고파, 빨리 가자!"


"그래 그래, 엄마한테 가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보이는 부녀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머리를 고정시켜 놓은 느낌이었다.

이미 걸어간 부녀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들이 걸어간 거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간질거리는 기분.

소녀가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추던 그 순간이 자꾸만 떠오른다.

부럽다고 생각한 걸까.


나도...


나도, 아빠한테 해볼까?

아빠의 얼굴이 얼핏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볼에, 아빠의 볼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기분인걸까?

가슴이 이상하게도 더욱 간질거린다.

...

.

.

.

.

.

.

.

"우우, 아빠 거짓말쟁이."


괜시리 중얼거렸다.

오 분. 이미 지났단 말이야. 빨리 나와...






혼자 있는 것은, 싫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태어나지도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떨면서, 그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캥캥 거리며, 낑낑 거리며, 그 잘 뜨이지도 않는 눈으로 찾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내가 부르고 있던 것은 내 어미였다.

갓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이 그렇듯, 살기 위해서 그렇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어미라는 자는 내가 굶주려도, 내가 추위에 떨어도 단 한번도 품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눈.

그저, 그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역겨운 오물을 보는 듯한 그 무정하고 차가운 시선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다른 이의 눈이었다.


난 무얼 잘못한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날 낳은걸까.

그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어미는 숲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냥, 버린 것이었다.




"....우우, 아빠아..."



혼자있으면, 계속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차갑다. 아프다.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상해진다.

검으면서도, 칙칙한 무언가가 하얀 도화지를 물들이고 있다.


저리가, 저리가, 저리가!

나쁜 기억을 억지로 지우듯 머리를 흔든다.

너무 깊게 새겨져 지워지지도 않을 것이면서 그저, 필사적이었다.

지워져, 지워져! 내 안에서 나가...!


어느샌가 검은 끈이 보이고 있었다.

아빠와 처음 만난 날, 보았던 예쁘고 빨간 실과는 다른 것이었다.

너무나 어두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실의 끝은, 분명 누군가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아빠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끝에는....지금 누가...







"미안, 셋카 오래 기다렸지?"





아아...

아빠의 얼굴이 보인다.

음습하게 나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간다.

아빠...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아빠!"


"아하하, 미안 미안, 얘기가 좀 길어져서 말이야..."


"오 분이라면서! 지금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


"어어어....십 오분?"


"정확히 이십 분 사십 삼 초거든?"


"그, 그걸 다 세고 있었니?"


당연하지! 라고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아빠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빠의 손길에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빠만 있으면...아빠만 날 떠나지 않으면...

이런 생각을 잊을 수 있어.

아빠만 있으면 돼...


"아빠."


"음? 왜?"


한참동안, 아빠의 품에 안겨있다 살짝 벗어났다.

언제나, 내가 부르면 목이 아프지 않게 허리를 숙여주는 아빠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자, 까슬거리는 수염의 감촉이 느껴진다.


쪽.


그 소녀가 했던 것처럼,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지워지지 않게끔, 도장을 찍듯이 꾸욱 오랫동안.


"어...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발게지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빠처럼, 나도 얼굴이 뜨거운것은 착각인걸까?

괜히 부끄러워 장난스럽게 입을 열어본다.


"아빠 얼굴 완전 빨개! 히힝~"


"그렇니? 허, 허허허. 생각도 못했어서 그런가? 아빠 지금 꿈 꾸는거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괜히 볼을 주욱 늘려보이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따뜻해.

아빠는 따뜻해...

아빠가 좋아.

아빠를 사랑해.

아빠는 절대 날 버리지 않아.

아빠는.....아빠는 내 빛이야.

아빠의 손을 잡았다.

내 작은 손으로는 다 잡지도 못할 만큼 큰 손이지만, 내 손을 절대로 놓지않겠다는듯 그 것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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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카의 기습적인 뽀뽀를 받고 난 이후의 일이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꼭 해야겠지.

사람이 된 셋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내가, 걸음을 멈춘 곳은, 자주 가던 궁장(弓匠)점이었다.


딸랑.


"어서오세요...아, 오랜만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꽤나 오랜만에 보는데도 얼굴을 기억하는지 카운터에 앉은 직원이 아는 척을 해온다.


"안에, 궁장(弓匠) 계십니까?"


"없을리가 없죠."


고개를 끄덕인 직원이 내부로 안내하자, 수많은 활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있는 어느 공간 속에서, 궁장이 활들을 정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등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내가 온 것을 아는걸까.

도대체 어떻게 아는건지 싶으면서도, 궁장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손님이 있어도, 내가 아는 궁장은 이미 시작한 정비를 멈추는 일 따위는 없었다.

눈 앞의 궁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저번에 준 흑각궁은 꽤나 자신작이었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르군, 벌써 망가뜨린겐가."


"제가 쓰려고 온게 아닙니다."


"호오."


그 말을 듣고서도, 손을 멈추지 않던 궁장이 정비를 마치자 뒤를 돌았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만을 바라봐온 우묵한 눈.

오랫동안 줄을 채며,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손.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진중하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는 노인은, 이내 시선을 조금 옆으로 옮겨 셋카를 바라본다.


"이 아이가 쓸 건가?"


"네."


"흐음."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셋카를, 궁장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어려운 걸까.

보통, 어떤 사람이든,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딱 맞는 활을 건네주던 궁장이 처음으로 고심하는 모습에, 나는 혹시라도 셋카의 정체를 눈치챈 걸까 하는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어렵군."


"어렵다구요?"


뭐가 어렵다는 걸까?

내 물음에도 그다지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궁장이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활을 채본 아이는 아닌것 같으니, 자네가 답하게."


그렇게 말하며, 궁장은 진열되어있던 활들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흑각(黑角)을 선호하는 건 알고 있네, 다만 이번에 새로 들인 백각(白角)으로 만든 궁들도 훌륭하지."


흰 뿔로 만든 각궁이 진열대에 놓인다.


"백각궁."


셋카에게 줄 활이기에, 한층 더 신중하게 시위를 당겨보며 하나 둘, 성능을 점검하는 사이, 궁장이 백각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이었다.


"변형 줌(통), 활의 닳음을 방지하기 위한 소가죽 출전피. 방수처리까지 해놨지."


마감 또한 깔끔하다.

확실히 좋은 활이지만, 내가 쓰기에는 좀 작은 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셋카가 쓰기에는 최적이다.

몇번 시위를 채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궁장이 '다음은 뭔가'라며 말을 재촉했다.


"묵직하고 깔끔한 걸로..."


"묵직하고, 깔끔한..."


이내 장인이, 아까보다는 더 큰 활을 보여주었다.


"수우각궁. 동방의 질 좋은 물소의 뿔로 만들었네."


그렇게 서로 말을 주고 받는 사이, 진열대에는 하나 둘, 물건이 쌓여간다.

궁장의 눈을 믿었던 만큼 보여주는 활들도 하나같이 빼어나서 셋카가 쓰기에는 다 좋아보이기만 한다.

그러니, 마지막에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셋카, 어디 이 활 중에서 하나 골라볼래?"


"정말, 내가 쓰는 거야?"


궁장과 내가 주고받는 말을 다 들었지만서도, 믿기지 않는지 셋카가 재차 물어봤다.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기뻐서 방방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있어보이는 모습에, 웃음이 핏 나온다.


"응, 앞으로 셋카가 쓰게 될 활이니까, 조금은 신중하게 고르렴."


"으음, 어려운데..."


셋카가 눈 앞에 놓인 수많은 활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보았을까.

어설프지만, 한 개, 두 개, 시위를 당겨보던 셋카가 황색빛이 도는 활을 하나 집고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시위를 죽 당긴다.

그거구나.

눈에 살짝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셋카가 결정했음을 직감했다.


"이걸로 할래."


"제법 안목이 좋군. 사실, 처음 볼때부터 백각궁 아니면 그 궁이었다만, 좋은 선택이다."


궁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긴가 민가 했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

확실히 셋카가 쥐고 있는 활은 작으면서도, 시위를 채는데 있어서 묵직한 것이 힘이 좋은 활이었다.

제법인데, 셋카.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즐거운 사냥 되세요. 착호(捉狐)님."


궁장점을 나오는 순간, 카운터의 직원이 잊고있었던 별호를 불렀다.

착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셋카를 바라보았던 것 같았다.

혹시라도 들었을까?



...바보같은 짓이다.

나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이미 십 년도 지난 얘기를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말 하나만으로도 나는 겁을 집어먹은 어린애처럼, 셋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빠, 왜?"


"어, 어? 아니야. 빨리 가자."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잊자.

잊어버리자.

물밀듯이 튀어오르는, 착호의 기억들을 억지로 흩뜨린다.




...옷을 찾으러 가자.

해가 지고 있는지, 붉은 노을이 마을 첨탑에서 부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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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

글이 더럽게 안써져서 몇번 퇴고하고 겨우 써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