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yandere/24568511

2편 https://arca.live/b/yandere/24631987

3편 https://arca.live/b/yandere/24668236

4편 https://arca.live/b/yandere/24680358

5편 https://arca.live/b/yandere/24797661

6편 https://arca.live/b/yandere/24859391

7편 https://arca.live/b/yandere/24908877

8편 https://arca.live/b/yandere/24962146

9편 https://arca.live/b/yandere/25063653






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드디어 산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때는 맞춘건가.

산이다 보니, 금세 어두워지고는 있지만 완전히 밤이 되기 전에는 집으로 도착할 수 있기에, 어느정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콩콩콩콩~"


문득, 옆에서 독특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녀석, 너무 신났는데.

옆을 보니, 그야말로 날아오를 기세로, 방방거리던 셋카가, 두 손에 꼭 쥔 것을 보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셋카, 그렇게 좋니?"


"당연하지! 짜아안!"


내 말에 셋카가 품에 안은 옷을 자랑하듯 활짝 펼쳐 보였다.

산바람에 펄럭거리는 하얀 털옷. 그것은 옷방에 부탁했었던 셋카의 옷이었다.


'이름이 셋카(雪花)라고 했지? 그래서 이번엔 하얗게 디자인 해봤네, 어차피 겨울용이니까, 위장에도 용이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옷을 건네주던 아저씨의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조금 무리한 부탁이었음에도, 오히려 입을 사람을 생각해 정성과 신경을 쏟는다.

역시 마을 제일의 실력이라고 자부할만큼, 셋카가 들고 있는 옷은 사냥 때 입기에 아까울 정도로 이쁘고 따뜻한 옷이었다.


"빨리, 집에 가자 아빠! 너무 입고 싶어!"


"알았어, 알았어. 하지만 이제 곧 밤이라 조심히 가야돼. 괜히 미끄러졌다간 큰일난다."


"히잉, 알았어."


신나는 기분을 간신히 다스리며, 다시금 내 옆에 바짝 붙은 셋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준 나는, 이내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벅, 서벅.


사박, 사박.


둘과 산을 오르는 길.

고요함 속에서 나와 셋카의 눈 밟는 소리만이 사위를 메우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면, 셋카의 작은 발이 내 템포를 맞추기 위해 세 걸음 네 걸음 쫓아온다.

혹시라도 따라오기 힘들까 싶어, 걷는 속도를 늦추면, 그에 맞추어 셋카도 보폭을 좁히고는,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사박 사박.


...눈을 밟으며 들리는 작은 소리들은, 제법 듣기 좋았다.

뽀드득, 뽀드득 거리는 느낌이 발을 타고 흐를때마다, 묘한 안정이 찾아온다.

일부러 신경쓰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갈 소리들이, 고요함 속에서 자기 나름의 안정감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나의 편안한 표정을 본 걸까.

언제나, 나를 향해 재잘거리던 셋카가, 한마디도 없이 그저 발걸음을 맞추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기특한 것.

조금은 얘처럼 어리광 부려도 되는데...

가끔씩 어른같아 보이는 셋카의 모습을 보며, 종종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셋카."


"응? 왜 아빠?"


"업힐래?"


"엥?!"


내가 허리를 숙이자, 셋카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그렇게나, 놀랄 일이니?


"갑자기 왜 그래? 아빠?"


"그냥, 업어보고 싶어서."




...조금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마을을 지날때마다 가끔씩, 목마를 태워주거나 자식을 업고 있는 부모들을 볼 때면, 그 때의 나는 내심 그것을 부러워 했었던 것 같았다.

가족간의 애정. 가족간의 화목.

어린 시절, 짐승의 멱을 따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내게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가업이라며, 숟가락도 뜨지 못하는 내게 해체용 칼을 먼저 쥐어준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물론, 아들에게마저 피냄새가 나자, 울며 집을 뛰쳐나간 어머니를 증오하지도 않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있었다.

그저.

그저....

아버지의 등에 업히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채, 거리를 걷고 싶다.

그것 뿐이었다.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내가 업히지 못했어도 누군가를 업을 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우으....그래도 산 오르막이라 위험하지 않을까...?"


"후후, 셋카 나를 너무 만만히 보는구나. 이 아빠를 너무 얕보지 마렴! 그러니 어서 업혀라!"


일부러 과장되게 웃음치는 나를 보며, 셋카는 조금 머뭇거리다, 이내 쪼르르 달려와, 내 등에 몸을 얹었다.

푹신한 느낌.

떨어지지 않게, 다리를 받치는 사이, 셋카의 양 팔이 내 고개를 지나, 턱 아래로 슬며시 내려왔다.

조금 부끄러운 걸까.

이제는 사람도 없어서 모자를 벗어도 되는데도, 셋카는 괜시리 모자를 푹 눌러쓴채, 내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녀석, 뭐 이런걸로...


"저기, 셋카 혹시...."


"말 하지마! 아빠 안돼 안돼! 그것만은 말하지마!"


"으붑?"


운을 채 떼기도 전에, 셋카가 갑자기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셋카의 반응에 오히려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나였다.

도대체 뭘, 말 하지 말라는...


"여, 여우일때보다는 무겁긴 하지만!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야! 그렇지? 아빠 그런거지?!"


....아.

뭐라, 물어보기도 전에, 시원하게 자폭해버리는 말들을 듣자, 나도 모르게 핏 웃음이 나왔다.


"방금 웃은거지? 우, 웃지마! 아빠! 나 지금 무지 진지하거든?!"


"으붑붑 부부부붑..."


"으 으이, 난 몰라! 말 하지마!"


내 입에서 '그 말'만이 나오지 않게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 셋카를 보며,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로서는 그렇게 신경 쓸 것도 아닌데, 셋카는 엄청 신경쓰이는 걸까.

뭐, 셋카도 여자니까, 자신에게는 분명 아주 큰 문제일 것이리라.


"으붑, 그러고 보니, 좀 무겁 에버법?!"


"으잉! 아빠 미워어어!"


결국 장난을 참지 못한 내 입을, 쥐어짜듯 막은 셋카의 외마디가 산 속에 울려퍼졌다.








---------------------------------------







"셋카 많이 화났니?"


"핏...."


"하하하...아빠가 미안해, 셋카 하나도 안 무거워! 진짜야!"


"흥, 핏..."


삐진듯, 얼굴을 잔뜩 부풀린 셋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던 사이, 익숙한 산길을 지나자, 조금 높은 경사의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ㅡ 보이니, 셋카? 진짜 집에 다 왔네! 얼른 옷 입어보고 같이 씻자. 응?"


"...알았어. 아빠니까 이번만 봐줄게."


"정말? 고마워 우리 딸!"


"우에에, 따가워! 아빠 수염 좀 깎아!"


애걸복걸한 끝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셋카가 팔짱을 낀 채, 드디어 입을 열자, 너무 기쁜 나머지 셋카의 얼굴을 잔뜩 부비자, 곧장 핀잔이 들어온다.

수염...깎아야지...

과거, 아직도 독신으로 사는 나를 위한 조언이라며, 풍성한 수염을 자랑하던 옷방 아저씨의 말이 떠오른다.

전혀 효과가 없었네요. 아저씨.







우뚝.


마음속으로 옷방 아저씨에 대한 평가를 낮추는 사이, 셋카의 걸음이 멈추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또, 무언가 마음에 안드나?


"셋카, 왜 그러니?"


"........"


"셋카?"


조금 이상했다.

무언가에 고정되어있는 시선.

살짝씩 떨리는 몸.

불안하게 흔들리는 꼬리.

한 눈에도 심상치 않아보여, 셋카의 시선을 따라붙었다.

......저건.


푸륵, 푸륵.


뀍, 뀍ㅡ 뀍...


두꺼운 가죽, 치솟은 엄니. 사납게 뜬 눈, 위협하듯 내뱉는 콧김.

멧돼지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몇 년 전 멧돼지에게 치였던 기억들이 떠올라, 몸이 슬쩍 굳었다.


끽, 끽 끼익!


뀌익, 뀍 뀍...


...새끼들도 같이 있는 건가.

슬쩍 멧돼지의 주변을 보니, 대 여섯마리의 어린 새끼들이, 어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자식들이 있어서, 아직 달려들지는 않는건가...


운이 좋다.

그렇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거리를 벌리는게 좋았다.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셋카, 조금 돌아가자."


셋카의 어깨를 슬며시 당겼다.

물러나서,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러니...


"...싫어."


"셋카?"


"시, 싫어....싫어!!!"


셋카의 몸이 떨린다.

진정하지 못하는 듯,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뀌이익!


"셋카, 자극하면 안돼!"





"싫어!!!!!!!!!!!!!!!!!!!!!!"




순간이었다.

셋카의 커다란 비명과 함께, 터져나오는 무언가의 바람에 떠밀려 몸이 내동댕이 쳐졌다.


"크윽..."


적잖은 충격에 저절로 튀어나오는 침음을 억지로 삼키고,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셋!....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흘러내린다.

겨울인데도 얼굴을 달구듯, 뜨거운 폭풍이 셋카로 부터 몰아치고 있었다.

왜...

어째서?

셋카의 주변에 일렁이는 형체가 보인다.

코에서는 희미하지만 타는 듯한 내음이 느껴졌다.


...분명 그것은 불이었다.

무언가를 태워야지만, 볼 수 있는 것인데도, 기이하게도 공중에 떠있는채 아무것도 태우지 않은채 홀로 타오르고 있다.

그 기이한 불이 셋카의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작금의 상황에, 정신이 멍해지고 있었다.

본 적이...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 푸른 불이....

언제나 악몽의 마지막처럼, 거대한 푸른 불이....


"싫어, 싫어! 죽어버려!!!!"


뀌이익 뀌익!


쏘아진다.

셋카의 표독스러운 말과 함께, 그 불이 멧돼지에게 날아간다.

도망갈 틈은 없었다.

너무나도 빠르게 멧돼지를 뒤덮은 불은, 이내 욕심껏 덩치를 키워가며 돼지의 육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만해...


어미가 불에 타고 있자, 놀라 어쩔줄을 모르던 새끼들에게도 불길이 손을 내뻗었다.

치직, 하며 털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새끼들은 비명을 채 지를 틈도 없이, 불꽃의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만해...!


"죽어, 죽어, 죽어!!!! 너희들은 다 죽어버려!!!"


그만해!

셋카의 어깨를 세게 흔들었다.


"그만해! 셋카, 제발 그만해!"


"아빠를 죽였어! 아빠를 아프게 했어! 저런 놈들은 다 죽어야 돼! 전부 내가 죽여버릴거야!"


"아빠 안 죽었어! 셋카 제발 그만하고 나를 봐!"


보지 않는다.

셋카의 눈에 나는 담겨있지 않았다.

오롯이, 그저 태운다.

이미 형체도 채 남지 않은, 멧돼지들의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셋카는 멈추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어!"


...아빠를 그만 무섭게 해...

제발, 내가 알던 셋카로 돌아와 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튀어나온다.

무섭다.

내가 모르는 셋카의 모습이 너무나 무섭다...






--------------------------------------





...아빠가 울고 있었다.

아빠를 괴롭게 한, 놈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놈들.

그것들을 태워 죽였으니 칭찬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왜?

아빠는 왜 우는 거야?


아빠 딸이니까, 전부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마음은 전부....모두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빠가 우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아, 아빠...이제 집에 가자?"


"....어, 그래."


옷섶을 살짝 당기자, 아빠의 몸이 흠칫 떨렸다.

왜?

아빠, 왜 그래...?


아주 잠깐이었다.

아빠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빠의 눈에서 보고 싶지 않은것이 보였다.


무섭다.

아빠가 무서워 한다.

뭘...?

아빠가 나를?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떠나면 어떡하지?

내가 무서워서, 내가 싫어져서 떠나는 거 아닐까?


그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빠는 아니야.

아빠는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하지만...!

아빠가 그런 눈으로 보면, 나는....어떻게 해야 돼?

나는 아빠가 없으면 싫어...

나는 아빠가 없으면 살 수 가 없어...

날 떠나지 마, 아빠.

아빠랑 영원히 함께 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둡다.

아빠와 함께하며 단 한번도 없었던 어두운 느낌이 내 가슴을 조여온다.

아파.

아빠가 그렇게 보면, 너무 아파....!

난 어떻게 해야 돼?

방법을 알려줘.... 누가, 누가 제발...


'그럼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


누군가가 말을 건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변에는 아빠와 나 밖에 없었다.

그럼 이 목소리는 누구지?

내 안에서 들리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검은 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것으로?

의아하긴 했지만, 확실했다.

이 실이....아니, 이 실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넌...누구야?


'알 필요 없어. 넌 그저 방법을 찾고 있는 거잖아? 내가 그리 궁금해?'


아니, 알았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아빠를?


'그럼, 이제 너는 힘도 잘 다룰 수 있잖아? 그 힘으로 아빠를 못 도망가게 하면 되는거야.'


아, 그렇구나. 고마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할지....이제 알 것 같아.


'네 다섯 번째 꼬리는 모든 것을 홀리는 힘이 있어. 그걸 쓰면 될거야.'


그렇구나.

고마워.


'그래, 어서 아빠를 못 도망가게 해!'


응, 그렇게 할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했는지 아빠가 문의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아빠 미안해.

하지만, 아빠가 너무 좋아서...

아빠가 떠나는게 싫어서...


끼익.


자물쇠를 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도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분명 이 힘을 처음 쓰는것인데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숨을 쉬듯, 자연스레 아빠의 등에 꼬리를 대었다.


"셋...어....?"


아빠의 다리가 갑자기 풀려버렸다.

순식간에 주저앉아버린 아빠는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다, 이내 천천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아빠 미안해...

그리고, 누군가야....고마워.

누워있는 아빠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아직은 따뜻하다.






------------------------------





이제 슬슬 스위치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