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지금, 난 왜 잠들어있던 걸까.

점차 돌아오는 의식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문을 열었던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설마, 쓰러진걸까?

그렇다면...설마, 우려했던 병이라도 걸린걸까?


의문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니, 일단 눈을 뜨자.

걱정은 조금 접어두고서라도, 일단 눈을 뜰 수 있는지 부터 확인해야 했다.



"........."


눈을 뜨자, 이미 완전히 밤이 되어버린듯, 캄캄한 어둠이 먼저 나를 반겼다.

집이로군.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익숙한 가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에 왔던 것은, 정말이구나.

한낮 신기루나 환상이 아니었는지, 나는 확실히 집에 있었다.

그렇다면, 집에 들어와서 난 뭘 했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나?


...

그 부분에서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 부분만 잘라버린듯, 뿌연 안개가 낀 기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빠, 일어났어?"


일어나는 소리를 들은걸까.

편집된 일부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사이, 셋카가 눈웃음을 지으며 방에 들어왔다.

셋카.

집에 오면 셋카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었던 것 같은데.

입을 벌리다, 다시 다물며 더듬거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했지?


기억날듯 말듯한, 애매모호함 속에서 어물쩍대던 사이 결국 셋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 옷 어때? 이뻐?"


그 말에, 고개를 들자 달빛과 촛불에 비쳐 은은히 빛나는 옷이 내 앞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옷이 날개라고 하던가.

달빛에 비춰진 셋카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이쁘네."


"히히, 고마워 아빠."


담담하지만서도, 진심이 담긴 말에 셋카가 환히 웃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

그 미소를 보며, 나또한 잔잔히 마주 웃어주었다.

그래, 내가 알던 셋카야.

......

...

..

..

.

.

.

.

.

.

.

.

.

.

.

내가 알던 셋카라고?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려던 생각을 붙잡았다.

뭐가, 내가 알던 셋카라는 거지?


"읏?!"


"아, 아빠?"


뿌옇던 기억의 일부가 되돌아온다.

타오르는 불.

파란 불!

그 것이 멧돼지를 불태우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누가?

도대체 누가?

나도 모르게 입으로 손이 갔다.

셋...이라고 말하는 순간 억지로 틀어막은 것이다.

셋카가 그럴리가 없다.

아니, 아니야...



하지만....

너무도 또렷하게, 그 것을 보았다.

잊혀지지 않을만큼 강렬한 기억이 다시금 몰아친다.


"흐읍..."


숨을 억지로 들이쉰다.

댐이 무너지듯, 잊었던 기억들이 밀려들어오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 기억의 마지막.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셋카에게 내가 말하려던 것은...

뒤도는 순간, 셋카의 꼬리가 빛나며, 이내 의식을 잃어버리는 모든 순간까지.




...셋카가 그랬다.


"...다 기억났나 보네, 아빠."


"........셋카."


한 순간이지만 등으로 강렬한 한기가 스쳐지나갔다.

같은 사람인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치켜들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차가운 눈.

굳어있는 표정.

언제나 만발하던 웃음은 지워내듯 사라져있고, 말똥거리던 눈의 빛은 흙탕물처럼 탁하기 그지 없었다.


...누구야.

내 앞에 있는 아이는 마치 셋카의 탈을 쓰고 있는 다른 사람같았다.


"미안해, 아빠. 아직 힘을 다루는게 서툴러서...아빠를 힘들게 해버렸나 봐."


"무슨 소리...니?"


문득,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만, 달빛 때문은 아니었다.


호로롱... 호롱...


기이한 소리와 함께, 셋카의 꼬리가 빛이 나기 시작했다.


"다 잊게 해줄게, 아빠. 다시 내가 알던 아빠로 돌아가는 거야."


"무슨, 소리야...! 셋카! 그만해!"


이번엔 실수 안 할테니까 걱정하지마.

그런 말을 담담히 쏟아내며, 셋카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 아빠를 위해서야. 난 아빠가 없는 것은...상상만 해도 싫은 걸?"


내가 아는 아빠로 돌아올거야.

그 말을 듣자, 어렴풋이 이해했다.


"셋카! 내 말 들어! 그게 아니야!"


오해를 풀기 위해, 소리쳐보지만 셋카는 더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으으윽...!"


눈이 부시다.

내가 입을 열면 열수록 듣기 싫다는 듯 꼬리의 빛이 더욱 밝아지며, 어느새 방은 대낮보다 눈부실 지경이었다.

아니야, 셋카야. 이건 아니야.

내가 무서웠던건 그게 아니야!

다시금, 입을 열지만 어느덧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셋카!


"자, 아빠. 다시 잠들면,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올거야."


그 말과 함께 셋카의 꼬리가 가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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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다녀왔어!"


"오, 셋카. 오늘도 사냥은 즐거웠니?"


집으로 들어오자, 아빠가 포근한 얼굴로 날 반긴다.

언제나, 집에 있는 아빠.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 깊이 행복이 차오른다.


"짜잔!"


오늘 사냥을 묻는 말에, 곧장 등에 지고 있던 고라니를 내려놓고 자랑하자, 아빠가 환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아, 따뜻해.


"우와, 셋카 혼자 잡은거야? 역시, 셋카는 대단한 걸? 아빠라면 절대로 못 잡았을 거야."


"헤헤, 그야 아빠는 이제 은퇴했으니까! 아! 은퇴하기 전에도 못 잡았을지도?"


"오호오...그 말은 이 아빠를 향한 도발로 받아드려도 되려나?"


살짝, 자존심을 긁혔을까.

아빠의 한쪽 눈이 살짝 파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인걸?


"그야, 아빠 최대 성적이...토끼 뿐 이잖아?"


"참 순진한 표정으로, 대못을 박는구나..."


그 말을 듣고서, 아빠가 침몰하는 듯 휘청거렸다.

그 모습이 짐짓 웃겨, 웃음을 터뜨리자 아빠도 이내, 마주 웃어주며 이내 고라니를 어깨에 메기 시작했다.


"금방 해체하고 올테니까, 잠깐만 기다리렴."


"아, 아빠 괜찮아. 내가 할게."


"응? 아빠가 셋카한테...손질하는 법 알려줬었나?"


내 말에 아빠가, 잠깐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맞아.






세세한 것 까지는 신경쓰지 못했었네.






"원.래. 내가 했던 거잖아. 아빠."


그 말을 듣고나서야, 아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아빠 그런거야.


"아아...그렇지...아 그래..."


머지 않아, 아빠가 고라니를 내려놓았다.


"그렇네, 진작에 다 알려줬는데 왜 내가 하려 했지? 아빠가 오늘 잠이 덜 깨었나 보구나."


"그럼, 그럼! 저번부터, 이제 내가 하라고 아빠가 말했는걸?"


"...그렇네. 아빠가 착각했나 봐."


내 말을 듣고서 아빠는,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차암, 아빠 요즘 너무 잘 까먹는다니까...

머리에 좋은 것이라도 먹여야 할까?


"금방 다녀올게! 아빠 집 잘 지키고 있어!"


"내가 얘니? 기껏해야 코 앞이면서..."


"그래도! 아빠는 약하잖아! 셋카는 강하니까 밖에 나가도 괜찮은 걸!"


"하하하, 그래 알았다. 조심히 다녀오렴."


"응!"


고라니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아빠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내가 싫어해서 나가지 않는다.

그런 아빠가 좋다.

아빠는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만큼 나를 사랑한다.


"으, 귀찮아."


빨리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아빠랑 더 있고 싶어.

하지만 밥도 먹어야 하니까...


"근데, 어떻게 해체하는 거지...."


자신있는 척 말했지만, 사실 한번도 짐승을 손질해본 적 없던 나는, 어깨에 짊어진 고라니를 슬쩍 쳐다보았다.

뭐...어떻게든 되겠지!

아빠가 해왔던 것처럼, 비슷하게만 하면 먹을 순 있을거야.

그렇게,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는 제멋대로 고라니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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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정도가 흐른 것 같았다.


"쿨럭, 쿨럭..."


늦은 밤. 자고있던 아빠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삼키고는 있었지만, 자면서도 멈추지 않는 기침소리에, 결국 오늘도 잠이 깨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아빠가 자는 침실로 걸어갔다.

아빠가 아픈걸까.

문득 겁이난다.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러고 보니, 아빠가 가끔씩 뭔가를 먹었는데.

기억속을 더듬어보자, 아빠와 저번에 같이 마을에 갔을 때, 아빠가 들고 왔던 봉지가 생각이 났다.

매일, 그 안에 있던걸 먹었었지?

그 뭔가를 먹으면, 나을까 싶어, 집에 있던 봉지를 들추어보지만, 이미 다먹었는지 봉지 안은 텅 비어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을로 내려가야 하나?

아빠가 혼자 들어갔던 그 장소.

그 곳의 위치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혼자 마을에 내려가기에는 아직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무섭게만 다가왔다.

어떡해...

아빠가 아픈 것은 싫었다.

오래 오래, 영원히...

아빠와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럼, 그 걸 쓰면 되잖아.'


아, 너니?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건다.

내 가슴부터 이어져있는 검은 실을 통해 작은 울림이 퍼져나간다.


'네 아빠가 멧돼지에게 치였던 날. 네가 아빠를 살렸잖아. 그 힘을 쓰면 돼.'


아 맞아. 그러면 되겠구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가 쓰러지던 날.

어찌하지 못해 펑펑 울고있었던 순간, 꼬리가 하나 더 생기며 일어난 기적.

그 꼬리의 힘으로 죽었었던 아빠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힘이니, 이런 작은 감기같은 것 정도야, 금방 나을 수 있어!

비록 그 날 이후로 단 한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 때의 감각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호롱...


힘을 끌어올리자 두번째 꼬리가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와 비슷한 감각.

....그런데 그 때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그때는 좀 더...밝았던 것 같은데...

몇 년이나 지난 일이라 내가 착각하는 걸까?

왜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들지...?

조금은 다른 느낌의 기운을 보던 사이,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입을 열었다.


'아빠가 깨기전에 빨리 하는게 좋을 걸?'


아 맞아.

괜히 아빠 놀래키기 전에, 잽싸게 끝내자.


눈을 뜬 아빠가 귀신이라며 펄쩍 튀어오르는 모습도 보고는 싶었지만, 아픈 아빠에게 그렇게 짖궂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꼬리의 빛을 아빠의 가슴에 건넸다.


"쿨럭...쿠....크....흠....."


빛을 건네받고 얼마지나지 않아, 아빠의 기침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다!

무슨 효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결 편해진 아빠의 얼굴을 보자, 나도 얼굴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내가 착각한거였어.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고, 조언을 해준 누군가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항상 고마워! 넌 정말 착한 친구구나!


'아, 뭐 그래. 그럼 이만.'


멋쩍은 걸까. 귀찮은 걸까.

건성거리듯 감사를 받은 후 울림이 사라지자, 말을 걸던 누군가가 떠났음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언젠가, 아빠한테 네 말을 해줄게.

아빠라면, 분명 좋은 친구라고 얘기해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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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ON

얀붕이 맛탱이 가버렸으니, 한동안은 셋카의 시점으로 풀어나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