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그 날이 있고 나서 일 년이 조금 안되는 날이었다.

짧은 여름이 지나고, 다시금 찾아온 겨울.

이번 겨울은 저번과는 달리, 유독 추운 날이 많고는 했다.


총총총총.


아빠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그러고보니 최근, 아빠 춥다고 자꾸 이불에서 꿈지럭 거리는데.

아예 이불을 걷어버려야 되나?

그런 실없은 생각을 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잠꾸러기 아빠를 깨우러 갔을 때였다.


"아빠! 일어....어?"


말꼬리가, 점점 흐려졌다.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조금은 멍해진 모양이었다.


평소대로, 침대에 있어야 할 아빠가 자리에 앉아 창가를 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언뜻, 창에 비치는 아빠의 검고 탁한 눈은 무섭도록 침착하게만 보였다.

내 목소리를 들은 걸까.

햇빛에 비추는데도 유난히 창백한 아빠의 얼굴이,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셋카야, 잘 잤니?"


"어...? 어! 으응...아빠도 잘 잤어?"


"응. 아빠도 오늘은 잘 잤어."


오늘은?

약간의 의문을 뒤로한채,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왜지?

왜 갑자기....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단 한 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아빠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무렵,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금방 밥 해줄게."


"에? 아빠, 이제 내가 하기로...."


말이 자꾸만 이어지지 않는다.

나를 보는 아빠의 어딘가 무감각한 표정에 자꾸만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만 있었다.


"내가, 그런 약속을 했었니?"


"......."


"그러면, 오늘만 아빠가 하는걸로 하자."


그렇게 말하며, 아빠는 주방으로 가, 식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했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는 건...

설마...


아빠가 깨어 버린 걸까?


호롱...


생각을 마치자마자 곧장 힘을 끌어올렸다.

암시가 풀리는 주기가 빨라지고는 있었지만, 설마, 오늘 깨어날 줄이야.

실수다.

언제나, 아빠가 완전히 깨기 전에, 재차 암시를 걸어놨었지만, 자고 있는 사이에 깨어버리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아빠를 다시 되돌려 놔야...


"셋카."


아빠에게 걸어가던,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고저가 없는, 담담한 목소리.

내게 등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전부 아는듯 아빠는 재료손질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짐짓 불안해보여,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응, 아빠."


"하지마렴."


"무슨....소리야?"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걸까.

불안 속에서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더 안 해도 돼. 그동안...아빠가 셋카에게 잠든 동안, 아빠가 셋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전부 모르는 거 아니였어?

분명, 암시가 걸리면...마치 자는 것처럼...한낮 꿈인 것처럼...그저 그런 꿈같은 일로만...


"꿈, 같았지."


그 생각에 대답해주듯, 아빠가 말했다.


"셋카가 아빠에게 바래왔던 것. 셋카가 진짜 원했던 것. 그 일 년동안, 차고 넘칠 만큼 깨달았어."


아빠는 전부 알고 있었다.


완전히 잊고만 있을 줄 알았던 모든 순간, 순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저 잊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잊은 척 하고만 있었어도 내겐 충분한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아빠가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그 순간이.

그렇게나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눈이 마주친다.

천천히 떨어지는 입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질끈 감겼다.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


"하지만 이건 아니야, 셋카."


그 말을 듣고, 순간이지만 다리에 힘이 빠졌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뭐가?

아빠는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알 거 아니야...

내가 원했던 것도...

내가 바랬던 것도...

전부 차고 넘칠 만큼 알았다면서!


"뭐...가 아니야...."


어느새 악물고 있던 입에서 천천히 터져나왔다.


"뭐가 아닌데..."


하고 싶지 않았던.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으득거리며, 이가 부서져라 꽉 물고 있는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화아악!


억눌러두었던 모든 힘이 감정과 함께 요동치며, 집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우지끈.


퍼석.


"뭐가 아니야!"


무서워 했잖아.

버리고 싶었잖아!

도망치고 싶었잖아!

아빠 눈에도 난 괴물이잖아!

아빠도, 엄마처럼 날 버리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분명 그 눈을 보았었다.

두려움에 가득차있던 그 눈.

그저 아빠를 좋아했던 것 뿐인데.

아빠를 사랑했던 것 뿐인데!

어째서 아빠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본 거야!


"...그래 무서웠어."


"뭐..."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인정하는 아빠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네 생각이 맞아. 그 날 아빠는 무서웠어."


"....그러니까!"


"아니, 셋카야."


아빠가 걸어온다.

내뿜는 위협적인 힘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은, 어딘가 초연해 보이기만 했다.

그저 나를 똑바로 바라본채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한 마디씩.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아빠만은 셋카가 요호라서, 괴물이라서 무서웠던 게 아니야."


한 걸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라. 모두가 아빠같은 사람은 아니야."


두 걸음.


"아마 괴물이라고 불리겠지, 요호의 두번째 재앙이라며, 모두가 셋카를 힘들게만 할거야."


세 걸음.


"그 힘으로 인해, 상처받을 너를, 그 아픔으로부터 영원히 너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네 걸음.


"언제부턴가, 그럴 수가 없는 것을 알아버렸어. 그 순간, 아빠는 너무 무서워서....그래서 아빠는..."


다섯 걸음.


"미안해. 셋카."


뺨에 아빠의 손이 닿았다.

크고 따뜻하기만 했던 손.

하지만, 지금 아빠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그 섬칫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 왜...그래?


"아, 아빠...?"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그 어둠 속에서.

내 안에 갇혀서, 그저 흐릿한 의식으로 소중한 시간들이 사라져가는게 너무나 힘들었어.

그래서 단 한 번만.

그저 단 한 번만이라도 이 말을 하고 싶었단다...


"사랑한다, 셋카야."


아빠의 손이 천천히 떨어진다.

시간이 점차 느려지는 것처럼, 뺨을 쓸어내려가는 아빠의 손이, 멀어져간다.

몸이 점차 흔들린다.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무언가가 끊어지듯, 아빠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털썩.


멍하니, 쓰러져버린 아빠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기침도 멈췄잖아.

다 나았잖아...

이런게 어딨어...

황급히 힘을 끌어올려 아빠의 가슴에 대었지만, 전과는 달리 아빠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거칠게 내뱉는 숨.

하지만 그마저도, 끊어질 듯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손이 파들거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치...친구야....친구야 나와봐...."


검은 실 너머에서 말을 걸던 그 친구.

그래 그 친구라면...

친구야....친구야, 아빠가 이상해.

아빠 분명 나을 거라고 했잖아...

친구야, 아빠를 살려줘...

하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혼자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적막이 가슴을 옥죄듯 압박해오고 있었다.

아프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북받쳐오르는 감정이, 참을 수가 없어, 눈이 자꾸만 흐려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참아오던, 흐느낌이 입을 열자마자 튀어나왔다.


"흐윽, 흐으으윽....아빠...아빠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테니까..."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을게.

맨날 같이 목욕하자고 떼쓰지 않을게.

아빠 나가고 싶을 때마다 아픈 척 하지 않을게.

귀찮게 하지 않을게.

아빠 말 잘 들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빠아아아아!!! 흑 끅...아빠아, 내가...내가 나빴어! 그러니까, 눈 좀 떠봐..."


흔드는 것 조차 겁이났다.

창백하기만 한 피부.

너무나도 약한 숨.

조금이라도 끊어져버릴 것 만큼 아빠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웠다.


"흡, 끅 끅....차가워...아빠 너무 차가워....어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할거라 믿었던 손을 다시 잡아보지만, 지독한 현실처럼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아빠가 떠나려 한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내가 따라갈수 없는 곳으로.


고장난 것처럼 계속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붉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저 환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어린 시절, 자리에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무심코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것이 지금 순간에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를 처음 만난 날.

나와 아빠를 하나로 이어주던 아름답고 예쁜 실.

그 붉은 실이 다시금 나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실은.











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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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편 정도 남았나 싶다.

주인공 갑자기 왜 뒤지려 하나 궁금해 할 게이들 있어서 좀 풀어보자면, 셋카의 힘이 사람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됨.

일단 요괴니까. 겉으로는 괜찮게 해줄지는 몰라도, 안에서는 더 안 좋아지는 거지.

셋카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한테 독을 자꾸 먹이고 있었던 거라고 보면 됨.

이건 나중에 뒤에서도 추가적으로 풀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