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뒤바뀌고 있었다.


하아, 하아.


풀무질을 하듯, 쿵쾅대는 가슴과, 아직도 부족하다는듯 터질듯이 숨을 들이 내쉬고 있다.

아니야. 더. 더. 더 빨리!

아직도 부족하다.

지금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빠르게 산을 내려오고는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아빠가, 아빠가...

아빠를 살려야 한다.


파앗!


"으흑!"


가로막고 있던 나무를 지나치다, 얼굴을 채였다.

따가워...

따갑고도 쓰라린 아픔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뚜욱, 뚝..


이내 볼을 타고 뜨듯한 무언가가 계속 흘러내렸다.

...신경쓰지 말자.

오히려 힘을 끌어올려, 속력에 박차를 가한다.


파스슥.


부딪히고, 찍히고, 쓸린다.

채이고, 패이고, 찢어진다.

점차,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몸인데도, 이상하리만큼 다리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게 차라리 이게 나아.

그저 조금만이라도 더 마을에 빨리 갈 수 있으면, 얼마든지 상관없어.

아빠가 먹던 것.

그것만 있다면...

아빠가 그 것을 먹지 못해서 쓰러진 거라면...!

다시 먹으면 나을 수 있어.

그런 희망 하나만 담은채, 고개를 넘자 드디어 마을의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하아. 하아..."


다 왔어.

숨을 쉴때마다 아플정도로 숨이 찼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늦지 않았어.

아빠를 살릴 수 있어!

그런 생각으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채, 무작정 아빠가 갔었던 건물로 달려갔다.

하얀 건물이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빠를 기다리며, 스쳐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

그 중 아빠에게 옷을 선물받아 환히 웃던 소녀의 얼굴조차도.

일 년이 지났어도, 어제의 일처럼 나에게는 선명했다.


"찾았다..."


선명한 기억 덕에 건물을 찾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 년 동안 위치가 바뀌거나, 달라졌으면 어떻게 할지 고민했던 것은, 괜한 기우에 불과했었나 보다.


"후우."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으로 다가가자 익숙한 문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빠를 기다리는게 힘들어, 몇번이고 열지 말지 고민했었던 그 문고리.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열기 위해 단단히 잡았다.

아빠말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해야 할지 모른다.

아니, 해야만 한다.

아빠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빠가 죽는다.


"아빠 미안해."


벌컥.


문고리를 잡아 열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너, 너무 많아...

이러면, 시간이 너무 부족...ㅎ...


"쿨럭, 쿨럭..."


"아이고, 아이고...."


"선생님 좀 빨리 만나게 해주세요. 너무 아픕니다..."




"......."




...이 곳은 병자투성이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괴로운 얼굴로, 저마다의 아픔을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

고통.

아픔.

괴로움.

그것이 끔찍할정도로 한데 뭉친 모습은, 보는 나로 하여금 머리를 뒤흔들어버릴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게, 뭐야...

머리가 멍하다.

아빠가 여기를 왜 들어왔었어?

그럼 아빠는...?

아빠는...


언제부터?


"접수....어머, 얘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니?"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말을 잃은 나를 향해,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한눈에 봐도 만신창이인 날 보며, 걱정하는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보며, 나는 떨리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여...여기가 어디에...요?"


"의원이란다. 얘야 상처가 심해보이는데, 일단 지혈먼저 하자꾸나."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미는 여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원.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아빠는 그럼 일 년 전부터 아팠다는 거야?

아니, 도대체 정확히 언제부터 아팠던 거야...?

저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온다.

눈치채지 못해서.

미리 말해주지 않은 아빠 때문에 속상해서.

일 년, 아니 몇 년 동안이나, 의원에 갔음에도 아빠가 낫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서워서.


"어머, 얘 많이 아프니? 의사님께 말해볼테니까 우선 먼저 들어가자."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나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는 여자가 내게 말했다.

아직도 내게 내밀어진 손.

그것이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되는 양, 나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꽉 붙잡았다.

살려주세요.


"흡, 끅..."


"어머, 얘..."


"끄흑, 사려..."


나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끅끅 대며, 겨우 그 말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저희 아빠 좀....흑, 끅...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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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환자분의 따님이구나."


의사가 있는 방.

마주앉을 수 있게끔 놓아져있는 의자로 안내하는 여자를 따라, 천천히 앉으니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들어가기 전, 여자가 아빠의 이름을 물어보기에 대답했더니, 여자에게 언질을 받은 듯, 의사는 아빠를 어느정도 알고 있어보이는 눈치였다.


"하아."


어째서 말하기 어려워 하는 걸까.

아마도 아빠에게 약을 주었을 그 의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자식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내고 싶구나."


의사의 말에,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환자 분...그러니 너의 아버지는...지금에서는 치료할 수가 없는 병이란다."


덜컹.


"어머, 얘! 괜찮니?"


순간, 힘이 빠져 의자에서 넘어질 뻔 하자, 뒤에 있던 여자가 등을 받쳐주었다.

치료할 수가 없다고?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는지, 딱딱히 굳어있는 의사의 입.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의사는 충격에 빠져있는 내게 모든 진실을 내뱉었다.


"너의 아버지가 처음 온 때가 사 년. 최대한 늦춰보고 싶었지만, 병세는 계속 심해져만 갔단다. 그리고 지금, 환자인 아버지가 아닌 네가 왔으니...아마 지금이 한계이시겠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억지로 고개를 가로지었다.


"하지만, 아빠는...여기서 지은 약을 먹고 분명 괜찮아 지셨다구요. 기침도 안하고, 분명...!"


"내가 처방해준 약은 기침을 완화해주는 약일 뿐이지. 치료제가 아니란다. 심지어 그마저도 점차 약효가 강한 걸 써야만 했고..."


"아, 아아..."


쥐어짜듯,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어떻게 해야되지.

아빠는, 정말 나을 수 없는 걸까.

믿을 수 없는 말들의 연속에 정신이 잔뜩 뒤섞은 감자처럼 헝클어지고 뭉개진다.

힘들어.

아빠,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아이 상태도 좋지는 않아보이는 군. 소피아 양, 소독 준비를 좀 해주게."


"네, 바로 준비해오겠습니다."


손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말도 안하는 사이, 의사와 여자가 말을 주고 받는다.

싫어.

너무 싫어.

그 사실이. 그 진실이.

죽도록, 싫어!


"꺄아악!"


챙그랑!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진창에 빠져있던 정신이 돌아온다.


덜덜 떨리는 손.

파리해진 얼굴.

뒤를 돌아보니, 여자는 나를 마치 괴물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떨고 있었다.


"...오, 맙소사....설마, 설마 그 귀!"


이번에는 의사의 목소리였다.

...귀?

그제서야, 나는 덮어썼던 모자가, 흘러내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요호구나. 맙소사. 그 환자...아니 그 멍청이가! 요호를 키우고 있었어!"


의사가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을 만큼 구석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신이시여, 어째서...가라, 이곳에서 나가라! 어서!"


떠는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의사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칼이 들려있었다.

아빠가 쓰던 해체칼 보다 조막만한 칼 따위 겁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위협조차 되지 않을 만큼 의사의 몸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어갔다.

왜 나한테 그러는거야...?


아빠는...아빠는요?


"네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멍청이...네 아버지를 치료하려 했다는 것 조차도 후회되는구나! 당장 나가라!"


그저 나가.

나가.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쫓아낸다.

나는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모든 것이 검다.

어느새 수많은 상처에 휩싸여 검게 물들은 도화지는, 더이상 그릴 곳도 없을 만큼 빼곡히 차있었다.

공허함 만이 가득했다.

아빠를 치료할 수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조차도 만날 수 없다.

완전히 혼자가 된다.




............




아아, 맞아.


"화근은 지워야겠지..."


나가려던 몸을 다시 돌리자, 어느정도 안심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의 표정이 다시금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힘을 끌어올리자, 옷에 가려져있던 꼬리가 밝게 빛나며, 방을 비춘다.


호롱...호롱...


"히이익...! 무, 무슨...무슨 짓을!"


별 거 아니야.

그냥, 아빠한테 했던 것 처럼.


"자는거야. 그리고 나만 잊으면 돼."


털썩.


그 말을 끝으로, 둘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나, 둘.

아니, 아직 더 남았어.

담담히 문을 열자, 아까전의 소란 탓에, 모두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허나,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모두 똑같은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요....요호....!"


"요호다!"


변함없는 반응이었다.


호롱...


그래서, 그들도 남김없이 모조리 재워버렸다.

아아....

싫다.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지금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하는구나.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싫어하는 구나.

그래서, 그래서...

멍한 눈으로, 가슴에 남은 검은 실을 바라본다.


아아, 한 명 있어.

어쩌면 두번째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내가 어찌할지 못할때, 항상 답을 알려주던 존재.

나조차도 모르는 내 힘을 잘 알고있던 유일한 친구.

아빠가 쓰러져버린 순간부터 갑자기 침묵해버리긴 했지만, 그 친구라면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


찾아보자.

이 실로 이어져있으니, 따라가면 분명 나올거야.

벗겨졌던 모자를 꾹 눌러쓰고 의원을 나섰다.

정신없이 의원만 보고 달려왔던 것과는 다르다.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는 듯한 불쾌한 기분이 스쳐지나간다.

얼굴을 가리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불쾌해.

싫어.

역겨워.

이상하게도 나쁜 감정이 자꾸만 물 밀듯이 올라온다.

나를 보던, 그 표정들.

왜 나만 보면,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미워.

모두가 미워...




음습하게 차오르는 감정들을 억지로 흩뜨렸다.

아직, 끝난게 아니니까.

아빠를 구하려면, 여기서 무너지면 안되니까.

일단, 친구를 찾아가자.


어쩌면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이렇게 멍청하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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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편 쯤 남았음.

근데 역시, 아무리 플롯을 짜놔도 살 붙히다보면 자꾸 이상하게 딴 데로 튄다고 해야 되나.

생각했던 것 처럼 안 써지더라.

장편은 역시 쉬운게 아님을 깨닫는다.